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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레슨이 끝나지 않기를 - 피아니스트 제러미 덴크의 음악 노트
제러미 덴크 지음, 장호연 옮김 / 에포크 / 2024년 4월
평점 :

이 책은 전문 피아니스트가 자신의 음악 레슨과 다양한 연주 활동을 통해 근본적인 음악적 원리의 깨달아 가는 과정을
그린 자전적 회고록 형식의 에세이이다.
책의 구성과 내용은 자신의 가족의 이야기로부터 박사과정을 마치고 전문 연주자로서의 출발을 시작하는 대략 30 여 년의 시간 동안 저자의 음악적 교육과 훈련 과정들을 시간 순서대로 20개
단원에 걸쳐 서술하고 있다.
저자는 줄리아드 음악학 박사인 피아니스트 제러미 덴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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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히들 음악처럼 예술 분야에서는 재능이 가장 중요한 요소이며, 실제로
유명한 예술가는 보통 어릴적부터 두각을 나타낸 천재형 예술가가 대부분이다: 타고난 선천적 재능과 뼈를
깎는 처절한 노력 중에 어느 것이 예술 분야에 더욱 적합할까? 과연 음악 영재나 천재는 어떤 방식으로
교육을 받고 훈련을 하는 걸까?
16세에 음대에 입학한 음악 영재라고 알려진 저자가 자신의 음악 수업과
훈련 과정을 회고하며 음악적 원리와 영감들을 발견하기까지 마주했던 영광과 좌절과 치욕적인 순간들을 담아내고 있다:
-어려서부터 연주곡의
전개와 형식에 관해 남들과는 다르게 과감한 해석을 추구하는 경향이 발휘되는 양상들; 음악적 재능을 가진
영재나 천재의 입장에서 받아들이는 음악 영재 교육의 단면들; 나이 어린 음악 천재의 사회화 측면에서
발생하는 비또래 그룹과의 생활 속의 괴리감과 동시에 진짜 음악 천재 들 사이에서 드러나게 되는 평범함에 대한 오만과 경시에 비해 비범함에 대한
좌절감과 승부욕의 모습들; 과감한 도전으로 다양한 연주 경험을 통해 오히려 자신의 확고한 전문연주자로서의
진로(독주, 반주, 협주)를 결정하게 되는 방황 과정들; 피아니스트라면 한번쯤은 마주하게 되는
손가락 근육 부상과 그에 따른 슬럼프와 치유 과정; 피아니스트로서의 가장 큰 성공의 발판이 되는 콩쿨
대회 입상을 위해 경쟁하는 처절한 노력들; 자신의 음악적 재능만큼이나 음악 스승의 지도가 중요해지는
증거로서 음악적 통찰과 해석이 발전되어 가는 음악 학교 생활의 에피소드들이 펼쳐진다.
개인적으로 흥미를 느낀 부분은 3가지이다:
전문 피아노 연주자로서 가지는 명곡에 대한 개념과 평가 기준들이 일반인과 비교해 생소함이 느껴지기도 한다: 쇼송의 시곡이 퇴폐적인지, 브람스 피아노 협주곡 B플랫 장조의 위대한지, 브람스 피아노 3중주 B장조의 선율의 아름다운지 등에 관해서는 개인적인 취향과 판단의
영역이라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덕분에 다양한 작곡가들의 작품과 다양한 연주가들의 해석이 담긴 연주 음악을 찾아서 듣게 되었다: 현대 음악가인 찰스 아이브스의 3중주는 매우 독특한 경험이었다: 현대음악의 필수 요소인 불협화음 생성과 유지는 공통적이지만 친숙한 요소(랙타임
리듬과 찬송가 선율)들이 함께 뒤섞인 형태라는 것이 흥미롭다.
뛰어난 음악가가 만들어지려면 자신의 재능도 중요하지만 스승과의
만남도 중요하다는 점이다: 재능이 뛰어난 학생이라도 스승이 전해주는 가르침의 내용을 제대로 이해하고
수용하는지가 중요한데, 여기에는 현재 학생의 음악적 수준과 성격이나 태도 못지 않게 스승의 유형에 따라
교육이나 지도가 성립되지 않을 수도 있어서, 중간에 낙오되는 학생들이 생기기 때문이다: 저자도 밝혔듯이 야노스 스타커와 죄르지 셰복 같은 당대 최고의 연주자의 지도가 20대 초반의 연주자 입장에서는 받아들이기 어려웠던 내용이 시간이 흐른 후의 시점에서나 비로소 이해가 되었다는
이야기가 말해주고 있다.
그럼에도 결국 피아니스트로서의 성공은 오로지 자신의 적합한 노력에
달려 있다는 점이다: 자신을 둘러싼 외부적 환경(집안의 재정
여력, 음악 학교의 스승과 동료 등)이 갖춰졌다고 하더라도
자신이 피아니스트로서의 재능을 타인에게 시험받고 증명하겠다는 의지와 실천 경험이 없으면 아무것도 저절로 만들어지는 것이 없다는 교훈을 알려주고
있다: 인디애나 대학에서 브람스의 바이올린 소나타를 연습할 때 저자가 피아노 연주 지적을 받고 나서
노래에 기반한 느낌으로 작곡된 연주 곡이라는 배경 이야기를 듣자 자신의 연주 기법을 보완하기 위해 온종일 브람스의 노래를 듣고 자신이 직접 노래를
부르며 노래라는 감각을 연습을 했다는 이야기는 흥미로웠다.
전반적으로 탁월한 음악가가 탄생하는 과정의 이야기들을 통해 음악에 대한 이해와 교육과 지도방식에 관한 통찰과
영감을 제공해주는 책이라는 생각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