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말 털고 용례 찾자” 한국어사전 독립운동
수준 미달인 채 몸집만 불려온 사전들
조선총독부가 만든 ‘조선어사전’ 자료삼아
“사전을 보면 그 시대·학문 보인다”
수천권 수집해 일제 한국어 공백 메우려 고투
한겨레 임종업 기자
» 옥스퍼드사전, 웹스터사전 같은 한국어사전이 우리한테는 왜 없는걸까. 박형익 교수는 우리 사전의 수준이 국력에 비해 창피스러울 정도라고 말했다. 몸피만 불려와 깊이가 떨어진다는 게 그의 진단이다. 그런 비판에 당장 되돌아오는 말은 “당신이 한번 만들어 봐!” 우연히 사전의 세계에 발을 들여놓은 박 교수는 이제 막다른 골목 앞에서 마음이 바쁘다.
한국의 책쟁이들 / (22)‘사전 모으는 이상한 교수님’ 박형익 교수

중고생이 있는 집이면 영한사전 한권은 있다. 영어가 외국어인 까닭에 그것 없이 공부를 할 수 없기 때문. 공부깨나 한다면 손때가 까맣게 묻었을 터다. 하지만 한국어사전 없는 집은 꽤 될 것이다. 한국어는 모국어인 탓에 그것 없이 공부할 수 있거나 그렇다고 믿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말은 틀렸다고 말하는 사람이 있다. 경기대 국어국문학과 박형익(55) 교수다.

“사전이 수준 미달인데다 사전이 필요없는 교육을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의 눈에 한국어사전은 국가 경쟁력에 비해 창피스러울 정도로 수준이 낮다. 뜻을 모르거나 아리송한 어휘를 찾아보면 궁금증을 속시원하게 풀어주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하다. 다른 사전을 찾아보아도 별 수 없다. 그 사전이 그 사전이어서 약속이나 한 듯 뜻풀이가 비슷하다.

실제로 많이 쓰이는 한국어사전에서 ‘사전’을 찾아보면 비슷한 골격의 뜻풀이를 깔작깔작 바꾸어 싣고 있을 뿐이다. 또 동의어로 실은 사림, 사서, 어전, 석사서는 쓰이지 않을 뿐더러 출처도 불분명한 것들이다. (표 참조) ‘사전박사’ 박 교수의 집. 출간 순으로 정리된 사전 서가를 보면 한국어사전은 몸집 불리기 쪽으로 진화해왔음을 알 수 있다. 그러자니 우리말이 아닌 것들, 예컨대 일본말들을 삽입했다.

조선총독부에서는 1920년 식민통치를 위해 <조선어사전>을 발간했다. 1911년 책임자 小田幹治郞을 포함해 16명(일본인 6, 한국인 10명)이 작업을 시작해 5만8000항의 어휘를 조사했다. 애초 일본인과 한국인을 위해 2개 국어로 원고를 만들었으나 “조선인을 위해서 특히 조선어사전을 작성할 필요가 크지 않다”는 이유로 한-일 대역사전으로 바뀌었다. 초판은 1천부를 찍어 관련기관에 배포되고 보급판은 8년 뒤인 1928년에 찍었다. 그런데 해방 뒤에 발간된 한국어사전을 만들 때 이 사전은 기초자료 역할을 톡톡히했다. 사전 전문 출판사인 ㅁ사에서 흘러나온 <조선어사전>은 그 실태를 여실히 보여준다. 어휘 머리맡 대부분이 빨간 색연필로 체크되어 그것들이 그 출판사에서 낸 사전에 표제어로 고스란히 옮겨졌음을 웅변하고 있다.

