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해, 역사가 바뀌다 - 세계사에 새겨진 인류의 결정적 변곡점
주경철 지음 / 21세기북스 / 2017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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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이 책의 구성은 크게 두 부분으로 이루어진다: 역사적 4가지 사건에 대해 기술하고, 현재 시점에서 인류 문명사적으로 해결해야 할 과제들을 열거한다. 앞부분에서 세계 인류 문명사에서 중요한 4가지 사건이 발생한 년도를 꼽아서 문명사적인 측면에서 인류에게 끼친 영향과 역사적 흐름의 전개를 기술하고 있다: 1) 14922) 18203) 19144) 1945. 마지막 장에서, 인류 문명사적으로 현재 시점에서 직면한 향후 해결해야 할 과제 상황들에 대해 이슈들을 제기하고 있다.

첫번째 사건은 1492년에 발생한 것으로 컬럼버스의 신대륙 발견이다. 컬럼버스의 인생과 가치관,신대륙 항해에 관한 당시의 사회문화적 인식에 대해 서술한다. 우리가 잘 몰랐던 컬럼버스의 생애와 당시 시대적 관념과 배치되는 굳은 신념의 인간적인 에피소드를 소개하고 있다.

두번째 주요 사건은 경제사학 상으로 산업혁명이 발생한 1820년 경이다. 영국이 프랑스와의 나폴레옹 전쟁(1793~1815) 이후에 방직공장에서 방직기계 도입을 통해 면직 생산이 증가되고 수공업 노동이 기계노동으로 전환됨으로써 사회적 문화적 현상이 나타나기 시작한 시기이다. 특히, 산업혁명을 기점으로 동양과 서양의 문명의 패권의 위치가 완전히 역전되었고, 이에 대한 요인으로 당시 중국의 국가 상황이 동시대 유럽처럼 분열된 체제가 아닌 통일된 형태의 제국의 정치체제였기 때문에 경쟁에 대한 동기 부여가 부족했다는 점을 지적한다(개인적으로 개연성이 부족하다고 느낌)

세번째로 꼽은 주요 사건은 기존의 문명 교류 관점 (정치/경제/문화/전쟁 등)과는 다른 생태학적인 측면에서 특이한 소수종인 나그네비둘기의 멸종 사건이다. 물론 1차 세계 대전이 일어난 해와 겹치지만 생태학적인 사건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자연 생태계 속에서 인간의 욕심으로 인해 인간에 의해 저질러진 인위적인 급격한 생태학적인 변화가 가져 오는 환경과 역사의 변화의 위험성을 지적하고 있다. 예를 들어 동물과 식물 종자의 서식지 인위적인 전파라든지 그로 인해 파괴된 지구 환경의 후유증은 문명화란 이름으로 진행되어 온 기술 발전과 자연 사이의 조화의 중요함과 필요성을 일깨워 주기에 충분하다.

네번째 사건은 2차 세계 대전의 종전이다. 국가 간의 평화 문제를 문명사적인 측면에서 2가지 방향의 해석을 제시한다: 하나는 과학 기술 문명의 진보로 인한 무력의 증가로 인간에 대한 폭력이 함께 증가했다는 해석과 다른 하나는 스티븐 핑커의 견해로 현대로 올수록 무기나 군사의 사용이 국가에게 독점되기 때문에 국가가 무력을 통제하는 한 국가간의 전쟁을 자제하기 때문에 과거에 비해 덜 폭력적이 되었다는 관점이다.

마지막으로, 현재 시점에 직면한 인류문명사의 대표 과제들인 기계화와 인간 해방의 문제, 기술문명화와 폭력적인 야만화의 문제를 제기하고, 이에 대한 독자 개인의 문제 인식과 답안의 성찰을 요구한다.  

개인적인 소감은 실망이었다. 주경철 교수의 전작들(‘물질문명과 자본주의’, ‘문명과 바다’,’대항해시대)을 생각하면, 이 책은 매우 실망스럽다. 우선 서문에서 밝힌 책 저술의 동기와 주제가 실제 내용과 일치되지 않고, 내용을 구성하는 역사적 사건들의 영향력을 해석하는데 논란이 있을 수 있는 관점들을 충분한 검토없이 그대로 기술하고 있고, 그나마 설득력이 떨어지는 이론들에 바탕하기 때문에 구성이 더욱 빈약해진다.

저자가 서문에서 밝힌 저술 동기는 현재 혼잡한 세계적 정치/경제 상황 속에서 한국이 나아가야할 방향을 고민해보기 위해 4가지 문명사적으로 위대한 사건을 설명하고 이에 대한 심층적인 성찰의 자료를 제시함으로써, 독자로 하여금 생각을 해보라는 것이다. 과연 4가지 사건이 문명사적으로 위대한지 여부부터 따져볼 필요가 있다.

1492년의 컬럼버스의 신대륙 발견 사건은 서양 문명에서 해양술의 발전시켜 해양 경로를 개척하여 유럽의 정치/경제/문화가 발전하는 계기가 되었다는 점에서 충분히 공감이 된다. 한가지 아쉬운 대목은 컬럼버스의 신대륙 탐사의 여러가지 동인 중에 13C부터 등장한 오스만 투르크족에 의해 실크로드의 육로 경로 중에 유럽과 서아시아 구간이 막혀 봉쇄되었고, 이에 대한 대안으로 바닷길 경로를 통해 동양과 서양의 교류를 새로이 재개하려는 사회 경제적 요인이 있었다는 점이 빠져있다. 무역경제상으로 실크로드의 육로 봉쇄로 인해 유럽의 손해가 더 막심했기 때문에, 유럽의 입장에서 아시아와의 무역 재개는 충분한 동인이 되었다는 역사학자들의 견해이다.

