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빙화] 서평단 알림
로빙화 카르페디엠 2
중자오정 지음, 김은신 옮김 / 양철북 / 2008년 3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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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 전부터 제목은 익히 들어왔었고 영화로도 꽤 유명했던 터라 줄곧 궁금했었는데, 정작 어떤 내용을 담고 있는지는 알지 못했다. 서평도서로 신청을 하면서 오랜 궁금함 뒤에 비로소 만나게 되었다.

이 책이 쓰여진 배경은 1960년대 대만이다.  전쟁의 폐허에서 아직 다 일어서지 못한 가난한 시기였고, 꿈을 이루며 산다는 것이 사치처럼 느껴지던 그런 시절이었다.  주인공 고아명은 초등 3학년 생으로 그림 그리기를 아주 좋아하는 소년이다.  누나 고차매는 그런 동생을 잘 보듬어주는 6학년 생으로 일찍 철이 들어서 집안 일에도 열심을 보여주는 배려깊은 소녀다.  아버지 고석송은 가난한 농부로서 뼈빠지게 일을 하지만 빈곤의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것을 팔자로 생각하고, 자식들이나 부인에게 자상함이라고는 보여주지 못하는 억센 사나이다.

마을에 대학생으로서 아직 학기를 다 마치려면 2년은 있어야 하는 청년 곽운천이 임시 미술 선생으로 부임해 온다.  때마침 현에서 주관하는 미술 대회에 참가할 학생들을 뽑을 때가 되었고, 곽운천은 단번에 고아명의 천재성을 알아보며 아이가 창의력을 맘껏 뽐내며 제 세계를 그려갈 수 있게 격려해 주지만 마을 유지의 아들이면서 아명의 담임선생님 임설분의 동생인 임지홍에게 출전 자격을 빼앗기고 만다.  실력만으로는 고아명이 단연코 앞서고 있었지만, 틀에 박힌 그림만 그려 사진과의 차별성을 주지 못하는 임지홍의 그림이, 그의 아버지에게 아부하고 싶은 다른 선생님들의 추천에 의해 대표로 뽑히게 된 것이다.

곽운천은 우유부단하고 자기 주장도 없으며 이리저리 휩쓸리는 교장 선생님께 만류를 당하고, 또 임지홍과 임설분의 아버지에게 압박을 당하고, 그를 추종하는 선생들에게 핍박을 받으며 교직 생활에 회의를 느끼게 된다. 그러나 또 동시에 임설분에게로 향하는 애정을 감추지 못해서 당황해 하고, 자신에게 들이대는 옹수자 선생 때문에 곤욕스러워 하기도 한다.  열등감을 느끼는 임지홍에게 고아명보다 실력이 좋다고 기를 세워주었다가 금세 거짓말한 자신을 후회하기도 하는 이 초짜 선생의 만만치 않은 사회 생활은 거의 반세기 뒤의 지금까지도 비슷하게 재현되고 있다고 느껴진다.

교장은 곽운천의 주장과 논리가 올바르다고 생각하지만 마을 유지이자 의원이기도 한 임설분과 임지홍의 아버지에게 맞서지도 못하면서 난처해 하는데, 그러면서도 바탕은 착한 사람임을 여지 없이 드러낸다. 욕심 많고 드센 사람들 사이에서 균형을 맞추는 일도 보통이 아니었을 것이다. 작가의 말처럼 이제 정년 퇴임 나이가 되었으니 고향에서 편히 여생을 보내는 게 스스로를 위한 선물일게다.

미술 대회에 참가할 수 있을 거라고 잔뜩 흥분해 있던 아명은 그런 꿈이 좌절되자 밤새 울고 밥도 건너 뛰고 선물로 받은 크레파스를 뚝뚝 분질러버리기까지 한다. 그리고 말리는 누이를 마구 때리기도 했는데, 동생의 아픈 마음을 위로하고 보듬어 주느라 대신 울어내는 차매의 심성이 참으로 곱고 따뜻했다.  역시 형만한 아우가 없다고 할까나...

그러나 아이들이 좌절된 꿈으로 상처를 입었거나 말거나, 아버지 고석송은 차밭에 들끓고 있는 벌레 때문에 신경이 곤두서 있다.  그림을 그려서 밥이 나오는 것도 아니고 돈이 나오는 것도 아니지만, 당장 차농사를 망치면 집안의 생계가 위험해진다. 아버지의 마음을 이해 못하는 것도 아니다. 그러나 그런 현실을 올곧이 받아들이기에는 아이들이 너무 어리고 밟혀진 꿈이 참으로 애처로웠다.

다행히 국제 대회에 우편으로 그림을 접수할 수 있게 되어 고아명은 더 큰 무대에서 더 크게 꿈을 펼칠 수 있게 된다.  사회 생활엔 여러모로 미숙했던 곽운천 선생은 그래도 천재 소년의 재능을 꽃피우기 위한 자신의 쓰임새를 제대로 간파하고 있었던 것이다.