국력에 비해 창피할 정도


“한국어사전은 서로 변별력이 없어요. 영어는 옥스퍼드 사전과 웹스터 사전이 아주 달라요. 뜻풀이뿐 아니라 용례도 각별하죠. 별도로 만들어졌기 때문입니다.” 고교학습용 영한사전에는 단어마다 대부분 예문이 딸려있는데 한국어사전은 최근에야 <국립국어연구원 표준국어대사전>(두산동아)과 <연세 한국어 사전>(두산동아)에서 일부 채용했을 뿐이다.

“형용사, 부사, 동사는 의미 변별을 위해 반드시 용례가 따라야 합니다.” 말을 바꾸면 용례없는 풀이는 사실상 소용없다. 이는 대학입시에서 논술평가 기준이 공개되지 않는 것과도 통한다. 어휘가 적확하게 쓰여졌는가, 문장이 적절한 어휘의 조합으로 구성됐는가, 그 문장들이 논리적으로 연결돼 전체적으로 일관된 구조를 갖는가 등을 평가하려면 이를 평가할 기준이 있어야 하는데 누구라도 동의해 기준삼을 만한 한국어사전이 없다. 그런 까닭에 하나의 논술문을 두고 심사자마다 평가 편차가 크게 나타난다는 것이다. 그러니 심사기준과 평가결과를 쉽게 공개하지 못하는 게 아니겠는가.

“사전이 언중의 의식수준과 사회의 필요성에 비해 수준이 낮은 것은 아무래도 학계의 연구와 지원이 따르지 못하는 탓이죠.”

박 교수의 전공은 사전학이 아니라 본래 어휘문법론이었다. 파리7대학에서 ‘한국어 여격동사의 구문 분석’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논문은 ‘주다’ 동사에 세 용법이 있음을 밝혔다. 목적어에 구체물(사전, 가방)이 올 때는 여격동사, 추상명사(감명, 창피)가 올 때는 사동기능 동사, 구박·연락·자극 등 동명사가 올 때는 형식동사가 된다는 것. 이 분석을 위해 동사 정리 작업을 하면서 한-프 동사사전을 만들었다. 사전의 늪에 빠지게 된 첫 단추다.

“사전을 보면 만든 이, 시대, 학문의 정도가 보입니다. 국어학 연구 수준을 그대로 반영하지요.”

한국어사전을 본격 수집한 지 10년이 넘었다. 1970년대 이전에 나온 것을 집중적으로 모아 현재까지 1300여권을 모았다. 70년대 이후 것을 합치면 얼마나 될까라는 질문에는 다른 데 정리돼 있다면서 즉답을 하지 못했다. 한자자전과 백과사전, 어휘자료는 1945년 이전에 나온 것을 수집대상으로 하는데 그것 또한 만만치 않아 1000권에 이른다. 아마 자신의 사전 및 어휘 관련 자료가 국내에서 가장 많을 거라고 했다.

“한국어사전 편찬사가 통사적으로 정리돼 있지 않고, 사전 간의 상호관계 역시 규명되지 않고 있어요. 게다가 19세기 말부터 일제 강점기의 한국어 실태는 공백지대나 마찬가지입니다. 누구도 섣불리 달려들지 않아요. 품이 엄청나게 들고 골치 아프니까요.” 그의 수집은 그러한 공백을 메우려는 노력이다.

그는 강의시간 외에는 거의 컴퓨터 앞에서 자료를 입력하거나 정리한다. 사람 만나는 시간도 아깝다는 그는 하루종일 활자와 씨름하느라 눈을 혹사한 탓에 시력이 무척 좋지 않다. 그래서 책상 앞에서 작업할 때 여분의 안경을 이마에 걸친다. 자료를 찾아 서가를 뒤질 때 쉽게 바꿔쓰기 위해서다. 입력은 단순한 반복작업. 제자들한테 일부 맡길 수 있지 않느냐는 말에 한자가 많고, 진력나는 일이라 싫어하는 것 같다면서 마춤한 제자가 하나 있는데 요즘 통 눈을 마주치지 않는다고 전했다.

