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냉면의 품격 - 맛의 원리로 안내하는 동시대 평양냉면 가이드
이용재 지음 / 반비 / 2018년 6월
평점 :
이 책은 서울/경기
지방의 ‘평양 냉면’의 전문 요리점을 대상으로 작성한 비평서적이다. 책의 구성은 ‘평양냉면’ 전문
요리점들을 이른바 ‘계보’ 순서대로 4개의 그룹으로 분류하여 총 31개의 음식점들의 비평과 결론으로 저자가
생각하는 ‘평양냉면’ 요리의 개선점으로 이루어져 있다: ‘공인된 노포: 한국 평양냉면의 뿌리들’; ‘선발주자: 한국 평양 냉면의 가지들’; ‘후발주자: 2000년대 이후 등장한 시도들’; ‘느슨하게 평냉: 평양냉면의 문법을 차용한 메밀 면 요리’. 부록으로 책 속에 소개된 평양냉면 전문점의 위치 정보가 담긴 맛 지도와 리뷰 노트가 실려있다. 책의 내용은 각 평양냉면 전문점마다 간략한 이력과 특징을 소개하고, 저자가
평가 기준으로 삼는 4가지 요소와 총평을 곁들여 기술한다. 저자가
생각하는 평양냉면의 4가지 요소는 다음과 같다: 면, 국물, 고명과 반찬, 접객과
환경.
우선 이 책의 성격이 ‘음식비평’이란 장르에 속해 있다는 점을 지적하고 싶다. 소위 ‘음식 비평’의 특성을 먼저 이야기하고, 이 책에 대한 평가를 서술하는 것이 맞을 듯 하다.
먼저, ‘음식의
맛의 평가’라는 것이, 음식 맛을 느끼는 ‘나’라는 한 개인이 지닌 주관적인 취향과 입맛의 기준에 따라 내리는
‘대상 음식’이 지닌 고유의 ‘맛’에 대한 판단이나 결정은 어쩔 수 없이 지극히 주관적일 수 밖에
없고 객관성을 담보하기가 매우 어렵다는 점이다.
즉, ‘절대미각’임을 공인 받은 사람이 아니고서야
맛에 대한 객관적인 평가를 보장할 수 없다. 결국, 현실적으로
어느 한 명의 특출 난 개인보다는 다수의 대중이 내리는 맛에 대한 선호도 평가의 형태로 반영될 수 밖에 없다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비평하는 주체가 누구냐 또는 어떤 비평 의견이냐에 따라, ‘음식 비평’에 대한 호불호(好不好)의 반응이 극단적으로 나누어지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즉, 현실적으로 다수의 대중이 공감하는 ‘음식비평’은 사실 상 매우 어렵다. 왜냐하면,
감각적인 입맛과 주관적인 느낌에 대한 평가가 사람마다 제각기 다르기 때문에 보편적인 입맛을 대표하기가 매우 어렵기 때문이다. 그래서, 전통적으로 직접적인 ‘음식
맛의 비평’에 관한 서적보다는 ‘음식 맛 집의 소개’에 관한 서적이 압도적으로 많은 이유이기도 하다.
결국, ‘음식
비평’의 글은 논란과 떨어질 수 없는 숙명적인 관계이고, 결국
이 책도 그런 범주에 속한다.
개인적인 시각에서 이 책도 장점과 단점이 뚜렷하게 존재한다.
장점부터 말하자면, 저자가
평양냉면 전문 음식점에 대한 평가서 모델로 <뉴욕 타임즈>의
‘레스토랑 리뷰’를 참조하여 4가지 평가 기준을 채택하여 객관적인 기준을 마련하고자 노력하였고, ‘평양냉면’의 발전적인 미래를 위한 4가지 개선점을 제안했다는 점이다. 특히, 책의 ‘맺는 말’에서 지적하였던 4가지 문제점이자 개선사항은 매우 합리적이고 의미
있는 주장이라고 생각된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부족한 면도 눈에 띈다:
우선, 저자가
갖고 있는 ‘평양냉면’이라는 음식에 대한 경험이 충분하지
않아 보인다: 예를 들면, ‘삼도갈비’의 면발을 평가하는 부분에서 ‘”메밀 함량이 높은 면”이 툭툭 끊기지 않았지만 딱딱해서 밀가루 비율이 높다는 느낌을 받았다’라는
표현이 나오는데, 이것은 메밀 면의 특성과 맛을 이해하지 못한 데서 오는 평가이다. 즉, 71페이지에 ‘밀가루’와 ‘메밀’의 차이를 ‘글루텐’의 유무라는 사실을 기술하고 있어서 정작 머리로는 이해했을지
모르지만, 정작 맛에 대한 경험은 충분하지 못함을 보여주고 있다. 즉, 밀가루 비율이 높아질수록 점성이 높아져 잘 뭉치게 되어 반죽이 쉬워지고 보관이 쉬워지지만, 밀가루 비율을 낮추고 메밀 비율을 높일수록 점성이 부족해 반죽하기 어려워지기 때문에 고운 메밀가루 제조기술과
압축 제면 기술이 요구되며 보관이 어려워 즉석 제조를 해야 하는 번거로움이 생긴다(글루텐을 최대한 발휘하게
하기 위해 요구되는 밀가루 면의 숙성 기술은 별도의 고급 기술로 우동 가게의 비법에 속한다). 강원도
지방에서 메밀 국수나 일본의 메밀 소바 가게를 직접 방문하여 제조 과정을 보거나 직접 먹어보면, 금방
알 수 있다(요즘은 주방을 투명한 환경으로 조성하거나 제면 기계를 매장 안쪽에 설치한 메밀 국수 가게도
종종 있다).
