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의 미래를 밝히는 ‘태양’, KSTAR [제 667 호/2007-10-15]
 

지난 9월 초 한반도의 중심에 ‘태양’이 떴다. 이 태양은 여러모로 하늘의 태양과 다르다. 지구의 수천 배 크기인 태양이 비해 이 태양은 높이 9m, 지름 9m의 원통으로 연구동 하나에 들어갈 정도다. 또 하늘이 아닌 대지에 단단하게 고정돼 있고 빛과 에너지를 만들지만 겉으로 보기엔 전혀 빛나지 않는다는 점도 다르다. 1.5m 두께의 콘크리트 벽에 감싸인 이 태양의 이름은 ‘차세대 초전도 핵융합 연구장치’(KSTAR, Korean Superconducting Tokamak Advanced Research). ‘한국의 별’이라는 의미를 지닌 실험용 핵융합로다.

핵융합의 가능성이 확인된 것은 1980년대. 그 이후 30년에 가까운 세월이 흘렀지만 아직 자국의 기술로 핵융합로를 건설한 국가는 손꼽을 정도로 적다. 핵융합로를 하나 만드는데 엄청난 시간과 노력, 그리고 기술 기반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순수 실험용으로 제작된 KSTAR에만 12년의 시간과 3090억 원의 사업비가 투자됐다. 또 우리나라를 포함한 세계 7개국과 유럽연합이 실제 전기 생산을 목표로 만들고 있는 ‘국제핵융합실험로’(ITER)는 약 7조원이라는 어마어마한 사업비가 필요하다. 핵융합로 건설이 어려운 이유는 핵융합의 원리를 살펴보면 더 자세하게 알 수 있다.

핵융합은 말 그대로 원자핵을 합쳐서 에너지를 만드는 과정으로, 태양을 비롯한 항성의 에너지원이다. 원자핵은 양성자와 중성자가 붙어 있는 형태다. 일반적으로 핵융합로에서 사용하는 원료는 중성자 1개, 양성자 1개로 이루어진 중수소와 중성자 2개, 양성자 1개로 이루어진 삼중수소다. 이 둘을 초고온으로 가열하면 서로 충돌해 헬륨(중성자 2개 양성자 2개) 하나와 중성자 하나를 만들어낸다. 이 때 질량이 줄어드는데, 이 질량이 아인슈타인의 유명한 공식 E=mc2에 의해 엄청난 양의 에너지로 변환된다. 바닷물 1L로 만들어낼 수 있는 핵융합 에너지의 양은 석유 300L 분에 해당할 정도로 에너지 효율이 높다.

이 모든 과정은 1억℃ 이상의 플라스마 상태에서 일어난다. 플라스마는 고체, 액체, 기체를 넘은 ‘제4의 상태’로, 원자 안의 핵과 전자가 분리돼 이온화된 상태를 의미한다. 쉬운 예로 형광등 안이 딱 플라스마 상태다. 플라스마 상태에서는 전하를 띤 입자들이 서로 빠르게 움직이고 충돌하며 에너지를 만들어낸다. 태양과 같은 항성 내부는 계속 초고온 플라스마 상태를 유지하고 있기 때문에 핵융합 반응이 끊임없이 일어날 수 있다. 그러나 지상에서 핵융합을 일으키기 위해서는 강제로 에너지를 넣어 플라스마 상태를 만들고 유지해줘야 한다.

문제는 ‘플라스마를 1억℃나 되는 온도를 유지한 채 어디에 어떻게 가둘까’이다. 현재 가장 많이 쓰이는 방법은 도넛 형태의 자기장 안에 플라스마를 가두는 ‘토카막 방식’. KSTAR도 이 방식을 채택하고 있다. 플라스마 입자들은 전하를 띠고 있기 때문에 자기장 안에 들어가면 자기력선 주변을 뱅뱅 돌며 밖으로 도망가지 못한다.

그런데 플라스마를 잡고 나니 또 다른 문제가 발생했다. 자기장을 만들기 위해 넣은 전자석이 전기저항 때문에 엄청난 열을 내뿜는 탓에 핵융합로를 오래 가동할 수가 없는 것. 지금까지 나온 핵융합로는 20~30초 가동하고 냉각수 흘려주며 20~30분씩 쉬어야 했다. 에너지 손실이 이만저만이 아닌 것이다.

KSTAR는 초전도 자석을 이용해 이 문제를 해결했다. 저항이 0인 초전도 자석은 에너지 손실 없이 플라스마를 가두기에 딱 좋은 ‘찰떡궁합’이다. 단 극저온에서만 작용해 상용화가 어려웠다. KSTAR팀은 수백가닥의 초전도 선을 꼬아 자석을 만들고, 선 사이의 아주 미세한 틈을 진공 상태로 유지한 채 영하 268.5℃의 액체 헬륨을 주입해 세계 최초로 초전도 자석만으로 플라스마를 담는 ‘용기’를 만드는 데 성공했다.

