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콤한 오줌이 살을 깎는다!? [제 658 호/2007-09-24]
 

기원전 1500년 고대 이집트의 에버스 파피루스(Ebers Papyrus)에는 ‘너무나 많은 소변을 보는 병’에 대한 기록이 나온다. 2세기 터키의 의사 아레테우스는 이 병을 ‘뼈와 살이 녹아서 소변으로 나오는 병’이라고 기록했다. 이 병을 현대식으로 바꿔 말하면 당뇨병(糖尿病), 이름대로 ‘당이 섞인 오줌을 누는 병’이다.

현재 우리나라에서 당뇨병 환자는 폭발적으로 증가하고 있다. 국민 10명 중 1명은 당뇨병 환자로 30년 전에 비해 무려 10배나 증가했다. 당뇨병은 한번 걸리면 평생 관리해야 하고 수많은 합병증을 동반하는 탓에 엄청난 비용이 든다. 게다가 우리나라의 당뇨병 사망률은 OECD 국가 중에 최고인 35.3%다. 결코 만만히 볼 질병이 아니란 뜻이다.

정상인은 오줌에 당이 전혀 없다. 당뇨병 환자의 오줌에 당이 많이 섞여 나오는 이유는 혈액에 당이 지나치게 많기 때문이다. 신장이 혈액을 걸러 오줌을 만들 때 혈당(혈액 속에 있는 당)이 거를 수 있는 한계를 초과하면 오줌에 당이 섞여 나온다. 지나치게 높은 혈당, 이것이 당뇨병의 실체다.

원래 우리 몸에는 혈당을 조절하는 장치가 있다. 바로 이자의 베타세포에서 분비되는 호르몬, 인슐린이다. 혈당이 높아지면 인슐린이 분비된다. 인슐린은 세포가 혈액 속에서 포도당을 가져다 에너지원으로 쓰도록 촉진한다. 또 지방세포가 포도당을 산화시켜 지방산을 만들도록 촉진한다. 한마디로 우리 몸의 세포를 자극해 에너지 대사를 활발하게 하도록 하는 역할이다.

혈당을 조절하는 인슐린 대사에 문제가 생기면 당뇨병이 된다. 당뇨병은 그 발생 원인에 따라 1형, 2형, 임신성 당뇨로 나뉜다. 1형 당뇨병은 인슐린을 만드는 베타세포가 파괴돼 발생한다. 바이러스 침투 등으로 면역작용에 이상이 생겨 면역세포가 베타세포를 파괴하기 때문이라고 추정할 뿐 아직 정확한 이유는 모른다. 어릴 때 나타나기 때문에 소아 당뇨병, 혹은 인슐린 의존형 당뇨병으로 부르기도 한다. 우리나라에서 1형 당뇨병의 비율은 1% 미만으로 매우 적다.

2형 당뇨병은 인슐린을 만들기는 하지만 그 양이 부족하거나, 아니면 몸의 세포에 문제가 생겨 평균 농도의 인슐린으로는 반응하지 않을 때 발생한다. 즉 인슐린은 정상적으로 분비되고 있는데 세포가 인슐린의 명령을 받아 혈액에서 당을 흡수하지 않으니 혈당이 떨어지지 않는 경우다. 보통 40살이 넘어 발생하므로 성인 당뇨병, 혹은 인슐린 비의존형 당뇨병으로 부른다. 당뇨병의 95%가 바로 2형이다.

임신성 당뇨병은 전에는 당뇨병이 없었는데 임신과 함께 당뇨병이 생기는 경우다. 임신 중에는 태반에서 여러 호르몬이 분비돼 인슐린 작용을 방해할 수 있다. 임신성 당뇨병에 걸리면 태아가 엄마의 호르몬에 영향을 받아 선천성 기형이 될 수 있으므로 혈당 수치를 평균으로 유지하도록 관리해야 한다. 보통 아이를 낳으면 없어지나 절반 정도는 10년 뒤 2형 당뇨병에 걸릴 가능성이 있다.

당뇨병은 그 자체보다 합병증이 무서운 병이다. 혈당이 정상치보다 높은 상태가 오래 계속되면 어떤 문제가 생길까? 혈당이 높다는 말은 세포가 써야 할 당이 혈액에 있다는 뜻이므로 세포는 에너지 부족에 시달리게 된다. 이때 우리 몸은 당 대신 지방을 분해해 에너지로 쓰려고 하는데 지방을 분해하는 과정에서 ‘케톤체’가 과다하게 생길 수 있다. 케톤체가 쌓이면 우리 몸은 빠르게 산성으로 변해 혼수상태에 빠지거나 사망에 이를 수 있다. 이를 ‘케톤산혈증’이라고 한다. 케톤산혈증은 인슐린이 절대적으로 부족한 1형 당뇨병에서 자주 나타난다.

