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밀 3
시미즈 레이코 지음 / 서울미디어코믹스(서울문화사) / 2007년 6월
평점 :
품절




탐미적인 성향의 그림으로 늘 나를 매료시키는 시미즈 레이코의 '비밀' 3권이, 무려 4년 만에 출간되었다. (인간 승리다!)

내 기억에 비정기 연재물로 알고 있는데, 책 안쪽에 2005라고 적혀 있는 것을 보면, 2005년 연재물을 묶은 것인가 보다.  그렇다면 4권은 좀 더 짧게 기다려도 된다는 희망을 가져도 되는 것?

이번 이야기에는 큰 줄거리의 이야기 하나와, 짧은 에피소드 하나, 그리고 작가 후기 비스무리한 이야기 하나가 실려 있는데, 모두 '비밀'이란 제목 하에 진행이 된다.

작품의 배경은 2060년대. 인간의 뇌에 전기 자극을 주어서 120% 활성화 시키기, 그 다음 생전에 보았던 영상을 최대 5년 치까지 기억을 스캔해서 읽어낸다.  소리는 들리지 않지만 영상은 볼 수 있고, 독순가의 도움을 받아 대사를 끼어 맞춘다.  그렇게 해서 범인이나 범행 장소, 범죄의 과정 등을 읽어내어 수사에 도움을 받지만, 피해자의 사생활이 고스란히 노출된다는 맹점을 지니고 있다.  그래서 아주 엽기적인 사건이나 치명적인 사건일 때 바로 이 법의 9 연구소에 보내져서 수사를 진행하게 된다.

이 제도가 출범한 지 수년이 되자, 이제는 도리어 그 제도를 이용하기 위한 범죄도 발생한다.  부러 엽기적인 범행을 저질러 사건이 노출되기를 바라는 것이 그것이다.  그렇게 해서 사회적 이슈를 만드는 것이 이 제도의 치명적 약점이 되기도 하는 것.

참 안타깝게 읽혔던 것은, 피해자가 가해자가 되고, 가해자가 다시 피해자가 되어, 누구에게도 죄를 물을 수 없고 또 책임을 물을 수 없는, 그러나 희생자는 나오고 마는 상황들의 악순환이었다.

이번 사건의 범인은 피해자이면서 동시에 가해자인 인물이었는데, 그의 잃어버린 5년의 시간과, 또 그가 평생 지고 가야 할 '상실'의 아픔이 가여워서 오래오래 먹먹했다.  차갑고 냉정하기로 유명한 마키 경감은 아마 '처음이자 마지막'일 증거인멸의 기회를 내준다.  지켜주고 싶은 '비밀'에 동의했기 때문이다.  

법은 차갑고 감정이 없어서 죄에 대한 응징은 하지만 그 과정에서 입게 되는 상처를 보듬어 주지 못하고, 2차적으로 발생하는 또 다른 피해에 대한 면역력을 주지 않는다.  사건이 모두 마무리 되고 날짜를 박아서 그 후 재판 과정이 어떻게 진행되었는 지를 서술해 주었는데 한숨이 절로 나왔다.  지금으로부터 60년 뒤의 이 세상도 별다를 것 없을 거라는 일종의 자조랄까.



자신을 해친 범인에게로 되돌아가 몸을 의탁해 버린, 그럴 수밖에 없었던 가엾은 주인공.  남자로도 여자로도 살지 못한 그에게 차마 손가락질을 할 수 없었다.

그가 증오를 품은 또 다른 가해자이면서 피해자인 학생들.  한 순간의 비겁함이 그들에게 안겨준 고통과 책임, 또 다른 범죄의 꼬리. 

정직하게 살기도 어렵고 용기 있게 살기는 더 어려웠던 그들.  죽을 만큼의 죄를 지은 것은 아니었지만, 그들의 비겁함이 또 다른 희생을 불러왔음을 부인할 수는 없다.  그렇다고 그들의 죽음이 가엾지 않은 것은 또 아니었으니, 사건은 해결되었을지언정 상처와 앙금은 여전히 무겁게 남아 있다. 

그들이 5년 만에 다시 사건의 한 가운데로 떨어진 것처럼, 영원한 '비밀'은 없다.  그렇지만 영원히 해결되지 않을 상처와 비극은 남아 있다.  안타까운 이야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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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소록 2007-12-06 23: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늦게 나오는건 이미 단련(?)이 되어서 상관없습니다만 (정말?)
가격이 정말 ㄷㄷㄷ

(뭣 모르고 보자마자 집어서 계산대 앞에서 얼마라는 소리에 듣고
정말 비명을 질렀죠.)

아무리 내가 시미즈를 좋아하지만 이건 너무 비싸잖아ㅠ
(뭐, 시미즈 레이코 책만 그런건 아니지만;;)

최근에 서울문화사에서 단편선들 다시 애장판으로 발해줘서
너무 기쁘죠^^ (가격까지 이쁜짓 해주면 좋을텐데)

마노아 2007-12-06 23:50   좋아요 0 | URL
엄훠, 단련되어 계시군요. 전 마음을 비우며 기다리고 있어요^^;;;
진짜 책이 많이 비싸죠. 페이지라도 훌륭해줘야 하는데....
최근에 단편선이 나오긴 하는데 다 갖고 있는 거라 다시 사진 못하고 있어요.
탐은 나지만 참고 있지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