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한지 6 - 새로운 영웅들 김정산 삼한지 6
김정산 지음 / 예담 / 2006년 3월
평점 :
절판


앞 시대의 인물들이 하나둘 죽고 새 시대의 인물들이 역사의 주역이 되었다.

진평왕의 뒤를 이어 선덕여왕이 즉위했고, 백제 무왕이 죽고 의자왕이 즉위했으며, 고구려에서는 연개소문이 정변을 통해 영류왕을 죽이고 보장왕을 보위에 앉혔다.  중국에서는 당나라의 유명한 황제 태종이 치세를 펼치고 있었다.

연개소문의 정변은 사실 말 그대로 쿠데타이긴 하지만, 그의 쿠데타에 대해서 손가락질을 심하게 할 수 없었던 것은, 앞서 영류왕의 황당한 정치 노선 때문이었다.  그는 너무나 저자세 외교로 일관해서 당나라의 웃음을 샀고, 고구려의 기상을 스스로 무너뜨렸다.  뿐이던가.  임금된 자로서 우리나라 잡수시오~도 아니고, 봉역도를 갖다 바치질 않나, 진대덕이라는 첩자가 들어와 나라 땅을 두루 살피며 지도를 만들고 있는데도 극진히 대접해 돌려보내기까지 했다.  군사 훈련을 시켜 국경 수비에 만전을 기울인 것이 아니라, 장성을 십수 년간 쌓게 만들어 백성들의 원성과 공분을 샀다.  뿐아니라 당나라에 잘 보이느라 태자를 직접 인질로 갖다 맡기기까지 했으니, 그가 과연 한나라의 임금이라고 할 수 있는지 믿기지 않을 따름이다.

당시의 시대 분위기가 외교적 관행으로서 중국을 상국 대접해 주던 것은 알고 있지만, 수/당 교체기의 혼란기를 틈타 국익을 좀 더 내세울 수 있는 기회가 왔을 때에도 잡지 못했고, 오히려 철저하게 굽신거리고 나왔으니, 전왕 때의 살수대첩 등이 황망하게 느껴지는 순간이다.  그러니 연개소문 같은 성정의 사람들이 그런 그를 가만히 두고 보는 게 오히려 수상할 따름이다.  정변까지 일으킨 연개소문의 고구려가 장수하지 못하고 왕조가 멸망한 것은 애석한 일이나 영류왕을 향해서 애도의 느낌은 전혀 들지 않는다.

확실히 그의 정변이 성공할 수 있었고, 또 가능했던 명분은 민심의 이반이었다.  백성의 마음이 이미 떠난 군주에게 나라의 안녕이 있을 까닭이 없다.  수양제가 대운하를 만들고 고구려를 세차례나 침공한 끝에 멸망한 것이나, 조선 말 대원군이 경복궁을 중건하면서 백성들의 원성을 사고 끝내 자리에서 쫓겨났던 것도 같은 입장에서 지켜볼 수 있겠다.  중요한 것은 민심이었다는 것을.  또 속전속결로 쿠데타를 성공시킨 모습은 조선 세조 때의 사육신의 거사가 실패한 것과 대조적으로 보이는데, 이러한 일을 준비하면서 머뭇거림은 그대로 실패라는 것을 보여주는 예라고 할 수 있겠다.

아버지 무왕의 뒤를 이어 의자왕도 신라로부터 강역을 넓히는 데에 혈안이 되어 있었다.  그의 진짜 목표는 당항성이었지만 대야성을 먼저 친 것은 '성동격서'의 전법이라고 할 수 있겠다.  머리는 잘 썼는데, 문제는 지나침에 있었다.  당시 장군 윤충은 성주 김품석과 그 아내 고타소의 목을 신라로 보냈는데, 고타소가 김춘추의 딸이라는 데에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이는 원래부터 사이가 나빴던 신라와 백제 사이를 한 하늘을 이고 살 수 없는 철천지 원수로 만들어 버리는 계기가 되었던 것이다.  과하면 모자람 만 못하다는 것을 다시 한 번 깨닫는 순간이었다.  또 이때 신라를 등지고 백제로 귀화하는 인물들도 있었으니, 그때마다 그들의 이반 명분이 되어주는 것은 '골품제의 폐해'였으니, 그놈의 뼈다귀 신분제가 나라를 잡는 꼴이라 할 수 있겠다.

김유신과 천관녀의 일화를 어떻게 진행시킬지 자못 궁금했었다.  천관녀의 출생을 어떻게 바라볼 것인가가 알고 싶었는데, '제사장이'의 민며느리란 설정은 최근의 학계의 시각과 일치하는 부분이라고 하겠다.  흔히 이야기 속에서 김유신의 이 에피소드에서 그의 나이 약관의 청년마냥 묘사되었지만, 당시 김유신은 불혹의 나이를 훌쩍 넘긴 때였었다.  작품 속에선 그의 혼기를 놓친 나이와 김춘추의 딸 지소를 처로 맞이하는 부분을 꽤나 설득력 있게 진행시켰는데, 신라의 결혼 풍습 등등이 지금과 많이 다름에도 불구하고 위화감 느끼지 않게, 오히려 유머러스하게 넘어가는 매끈함을 보여주었다.

이제 다음 이야기에서는 고구려에 사신으로 간 김춘추의 활약상이 펼쳐질 듯 보인다.  토끼와 거북이 일화가 어떻게 나올지 역시 기대가 된다.

책의 맨 마지막 부록에서는 당태종의 뒤를 받쳐준 명신 열전이 이어지는데, 이토록 충성을 다하고 간언을 서슴지 않는 신하들이 있었으니 태종이 성군 소리를 듣는 게 당연하다 싶었다.  그러나 호부 아래 견자 없다고 했는데 당 고종은 왜 그 모양이었을까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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