유일한 유식시간은 헌책방 가는 길. 그는 헌책방계에서 ‘사전을 모으는 이상한 교수님’이다. <보통학교 조선어사전>(심의린, 이문당, 1925)을 지방의 한 헌책방에서 찾아내 한국인이 만든 최초의 단행본 사전임을 밝혀냈다. 그는 요즘도 스트레스가 쌓이면 책방을 찾는데 사전 비슷하게 생긴 고서를 보면 가슴이 찌르르하다고 말했다.

책방길에 유에스비(USB) 메모리는 필수 휴대품. 낯선 물건을 만나면 그것을 컴퓨터에 꽂아서 자신이 구입했는지 여부를 확인한다. 그 안에는 에이포 300쪽 분량의 사전목록과 140쪽 분량의 어휘자료가 입력돼 있다. 10년이상 정교하게 다듬어와 이제는 어느 정도 틀이 잡혀 사전편찬사를 얽을 단계에 이르렀다. 서지학 관련자나 어휘사 연구자들이 탐을 낸다는 말에 ‘한벌 카피해서 줄 수 있느냐’고 운을 떼자 택도 없는 소리 말라는 표정으로 웃었다.

강의 빼곤 하루종일 활자와 씨름

서지메모리는 계속 한줌이지만 현물자료는 한옥 전체를 뒤덮었다. 메모리 주인은 파리지옥의 파리처럼 자료에 갇혀 ‘자기 줌 속에 갇힌’ 모양새. 일층 연구실은 메모리 속의 자료가 발간시간 순으로 정리돼 있고 이층은 방방이 2차 자료로 가득하다. 틈마다 책이 빼곡이 들어서 거의 포화상태다.

자료 가운데 특이한 것은 척독류. 1910년 이래 출간된 ‘편지투 백과’들은 당대 어휘연구에 아주 좋은 자료란다. 본문 상단, 또는 권말에 붙인 ‘낯선 어휘’ 뜻풀이가 일종의 간이사전이었다. 현재 200여권을 모았는데 어휘와 더불어 당대인의 문장습관 분석에도 유용하리라 본다. 그리고 한자자전. 한자의 어석 외에 해당 한자를 포함한 단어와 뜻풀이를 포함하고 있다. 가나다 순이 아니라 한자 부수 순으로 찾아야 하지만 엄연한 한국어사전이다. “여기에는 신기하게도 오랜 운서의 전통이 살아있어요. 거기에 현대식 사전편찬 방식을 흡수한 것이니 ‘전통과 현대의 만남’이랄까요.” 이들 어휘는 자생적으로 형성된, 토종 뜻풀이로 당연히 한국어사전에 반드시 반영해야 한다는 게 박교수의 생각이다.

» ‘사전’ 뜻풀이 비교

“한국어사전에서 일본어, 죽은말을 털어내야 합니다. 그리고 과학적인 뜻풀이와 용례를 추가해야 합니다.” 어휘의 사용빈도를 조사해 빈도가 높은 어휘의 조합으로써 뜻풀이를 하고, 문맥에 따라 뜻이 달라지는 예를 찾아내 용례를 붙여야 한다는 주장이다. 그렇게 하면 마구잡이로 흐르는 언어행위를 다잡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바람에서다.

그는 <현대 한국어 동사 구문사전>(홍재성 외, 두산동아), <한국어 학습용 어미-조사 사전>(이희자 이종희, 한국문화사)을 좋은 본보기로 들었다.

그는 <독립신문> 제1호에 난 <한영자전>과 <한영문법>(언더우드) 광고를 보여주면서 말했다. “당시 사람들한테 이것은 빛이었을 겁니다. 사람마다 다르게 쓰는 한글을 ‘이렇게 쓰세요’ 하고 정리해준 것이니까요.” 그의 작업은 일종의 독립운동일까. 그동안 쌓인 게 많았던지 늦은 점심 반주로 소주를 시켰다. 임종업 선임기자 blitz@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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