88만원 세대 - 절망의 시대에 쓰는 희망의 경제학 우석훈 한국경제대안 1
우석훈.박권일 지음 / 레디앙 / 2007년 8월
평점 :
품절


유신세대, 386세대라는 말들을 자라면서 간간히 들었고, X 세대니, N 세대니 하는 말들도 유행처럼 듣고 살았던 때가 있었다. 그리고 지금은 이 단어, '88만원 세대'라는 말이 귀에 더 익숙하다. 그 안에 내가 포함되어 있기 때문에 더 참혹하게 들리는......

청소년들은 좋은 대학에 들어가는 것이 가장 큰 미덕으로 알고 공부를 하고, 대학에 들어가서는 좋은 직장을 얻기 위해 또 취업 준비를 한다. 직장에 들어가서는 구조조정 되지 않기 위해 애써야 하고, 어떻게든 밥벌이를 위해서 무한경쟁의 세계에서 아둥바둥 애쓰고 살아가게 된다. 모두라고 말할 수는 없어도 대체로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의 앞날을 위해서 웬만큼씩은 노력하고 산다. 그런데, 사회의 시스템상, 필연적으로, 어쩔 수 없이 자기 힘으로 어찌할 수 없는 장애들을 만나게 된다. 개인이 맞닥뜨린 비극을 그 개인 한 사람의 탓으로만 치부하고 또 그 사람들 역시 자신의 못남을 탓하게 만드는 구조를 볼 때, 우리 사회가 건강하지 못하다는 것은 분명하다.

이 책은, 우리 사회의 세대간 경쟁, 세대 내 경쟁의 측면들을 분석하면서 지금과 같이 88만원 세대가 양태된 비정상적 자본주의의 역사를 경제학자의 눈으로 풀어주고 있다.  분명 어느 세대 안에 포함되어 있는데도 스스로 알지 못했던 우리들의 이름들을 쏙쏙 집어주며 그 세대의 특징도 적나라하게 짚어주고 있다. 그들의 업적과 과오와 모순까지도 함께.

1부에서는 첫 섹스가 슬픈 까닭과, 18세에 독립하지 못하는 우리 아이들, 청소년들의 알바 시장, 럭셔리 마케팅의 함정 등등은 알지 못했던, 혹은 상상하지 못했던, 또는 미처 간파하지 못했던 우리 사회의 단면들을 제대로 보여주는데 어느 순간 아찔함을 느낄 지경이었다.  그렇지만 벌써 놀라기엔 아직 이르다. 2부에선 20대가 만나게 될 세상을 보여주는데 개미지옥과 배틀로열이란 단어들과 마주하게 되면 앞이 캄캄해질 지경이다.  독자의 이런 절망감을 미리 눈치챘는지, 저자들은 각각의 대안들을 앞에서 먼저 제시해주는 수고를 기꺼이 해준다.  물론, 그 해법들은 '제안'의 수준이기 때문에 실질적인 행사력은 없다. 그럼에도 절망 끝에서 부르는 희망 노래의 역할은 충분히 해준다. 그런 고민을, 걱정을, 연구를 해주는 사람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일단은 큰 위로가 된다.

적을 알고 나를 알아야 이길 수 있다고, 88만원 세대의 당사자들은 자신들을 둘러싼 이 세계가 어떻게 움직여가고 있는지에 대한 고찰이 필요하다.  설령 그것이 더 깊은 나락으로 밀어넣는 기분이 들지라도 도망쳐서는 안 된다. 피할 수 없는 길이니까.

지금의 20대 언저리의 사람들은 구세대들이 가졌던 마인드, 이를테면 기왕이면 아는 사람, 혹은 이웃의 것을 팔아주는 마음씀씀이가 없다. 구내매점과 스타벅스의 커피 한잔의 값어치가 그들에게 그렇다. 내 돈 내고 내 맘에 드는 소비를 하겠다는데......라고 하면 할 말이 없어지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 번 더 재고해 보려는 여지를 가질 수 있다면, 그 자체만으로도 이 비극적인 세대에게 조금 더 희망이 되어줄 수 있을 것이다. 

