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븐시즈 7SEEDS 12
타무라 유미 지음 / 서울미디어코믹스(서울문화사) / 2008년 6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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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나 각오했던 것 이상으로 감탄하고 감동 받는다. 이번 편에선 지난 번과 같은 처절한 사투는 그닥 없었기에 덜 슬펐지만 찌르르 찔리는 느낌의 깨달음을 많이 주었다.

봄, 여름, 가을, 겨울로 나뉘어 이미 멸망해 버린 미래 세계로 보내진 아이들.  처음으로 '일반인'이 아닌 준비된, 훈련된, 그리고 알고서 보내진 자들을 만났다.  그러나, 그 만남이 축복이, 행운이, 도움이 되지 못했다.  그들은 철저하게 생존을 위한 프로젝트로 길러진 사람들이고 그랬기에 이 세계의 생존자로서 자격 미달이라고 여긴다면 얼마든지 생명도 취할 수 있는 사람들이었다.  문명이라는 것이 완벽하게 사라진 곳에서 자연이라는 무서운 적과 마주한 이들이 낯선 사람을 만났을 때 가졌던 기대와 흥분과는 너무도 거리가 먼 관계였던 것이다.

여름 B팀의 나츠에 대해서 여러모로 생각하게 된다. A팀과 달리 가장 열성(!) 분자로 분류되어 미래로 보내진 아이들.  성격이든 환경이든 무엇이든 생존 조건에서 변수로 짐작된 아이들. 그 안에 나츠가 있다. 소심하고 사람 눈을 제대로 마주치지도 못하고 속의 말을 하지도 못하는 이 아이. 바느질 하는 것도 청소하는 것도 무엇 하나 똑부러진 것 없이 엉성하고 어설프다. 그런 나츠가, 조금씩 변하게 된다.  아직도 많이 수줍고 머뭇머뭇거리지만 조금씩 능동적으로 생각하려고 애쓴다. 그 변화의 계기에 아라시가 있다. 살아있을 거라고 굳게 믿는 연인 하나에 대한 감정을 가슴 깊숙이 집어넣고 이제는 팀의 분위기 메이커로 가장 적극적으로 생존을 위해 싸우는 아이다.  사흘 후의 목표, 3주 후의 목표, 그리고 일년 후의 목표를 세우고 나가자고 말을 하는 아라시. 거기에 세미마루와 나츠가 화들짝 놀란다. 그런 생각을 해본 적도, 그런 생활을 해본 적도 없는 아이들이었다. 독자도 같이 감탄한다. 그런데 한 번 더 놀라게 된다.  계획하지 않고 되는 대로 살겠다고 외치는 세미마루지만, 그런 세미마루에게서 아라시는 실전에 강한 타입이라고 말을 한다. 작가 타무라 유미는 언제든 하나의 명제만 제시하지 않는다. 하나의 현상에서 두개 세개, 그리고 여러 개의 답을 끌어낸다. 하나만 옪은 것이 아니고 모두가 옳을 수 있고 또 동시에 모두가 옳지 않을 수도 있음을, 작가는 늘 말해준다.

바다에서 건진 히바리가 나츠에게 고약하게 구는 대목에선 울컥했다.  공주님처럼 자란 유서깊은 집안의 무녀 아이는 나츠의 약점을 제대로 쥐고서 뒤흔드는데 자기 나름대로는 그것이 스스로를 보호하는 것이라고 한다.  나로서는 이해할 수도 동의할 수도 없는 부분이었다. 그런데 세미마루의 얘기에 허를 찔린다.  퉁명스럽게 굴었지만 그것이 히바리로서는 사과하려는 것이었다고.  얼마 전 내게도 비슷한 일이 있었다.  아니, 지금도 진행 중이다.  나로서는 절대 미안해하는 거라고 느껴지지 않는 그 사람의 태도에서, 누군가는 미안해하고 있는 감정이 느껴진다고 했다.  내가 보지 않으려 했기 때문에 못 알아차린 것일까? 난 억울했다.  정말 미안하면 미안하다고 말을 해야 하는 것이고, 그 감정을 알게끔 시도라도 해야 하는 것 아니냐고.  이름 한자락을 부르는 노력도 하지 않고, 내가 붙이는 말에 대꾸 한자락을 하지 않으면서 어떻게 미안해하는 감정을 알라는 것인지 도저히 납득할 수가 없었다.  아직도, 나는 내가 너그럽지 못한 까닭이라고 인정하긴 억울하다. 다만, 조금은 이해해보려는 노력을 더 기울일 여지를 찾게 되었다.  작품 속 나츠처럼. 히바리처럼.