둘째, 저자는
‘평양냉면’이라는 음식에 대한 지식이 부족해 보인다. ‘평양냉면’의 유래는 평양지방의 민간에서 겨울철에 동치미 국물에
메밀 면을 말아서 먹던 음식에서 유래되어 양반집에 전래되면서 고기육수가 추가되어 오늘날의 냉면 육수의 형태가 만들어졌다는 사실을 알고 나면, 평양냉면의 주된 베이스는 고기육수가 아니라 동치미 국물이 주된 요소임을 알게 된다. 즉, 가을 김장철에 담그는 동치미 국물의 맛이 그 해 겨울철에 먹는
평양냉면의 맛을 결정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렇다면, 봄, 여름, 가을, 겨울에 담그는 동치미 중에 어느 것이 가장 맛이 있을까? 그리고, 맛있는 동치미를 담그는 것은 쉬운 일인가?
가을철 수확한 무와 채소의 재질, 담그는 사람의 손맛, 동치미의
숙성 환경, 등등 이루 헤아릴 요소들이 많이 있다. 이런
모든 것들이 어우러져 만들어 내는 것이 평양냉면 육수의 기본 맛이다.
또한, 이와 관련하여, ‘평양 냉면’의 보급이 1930년대
일본의 화학조미료 덕택이었다는 주장이 설득력 있다며 인용하면서 화학조미료를 쓴 목적으로 ‘감칠맛’을 위한 것으로 본다는 저자의 서술도, ‘평양냉면’ 음식에 대한 기본적인 지식과 이해의 부족에서 기인한다고 본다. 서울의
유명 노포인 우래옥은 오래 전부터 고기 육수를 사용하였으며, 단지 ‘고기
육수의 맛을 흉내내기 위해 인공조미료를 사용했던 빈곤했던 시기의 사실’을 가지고, 마치 ‘인공조미료가 본래 핵심 목적’인 것으로 오도(誤導)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은 관점으로 보인다.
셋째는 저자가 설정한 맛에 대한 평가 기준의 4번째 항목인 ‘접객과 환경’에
관련된 것인데, 어떤 음식점은 단 한차례 방문하고 얻은 듯한 평가와 인상을 기록한 부분이 나오는 것을
보면 아이러니하다. 예를 들면, ‘장수원’은 예전 방문했을 때의 맛의 기억에 의존한다든지, ‘진미 평양 냉면’은 2년만에 방문한다든지, ‘평화옥’은 인천공항지점은 거리가 멀어 방문을 포기하고 예전 기억으로 작성했다든지 하는 부분이다.
아무리 저자가 절대미각의 소유자이고 평양냉면 요리의 풍부한 제조 경험이 있다고 해도, 어떻게
단 몇 차례의 방문만으로 음식의 모든 것을 결정하고 평가를 내릴 수 있을지 궁금해진다. 객관적인 판단을
내리기 위해, 한 음식점이 일정한 수준의 음식 맛과 서비스를 지속적으로 유지하여 고객에게 제공할 수
있는지를 평가해야 할 것이다. 그러려면, 한 음식점을 일정기간
주기적으로 방문하여 음식을 먹어봐야 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의문이 들게 하는 대목이다.
종합해보면, 전반적으로
의도와 시도는 좋았으나 기본적인 지식의 부족과 절차의 적용 상에 문제 때문에 논란만 낳은 결과만 얻은 셈이 되어서 안타까워 보인다. 다만, 향후 개선점을 찾아 지적한 것은 훌륭한 성과로 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