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의 박탈은 인간에게서 인격을 빼앗고 인간을 '사물'로 최급하기 위해 필수적인 절차다. 지배자는 항상 그것을 잘 알고 있다. 나찌 독일만의 지혜가 아니다. 지금도 한국과 일본을 비롯해 많은 나라의 교도소에서 통상적으로 수감자를 이름이 아니라 수인번호로만 부른다-115쪽
인간은 짐승과 다르다. 따라서 내일 자신이 어떠한 상황에 처할지라도 얼굴을 씻고 이를 닦는다. 자기 자신에게 규율과 질서를 부과하고 자기 생활의 주인으로서 살아가는 것이다. 인간은 짐승과 다르다. 때문에 노예보다 못한 신분으로 추락하더라도 '덕과 지'를 구하는 것이다. 단떼를 상기하고, 오디쎄우스처럼 끝없는 고난의 항해를 이겨내려고 하는 것이다. 언젠가 다시금 지옥에서 인간세상으로 생환하여 증언하기 위해서.-155쪽
실상 이와 같은 질문은 나 자신의 귀에도 익숙하다...... '일본인'의 죄라는 것이 있을까요? 과거 중국인이나 조선인을 학대한 사람들과 우리는 동일한 '일본인'인가요? '일본인' 중에도 '좋은 사람'이 있었음을 무시하지 말아주세요. (단, 전쟁 전과 전쟁중에 천황제와 침략전쟁에 반대하여 싸운 일본인은 나찌에 저항한 독일인보다도 지극히 적었다.)-216쪽
1960년대 전반까지만 해도 '라인강의 기적'이라고 불리는 경이적인 경제성장만이 칭송될 뿐, 나찌 시대의 죄를 독일 스스로의 손으로 밝히려는 움직임은 거의 없었다.-218쪽
대다수 독일인은 알지 못했다. 그것은 알고 싶지 않았고 무지의 상태로 있고 싶었기 때문이다. 국각가 행사하는 테러리즘은 분명 저항 불가능할 정도로 강력한 무기다. 하지만 전체적으로 볼 때 독일 국민이 전혀 저항을 시도하지 않았던 것은 사실이다.(...) 일반 독일 시민은 무지한 채 앙ㄴ주하고, 그 위에 껍질을 씌웠다. 나찌즘에 동의한 것에 대한 무죄를 증명하기 위래 무지를 이용한 것이다. 눈, 귀, 입을 모두 닫고 눈앞에서 무엇이 일어나든지 상관하지 않았다. 때문에 자신은 공범이 아니라는 환상을 만들어낸 것이다. 그것을 알아채고 알리는 것은 나찌즘에서 거리를 두는 한 가지 방법이었다.(그래서 결국 그다지 위험하지도 않았다). 독일 국민은 전체적으로 볼 때 그렇게 하려고 하지 않았다. 나는 이 깊이 고려된 의도적인 태만이야말로 범죄행위라고 생각한다.-22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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