KSTAR팀은 이를 일컬어 “가장 차가운 그릇에 가장 뜨거운 물질을 담는다”고 표현한다. 덕분에 KSTAR의 연속 가동 시간은 300초에 달한다. 핵융합 에너지 상용화에 좀 더 가까워진 셈이다. KSTAR보다 먼저 설계를 시작한 ITER도 KSTAR의 성공을 보고 초전도 자석을 채택하는 방식으로 바꿨다.

또 다른 문제는 핵융합의 재료로 쓰이는 중수소와 삼중수소를 얻는 일이다. 다행히 중수소는 바닷물 속에 풍부하게 있다. 삼중수소는 일반 수소보다 중성자가 두 개 더 많은 수소로 ‘리튬’ 원자를 분해하면 나온다. 그러나 아직까지는 생산이 자유롭지 않아 주로 원자력 발전의 폐기물에서 삼중수소를 얻는다. 현재 우리나라 월성원전에서는 세계 두 번째로 산업용 삼중수소를 생산하고 있다.

원전 폐기물로 나오는 삼중수소는 1g에 2700만 원을 넘을 정도로 가격이 높은 데다 연간 700g 정도 밖에 나오지 않는 ‘비싼 몸’이다. 또 원전에서 나오는 삼중수소를 산업용으로 활용하기 위해서는 티타늄과 붙였다가 분리하는 과정을 거쳐야 하는데, 이 때 삼중수소가 새어나와 방사능 오염이 일어날 수 있다. 이 때문에 삼중수소를 생산하고 있는 한국수력원자력이 안전성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고심하고 있다. 삼중수소의 방사능 문제 때문에 KSTAR는 당분간은 중수소로만 실험할 예정이다.

높은 건설비와 기술의 한계에도 불구하고 우리나라를 포함한 세계 여러 국가가 핵융합 개발에 주목하고 있는 이유는 핵융합이 ‘가장 청정하고 효율적인 대안에너지’이기 때문이다. 지구상에 거의 무한대로 존재하는 수소만 있으면 고효율의 에너지가 펑펑 쏟아져 나온다. 발전 과정에서 이산화탄소 등의 온실가스를 생산하지 않아 대기오염 문제도 없다. 성공하기가 어려워서 그렇지, 일단 한 번 제대로 불을 붙이기만 하면 인류의 에너지 걱정은 크게 줄어든다는 얘기다.

물론 핵융합이 뭐든 가능하게 하는 ‘도깨비 방망이’는 아니다. 현재 전문가들은 핵융합이 실현된다고 해도 재료나 생산기술의 한계 때문에 당분간은 총 전력량의 40% 정도만 담당할 수 있을 것이라 보고 있다. 또 폐기물 문제에서 완전히 자유롭지도 않다. 수소가 충돌하면서 나오는 방사능 물질이 내벽을 두드리기 때문에 15년 정도 지나면 교체해야 하는데 이 벽이 일종의 ‘저준위 방사능 폐기물’이다. 핵분열을 쓰는 원자력 발전보다 훨씬 안전하지만 말이다.

핵융합은 언제 상용화될 수 있을까? 현재 건설 중인 ITER가 그 가능성을 보여줄 것이다. 핵융합 반응의 물리적 변화를 관찰하는 실험용 핵융합로인 KSTAR와 달리 ITER는 실제로 핵융합만으로 500MW급의 전기를 생산할 수 있을 지 가능성을 확인하는 데 목표를 두고 있다. ITER의 크기는 KSTAR의 4배 정도, 예상 핵융합 지속시간도 KSTAR보다 긴 500초 이상이다.

이 ITER의 ‘파일럿 모델’ 역할을 KSTAR가 수행한다. 즉 2016년 ITER가 본격 가동되기 전에 KSTAR로 ITER의 성공 가능성을 실험한다는 얘기다. 우리나라 역시 KSTAR를 통해 별도로 전력 생산용 핵융합로를 개발하기 위해 연구를 계속할 예정이다. 학자들은 핵융합 상용화를 빠르면 30년, 늦어도 50년 후 시점으로 잡고 있지만 현재 발전 속도라면 더 빨라질 지도 모른다.

KSTAR의 성공은 ITER의 성공으로, 그리고 핵융합 상용화로 이어진다. 어쩌면 멀지 않은 미래에 더 이상 석유를 두고 싸우지 않고 핵폐기물의 두려움에 떨지 않아도 되는 그런 날이 올 지도 모른다. 지구의 미래를 지킬 핵융합 에너지의 ‘은하계’에서 작지만 밝은 별 하나가 이제 막 빛을 밝혔다. (글 : 김은영 과학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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