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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년 2
강도영 지음 / 문학세계사 / 2007년 5월
평점 :
절판
웹상에서 볼 때는 세로로 긴 화면이 한 가득이었는데, 종이 지면에선 그 긴 줄이 네열로 들어차있다. 그래서 화면은 상당히 작아졌고 글씨도 당연히 작다. 그렇지만, 감동을 방해할 정도는 아니다. 만약 웹연재 이미지 크기로 책이 출판되면 10권 가지고도 모자랐을 테니 아쉬워할 일이 아니다.
아무래도 심각한 주제인지라, 등장 인물들의 표정이 보통 의미심장한 게 아니다. 26년에 걸친 고통의 흔적이 고스란히 담긴 한많은 얼굴들. 그래서 보는 내내 마음이 무거웠다. 80년 광주를 얘기하면서 웃을 수는 없는 일이지만.
작품 속에서 진배를 감싸안은 조폭 두목이 인상적이었다. 그가 그럴 수 있었던 것은 80년 광주에 빚진 마음 때문이었다. 밝은 대낮에 금남로 거리를 걸을 수 없었던 그의 부채 의식이, 마음의 죄값을 치루기 위해 희생을 감수하고 있다. 조폭을 미화하는 것 아니냐고 누가 묻는다면, 절대 아니라고 감히 말하고 싶다.
80년 5.18 광주에서는 그 열흘 간의 시간동안 흔한 경범죄 하나도 없다고 전해졌다. 모든 것이 차단된 그 무법지대에서 건달이라 할지라도 허튼 수작 하나 부리지 않았다는 것에서 나는 또 다시 광주를 존경한다.
95년 초에 모래시계가 방영되었을 때 광주씬을 찍느라고 하루 매출이 천만원대인 음식점이 며칠 동안 문을 닫고 촬영장소를 대여해 주었다는 얘기를 들었다. 어느 정도 과장이 있을 지도 모르겠지만, 매출을 포기하더라도 진실을 보여주고 싶었을 그 마음을 나는 의심치 않는다. 그 시간을 겪었던 광주시민들은 그런 것이 가능했다.
작품 속에서 안기부 출신 최계장이 문익환 목사를 만나서 인생의 전환점을 맞는 장면이 인상깊었다. 그의 마음 속에 우상으로 자리잡은 국가라는 거대한 괴물을 치워버리진 못했지만, 그는 자신이 어떻게 살아야 하는 지에 대해서 진지하게 고민했다. 보다 용기있는 선택을 하지는 못했지만, 적어도 더 이상 비겁해지지 않으려는 노력은 했던 것이다.
미진양의 아버지는 너의 인생을 살라는 유언을 남기고 돌아가셨다. 너의 인생... 수백, 수천의 시민들의 인생이 한순간에 틀어져버렸다. 그 사람들에게서 파생된 그들의 가족들, 그 숱한 인생들은 다 어찌 책임질까. 그들의 잃어버린 시간은 대체 어디서 보상받을 수 있을까. 누누히 얘기한다. 용서와 화해란 죄를 지은 당사자의 반성이 있은 후에 가능한 작업이라고...
과연, 그가 살아있는 동안에 역사적 화해가 가능할 것인가. 작품 속처럼 다른 사람의 인생을 송두리째 던져 그 한사람의 목숨과 바꾸려는 시도를 찬성할 수는 없는데, 그렇다면 그대로 묻혀져야 하는 것일까. 아직도 무수히 많은 사람들의 상처는 썩어서 곪고 있는데?
참으로 답이 없는 얘기들이다. 그게 우리의 현대사이고, 우리의 왜곡된 민주주의이며 우리가 지금도 온몸으로 부대끼며 시름겨워하는 서러운 세상살이의 진면모이다.
작품이 어찌 끝날지 결말을 알지 못하는 나로서는 안타까운 추측들을 해본다. 결코 해피엔딩이 될 수 없는 그 결말을, 그래도 기대해본다. 마음은 여전히 무겁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