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판스타 - 이희재 단편집
이희재 지음 / 글논그림밭 / 2001년 7월
평점 :
절판


도서관에 내가 신청한 책인데, 드디어 도착했다고 무척 기뻐했었다.  여러 단편들의 묶음인지라 리뷰 쓰려고 책을 따로 치워뒀는데 실수로 다른 책과 함께 반납해 버렸다ㅡ.ㅡ;;;; 그래서 단편들의 소소한 제목이라던가 등장인물들의 이름까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느낌은, 오세영의 "부자의 그림 일기"보다는 덜 무거웠다.  아마도 그것은, 똑같이 어렵고 서글픈 현실을 비춰주었지만, 간판스타의 경우 뒤쪽 이야기로 갈수록 자그마하지만 약간의 '희망'을 제시해 주었기 때문일 것이다.

딸을 잃고 초등학교 입학 직전의 아들까지 연탄가스 중독으로 잃어버린 환경미화원 아저씨.  첫 등교 새벽에 쓰레기차를 밀어주기 위해 집을 비운 사이 아이들이 사고를 당했고, 그 원망을 부인에게 퍼부었던 아저씨.  자식 앞세워 말을 잃고 넋을 놓아버렸던 부인을 겨우 살리고, 다시 힘차게 일어서기 위해 아둥바둥 애쓴 아저씨의 이야기는 부인이 다시 아이를 임신하면서 끝이 난다.    그 아이가 태어난 세상은, 아버지가 힘겹게 버티는 이 세상과 크게 다르지 않을 수도 있다.  지독한 가난은 되물림 되기 일쑤니까.  그렇지만, 그래도 다시 일어서는 모습은 눈물 겨웠고, 그 결심에 노력에 응원을 아니 할 수가 없었다.

제목이면서 첫번째 단편이었던 '간판스타'의 주인공은 서울 좋은 회사에 취직이 된 것처럼 온 동네에 소문이 나 있지만, 그녀는 유명 술집의 '잘 나가는 간판스타' 아가씨였을 뿐이다.  실상을 파고들면, 그처럼 허무하고 기만적이지만 그녀는 고향집에서 여전히 효녀이자 출세한 아가씨.  문득, '한강의 기적'을 찬양하던 대한민국이 떠오른다.  샴페인을 너무 일찍 터트렸다고도 하는 그 대한민국.  겉보기엔 잘 나가는 것 같고, 뭔가 대우 받는 것 같고, 꽤나 그럴싸해 보이지만, 속을 좀 더 깊이 들여다 보면 안으로 곪아 있는 우리의 현주소가 보이는 그런 작품으로 느껴졌다.

늘 술에 쩔어 있고, 다리까지 절고 지독히 가난한 아버지를 부끄러워 했던 아들.  그러나 누구도 나서서 말리지도 도와주지도 못한 성난 개로부터 아이를 구해낸 용감한 아버지.  실상 그 다리의 상흔은 4.19의 영광스런 상처였다.  독재정권을 무너뜨리기 위해 젊음을 바쳤어도, 아버지의 노년은 여전히 독재정권 휘하에 놓여 있었다.  동네 사람 누구도 건드리지 못하는 성난 개가 반영하는 것은 바로 그 무소불위의 독재자들.  공권력도 그 앞에서는 맥을 못 추었고, 너도나도 눈치만 볼 때 가장 가난하고 가장 힘 없고, 가장 초라한 아버지가 먼저 두 주먹을 불끈 쥐었다.  지나간 역사를 돌이켜 보면, 멀리까지 가지 않더라도 가장 중요한 때에 제일 앞장 서서 애써주고 용기를 내었던 민초들을 떠올릴 수 있다.  세상을 움직이는 것은 1% 아니, 0.01%의 극소수의 사람일지 모르겠지만, 그 세상을 유지시키고 이어나가고 제대로 돌아가게 만드는 것은 결국 그 약하디 약한 민중의 힘이 아닐까 싶다. 

작가는, 그 작고도 큰 힘을 가진 민중의 이야기를 해주고 싶었던 것이 아닐까.  아들 낳으려다가 번번히 딸만 낳아 막내딸 구박이 유독 심했던 어머니, 그래도 그 어머니 신경통 고치겠다고 죽자살자 돈 모아서 효도하려던 딸, 그 동생의 힘으로 대학 공부하게 된 언니... 이런 이야기들은 어느 정도 답답하고, 그러면서 동시에 어느 정도 가슴도 훈훈해지는 우리네 가족 소사들이 아닐까.

작가는 먼 이상을 얘기하지 않았다.  거창한 포부나 현란한 희망을 제시하지도 않았다.  그저 우리네 이야기를 해주면서 우리네 마음을 조금 보여줬을 뿐이다.  그 이야기들이, 보장해 주는 것 아무 것도 없으면서 그래도 조금이나마 힘이 된다.

그밖에 운수좋은 날이라던가, 신춘문예 도전기에 관한 이야기 등은 적절한 반전을 통해서 아찔함 속에 경종을 울려준다. 

'만화'라는 장르는 언제나 쉽게 취급되곤 했는데 시사만화라던지, 이런 사회적인 메시지를 담고 있는 책들을 보면 그것이 만화여서 오히려 더 깊숙한 접근이 가능하게 보여진다.  절판되었다가 다시 출판된 것은 정말 다행인데, 몇몇 작가뿐 아니라 더 많은 작가에게도 좀 더 길이 열렸으면 하는 바람이다.  만화책의 경우 '절판'되고나면 구하는 게 너무 힘이 들어져서 말이다.(인문서적도 마찬가지지만..;;;)

도서관에 계속 꽂혀 있을 이 책을, 더 많은 사람들이 찾아볼 수 있다면 좋겠다.  만화라고 그저 지나치지 않고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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