두번째로 등장하는 산업혁명 사건도 중요한 사건이라는 점에서는 이견이 없다. 그러나, 단순히 기계화의 인간 노동력 대체가 서양 문명에게 동양 문명에 비해 우월적인 지위를 가져다 주었다는 견해는 매우 위험한 발상이다. 생산성 향상의 원인이 되는 기계화가 좋고 훌륭한 기술이라면, 과거 종이와 화약의 경우처럼, 시간은 걸릴 수 있을지라도 서양에서 동양으로 충분히 전파되었을 것이다. 문제는 1820년대 당시의 유럽에서 계몽주의사조가 충만했다는 사실을 간과해서는 안되었다. , 오직 기독교 신자인 백인 종족만이 하느님으로부터 받은 이성이 있고 다른 종족보다 우월한 지위에 있다는 신념이 팽배했고, 아직 개화되지 않은 비기독교 신자인 이교도 종족을 계몽시켜야 한다는 사조가 유럽을 지배하던 시대였다. 따라서 하루라도 빨리 야만스러운 이민족들을 만나서 강제적으로라도 기독교를 전파시키고 유럽의 문화를 이식시켜야 한다는 가치관이 퍼져있던 시기였다. 이것이 여러 유럽 국가 왕조들의 식민지 건설에 대해 사회적 용인되는 가치관이었다는 점을 잊어서는 안된다. 단순히 기술발전이 가져다 주는 사회경제적인 결과만 봐서는 결국 한쪽 눈을 가리고 다른 한쪽 눈만으로 역사를 이해하는 셈이 된다. , 시대적인 상황과 철학적인 가치관까지 고려해야 한다.

세번째로 언급한 인간에 의한 생태계 파괴 사건은 앞의 2가지 사례와는 성격이 다르지만 전체적인 문명 교류사 측면에서 상당한 영향이 있다는 점에서 참신한 사건으로 볼 수 있다. 그러나, 굳이 생태학적 사건이 문명교류사의 시각에서 봐야만 한다면, 관점의 외연이나 확장에 대한 충분한 설명이 있어야 했는데, 아무런 설명없이 곧바로 관점의 전환한 것은 이 책의 구성에 무리한 전개로 판단된다.

네번째의 경우, 국가간의 평화가 과학 기술의 발달로 인한 무력의 발전과 국가의 무력 통제 권한 덕분에 덜 폭력적이었다고 하는 심리학자 스티븐 핑커의 견해를 소개하는 것은 논란의 소지가 많은 부분이다. 무엇보다 데이터를 사용하는 사회과학적인 이론이나 견해는 항상 반론의 위험에 시달린다. , 수치를 어떻게 해석하느냐에 따라 내용의 결과가 달라지기 때문이다. 현대로 올수록 과거에 비해 상대적으로 덜 폭력적이 되었다는 주장의 근거로서, ‘인구 10만명당 전쟁의 살상자수를 가지고 비교하고 수치가 낮아지는 점을 제시한다. 그러나, 이것을 폭력성이 감소했다고 해석하기에는 논리적인 결함이 있다. 우선 현대로 올수록 무기의 살상력이 높아졌지만, 이와 동시에 의학 기술의 발전으로 치명환자의 치료성공률이 높아졌다는 점을 고려해야 한다. , 치명적인 살상력이 높은 무기를 함부로 사용하는 것을 자제하는 것이 아니라, 보다 높은 수준의 의학 기술의 발달로 인명의 복구가 늘어났다는 반론을 충분히 제기할 수 있다. 그리고, 과거 역사적인 전쟁 살상자의 통계 수치가 부정확할 수도 있다는 과거 데이터의 신뢰성 문제를 고려해야 한다. , 과연 이 주장대로 현대로 올수록 폭력성이 감소했다고 해서, 국가의 무력 통제가 원인이 된다고 보기는 어렵다. 왜냐하면, 국가간의 정치/경제적 이해관계가 존재하기 때문에, 단순히 현대 사람의 인성이 비폭력적이라서기 보다는, 전쟁의 결과로 인한 참상이나 피해에 대비되는 자국의 이익을 고려하는 것이 전쟁의 확대를 막는 것으로 볼 수 있다.

2가지 이슈로써 저자가 문제 제기를 마지막 부분은 어찌 보면 생뚱맞을 수 있다. 기계화와 인간 해방의 문제, 기술 문명화와 폭력적 야만화의 문제는, ‘문명교류사라기 보다는 기술 문명화에 속하는 주제에 가깝다고 볼 수 있다. , 지금까지 동양과 서양의 문명간의 교류를 실컷 설명하고 나서, 이제부터 새롭게 동양과 서양 모두에게 닥친 공통의 문제점을 가지고 고민해보라고 하는 문제제기는 전혀 일관성이 없다. 저자의 고민과 주제 의식은 이해하겠지만, 성격이 다른 각각의 거대한 주제를, 짧은 배경 지식의 서술과 논란의 소지가 많은 이론의 소개만을 가지고, 굳이 하나로 통합시켜 고민하게끔 할 필요는 없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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