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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86 세대유감 - 386세대에게 헬조선의 미필적고의를 묻다
김정훈.심나리.김항기 지음, 우석훈 해제 / 웅진지식하우스 / 2019년 7월
평점 :
이 책은 한국 정치 민주화를 이끈 핵심세력인 소위 ‘386 세대’를 바라보는 하위 세대 그룹들의 시선과 평가를 담은 책이다. 책의
내용과 구성은 총 5개의 단원에 걸쳐, 386 세대의 정체와
386 세대가 이루어 놓은 업적과 폐해, 그리고 현실적 문제점들을
해결하기 위한 저자의 제안과 대안을 제시하고 있다: 축복받은 세대, 저주받은
사회; 민주화 공로자인가, 수혜자인가; 헬조선과 386 전성시대; 미필적
고의; 게임체인저의 등장.
참고로, 이 책에서 다루는 세대 구분은 2019년 기준으로 다음과 같다: 1970년대 산업화를 이끈 50년대생의 ‘유신세대’(60대); 1980년대 20대를 보내며 정치 민주화를 경험한 ‘386세대’(50대); 1990년대
경제 부흥기를 경험했던 ‘x세대’(40대 중후반)와 97년 IMF 이후의
밀레니얼 세대(40대 초반); 2000년대 초반 20대를 보낸 ‘88만원 세대’(30대); 2010년 이후 등장한 ‘N포세대’(20대).
이 책은, ‘386 세대 유감’이라는
제목에서부터 알 수 있듯이, ‘2019년 현재 대한민국의 사회 전반적인 문제 현상의 원인이 386세대 때문’라는 주장에서부터 모든 논의와 주제를 전개하고 해결책을
제시하고 있다. 개인적으로 세대적 배경을 말한다면 386세대와
밀레니얼 세대 이후의 사이에 끼인 x세대에 속하며, 유신세대와
386세대, 밀레니얼 세대까지는 이해하고 소통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전체적인 개인적인 소감을 말하자면, 화가 나면서도 가슴이 답답하기도
하고, 나중에는 측은한 마음이 들기도 했다.
책 내용의 논리적 구성을 보면, 부분적으로는 공감이 되기도 하고 합리적으로
납득되는 주장이 있는가 하면, 대체적으로는 주장의 근거의 설득력과 인과론적인 순서가 뒤바뀐 부분이 많아
수용하기 힘든 주장이 더 많다. 즉, 사실과 허위가 뒤죽박죽
섞여 있어 혼란스럽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자가 말하고자
하는 주제는 충분히 전달된다.
2부와 3부의 경우 사실에
근거하여 통찰력 있게 분석한 내용으로 한국 사회 현상의 본질을 다루고 있으며 386세대를 이해하는데
좋은 기반을 제공해준다는 생각이다: 80년대 민주화 운동에서 학생 운동권의 조직과 흐름에 대한 정리와
90년대 중반 이후부터 시작된 사교육 시장과 부동산 투기의 열풍, 타락한
성문제 의식과 노동 조합 세력의 권력화 문제 등은 비판적 시각이 돋보이는 완성도 있는 대목이다.
반면에, 386 세대에 대한 문제 제기, 386 세대가 전개한 80년대 대학 생활의 실상에 대한 묘사, ‘미필적 고의’라는 형태의 죄명으로 모든 대한민국 사회악의 근원으로
386세대를 규정짓는 논리는, 전혀 사실이나 학문적 이론에
맞지 않고 오로지 상상과 비약으로 점철되어 있다:
대한민국 인구 구성 비율상 17%를 차지하는 세대가 대한민국에서 가장
막강한 영향력을 발휘하며 대한민국의 사회의 온갖 병폐의 주범이며 청산해야 할 적폐세력이라는 저자의 주장에 대해,
굳이 386세대의 변명을 하고 싶은 몇 가지가 떠오른다:
우선, 386세대가 민주화 운동의 주역이라고 당당하게 주장하고 전리품을
당연하게 독차지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386세대의 인물은 개인적으로 듣지도 보지도 못했다. 사석에서 오가는 과장된 무용담을 객관적인 사실과 혼동한 것으로 보인다.
1997년 발생한 IMF 사태에도
운 좋게 살아 남아 핵심 권력의 역할을 수행했다는 지적에도 동의할 수 없다: 당시 386세대인 60년대생들은 사회적으로 보면, 입사 12년차를 넘지 않을 것이고,
기업의 직급으로 보자면, 과장이나 차장급, 팀장급
정도의 실무진에 속하는데, 기업의 신입사원의 채용 규모나 신규 투자 결정을 내리는 임원급의 결정적 위치는
아니다. 또한 2004년 이후에나 정치권의 국회의원으로 등장하게
되며 2010년대 중반에도 초선이나 재선급 국회의원일 텐데, 정당
안에서 초선이나 재선 의원이 차지하는 위치나 어떤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는지 알고 나면 ‘권력의 핵심’이라는 표현에 헛웃음이 나오게 된다.
386세대가 대한민국 부동산 광풍의 주범으로 몰리는 것에도 억울한
측면이 있다: 1990년대부터 수도권 신도시에 대한 주택공급 정책이나 주택 대출 지원 상품을 시행했지만, 신규 공급된 주택의 실제 수혜자가 386세대라고 결론 내릴 근거가
빠져있다: 386세대가 1990년대 30대일때부터 수도권에 신규주택을 자가 주택으로 구매할 수 있는 재력이 있었을까?
386세대가 아니라 오히려 위세대인 유신세대가 주요 구매층을 이룬다. 역시 1997년 IMF를 계기로 집값이 폭락했을 때, 부동산의 신규 구매자로서 x세대까지 포함되어 부동산 집값 상승을
이끌게 된다.
2000년대 들어 한국 기업들이 신규 채용이나 투자에 재원을 쓰지
않고 저축도 하지 않으면서 그냥 가지고 있는 말 그대로 ‘유보금’의
비율이 자본금 대비 1000%가 넘어가는 기업들의 수가 증가하게 되며,
이것이 대한민국에서 소득 증대의 주체가 가계도, 정부도 아닌 기업뿐이라는 기형적 현상의
원인이 된다는 점은 장하성 교수의 논문에서 확인할 수 있다.
직접 386세대에 속하지는 않지만,
간접적으로 경험한 사람으로서, 80, 90년대의 사회적 현실은 책의 저자들이 생각하는 것과는
전혀 다른 것이었다는 것을 말하고 싶지만, 틀린 점들이 너무 많아서 일일이 밝히는 게 무슨 의미가 있나
싶은 생각이 들기도 한다.
무엇보다 안타깝게 느낀 점은, 저자들이 1997년 IMF사태가 가져 온 한국 사회나 기업의 영향과 효과의 의미와
모습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IMF사태 이후, 한국의
모든 분야에서 변화가 일어났지만, 아무것도 변하지 않은 분야가 딱 2군데, 교육계와 군대뿐이라는 점도 지적하고 싶다.
저자가 말한 대로, 모든 문제 해결의 시작은 문제의 인식이 먼저이고
원인과 대책에 대한 활발한 논의가 시작되어야 할 때임에는 분명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