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시백의 조선왕조실록 9 - 인종.명종실록-문정왕후의 시대, 척신의 시대 박시백의 조선왕조실록 9
박시백 지음 / 휴머니스트 / 2006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1권부터 스트레이트로 읽던 내가 9권 앞에서 딱 멈춘 것은, 수업 진도가 더 빨라져서 어쩐지 김이 샌 까닭도 있었고, 개인적으로 인종/명종에는 그닥 흥미가 없었기 때문이다.  선조실록이 두툼하게 출간되면서 순서대로 읽어야 한다는 압박에 책을 펼쳤는데, 내가 찬밥 취급한 것이 미안할 정도로 재밌게 읽혔다.

작가 자신도 이제 어느 정도 관록이 붙어서인지, 밀고 당기기, 들어갈 때와 나갈 때, 유머와 진지 모드를 적절히 잘 배치시켜 입에 착착 달라붙는 느낌으로 읽혔다.

문정왕후에 대한 기존의 평가가 지나칠 수도 있다는 작가의 의견에 동의한다.  그리고 그 까닭으로 짚은 것들에 대해서도 전적으로 동의한다.  당시 사관들이 객관적으로 쓴다고 썼겠지만 '여성'인 그녀에게 유독 박하기도 했고 그녀의 불교진흥책은 그야말로 눈의 가시였을 테니까.

중종의 오락가락 정책에 비해서 문정왕후는 국정 장악능력이 더 뛰어났고 정치력도 더 압권이었던 인물이었다.  드라마에서 권력을 잡기 위한 권모술수를 너무 집요하게 보여주어서 각인된 인상이 그쪽으로 쏠려있기는 하지만, 태종이나 세조를 떠올린다면 그녀 혼자만 손가락질 받는 것은 역시 너무 지나치다는 생각이다.

명종이 눈을 감으면서 뜻밖에도 선조가 왕이 되는 행운을 거머쥐었는데(과연 그게 행운이었을까?ㅡ.ㅡ;;;) 그의 선택이 꼭 그에게 있지 않을 수도 있었다는 의견이 흥미로웠다.  확실히 선조를 지목한 것은 중전 심씨였고, 그 이전에 기회가 있을 때에도 명종은 선택을 유보했었다.  선조는 정말 기막히게 운이 좋았거나 기막히게 운이 나쁜 사내였을 지도 모르겠다.

임꺽정의 얼굴을 최근 발견된 북한 암벽의 얼굴을 참고삼은 것도 인상깊었는데, 기존의 임꺽정 이미지가 지나치게 '힘' 위주였다면 이번엔 나름의 꼬장꼬장한 뚝심이 느껴지는 그림이었다.  임꺽정이 도적이 된 까닭에 대해서 당시 사관이 짚어낸 부분이 몹시 강렬했는데, 인과 관계를 정확히 인식하고 있었기 때문이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달라지지 않은 세태에 대한 안타까움 때문이다.

뿐이던가.  을묘왜변 때 당시 벼슬아치들이 보여주었던 행태들은 그야말로 한심 그 자체였으니, 이런 자들에게 국방을 맡기고 있으면서 나라가 평안하기를 바랬다면 그보다 뻔뻔한 일은 없을 것 같았다.  그런 자들이 그 자리에 앉아서 제 욕심만 채울 수 있었던 사회 시스템의 불합리함이야 말할 것도 없고 말이다.

퇴계 이황과 남명 조식의 같고도 다른 길은 매우 흥미진진했다.  대쪽같은 고아함보다 약간의 유치한 기싸움도 그들을 더욱 인간답게 보여주어서 말이다.  이와 기에 대한 간명한 설명이 없는 것은 조금 아쉬웠다.  작가가 참고로 한 책들 중에서 쉬운 설명으로 풀어준 책들이 분명 있는데 아마도 너무 지루하거나 고루하다고 느낄까 봐 생략했나 보다.(하긴, 우리의 교과서는 너무 지겹게 설명하고 있다.)

처음 읽을 때는 별 넷으로 짐작했는데 당차게 별 다섯은 너끈히 받으며 읽기를 마쳤다.  이제 정말 선조실록이다.  리진을 먼저 읽어야겠지만(빌린 책이므로) 벌써 기대로 흥분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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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오기 2007-08-28 16: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노아님, 우린 선조실록부터 거꾸로 구입하고 읽게 되네요~ㅎㅎ
순전히 님의 리뷰 때문에 지른다는... 책임 있으십니다~~ㅎㅎㅎ

마노아 2007-08-28 22:41   좋아요 0 | URL
아하핫, 정말 책임감을 느낍니다. 1권까지 다 읽을 때 쯤이면 11권이 나와 있지 않을까요. 화이팅이야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