임설분 역시 곽운천에게 마음이 있었지만, 부유한 집안에 시집가야 한다는 아버지의 압박을 거스를 용기가 없었고, 마찬가지로 우유부단한 곽운천에게 마음이 상해 괜히 토라지고 맘에 없는 소리로 서로의 가슴에 생채기를 내버렸다. 결국 곽운천이 학교를 떠나고서야 제 마음을 알아차린 임설분은 곽운천이 보낸 편지를 받아들고 닫힌 가슴을 열어버린다. 뿐아니라 꽉 막혀 있던 자신의 인생 문을 활짝 열게 되는 계기가 되어버리니, 그녀를 나약하고 용기 없는 인물로 보았던 곽운천 자신보다 백배 천배는 더 용기있는 결단과 반성을 보여준다.

반면, 임설분과 달리 대놓고 곽운천에게 프로포즈를 했던 옹수자의 사랑은 참으로 이기적인 모습이었다. 제 사랑의 성취를 위해 근거 없는 소문을 퍼뜨려 곽운천과 임설분을 난처하게 만들었고, 그랬던 자신의 모습은 사랑 때문이었노라고 합리화를 한다.  자신이 싫어하는 서대목 선생의 마구잡이 들이댐과 다를 바가 하나도 없다.  곽운천이 갑자기 사라져서 그녀가 닭쫓던 개마냥 변해버렸을 때는 다소 고소하기도 했다. 뭐랄까... 제대로 삽질한 셈이었지...

곽운천은 비록 학교를 제 의사와 상관 없이 떠나게 되었지만, 대학교를 마치고 정식 교사가 되어서 다시 돌아올 계획을 세우고 있었다. 그때까지 아명이의 천재성이 꺼지지 않게 임설분에게 뒤를 부탁해 놓았는데, 애석하게도 그의 계획은 이루어질 수가 없었다.  아명이 불의의 사고를 당했기 때문이다. 

키우던 고양이가 쥐약을 먹고 죽어갈 때, 고양이를 구하기 위해서 빗속을 뛰었던 아명은 급성 폐렴에 걸린다. 가난한 아버지는 어머니가 병에 걸리셨을 때에는 마찬가지로 병에 걸린 한살짜리 아이를 포기하면서 병구완을 했지만, 아명을 위해서는 아무 조취도 취하지 못한다. 빌어먹을 팔자 타령을 하며 자신이 할 일은 여기까지라고 생각한다.  산 목숨들을 먼저 생각해야 했던 아버지의 비참함을 모르는 바 아니지만, 그래도 '아직' 살아있는 목숨을 다해 최선을 다하지 않은 것은 참으로 야속하다.

국제 대회에서 특선을 받은 아명은 마을에서 천재로 추앙받는 장례식을 가질 수 있었지만 누이 차매의 말처럼 죽어 인정 받는 천재가 대체 무슨 소용이란 말인가. 게다가 이토록 어린 목숨인 것을.......

곽운천이 처음 고아명 남매를 만나던 언덕에 피어있던 로빙화는 이제 시들어 말라 버렸다. 그렇지만 로빙화는 다음 해에 다시 인간 세상에 황금빛 꽃을 피우기 위한 씨를 남겨 놓고 갔다.  게다가 그렇게 한번씩 피고 지면서 차밭을 기름지게 만드는 역할도 해준다.  비록 천재 고아명은 제 꽃을 활짝 피워보기도 전에 스러져 갔지만 남겨진 자들에게 그저 회한만으로 남지 않았으면 한다. 

곽운천과 임설분의 뒷 이야기는 전하지 않는다.  곽운천이 자신의 각오대로 다시 학교로 돌아왔을지, 또 임설분과의 사랑을 쟁취하여 얻었을 지도 알 수 없다.  그러나 비록 아명은 안타깝게 죽어버렸지만, 곽운천이 교육자로서 품었던 꿈과 바른 뜻이 올곧게 펼쳐질 수 있기를 소망해 본다.  그리고 그 대상이 아명같은 천재가 아닌 평범한 아이들에게도 골고루 닿을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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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오기 2008-05-14 02: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선생님으로서 곽운천은 괜찮은 사람이군요~~~ 로빙화가 어떤 생김일지 가늠이 안 되네요.^^

마노아 2008-05-14 09:43   좋아요 0 | URL
순수한 열정이 느껴져요. 어리버리 청년이기도 하지만 순박한 모습이 예뻤어요^^
사진 첨부했답니다. 저렇게 생겼나봐요.

순오기 2008-05-14 18:20   좋아요 0 | URL
아하~~ 로빙화가 저렇게 곱군요. 게다가 노란색이라니~~~
친절한 마노아님 쌩유~~ ^^

마노아 2008-05-14 23:31   좋아요 0 | URL
책의 표지 그림도 로빙화가 있는데 배경이라 굉장히 옅게 표현되었어요. 실제로 보면 색이 더 예쁠 것 같아요6^^

bookJourney 2008-05-14 06: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책이 있었군요.
오래 전에 TV에서 영화(?)로 보았던 기억이 나요. 얼마나 펑펑 울었던지 ... ;;

마노아 2008-05-14 09:43   좋아요 0 | URL
우리나라 판 '소나기'같은 느낌인데 그보다 더 현실이 절절하게 묻어 있었어요. 영화로 보면 저도 울 것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