68혁명 당시 프랑스에서 모든 대학을 국립대학으로 만들어낸 것은 대학생이 아니라 고등학생들이었다는 사실에 꽤 충격을 받았다. 필요가, 갈망이 그들을 움직였다. 그들 자신을 위해서, 또 그 이후 세대를 위해서 말이다. 우리나라의 386세대가 민주화를 위해 그렇게 싸워놓고도 결국 자신들은 원정출산에, 사교육 강화에 힘쓰는 모습과는 몹시 대조적이었다. 일종의 배신감... 그런 기분이 들었다. 그리고, 우리 이후의 세대에게도 그같은 감정을 느끼지 않기 위해서 지금 우리가 잘해내야 한다는 책임감도 함께.

광우병 사태가 불궈졌을 때 제일 먼저 달려나온 것은 여중생들이었다. 역시, 필요가 그들의 걸음을 움직였다. 미친 교육 반대라고도 외쳤다. 도저히 답이 없다는 것을 아이들도 이미 알고 있다. 그 외침에 동참해 주고, 연대해주는 마음마음들이 우리에게 필요하다. 가까이에는 당장 일주일도 남지 않은 교육감 선거에 참여하는 것도 우리가 반드시 해야할 일이다. 냉소와 무관심으로는 무엇도 바꿀 수 없다. 그건 위악만큼이나 나쁘다.

저자는 경제학적으로, 또 역사적으로 접근할 수 있는 모든 통로를 비춰주며 우리 세대의 이야기들을 힘주어 열심히 얘기한다. 다만 그 열기가 지나쳐 좀 어지러이 흩어놓는 경향이 좀 있다. 뭐랄까, 응집력이 좀 떨어진다. 조금만 더 힘을 빼고 조금 더 차분하고 냉정하게 말해준다면 하고자 하는 얘기의 요점과 진심이 좀 더 빠르고 곧게 전달될 것으로 보인다. 무수하게 드러나는 오타들은 편집진들의 책임일 것이다.  여러 쇄를 찍었다는 것은 그만큼 책이 팔렸다는 얘기이고, 그만큼 이 책의 내용들을 필요로 하는 세대가 많으며 또 그 이상으로 절박하다는 증거가 될 것이다.  그건 참 마음 아픈 얘기이지만 더 많은 사람들이 이 책을 읽고 하나의 깨달음을 가질 수 있다면 그것은 또 기쁜 일이 될 것이다. 책의 절단 단면이 고르지 않아 우둘툴한데, 그 정도는 이 책의 가치를 떨어뜨리는 데에 전혀 영향을 미치지 못한다.  '경제학'이라는 학문이 좀 더 가깝게 느껴지게 된 것도 하나의 수확이다.

이 절박한 세대들에게 전해주고자 하는 메시지들이 '희망고문'이 아닌 올곧이 '희망'이기를 함께 소망해 보며, 바리케이드 치고 짱돌을 들 준비를 해본다. 그것이 우리가 마땅히 가져야 할 인간에 대한 '예의'이며 '도리'이니까. 내가 받고 싶은 바로 그 예의와 도리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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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오기 2008-07-24 03: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직 제대로 안 읽고 좌르르~ 훑어만 봐서 님의 리뷰가 도움되었어요. 감사 ^^

마노아 2008-07-24 09:02   좋아요 0 | URL
헤헷, 다행이에요^^

픽팍 2008-07-25 16: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이책 사놓고 같이 온 소설 보느라 아직 읽지 않고 있었는데 얼렁 읽어야 겠네염;;
하지마나 역시 바리케이드 치고 기껏 짱돌보다는 역시 김정일과 쇼부쳐서 핵무기 하나 정도는 들어야;;

마노아 2008-07-25 19:35   좋아요 0 | URL
핵무기가 바람직하지도 않지만 그걸로도 이 문제는 해결하기 힘들 것 같아요. 에효, 한숨부터 나오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