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의 딸 걸어서 지구 세바퀴 반 4 - 몽골 중국 티베트
한비야 지음 / 금토 / 1998년 12월
품절


몽골이라는 이름은 '용감한 전사의 나라'라는 뜻이란다. -21쪽

세계 열어 곳에서 만난 우리와 닮은 사람들, 남미의 인디오나 북미의 원주민, 알래스카의 에스키모나 티베트인, 중국인의 모습이 그저 우리와 비슷한 정도라면 몽골 사람들은 우리를 빼박아서 섞어놓으면 거의 분간이 불가능할 정도이다. 가는 눈매에 광대뼈가 튀어나와 더 그런 것 같다.
'한민족과 사촌이든 백촌이든 촌수가 형성될 수 있는 유일한 민족이 바로 몽골족이다.'
우리나라 몽골 학자 한 분이 그렇게 말했는데 다른 건 모르겠지만 얼굴 생김새는 정말 그렇다. -21쪽

접시에 산같이 쌓아놓은 만두를 보고 어떻게 애들끼리 이런 걸 만드느냐니까 몽골 아이들은 모두 집안일을 잘 거드는데 남자, 여자 차별이 없다는 것이다. 포르마는 이가로부터 '한국에서는 남자들이랑 아이들이 집안 일을 잘 안 거들어 준다'는 설명을 듣고는 고개를 갸웃거린다.-28쪽

할머니는 아들 셋, 딸 셋을 두셨는데 아이를 많이 낳았다고 나라에서 주는 2급 훈장을 받으셨단다. 인구증가에 기여한 공이란다. 몽골은 땅 넓이가 남한의 약 16배인데 인구는 1921년 독립 당시 64만 명도 되지 않아 전세계가 인구증가 억제책을 쓰고 있는 와중이었으나 출산을 적극 장려했다고 한다. -32쪽

독립 당시 몽골의 인구가 그렇게 적었던 것은 청나라의 간교한 정책 때문이었다고 한다. 만주족의 청나라는 원나라의 부활을 막으려고 몽골 사람들의 불심을 교묘히 이용하여 후손의 번성을 막는 정책을 폈단다. 라마 불교를 보호하는 척하면서 큰아들을 제외한 모든 아들들을 불교에 출가시키도록 법으로 정해 인위적인 산아제한을 했던 것이다. -33쪽

몽골 말들은 생각보다 숏다리에 몸집에 비해 머리가 크고, 배 부분이 통통한 것이 우리가 상상하던 키 크고 날렵한 준마의 위용을 갖추고 있지는 않다. 그래도 저 말이 지구력과 인내심이 뛰어나서 칭기즈 칸이 동서양에 걸친 세계 대제국을 건설할 때 한몫을 단단히 한 말이란다. -38쪽

"저 비닐이 썩으려면 적어도 1백 년은 걸려요. 이 플라스틱은 수백 년, 저기 버려둔 보드카 병은 무려 4천 년이 걸리죠. 여기가 아저씨 나라이기도 하지만 내가 사는 행성이니까 나도 못 버리게 할 자격이 충분히 있다고요."-52쪽

"환경보호는 거창한 게 아니에요. 부엌이나 목욕탕 등 생활에서 자기가 기꺼이 할 수 있는 만큼만 환경에 해롭지 않은 일을 찾아서 하면 돼요. 시냇물이 강물이 되고 바다가 되듯이 작은 힘이 모이면 큰 힘이 되는 것 아니겠어요. 우리가 지금 몽골에 있으니 적어도 몽골을 더럽히는 일은 하지 말아야지요."-52쪽

몽골에서는 손님을 아주 귀하게 여기며 환대를 한다고 가나가 이야기 해 준다. 그래서 긴 여행을 하는 사람이라도 먹고 잘 걱정은 전혀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아무 게르나 들어가서 자기 집처럼 지낼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주인의 행동이 조금만 굼떠도 왜 이렇게 밥이 늦느냐, 마실 것이 늦느냐, 장난삼아 호통까지 칠 수 있다고 한다. -57쪽

에스키모나 몽골의 유목민들은 아주 외진 곳에 살았기 때문에 근친혼이 불가피해서 비정상적인 아이들이 많이 생겼다는 것이다. 그래서 외부에서 누가 오면 그 사람의 '씨'를 받아 종족의 열성화를 막으려 했다는 이야기를 읽은 적이 있다. 그런 주장에 수긍이 갔다. -61-62쪽