하지만 당뇨병 합병증은 대부분 몸 전체에서 서서히 나타난다. 높은 혈당은 먼저 눈을 망가뜨린다. 오랜 동안 높은 혈당에 노출된 눈은 망막병증을 일으키고, 백내장, 녹내장에 쉽게 걸린다. 높은 혈당은 신경에도 영향을 미치는데 발바닥이 저릿하다가 아예 감각을 잃는 경우가 생긴다. 발기부전, 요실금 등도 모두 높은 혈당으로 신경이 망가져 생기는 증상이다.

높은 혈당은 혈관도 망가뜨린다. 혈액이 끈적해지면서 미세혈관이 좁아지거나 막힌다. 당뇨병 환자가 발에 염증이 쉽게 생기는 이유다. 중간 크기의 혈관도 좁아지면서 동맥경화를 일으키고 심하면 심근경색과 같은 심장병을 일으킨다. 당뇨병 환자는 상처가 나도 쉽게 아물지 않는다. 세균이 혈액 속에 당 성분을 먹고 강해져서 우리 몸의 면역체계가 이를 퇴치하기 힘들기 때문이다.

당뇨병 치료의 핵심은 혈당을 정상 수치로 조절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 당뇨약을 먹고, 인슐린을 주사하거나, 운동과 식이요법을 병행한다. 수시로 혈당을 점검하고 평생 관리해야 하는 부담이 있지만 관리만 잘 하면 정상인과 조금도 다를 바 없이 생활할 수 있다.

과거에는 운동과 식이요법을 하다가 효과가 없으면 당뇨약을 투여하는 방식이었지만 최근 ‘초기 강력 진압’으로 바뀌고 있다. 또 당뇨약 효과가 없으면 재빨리 다른 종류의 당뇨약으로 바꾸도록 한다. 당뇨약은 인슐린 저항성을 떨어뜨리는 종류와 인슐린 분비를 촉진하는 종류가 있다. 이같이 하는 이유는 가능한 일찍 혈당을 정상으로 만들어 조직의 손상을 줄이는 것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당뇨약은 내성이 없어 일찍 복용해도 문제되지 않는다.

당뇨병의 근본 문제인 이자의 베타세포의 사멸을 해결하기 위한 연구도 계속되고 있다. 이 연구는 특히 1형 당뇨병에 유효하다. 지난 5월 국내 벤처기업 인피트론은 피하지방과 양막조직에서 성체줄기세포를 추출해 이를 베타세포로 분화하는데 성공했다고 발표했다. 연구팀은 베타세포가 파괴된 생쥐에 투여해 60% 이상의 생쥐의 당뇨증상이 회복되는 것을 확인했다. 줄기세포를 이용해 사람의 베타세포를 직접 만들 수 있게 되면 당뇨병 완치도 가능할 것이다.

이와 함께 면역세포가 베타세포에 접근해 파괴하는 것을 막는 기술도 나왔다. 7월 미국 존스 홉킨스대 아라빈드 아레팔리 박사팀은 베타세포를 특수캡슐에 담아 간에 이식했다. 간에 이식한 이유는 간이 인슐린을 온 몸에 보내기 더 좋은 장소이기 때문이다. 특수캡슐의 구멍은 베타세포에서 만든 인슐린이 빠져나올만한 크기였지만, 베타세포를 파괴하는 면역세포가 접근할 수는 없는 크기였다. 이식한 베타세포는 2개월 이상 인슐린을 생산했다.

앞으로 당뇨병에 대해 많은 사실을 알면 번거로운 관리 없이도 당뇨병을 완전히 정복할 날이 올지도 모른다. 하지만 가장 좋은 방법은 당뇨병에 걸리지 않도록 미리 적절한 식생활과 운동으로 관리하는 것이다. 그리고 정기적인 검사로 초기 대처를 잘 해야 한다. 우리나라 당뇨병 환자 사망률이 높은 이유는 30대 환자가 급증하고 있기 때문이니 나이가 적다고 안심할 일도 아니다. (김정훈 과학칼럼니스트)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