사랑하는 사람이 모두 죽어 없어진 지 수백 년.  아는 사람도 없고, 익숙한 문명도 없고 생존을 위해서 끊임없이 싸우고 조심해야 하는 그런 상황. 내일 아침 해가 뜨는 것이 충분히 두려운 그때에, 내일 아침을 기다릴 수 있는 희망 한자락, 마음 조각 하나를 가질 수 있음을, 작가는 긴 템포의 글 속에서 조금씩 보여준다. 그 무서운 희망이 그래도 아름답다고, 작가는 독자로 하여금 느끼게 해준다.

처음 광우병 쇠고기의 무서움을 알게 되던 날, 인류 멸망의 징후가 느껴지는 것 같아 잠이 오질 않았다.  이토록 환경을 망가뜨리고 사는 인류는 언젠가 모두 멸망하고 말 거라고 막연히 생각했지만 나 살아있는 동안 그런 날이 올 거라고는 상상해본 적이 없다.  그 이기적인 기대감이 무서웠다. 광우병 쇠고기 만큼이나, 이런 마음들이 참으로 무섭구나... 생각했다.  아주 작은 가능성 하나에도 예견치 못한, 대비하지 못한 재앙에 이토록 두려움을 느끼는데 작품 속의 이 아이들을 얼마나 무서운 세상을 사는 것일까.  인간이 놀랍고 대단하고, 그래서 작가가 또한 놀랍고 대단하다.(존경한다!)

작품 안에선 간간히 노래 이야기가 나온다. 죽음에 다다른 사람들이 노래에서 찾는 위안과 안정에 공감한다.  그런 것들이 '예술'이 우리에게 선사해 주는 선물 중 가장 큰 부분일 것이다.  그들의 희망 노래가 오래오래 울렸으면 좋겠다. 어렵게 구한 흙피리가 부숴졌지만 희망만은 깨지지 않기를...

스케일이 워낙 커서 단행본으로 호흡을 따라가긴 좀 힘들다. 어릴 적에 '아르미안의 네 딸들'을 읽을 때에 뒷권이 막 2년 뒤에 나오고 그래서 다음 권 나올 땐 꼭 앞에서부터 다시 읽고 읽고를 반복했는데, 이 책은 그 정도로 간격 없이 나오진 않지만 워낙 많은 사람들이 등장하기 때문에 이야기가 잘 생각 안 날 때가 있다. 역시 큰 흐름과 더 깊은 감동은 완결 뒤에 또 이어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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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6-18 13:2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8-06-18 13:29   URL
비밀 댓글입니다.

마냐 2008-06-24 01: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랏. 이 책! 까먹고 있었어요. 몇권까지 읽었더라. 전 7권 정도 본거 같은데.;;; 역시 안 끝난 작품을 읽으면, 중간에 깜빡깜빡. 대단히 쇼킹하게 봤는데....이거 기다렸다가 마노아님이 완결편 리뷰하심..그때가서 봐야할까여. 흠흠.

마노아 2008-06-24 06:58   좋아요 0 | URL
전 계속 사 모으다가 6권 정도 나왔을 때부터 읽기 시작했어요. 그랬더니 푹 빠지게 만들더라구요^^;;
작품이 완전 대하서사시에요. 과연 20권 안에 끝날지 자신이 없네요. 으하핫, 완결편 리뷰까지 열심히 달리겠습니다^^ㅎ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