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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우 이야기 - 프랑스인들이 사랑하는
피엘 드 생끄르 외 지음, 민희식 옮김 / 문학판 / 2018년 9월
평점 :
이 책은 11~12 세기
프랑스의 민간에서 전래된 여우 중심의 동물 우화들의 모음집이다.
책의 구성은 12세기에
작성된 43편의 운문 시를 이야기로 구성하였으며, 여우를
중심으로 전개되는 동물 사회의 이야기들을 담고 있다.
우화의 주인공은 ‘르나르’라는 여우로, 부인 에르믈린과 세 아들(페르세이유, 르나르도, 말브랑슈)과 함께 마르베르띠 집에서 거주하며 사자왕 노블의 왕국에서 신하로 살아간다. 르나르는
영리한 꾀를 내어 온갖 악행을 저지르고 상대방을 조롱하면서도 순간의 기지와 우연한 기회를 틈타 위기를 모면한다:
늑대 이장그랭을 항상 골탕먹이며 그의 부인과 불륜관계를 맺으며 한껏 조롱하고, 고양이 띠베르를
꾀어 소시지를 빼앗아 먹고 그의 꼬리가 잘리게 만들고, 곰 브랑을 나무꾼의 올가미에 걸려들게 하여 농부에게
잡히도록 만드는 등, 다수의 동물들로부터 원한을 사게 된다. 왕의
주선으로 르나르와 이장그랭은 억지로 화해를 하지만, 용서는 잠시뿐 다시 원래 관계대로 돌아간다.
심지어 사자왕에게까지 배반하여 르나르는 재판을 받게 되지만, 르나르의 영혼없는 속죄 시늉과 수많은 재산을 사자왕에게 뇌물로 갖다 바쳐, 겨우
목숨을 건지게 된다. 사제에게 고해성사를 하고 순례를 떠나기로 했던 르나르는 또다시 악행을 서슴지 않고
재개한다. 르나르는 수도원과 농가의 가축들을 잡아 먹으며 오히려 다른 동물들을 꾀임에 빠뜨리는 수단으로
사용하기도 한다.
급기야 낙타 샤모가 이끄는 이교도들이 사자의 노블 왕국에
쳐들어 와 맞서 싸우느라 왕궁을 비운 사이, 르나르는 사자왕의 전사 소식을 위조하여 노블 왕국의 후계
왕을 사칭하고 왕비와 왕궁에서 살며 왕 노릇을 하기까지 한다. 사자왕과 싸운 끝에 붙잡힌 르나르는 사자의
열병을 고쳐 준 지난 날의 은혜 덕분에 풀려난다.
결국, 세월이
지나 르나르도 자신의 집 마르베르띠에서 파란만장한 삶을 마감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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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자의 해설에 따르면, 프랑스의
에스프리인 똘레랑스의 정신을 담은 우화라고 한다.
좋게 말하면 인간의 어리석음을 유머로 승화하고 경고하는 우화라고
볼 수 있지만, 나쁘게 말하면 온갖 악행을 저지르고도 일생 동안 무사히 잘 지낼 수 있는 뻔뻔하고 비굴한
태도와 처세를 알려주는 악당의 무용담이라고 할 수 있다.
서양의 우화, 특히
여우이야기는 선행의 조장보다는 가해자인 여우가 저지른 악행의 무용담으로 만들고 피해자 동물의 낭패스럽고 곤란한 상황을 희화화함으로써, 오히려 피해자를 조롱한다. 또한,
자신이 저지른 악행에 관해서는, 하느님에게 뉘우침으로써,
즉, 회개함으로써 얼마든지 하느님으로부터 용서를 받을 수 있고, 피해자는 가해자를 용서하여 화합할 필요가 있다는 교훈을 전해주고 있다.
이것은 권선징악의 주제를 통해 가해자의 악행에 대한 응징과
처벌, 그리고 피해자의 억울함이 해소되는 것이 이루어지는 동양의 우화와 대비된다.
흥미로운 점은 역자의 해설 편에서, 이솝 우화와 17세기 라퐁텐 우화 중 일부를 발췌하여 여우이야기
우화와 직접 비교를 제공하고 있다.
프랑스 우화에 관심이 있다면, 일독을 권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