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이성 - 이성 개념의 변천사
헤르베르트 슈네델바흐 지음, 나종석 옮김 / 북캠퍼스 / 2024년 10월
평점 :

이 책은 서양 철학의 핵심 용어이자 개념인 이성(Vernunft)의
의미의 변천 역사를 서술한 교양 철학서적이다.
책의 구성과 내용은 고대 그리스 철학부터 현대 철학까지 서양 철학의 시대 순서에 따라 철학 사조가 달라지면서
이성의 개념이 변해 가는 과정을 당시 시대적 상황과 철학자들의 사유 방식을 함께 서술하고 있다.
저자는 독일의 석학 철학자 헤르베르트 슈네델바흐 전 베를린 훔볼트대학교 철학 교수이다.
---
개인적으로 이성(Vernunft, reason)이란 개념은 서양 철학과
동양 철학의 가장 근본적인 차이를 만들어내는 용어가 아닌가 싶다: 서양에서는 인간이 가진 사유 능력을
의미하지만 동양에서 특히 유교 성리학에서는 인간이 가진 원리나 법칙적인 성질을 나타내기 때문에 동일한 대상인 인간의 본질을 전혀 다른 측면에서
묘사하는 개념이다. 즉, 서양에서는 신에게서 부여 받은 인간만이
가진 선천적인 능력으로 개인마다의 소유와 사용이 자유로운 일종의 개인 장착 아이템에 가까운 성격이라면, 동양에서는
자연만물 중에 인간이 가진 본래의 성질이지만 인간 사회 속에서 살아가려면 개인이 일정 수준으로 개발해서 갖추어야 하나의 인간으로 대접받을 수 있는
사회적 요건에 가깝다고 할 수 있다.
이 책에서는 서양 철학 관점에서 ‘이성’의 개념의 변천을 다루고 있다: 철학적 사유는 당시 시대적 배경과
사회적 조건들에 의해 영향을 받기도 하지만 반대로 끼치기도 한다는 사실을 다시 한번 깨닫게 된다: 예를
들면, 그리스 신화 속의 세계관에서 벗어나 인간과 인간 세계로 사유가 전환되는 데에는 고대 그리스 도시
국가의 민주주의 정치 체제의 도입으로 비롯되었다 거나, 소피스트가 활약하는 당시에는 민회와 배심원 재판제도
때문에 수사학이 대중적 인기를 얻을 수밖에 없었다는 사실이다.
또 한가지 흥미로운 점은 고대 그리스부터, 중세, 근세에 이르기까지 서양 철학에서 대부분의 철학자들이 기하학을 관념이나 개념의 증명과 인식을 위해 사용하는 하나의
도구처럼 사용했다는 점이다: 플라톤의 아카데미아 현관에 새겨진 ‘기하학을
모르는 자는 출입금지’라는 문구가 근거 있는 자연스러운 것이다.
개인적으로 특이하게 느낀 점은 르네상스 계몽주의 철학자들의 비중을 스콜라 철학의 비판에서 시작되어 독일 관념
철학으로 넘어가는 중간 역할 정도로 소개한다는 점이다: 형이상학적 관념의 인식은 경험적인 실천과 체험이
요구되는데, 고대 그리스 철학 전통의 스콜라 철학의 회의주의에서 하나 더 나아간 개인의 자유 의지가
필수적 요소라고 지적한 점이 부각되지 않아서 안타깝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또한 독일 출신 저자 답게 독일 관념 철학자들(칸트, 헤겔, 쇼펜하우어, 포이어바흐, 마르크스)의 개념들을 비중 있게 다루고 있다: 19세기 이후 등장하는 역사성과 정신과학에 경제학적 영향을 받아 합리성에 이르게 되는 다양한 학문적 교섭과
영향도 흥미로운 부분이다.
전반적으로 보면, 서양 철학사 속에서 ‘이성’ 개념의 변천 과정을 통해 철학 사조의 특징을 살펴볼 수 있는
교양철학서적이라는 생각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