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그리스인 이야기 1 - 민주주의가 태동하는 순간의 산고 ㅣ 그리스인 이야기 1
시오노 나나미 지음, 이경덕 옮김 / 살림 / 2017년 4월
평점 :
이 책은 로마인 이야기 시리즈의 작가 시오노 나나미가 내놓은
그리스인 이야기 3부작 중 첫번째 권에 해당한다. 주요 내용은, 그리스 고졸기(archaic greece)가 끝나는 BC.7~8C부터 1,2차 페르시아 전쟁이 완료되는 BC.5C 중반까지의 그리스 고전시대(classical Greece)에
그리스의 도시국가들, 그 중에서도 스파르타와 아테네를 중심으로 정치체제의 확립 과정 속에서 나타나는
개혁과 변화에 대해 다루고 있다. 특히, 1차와 2차 페르시아 전쟁에 대한 기술은 치밀한 자료 조사를 바탕으로 작가의 광범위한 전쟁관련 배경지식과 특유의 상상력이
어우러져 매우 세밀하다. 부대 배치나 전투의 전개 순서나 무기에 대한 묘사는 너무나도 정교하여, 마치 한 편의 영화를 보는 듯한 착각이 들 정도로 생생하기까지 하다. (*실제로, 2차 페르시아 전쟁(bc.480~479)을 주제로 한 영화 2편이 제작되었다. 테르모필레 지역에서 벌인 페르시아 20만 대군과 스파르타 300명과의 치열한 전투를 그린 영화 [300](2006, 잭 스나이더 감독). [300]의 속편 격으로
2014년에 제작된 영화 [300: 제국의 부활(rise of an empire)](노암 무로 감독)은, 테르모필레 전투가 끝나고 며칠 후에 살라미스 섬 앞바다에서 벌어진 페르시아 해군 900척과 아테네 해군 주도의 그리스 연합 해군 375척과의 유명한
살라미스 해전을 담아내고 있다. 이 책의 출간 년도가 2015년이니, 저자가 2편의 영화를 참고했을 개연성은 존재한다.) 무엇보다 당시 그리스 지도를 중간에 다수 삽입한 것은 매우 유용했고 칭찬할만한 작업이다(역사서에는 지리 정보가 필수적인데도 제공되지 않는 책들이 다수이다.) 1편만으로도
흥미진진해서, 앞으로 출간될 2편과 3편이 무척 기대된다.
시오노 나나미가 로마인 이야기 시리즈 전체에서 ‘율리우스 카이사르’를 주인공으로 삼았듯이, 그리스인 이야기 시리즈의 주인공으로 ‘테미스토클레스’를 삼았다고 하는 책의 표지 설명에서 짐작할 수 있듯이, 이 책에서
테미스토클레스에 대한 분량이 책의 절반 이상을 차지한다. 저자가 꼽은 테미스토클레스의 매력은 전형적인
비범한 영웅의 특성이다: 안일한 현실에 안주하지 않고 미래를 대비하는 탁월한 선견지명, 위급한 전쟁터에서 빛을 발하는 치밀한 전략과 계획 수립 능력과 침착하면서도 과감한 실행력, 목적을 위해서라면 수단과 적대적인 인물을 따지지 않고 채택하여 활용하는 포용력과 임기응변, 반대를 일삼는 상대방의 방해에도 굴하지 않고 설득을 통해 협력을 이끌어 내는 합리적인 리더쉽, 어떠한 악조건 속에서도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인내하고 극복하려는 굳은 의지와 신념 등이다.
사실 책을 읽는 내내 ‘테미스토클레스’와 비슷한 인물이 계속해서 내 머리 속에서 맴돌았다. 개인적으로는
‘이순신’과 ‘테미스토클레스’가 매우 닮았다고 생각한다. 많은 사람들이 16C 이순신 장군이 마지막 해전에서 전사한 점을 들어 18C 영국의
호레이스 넬슨 제독과 유사한 비교를 하고는 한다. 그러나, 다른
점이 훨씬 많다: 넬슨은 13살부터 해군에 입대하여 47살에 죽을 때까지 줄곧 해군에만 있었고, 그가 구사한 해양 전투의
전술은 치밀한 훈련보다는 과거 전투 경험의 감각에 기초하여 당시 기후나 해양 조건을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즉흥적인 작전을 펼쳤으며, 특히 그가 거둔 해전 전적은 이순신과는 비교가 안된다. 이순신은
무장이지만 무과를 준비하면서 문리를 터득한 지장이다. 무과에 합격한 뒤 육군에 배속되어 함경도에서 여진족을
상대로 전투 경험을 쌓은 다음에, 류성룡의 추천에 의해 해군 임진왜란 발발 1년 전에 전라좌수사(전라좌도 수군절도사)로 부임하게 된다. 육군에서 중간 장교급의 전투 경험을 거친 후에
수군의 고위 사령관으로서의 전투를 맞이하게 된다는 점이 흡사하다. 이순신이 조선 해군으로 배속되던 시점인
1591년 2월은 조선통신사의 잘못된 보고에 의해 ‘일본 왜와의 전쟁무방비’를 조선 조정의 당론으로 정한 시점이었다. 그럼에도 이순신만은 왜와의 전쟁발발 가능성이 높다고 보고, 1년
동안 무기와 군비를 확충하고 해상전투 훈련을 꾸준히 실행하며 전쟁 준비를 치밀하게 진행한다. 테미스토클레스가
1차 페르시아 전쟁이 끝나고, 모든 아테네인들이 무관심해하던
2차 페르시아 전쟁에 대비하여 아테네 해군을 증강하기 위해 10년
동안 혼자서 주도면밀히 준비하는 과정이 묘하게 오버랩되는 장면이다. 가장 백미는 이순신과 테미스토클레스
둘다, 일방적인 해군 전력 차이를 압도적인 승리로 이끌어 내는 해상전투 전적이다. 유일하게 차이가 나는 대목은 이순신은 마지막 해전에서 죽음을 택했다는 점이다(이
부분은 많은 논란이 있지만, 개인적으로 볼 때, 이순신이
수행했던 과거 해전과는 달리 노량 해전에서만 갑옷을 벗고 갑판 위에서 전투 지휘를 했다는 점에서 ‘스스로
선택’을 했다고 추정한다). 테미스토클레스는 마지막 해전을
승리로 이끌고 나서, 스스로 대외적인 활동을 줄이는 대신에 ‘크산티포스(아테네의 정치 개혁을 완성시킨 페리클레스의 부친)’처럼 능력있는 후배
인물들을 적극적으로 추천하여 활동기회를 제공하고, 정치적 영향력을 발휘하여 페르시아에 대한 방어 전략의
주요수단인 아테네 도시와 인접 항구와의 성벽 공사를 끝까지 달성하는 동시에 인근 항구를 향후 해상교역의 거점으로 육성할 계획을 수립하고 조성한다. 아마도 이순신이 마지막 죽음을 선택하지 않고 살았더라면, 테미스토클레스와
같이 일본의 침략에 대비한 전략을 수립하고 실행에 옮기고 한편으로 후배들의 성장을 독려했을 것이다. 오늘날도
과거와 똑같이 혼란하고 급박한 위험 요소 속에 놓여있는 시기라서 그런지, 테미스토클레스처럼 비범한 인물의
출현을 몹시 갈구하며 간절히 기다리는 게 요즘 드는 심정이라 씁쓸하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