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년전 산산조각난 ‘사리병’에서 비롯됐다
[한겨레 2007-03-30 18:27]    

[한겨레] 불국사 주지 실수로 깨진 뒤
박물관 경주분관 옮겨졌으나
부실 보존으로 다라니경 파손
관리력·소유권 내세워 공방 시작

“쨍그랑!”

1966년 11월30일 낮 경북 경주 토함산 불국사 회랑에서 날카로운 파열음이 울려 퍼졌다. 그 전해 경내 석가탑 2층 탑신 안에서 사리함과 함께 발견된 천하보물인 녹색 사리병이 산산조각이 났다. 주지가 신도 친견 예배에 보이려고 황급히 들고가다가 떨어뜨린 것이다. 이 비극적 사건이 40여년 지난 지금도 문화재 동네에 여파를 미치고 있다. 최근 국립중앙박물관이 보관중인 석가탑 유물 반환을 놓고 조계종과 빚은 갈등의 뿌리가 이 사건에서 비롯되었기 때문이다.

사건 뒤인 다음해 1월11일 문교부 장관은 국립박물관에 공문을 보내어 석가탑 출토 유물 이관명령을 내렸다. 공문에는 “불국사에서 보관함은 동 문화재 보존상 부적당하다고 인정되어 사찰 경내 건축중인 사리각이 준공될 때까지 귀관 경주분관에 보관하고저 동 소유자에 이관토록 명령하였으니…’라고 기록되어 있다. 유물들은 곧 절 주지실에서 경주분관으로 옮겨졌다.

세계 최고의 목판 인쇄물인 무구정광대다라니경(이하 다라니경)을 비롯해 동양 사리예술의 극치인 사리외함, 은제내합, 사리병 등의 유물들은 앞서 66년 10월 발굴 직후 경내 극락전에 일단 옮겨졌다. 불국사 쪽은 사리함을 탑 속에 다시 안치할 것을 요청했고, 문화재위원들은 특수시설 보관을 주문했다. 이 와중에 주지가 사리병을 깬 것이다.

석가탑 유물들의 기구한 유전은 계속됐다. 2년여 뒤인 69년 8월 문화재위원들이 경주분관의 유물 상자 봉인을 뜯어 조사한 결과 다라니경 상당부분에 좀이 먹어 글자가 사라진 사실이 밝혀졌다. 현재 복원된 다라니경 중단부분에 생긴 큰 공백은 이때 입은 상처다. 이 사실이 언론에 보도되자 문화공보부 장관은 그해 8월 서울 국립중앙박물관으로 유물들을 다시 이관하라고 지시했다. 이난영 전 국립경주박물관장은 “당시 박물관 직원들조차 봉인을 뜯고 상태를 점검할 권한이 없어 생긴 일”이라며 “박물관 책임을 따지는 신문기사가 나와 김재원 당시 국립중앙박물관장이 화를 냈었다”고 회고했다.

쪼그라진 대다라니경을 펴서 복원한 것은 다시 20년이 지난 88~89년 일본 장인의 손길에 의해서였다. 보존 기술이 뒤떨어졌기 때문이었다. 박물관은 뒤이어 유물 인계 30돌을 맞은 97년 9월 다라니경과 같이 탑 안에서 나온 먹글씨조각 덩어리(묵서지편)를 110쪽 낱장으로 분리하는 보존처리(박물관 쪽은 현재 응급조치라고 주장)를 시작했다. 극비리에 진행된 작업은 석달 만에 마무리됐다. 당시 유물관리부장인 박영복 경북문화재연구원 원장은 이렇게 증언했다.

“다라니경 연대를 놓고 한·중·일 논란이 있었어요. 한 신문에 고고학자 손보기 박사가 묵서지편이 연대와 관련해 단서를 줄 것이라고 기고한 것을 봤어요. 수장고의 묵서지편을 확인했더니 이관 당시의 녹아 ‘떡’이 된 상태 그대로였어요. 너무 오랫동안 두면 안될 것 같아 보존처리를 지시한 겁니다.” 그는 “나중에 묵서지편을 펴보니 탑을 중수하지 않았다는 통설과 달리 고려 연호가 있는 중수기록이 보여 놀랐다”고 털어놓았다. “번역할 전문가를 수소문했으나, 잘 안됐고, 나도 99년 문화재청 발령이 나 추가 조사를 못했다”고 한다.

박물관 쪽은 8년이 더 흐른 2006년 3월부터 묵서지편 판독작업을 본격화했으나, 이후 조계종과 지루한 반환 주도권 공방이 벌어졌다. 박물관은 최고 수준의 안전관리 역량을, 조계종은 소유주의 권리를 내세웠다. 67년 사리병 훼손사건이나, 30년 이상 주요 유물들을 방치한 양쪽의 각기 책임에 대해서는 거의 침묵했다. 심지어 박물관장은 3월15일 조계종에 반환 불가를 통보하기 전 특정 언론에 학계 검토도 안 거친 묵서지편 내용 일부를 유출시켜 “언론플레이”란 비난을 샀다. 지난 21일 소송도 불사하겠다는 조계종 회견이 열린 다음날 박물관은 문화재청장에게 이런 공문을 보냈다. “우리 관으로서는 타협점을 찾을 수 없는 상황이 되었습니다…유물 이관 여부를 귀 청에 의뢰하오니 적법절차에 따라 처리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노형석 기자 nug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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