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백다섯 명의 오케스트라 ㅣ 비룡소의 그림동화 20
칼라 쿠스킨 지음, 정성원 옮김, 마크 사이먼트 그림 / 비룡소 / 2007년 1월
평점 :
독특한 이야기 전개다. '105명의 오케스트라'라는 제목을 갖고 있어서 그 오케스트라가 얼마나 아름답게 연주를 하는가가 이야기의 주된 흐름일 거라고 여겼다. 그런데 전혀 딴판이다.
금요일 저녁, 105인의 오케스트라 단원들은 그날 밤의 연주를 위해서 집에서 준비를 시작한다. 그들은 모두 샤워를 시작하는데, 거품 목욕을 하는 이가 있는가 하면, 뜨거운 물에 몸을 푹 담그는 사람이 있고 가볍게 샤워만 하는 사람도 있고, 샤워 도중에 휘파람을 부는 이도 있다. 샤워를 마친 뒤 그들 모두는 옷을 입는다. 삼각팬티를 입는 이도 있고 사각 팬티를 입는 이도 있다. 여자 단원들은 스타킹을 신기도 하고 그 위에 따뜻하라고 양말을 덧입기도 한다. 아무튼 의상은 모두 블랙으로 맞춘다.
딱 한 사람만 검정 바지 위에 스트라이프가 있어 유독 튄다. 그는 혼자 연미복을 입고 허리 위에 굵은 띠를 두른다. 다른 밴드의 단원들은 연미복이 아닌 턱시도를 입는다. 오직 한 사람만이 검은 타이가 아닌 하얀 리본을 맨다. 다른 이들이 지하철을 타거나 버스를 타거나 택시를 탈 동안 그만이 기사가 있는 자가용을 타고서 오케스트라홀에 도착한다.
105명의 단원들은 저마다 악기를 들고 있는데 그중 한 사람만이 자그마한 가방을 들고 있다. 유독 도드라지는 복장을 한 그 사람이다. 남자들은 몇명만 빼고 모두 면도를 한 상태이고 여자들은 팔찌를 하지 않는다. 연주에 방해가 되기 때문이다.
홀에 도착한 이들은 무대 위에 악기 케이스를 뺀 악기만을 들고 입장한다. 등받이가 있고 보면대가 있다. 이들의 자리는 모두 해서 104개다. 딱 두 사람만 등받이가 없는 의자인데 콘트라 베이스 주자다. 팀파니와 하프같이 너무 큰 악기는 들고 올 수가 없어 무대 위에 이미 악기가 놓여 있다. 연주자들이 모두 자리에 앉자, 한 사람이 뒤늦게 들어온다. 그 사람은 스트라이프 무늬의 바지 위에 연미복을 입고 흰 리본을 찬 지휘자다. 이제 연주자들은 악보 위의 음표들을 음악으로 바꾸어 놓는다.
시간 순서대로 소소한 일상에서 특별한 무대 위로 장면을 전환하는 독특한 시점의 동화책이다. 105명이나 되는 이들은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단원이고, 무대 위에 오르기 전까지는 고양이와 인사를 하고 휘파람도 부는 평범한 사람들이다. 우리의 가족과 이웃과 다름 없는 아주 친근한 모습이 연출되고 있다. 더군다나 검은색과 흰색, 그리고 빨강색과 노랑색만으로 색을 구성하였는데, 단조로운 그 색깔만으로도 따뜻하면서도 열정적인 무대의 느낌이 충분히 살아나고 있다. 각각의 캐릭터들의 표정들도 살아있는데, 그림 그린 이가 오랫동안 시사만화를 그렸다고 하니 잘 수긍이 갔다.
시간이 조금씩 흘러가면서 무대 위에서 작품이 완성되는데, 독자들은 그 흐름에 따라 조금씩 긴장도를 높이며 기대치를 쌓을 수 있고, 마침내 이들이 무대 위에서 연주하는 그 음악을 귀가 아닌 눈과 마음으로 들을 수 있게 된다.
우연히 만난 동화인데, 기분이 아주 좋아졌다. 그리고 그 음악이 더 듣고 싶어졌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