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한지 4 - 사비에 이는 서기 김정산 삼한지 4
김정산 지음 / 예담 / 2006년 3월
평점 :
절판


거침없이 달렸던 3권의 살수대첩에 이어서 한템포 쉬어가는 4권이었다.

수나라가 무너지고 당나라가 들어섰으며, 고구려와 수나라의 혈전으로 두마리 호랑이가 함께 죽기를 바랐던 신라와 백제는 고구려가 뜻밖의 승리를 이룬 것에 당황하였고, 거기에 발빠르게 대처한 것은 백제쪽이었다.

백제 무왕은 신라가 아직 고구려 쪽으로 촉각을 곤두세울 때 재빨리 신라의 성을 쳐서 무너뜨렸고, 그렇게 성을 차지한 다음에는 선화공주와의 혈연을 매개로 진평왕의 사위임을 내세워 어르고 달래는 형식을 띠었다.  신라 입장에서는 영토를 빼앗기고도 백제의 미륵사 창건에 도움을 줄 일꾼들을 보내준 셈이니 백제 무왕에게 이만저만 이용당한 것이 아니었다.

삼국통일의 대업을 달성한 신라이지만, 이 시절의 신라는 나라의 실권이 임금 진평왕에게 있지 않고 왕제가 권력을 틀어쥐고 있었으며, 골품제에 묶여서 뜻있는 인재들이 제 뜻을 펼치지 못하고 살았다.  이렇게 앞뒤로 꽉 막힌 신라가 세 나라중 마지막까지 살아남는 주역이 될 거라곤 쉽게 상상하기 어려울 정도였다.

어느 정도로 골품제의 폐해가 심했느냐 하면, 왕제의 견제로 목숨의 위험을 느끼며 뜻을 내보이지 못한 용춘은, 아들 김춘추마저도 생명의 위험을 느끼게 하느니 스스로 성골의 지위를 포기하고 진골로 내려앉기까지 하였다.  그가 진골 귀족이 되어버리자 노골적으로 그를 노리던 세력들은 왕위 경쟁자로서 그를 제해버리게 되었지만, 동시에 그를 얕잡아 보기에 이르른다. 

당시 신라는 성골 귀족들이 점차 줄어들어서 손에 꼽을 정도만 남아 있었는데, 작가는 이 부분을 뜻있는 성골 귀족들이 스스로 진골귀족과 결합하여 자식들 대에 이르러서는 성골귀족의 씨앗을 말리기까지 하였다고 묘사하였다.  실제로 그랬었는지, 작가의 생각인지 알 수 없지만, 성골이 점차 부족하여져서 선덕여왕의 뒤를 이은 김춘추 때부터는 진골이 대를 이은 것은 분명하다.  만약 작가의 계산에 의한 설정이라면 기막힌 타이밍이라고 할 수 있겠다.

큰 적은 나라 바깥에 있는 것이 아니라 결국 내부에 있는 것임을 신라가 당장은 알아차리지 못하고 있지만, 삼국 통일의 때가 되어서는 진정한 적을 스스로 찾아 무찌르지 않을까 기대해 본다.

백제 무왕은 끊임없이 신라를 도발시키고 전쟁을 일으키고 신라의 크고 작은 성을 빼앗았는데, 그의 이름이 武王이 된 까닭을 알 수 있었다.  흑치상지의 '흑치'가 검은 이(黑齒)라는 생각을 못했었는데, 작품 속 흑치사차가 검은 이를 가졌다는 것을 보고서 아핫!하고 알아차릴 수 있었다.  찾아보니 실제로 검은 이를 가진 마을 집단이 있었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작품을 읽으면서 뜻하지 않게 마주치는 소소한 재미라고 할 수 있겠다.

나라 사이의 관계에 있어서 '윤리'란 너무나 허무한 이름이 되어버리곤 하는 것을 작품을 보면서 느꼈다.  그러나 결국 그 삼국을 통일하고 최종까지 살아남는 신라에서 '노블리스 오블리주'를 찾을 수 있었고, 그 통일 신라가 무너지는 것도 윤리기강이 떨어진 시점인 것을 보면 역사의 아이러니함도 느낄 수 있었다.

이제 작품의 전반부 이상을 넘긴 셈이다.  중반부에는 어떤 이야기들이 펼쳐질지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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