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쥐를 잡자 - 제4회 푸른문학상 수상작 ㅣ 푸른도서관 18
임태희 지음 / 푸른책들 / 2007년 6월
평점 :
가슴 아픈 글이었다.
유진과 유진을 읽을 때처럼 민감한 소재를 잘 풀어낸 수작이라는 감탄보다,
작품 속 인물들이 겪는 심적 압박과 오래도록 남아있는 상처가 먼저 서러웠다.
우리의 상처가 아닌 '그들만의' 상처로 끝나버린 이야기들......
열일곱 학생 주홍이가 임신을 하였다. 작품 속에선 뱃속에 '쥐'가 들어있다고 표현하였다.
쥐는 작품 곳곳에서 은유적으로, 직접적으로 주인공들을 압박한다.
아이의 담임선생은 갓 부임한 신임 교사다.
나이도 어리고 사회적 연륜도 부족하고,
아이들의 적의에 찬 눈빛을 대할 때 어찌 할 수 없는 막막함에 떨기부터 하는 그녀는
주홍이의 사물함에서 쥐가 움직이고 있다고 여겼다.
누구도 듣지 못하는 그 소리를, 그녀 혼자만이 듣고 있다.
주홍이의 어머니는 조각가다.
스무 살에 홀로 아이를 낳고 엄마의 성을 준 그녀는,
세상의 온갖 멸시와 핍박을 받으며 위태로운 생을 이어왔고, 병적인 결벽 증세를 보이고 있다.
불결한 것을 못 참는 그녀의 집 냉장고에, 쥐가 있다고 믿기 시작한다.
한 여름의 더위 속에서도 냉장고 한 번 열지 못하고 미지근한 물로 연명하고 만다.
쥐는 없다고, 처음부터 없던 거라고 마음을 다잡아 보지만, 냉장고를 열어볼 용기가 생기지 않는다.
고민하고 있는 딸 아이의 말을 들어줄 엄두를 내지 못하는 마음과 꼭 같다.
눈으로 보이고 귀로 들리는 현상을 거부하며 그들은 서로의 마음 문을 두드리지 못한 채 홀로 아파하고 괴로워한다.
임신 5개월. 아이가 임신 빈혈로 쓰러지고 나서야 이들은 현실 앞에 마주선다.
하지만 무엇부터 해야할지, 어떻게 해야 할지 여전히 막막하기만 하다.
주홍이의 어머니가 자신의 어머니께 소통받지 못했던 불통의 상처는, 다시 주홍이에게 고스란히 이어진다.
아이를 낳을 것인가, 지울 것인가. 낳는다면 키울 것인가, 버릴 것인가.
그 고민들의 울타리 속에서 주홍이의 선택은 수술을 받는 것이었다.
누구도 대신 선택해줄 수 없었고, 책임져 줄 수도 없었다.
왜 아이 엄마 혼자 이렇게 고민을 해야하는지, 아이의 아빠는 어디서 무엇을 하는지, 작품 속에선 알 길이 없다.
그리고 그것이 실제 우리 사회의 모습이 아닐까 싶다.
미성년자가 임신을 했다는 문제 외에도, 여성에게 지워지는 책임과 굴레가 더 무서움을, 어렵지 않게 확인할 수가 있다.
임신 5개월이라면 이미 아이가 꽤 자란 상태이기에 죽여서 아이를 빼내어야 했다.
출산과 똑같은 고통을 겪되, 태어나는 아이는 죽은 아이가 되어야 한다.
그리고 아이를 죽인 어머니라는 꼬리표는 아이가 평생 짊어지고 살아야 할 십자가가 된다.
주홍이는, 그것을 감당할 수가 없었다. 제가 버린, 제가 죽인 그 생명의 무게를 감당할 수가 없었다.
어린 주홍이에게 너무 가혹한 일이었고, 누구도 그 마음의 짐을 가볍게 해줄 수가 없었다.
엄마의 걱정을 덜어드리기 위해서 미역국을 먹지만, 양심의 진동은 먹은 것을 다 게워내게 만들었다.
아이는 나날이 말라갔고 수척해 갔으며, 생명을 잃어갔다.
주홍이의 마지막 선택은 책을 읽으면서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었다.
놀라운 것은, 주홍이는 죽어가지만, 늘 죽은 채로 살아있던 어머니는 이 일을 계기로 오히려 재생하게 된다는 것.
엄마는 자신이 열심히, 힘차게, 적극적으로 살아가야 할 이유를 찾는다.
아이는 엄마에게 생명을 선물했던 것이다.
아이는 자신을 버렸을 신조차도 이미 구원하고 떠난다.
첫 해부터 호된 신고식을 치룬 최선생은 새로운 마음가짐으로 다시 태어난다.
학생들에게 정말로 필요한 불안의 탈출구를 만들어 주고, 그들의 불안한 목소리를 귀기울여 들어준다.
근본적인 문제 해결이 되진 않을지라도, 적어도 함께 아파하고 위로해주는 역할은 해줄 수 있을 것이다.
작가가 후기에서 밝혔듯이, 주홍이의 선택에 대해 많은 독자들이 안타까움을 표시할 것이다.
나 역시 마찬가지다. 하지만 손가락질도 비난도 할 수 없다.
영화 꽃잎에서 주인공 아이는 광주의 학살 현장에 있었던 자신보다,
죽은 어미의 손을 뿌리치고 발로 밟아 떨쳐내고 그 자리를 도망친 자신을 용서하지 못해 스스로 망가지고 말았다.
주홍이의 마음이 꼭 그랬을 것이다.
더 이상 이런 아픈 선택이 없어도 되게끔 가족이, 학교가, 사회가 함께 귀 기울여 주는 온정이 필요하다.
어린 친구들이 실수하지 않도록 지켜주어야 하며,
실수가 있을 때에도 함께 고민해 주고 보듬어 주는 손길이 우선되어야 한다.
하나의 생명이 이 땅으로 출발할 때,
온 세상이 그 생명을 두 팔 벌려 환영해 줄 수 있기를...
누구의 희생도 없이,
올곧이 축복일 수 있기를...
이후로도 계속 그런 나날들이기를...
간절히 소망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