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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그 마지막 10년의 기록 - 1888~1897
제임스 S. 게일 지음, 최재형 옮김 / 책비 / 2018년 11월
평점 :
이 책은 19세기 말 조선에서 선교활동을 했던 선교사 제임스 게일(james Gale)이 남긴 당시 조선에 대한 경험과 인상을 담은 책이다.
책의 내용과 구성은, 저자가 조선땅에 처음 입국하던 순간부터 조선 땅에서 겪었던 체험을 중심으로 19세기 말의 조선의 모습과 조선 사람들의 삶과 풍속에 대한 묘사와 서양인을 대하는 조선인의 교류 방식을 여러 가지 에피소드를 통해 13개의 단락으로 나누어 소개된다.
우선 저자는 1888년 조선에 도착하여 조선말을 배우기 이전의 초반 시기에 조선 지역을 여행하며 방문한 이야기들을 소개한다.
서울에서 출발하여 황해도 개성, 해주, 장연, 등산 곶을 거쳐 제물포로 돌아오는 여행; 또, 서울을 떠나 북쪽 방면의 여행으로, 고양, 개성, 평양, 안주, 박천, 용천, 의주, 라오양, 선양, 통화를 방문하는 여행; 강원도 토성을 거쳐, 남산, 원산을 다니는 여행 등이다.
여행을 통해서, 이방인의 눈에 비친 신기한 조선의 모습들이 묘사된다: 동네마다 널린 초분 풍습; 예외 없이 오직 흰색 무명옷만 입는 조선인들의 의상 패션; 고집과 억척스러움의 특징인 상놈(평민)에 대비되는 거드름과 겉치레 체면을 중시하는 양반의 상반된 모습; 처음엔 불편하기 짝이 없었지만 나중에야 소중함을 깨달은 구들장과의 만남; 처음 보는 서양인을 일방적으로 대하는 순수하고 호기심 많지만 위협적인 조선인의 태도, 풀리지 않는 신비롭고 사랑스러운 조선 조랑말 등이다.
저자는 특별히 신분사회였던 조선의 두 사회 계급에 대해 기술하고 있다: 상놈과 양반.
신분상으로 양반과 중인 다음으로 천민(종, 노비)보다 우위의 위치였던 상놈 계층은 주로 평민과 농민으로 이루어져 실질적인 모든 일을 도맡아서 실행하는 역할로 저자는 보고 있다. 산에서 나무를 해오거나 길을 놓거나 물건을 나르는 등 이른바 생산적인 모든 일의 실행자였지만, 놀라우리만치 일이 없어 담배 피우며 빈둥거리는 상민들이 조선에 많았다는 기록은, 후에 중국과 일본의 여행담에서 기술하듯, 정신 없이 바삐 돌아가는 중국과 일본에 비교했을 때 대비되는 점이다. 특히, 상민들의 돌싸움(석전)은 충격적이다.
이에 정반대되는 위치가 양반 계층으로, 모든 육체 노동에서 완전히 해방된 모습을 저자는 양반의 특징으로 삼고 있다: 오직 유교만을 숭상하여, 상업과 노동, 여자를 천하게 여기고, 오로지 자손의 계승과 사회적 예의를 중요하게 여긴다. 특히, 양반 계층의 의지박약과 수동적인 태도를 삶의 특징으로 묘사한다.
그 밖에도, 다양한 조선 사회의 풍습이 묘사된다: 새해 첫날 맞이 모습(연날리기, 제사); 무당을 통한 우상 숭배 관습;
그리고, 미처 알지 못했던 갑작스런 갑오경장의 시행이 주는 충격적인 모습과 청일전쟁의 비참함도 고스란히 전달된다.
저자가 분석한 조선의 개화와 개혁이 늦어진 가장 큰 원인으로 외국과의 교류가 단절된 채 이어진 수백 년 간의 고립된 생활과 유교적 관습에 기초한 상업과 공업의 천시는, 현재의 시점에서 봐도 정확한 지적이다.
아무래도, 개인적으로 가장 인상 깊은 대목은 두 군데로 꼽을 수 있겠다: 웃음으로 넘쳐나는 ‘조선 보이’와 드라마 같았던 ‘아관파천’ 사건의 전말.
동료 스코틀랜드 인이 전해준 조선 보이의 경험담은 한편의 찰리 채플린의 코미디 영화 같아서 읽는 내내 웃음을 멈출 수가 없었다.
한편, 교과서에서 짤막하게 다룬 ‘아관파천’이라는 역사적 사건에 대해, 을미사변 이후에 전개되는 역사적 사건들이 한편의 드라마처럼 묘사된다.
유머와 인내심을 가지고 가슴 깊이 조선을 사랑한 한 미국인 선교사가 남긴 조선에 대한 기록은 100년이 지난 현재 시점에도 고스란히 느낄 수 있다.
19세기 말의 조선의 모습이 궁금하다면, 일독을 권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