그런데 고비맨ㄴ의 이런 낙타 예찬은 티베트 사람이 야크에 대해 하던 말과 너무나 흡사하다. 티베트에서는 야크가 이 세상에서 제일 쓸모있는 고마운 동물이라고 했다. 아니, 그뿐이 아니다. 소로부터 필요한 모든 의식주의 원료를 얻어내는 아프리카의 마사이족은 소를 최고로 여겼다. 중동 같이 양이나 염소를 주로 키우는 곳에서는 또 양과 염소가 그랬다. 남미의 고산지대에서는 야마가 그런 대접을 받고 있었다.
모든 유목민들은 자기들이 키우는 동물에 대해 모두 비슷한 감정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여행 다니면
서 알게 되었다.
비단 동물에 대해서만 이런 상호의존적이고 고마운 감정을 느끼는 것은 아니다. 우리에게는 쌀이 그런 것처럼 보리나 밀, 옥수수, 감자, 야자, 대나무 등이 그것에서 필요한 것들을 얻는 사람들에게는 가장 고마운 식물이 된다. -64-65쪽

여자도 말을 타고 다니며 가축을 돌보고, 남자도 식사 준비나 설거지를 하고 아이까지 돌본다. 세계의 반을 호령했던 칭기즈 칸의 후예들이라 남성의 지위가 여성보다 훨씬 우위일 거라고 지레짐작했었는데 전혀 그게 아니다. -69쪽

몽골 사람들은 성이 없다. 보통 아버지의 이름에 자기 이름을 붙여 쓴다. 가나의 아들이 보르톡이니 그 정식 이름은 가나 보르톡이고 그 아들이 또 아들을 낳아서 바토르라고 이름을 지으면 그 이름은 보르톡 바토르가 된다. 그래서 이름만 가지고는 조상을 따져볼 수가 없단다.
그러나 얼마 전까지만 해도 아버지 성울 물려받는 풍습이 있었고, 그것을 기록한 족보도 체계적으로 잘 보존되어 왔다는 것이다. 그런데 공산 혁명 이후 구 소련의 조정을 받은 몽골 정부가 1925년부터 성을 물려받는 제도를 폐지해 버렸단다.
몽골족의 기상을 꺾어놓기 위한 수단 중의 하나였다는데, 인간에게 가장 기본적인 혈연관계의 끈을 없애버리면 개개인으로 흩어져 힘없는 집단으로 전락하고 만다는 것을 공산주의자들은 잘 알고 있었던 모양이다. 식민지배는 이렇게 무서운 것이다. 다행히 러시아가 물러난 지금은 잃어버린 성 찾기 운동이 활발히 벌어지고 있다고 한다. -71쪽

몽골 하면 사막과 초원으로만 이루어졌을 거라고 생각하기 쉬운데 실은 이곳은 다양한 지형을 가지고 있다. 놀랍게도 지리학자들은 몽골을 산악국으로 분류한다. 북부는 울창한 삼림과 호수와 강이 있고 중서부는 산맥이 가로 놓여 있다. 남부에 있는 고비 사막은 전 국토의 2%밖에 차지하지 않으며, 동부 대초원이 25%를 차지한다. -72쪽

1507년 전세계를 휩쓸던 칭기즈 칸 군대들이 티베트도 침공했다. 그때 군대를 이끌었던 몽골 장군은 티베트 사람들의 불심에 감화를 받아 전쟁을 하다 말고 독실한 불교 신자가 되었다. 그들은 군대를 철수하면서 스님들 몇을 몽골로 데리고 갔다. 이때부터 몽골은 티베트 불교를 국교로 삼게 되었다. 한때는 남자 인구 중 1/3이 스님일 정도로 신심 깊은 불교국이 되었던 것이다. -79쪽

카라코룸은 몽골이 동쪽으로는 고려, 서쪽으로는 헝가리, 남쪽으로는 베트남과 바그다드, 북쪽으로는 모스크바에 이르는 인류역사상 최대의 제국을 세웠을 대의 수도였다. 이 제국은 유럽의 대제국 로마가 최전성기때 차지했던 땅의 두 배가 넘는 전세계의 반을 차지하는 어마어마한 영토를 지배했다.
그러나 칭기즈칸의 후손들은 곧 내리막길을 걷게 된다. 몰락의 원인은 한두 가지가 아니겠지만 칭기즈 칸의 아들들이 쓴 지방분권제의 실패와 정착민의 안락한 생활에 길들여진 병사들이 전의를 잃게 된 것, 성인 남자들이 군인이 되는 대신 승려가 되기를 원해 군사가 부족해진 것 등이 가장 큰 원인이었다고 한다.-79쪽

몽골은 그후 19세기 때 청나라에 망해 식민통치를 받다가 1921년 신해 혁명 이후 독립을 선언했다. 24년 소련의 도움을 받아 세계에서 두번째로 공식적인 사회주의국가인 '몽골인민공화국'을 선포하고 사실상 러시아의 세력권에 들어 있다가 92년에 국호를 '몽골리아'로 바꾸고 새로운 건국을 했다. -8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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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오기 2008-05-22 02: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용감한 전사의 나라~ 나도, 언젠가 가봐야지!

마노아 2008-05-22 09:22   좋아요 0 | URL
진짜 사막의 나라에 가보고 싶어요. 그 메마름 속에서 촉촉한 감동이 느껴질 것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