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명은 부산물이다 - 문명의 시원을 둘러싼 해묵은 관점을 변화시킬 경이로운 발상
정예푸 지음, 오한나 옮김 / 378 / 201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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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인류 문명의 발전사 중에서 초기에 해당하는 6가지 문명 기술에 대한 형성과정을 기술하면서 문명은 인류의 의도적인 창조 활동의 결과가 아니라 자연에 적응하고 생존하는 과정 속에서 축적된 기술과 전파의 산물이라는 주장을 펼치고 있다. 책의 내용은 초기 인류 문명 발달사에 등장하는 주요한 6가지 주제에 대해 다루고 있다: 결혼제도; 농경 문화; 문자; 종이 제조 기술; 조판 인쇄; 활자 인쇄.

첫 번째 주제는 문화인류학의 논제인 결혼제도와 초기 인류 문명 형태인 수렵 양식과의 관계를 기술하고 있다. 여러 문화인류학의 거장들의 이론들을 저자만의 독특한 시각으로 하나하나 논박하는 과정은 흥미진진하며, 마치 숨은 고수를 만난듯한 느낌이 들 정도이다.

두 번째는 농경 문화의 기원에 대해 기술하고 있다. 저자는 제레드 다이아몬드의 저서 [,,]의내용에 동의하며 이를 주로 인용하고 있는데, 개인적으로 제레드 다이아몬드의 시각은 서양 문명의 관점을 기준으로 농경 문화를 이해한다고 느껴서 아쉬웠었는데, 이 책에서는 동양과 서양을 모두 포괄적으로 다루어서 균형 잡힌 저자의 시각을 보여주고 있다는 점이 무척 훌륭했다.

세 번째로 문자의 발명을 다루고 있다. 문자의 기원을 서양과 동양의 문헌에서뿐만 아니라, 소쉬르나 데리다와 같은 언어 철학의 이론과 글자와 그림 사이의 관계를 설정하는 뇌공학의 이론까지도 연관 지어 설명하는 부분은 저자의 폭넓은 분야의 배경 지식을 보여주고 있다.

네 번째로 종이의 발명에 대해 기술하고 있다. 종이를 발명한 채륜의 제지법에 관해 창조적인 발견과 기술적인 개량 등의 여러 가지 분석과 주장들에 대해 살펴보고 있다.

다섯 번째로 다루는 조판 인쇄술은 도장과 석각(석비와 묘비)에 관한 이야기이다. 조판 인쇄술은 서양과 동양 양쪽에서 모두 사용되었지만 기원에 관해서는 명확한 해석이 없다. 다만 종교적인 이유(유교와 불교의 전파)로 조판 인쇄술이 발달하게 되었다는 주장을 저자는 하고 있다.

여섯 번째로 활자인쇄술은 금속활자술을 일컫는데, 동양(중국과 한국)과 서양(독일)의 기원과 전파 과정의 차이를 비교하고 있다. 아쉬운 점은, 한국에서는 독일에서와 같이 더 이상의 출판 문화의 발달로 인한 인쇄물의 전파가 확산되지 않았다는 점은 항상 아쉽게 느껴지는 대목이다.

마지막으로, 저자는 다윈의 생물 진화론적인 입장에서 문명은 인류가 계획하고 의도한 대로 만들어낸 목적물이 아니라, 생존하고 적응하기 위해 우연히 발견하고 교류를 통해 모방하여 발전시킨 기술들의 축적과 전파에 의해 생겨난 결과물들이라는 주장으로 끝을 맺는다.

저자는, 기존의 문화 인류학에서 보는 도식적이고 서양 중심적 관점에서 벗어나서, 고고학과 생물 진화론 등 다양한 학문적 배경 위에서 자신만의 독특한 시각으로 인류 문명의 발달 과정에 대한 주장과 근거를 설득력 있게 펼치고 있다.

이 책은 놀라운 책이다. 이 책의 저자인 정예푸라는 학자의 이름은 처음 접하는데 이런 수준의 책을 쓰는 중국 학자가 있다는 사실 자체가 무척 놀라웠다. 새로운 시각으로 접근한 문화인류학의 서적이다. 일독을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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