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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권으로 읽는 현대미술
마이클 윌슨 지음, 임산.조주현 옮김 / 마로니에북스 / 2017년 8월
평점 :
개인적으로 가끔 전시회에 갈 때마다 느끼는 일이지만, 나한테 현대 미술은 단박에 이해하기 어렵다. 이것이 비단 나 혼자만이
아니라 다수의 일반 대중에게도 해당된다는 점을 알게 되면 위안이 되기는 하지만, 한편으로는 이 책의
출발점이 되기도 한다. 왜냐하면 바로 이 책의 저자인 미술 평론가 마이클 윌슨조차도 이런 문제점을 인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책은 대중에게 현대 미술을 좀더 이해하기 쉽고 접근하기
쉽도록 하려는 의도로 작성된 일종의 컨템포러리 미술 작품 감상 안내서라고 할 수 있다. 이 책은 현존하는
컨템포러리(contemporary) 작가 중에서 영향력 있는 대표작가 175명을 선정하여, 그들의 예술적 가치관, 간략한 작품 활동과 대표적인 작품에 대한 해석을 소개하고 있다. (*여기서
‘컨템포러리’라는 용어는 1990년대부터
2010년대에 이르는 대략 20여년 간의 미술사의 시기를
가리키는 것으로 작가가 가정하고 있다). 이 책에서 소개되는 작가 한 명 한 명의 삶의 배경과 예술관, 그리고 주요 관심사가 제각기 다르고, 작업 방식과 소재 그리고 다루는
주제가 너무 광범위하게 폭넓고 다양하기 때문에, 저자는 현대미술 사조의 체계화를 위한 어떠한 범주화
작업을 수행하지 않는다: 주제로는 정치, 종교, 폭력, 금기, 예술, 자유, 억압, 사회 부조리
등이 있고, 형식으로는 회화 미술, 장치 미술, 설치 미술, 조각 미술, 퍼포먼스, 혼합 미술, 사진, 영화, 웹 동영상 등이 있고, 작업 방식은 개인별, 그룹별, 관객 참여 등이 있다. 표현
방식은 대조, 대비, 강조,
교차, 합성, 혼합, 행위 등이 있다.
마치 175명의
철학자를 만나 175개의 각기 다른 가치관과 주장을 들어본 듯한 느낌이다. 일부는 이해가 가지만, 나머지는 납득하기 어렵고 힘들었는데, 신기하게도 이 책 속에 내가 느낀 개인적인 소감을 대변하는 문구가 등장한다:
예술이 반드시 모두를 위해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대신 예술이 자신을 위해 존재한다고 믿는 사람들을 위해 존재한다. –피에르 비스무스(Pierre Bismuth)-
(비스무스의 글을 읽고 나서부터, 현대 미술 작가들의 예술적
특징을 완전히 이해하지 못한다는 사실이 전혀 부끄럽지 않게 느껴졌다).
저자의 설명을 따라 작품에 사용된 매체와 표현하고 있는 은유를
추적하다 보면, 저자의 저술 동기대로 여느 미술 가이드처럼 컨템포러리 작품들을 관찰하고 감상하는 방식을
깨닫게 되는 내 모습을 발견하게 된다. 덕분에, 어느 정도까지는
작가 개개인의 대표 작품에 대한 해설을 접하고 나서야 비로소 작가가 그 작품을 통해 전달하려고 하는 주제와 동기를 파악할 수 있었다. 그러나 저자의 객관적인 해설에도 불구하고, 개인적으로는 공감하기
어려운 작품도 있었고, 심지어 저자의 해설 자체도 이해하기 어려운 경우도 있었다. 예를 들면 쥘 드 발랭쿠르의 <투기자>에서 개인적으로 파티 분위기의 발랄함과 흥겨움은 느낄 수 있었지만, 저자가
말하는 ‘위풍당당함’은 솔직히 느끼기 어려웠다. 캐롤 보브의 경우, 과거 시대에 유세했던 실천가, 이론가, 평론가의 영향력의 퇴조를 암시하기 위해 이용한 손때 묻은
책들에게서는 단지 ‘과거’ 혹은 ‘추억’같은 느낌만 받았었다. 데이비드
메달라의 경우, 비평가 리처드 다이어의 평가는 이해하기 전에 해석조차 힘들었다: “서로 반대되는 관계 항들을 상정함으로써, 메달라는 조각을 구성하는 것들의 한도에 반박한다. 만들어질 때처럼
스스로 해체되는 한 매체를 선택하게 되면, 작품의 안정성은 약화되어 조각에서의 견고함과 영속성 개념들의
효력이 문제시된다.”
현재 현대미술계에서 인기 있는 유명 작가와 작품들을 접하게
된 점도 좋았다(물론 온전히 이해되지는 않았다): 프란시스
알리스, 알로라 & 칼자디야, 뤼크 튀이만, 데미언 허스트, 아이
웨이웨이, 마리나 아브라모비치, 마이클 애셔, 개디 놀랜드, 브라이언 오도허티 등. 비단 유명 작가들뿐만 아니라, 이 책에서 소개된 작가들 전부 현대
미술계에 분명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는 점에서 향후에도 대중매체나 다른 예술 작품 해설서 안에서 마주치게 될 확률이 매우 높다. 특이한 점은 2명의 한국 작가도 함께 소개되었다: 이불(Lee Bul), 김수자(Kimsooja).
개인적으로는 컨템포러리 미술의 동향까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컨템포러리 미술 작품을 감상하기 위해서는 전통적인 미술 작품의 감상법과는 다른 시각과 관찰 방식이 필요하다는
점을 알게 된 것만으로도 좋았다. 무엇보다 현대 미술 작품은 관람자가 반드시 적극적으로 이해하려고 노력해야
하며, 결코 관람자에게 인류보편적인 감상이나 메시지를 전달해주지 않으며, 오직 이해할 수 있는 소양을 갖춘 관람자만이 작품을 제대로 감상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점이 가장 큰
깨달음이었다.
현대 미술
작품에 관심이 많고 제대로 감상하려는 의지가 충분한 사람에게 권하고 싶은 책이다.
개인적 소감은 ‘여전히
어려웠다’. 이런 수준의 난해함은 니체의 저작을 읽었을 때와 견줄 수 있다. 현대 미술의 기조를 알게 된 것이 가장 큰 수확이다: 현대 미술
작품은 더 이상 인류보편적인 감상과 메시지를 관람자에게 전달해주지 않는다. 알고 싶은 사람만 현대 미술 작품을 이해해보려고 적극적으로 열심히 관람하라. 단, 이해할 수 있는 소양을 갖춘 관람자만이 이해할 수 있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