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살아보세 (dts 2disc)
안진우 감독, 변희봉 외 출연 / 팬텀 / 2006년 12월
평점 :
품절


블랙 코미디라고 해야 할까.  영화 초반에는 코믹을 무기로 상당히 웃긴 내용도 있었지만 영화는 갈수록 심각해지고 슬퍼진다. 이 영화가 그닥 흥행에는 성공 못한 것으로 아는데 타겟을 잘못 잡은 것 같다.  요새 추세가 무조건 웃겨야 한다!가 강하기 때문에, 또 김정은과 이범수의 콤비가 '코믹이 되는 배우'라는 인식이 있어서 그렇게 몰아간 것 같다.  글쎄, 코믹으로 생각하기에는 영화는 크게 웃기지 않고 오히려 진지한 내용이 더 많아서 관객으로부터 더 외면받은 것이 아닐까 싶다.

주연배우와 중견배우들의 접목이 대체로 균형이 맞았지만, 이범수의 아내 전미선만은 미스 캐스팅이었다.  시골 아낙으로 분하기에는 너무 곱다.  황진이에서 하지원의 어머니로 '현금' 역을 맡았는데, 딱 그런 분위기의 배우를 데려다가 안 맞는 옷을 입혀놓으니 불협화음이 생길 수밖에 없다.(이건 연기를 잘하고 못하고의 문제가 아니다.)

70년대 초반이면 내가 아직 태어나기 전의 일이지만, 그 시절에 산아제한이 있었고, 영화 속에서 공권력이 행사하는 힘들이 결코 과장이 아님을 알지만, 21세기를 사는 사람의 눈으로 볼 땐 기막힌 희극이 아닐 수 없다.  그리고 그게 사실이라는 것에서 우리의 비극이 있다.

그때 당시 우리의 경제 상황으로는 산아제한이 필요했던 것을 인정한다.  지금처럼 아이를 낳지 않아서(못해서) 문제가 되던 시절과는 분명히 다른 입장이다.  그러나, 그런 문제를 넘어서 그런 '명령'이 떨어져서 시행되는 과정의 비민주성과 보다 고질적이고 근본적인 계급의 문제가 영화 속에 깔려 있는지라 보는 내내 참으로 서글펐다.

마을의 지주 계급이며 유지인 전 이장 변희봉은 모자란 큰아들 대신 둘째 아들로부터 아들을 보기 위해, 아이 낳기를 두려워 하는 며느리의 아픔을 외면한다. (며느리는 딸아이를 낳으면서 32시간의 진통으로 죽을 뻔한 위기를 넘겼고, 그 후로도 두 아이를 유산하는 바람에 더 큰 공포를 지니고 있다. 그리고 다시 낳게 되는 아이가 아들이라는 보장은 어디에 있는가.) 변희봉을 대변하는 둘째 아들은 친구인 석구(이범수)를 종부리듯 대접하고 걸핏하면 소작 떼겠다고 협박을 하며 실제로 폭력배를 동원하여 실력 행사를 한다.

한 번 잘 살아보겠다고 일치 단결한 마을 주민들은 출산율0%를 만들어야 하는 상황에서 무지함으로 임신을 한 마을 주민 한 가족을 내쫓는다.   행복해지기 위해서 그들은 '빚'을 청산해야 했고, 그러기 위해서 그들은 인간성을 저버려야 했으며 필연적으로 행복과 멀어진다.

새로 마을 이장이 되어 악착같이 일하는 석구(이범수)는 정관수술까지 했지만 아내가 임신을 하는 바람에 가정파탄에 이른다.  거기에는 수술이 잘못된 것을 미처 알아차리지 못하고 무책임한 언사를 내뱉은 보건소 의사의 책임이 크나 그들이 책임지는 것은 아무 것도 없다.  석구는 또 어떻던가.  절대적으로 있을 수 없는 일이 벌어졌으니 그가 의심하는 마음이 드는 것은 인지상정이었지만, 그 의심의 힘은 또 얼마나 무섭던가.  결국 아내를 벼랑끝으로 내몰고, 또 자기 자신을 벼랑 끝으로 내모는 것도 석구 자신이었다.

행복해지고 싶었는데, 그 행복을 향해 달려가는 길은 서로를 최악의 상황으로 몰아붙인다.  거기에는 무엇이 가장 중요한지를 잊고 사는 인간의 어리석음이 깔려있지만, 더 깊은 곳에는 그들의 처절한 '가난'이 자리하고 있다.

영화는 클라이막스에서 예기치 못한 반전을 한 번 보여주고 나름대로의 수습을 하고 끝마친다.  그 수습이란 다 함께 잘 살수 있게 만들어주지는 못했지만, 그들 울타리 안의 자그마한 행복을 지키기 위한 몸부림을 보여준다.

김정은이 마을을 떠나면서 변희봉을 다시 한 번 찾는 장면은 꽤 인상적이었다.  변희봉의 큰아들을 통해 맨 처음 변희봉이 그녀에게 했던 말을 리메이크 하면서 묘하게 꼬게 되는데, 그 어법이 기막히다.

"백성이 망해야 나라가 있고, 가문이 번창해도 나라는 망하는 법이다."

백성이 망하든 말든 관심 없는 나라가 있고, 나라가 망하든 말든 번창하는 가문이 아직도 있으니 말이다.

그래서, 영화 마지막에 깔리는 , "저 푸른 초원 위에 그림 같은 집을 짓고"의 노래는 더 극적이다.  요즘처럼 부동산이 요동치는 때에는 더 인상적이랄까.

영화는 기대 이상으로 재밌었고, 그 이상으로 많은 생각들을 안겨 준다.  제대로 주목받지 못한 점이 못내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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