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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소리 (무선) ㅣ 웅진지식하우스 일문학선집 시리즈 6
가와바타 야스나리 지음, 신인섭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18년 4월
평점 :
이 소설은
일본의 노벨 문학상 수상작가인 가와바타 야스나리의 후기 작품으로 일본의 2차 대전 이후 전후의 시대상을
담은 대표적인 소설이다. 소설의 배경은 2차 대전 패전 후
1950년대 동경 근처 가마쿠라시에 살고 있는 60대 노부부
오가타 신고와 야스코 가족을 중심으로 벌어지는 일들을 통해 당시 일본의 시대상을 그려내고 있다. 신고
부부에게는 1남 1녀의 자식, 후사코와 슈이치를 두었는데, 둘다 결혼하여 가정을 이루고 있었지만, 원만한 가정생활을 영위하지 못하고 있었다. 큰 딸 후사코는 두 명의
손녀딸을 데리고 행방불명 된 마약장이 남편과 이혼하고 친정으로 돌아와 살게 되지만, 어려서부터 친정
아버지 신고로부터 못생겼다는 이유만으로 사랑 받지 못하고 지낸 탓에 친정 아버지와의 사이가 서먹하기만 하다. 신고의
장남이자 막내인 아들 슈이치는 2차 대전 전쟁에 참전한 이후 전쟁의 트라우마로 인해 괴팍한 성격으로
변해버려 충실한 가정 생활을 유지하지 못하고 방탕한 외도를 일삼는다. 언제부터인가 가마쿠라의 산에서부터
들려오는 소리를 듣게 되는 신고는 바람 잘날 없는 아들과 딸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부인과 상의도 없이 홀로 동분서주하며 애쓴다. 아들이 바람 피우는 상대방인 전쟁미망인을 만나서 아들과의 관계를 정리시키기도 하고, 딸의 남편의 행방을 찾아 사람을 시켜 사부인을 관리하고 사위의 행방을 수소문하기까지 한다. 과연 이들 가족의 앞날은 어떻게 될까?
개인적으로 가와바타 야스나리의 작품은 [설국] 이후 이번이 두 번째로 읽는 작품인데, 설국 때보다는 현대적이지만 여전히 몽환적인 느낌을 많이 받았다. 전후
1950년대 일본 수도 근교에 사는 서민 가족의 생활상이 잘 묘사되어 있다. 집 근처 신사에서 들려오는 종소리를 들으며 생활하고, 사회적인 의식을
신사에서 지내고 축제 행렬에 참가한다든지 하는 일본의 전통적인 모습도 담겨 있다.
이 소설의 특징적인 주제로 성(性)과 죽음(死)을 꼽는데 전혀 이견이 없다. 그러나, 2가지 주제를 다룬 야스나리에 대한 해석에 대해, 개인적으로는, 역자의 [작품해설]의
관점과는 다르게 보고 있다.
우선 야스나리가 이 작품을 집필할 시기는 1949년부터 대략 50세 이후부터인 점을 고려해볼 필요가 있다. 당시 일본은 연합군에
의한 통치를 받고 동시에 전쟁으로 인한 물리적인 그리고 정신적인 상처가 아직 그대로 남아 있던 시기로 2차
대전 발생 이전까지 전성기를 누리던 시절에 비해 가장 비참한 상황을 보내던 때였다. 당시 일본은 전쟁을
일으킨 가해자인 동시에 원자탄을 맞고 항복하면서 수많은 전쟁 후유증을 앓던 피해자인 2중적인 지위를
갖는 상태였다.
야스나리는 지식인으로서 억압받는다는 사실과 주변에서 목격되는 전쟁의 상처에 큰 불만을 가졌었던 듯 하다. 예를 들면, ‘일본 독립’이라는
표현이나 신고와 기누코 사이의 대화에서 나오는 ‘전쟁미망인’에
대한 묘사는 전쟁으로 인해 무너져버린 윤리 의식과 ‘죽음’에
대한 강력한 반동으로 작용하는 생존 의식의 결합으로 나타나는 ‘자유인’이라는
표현에서 느낄 수 있다. 오히려, 야스나리는 ‘죽음’ 자체에 대한 호기심을 강하게 느낀 듯 하다. 예를 들면, 모리 오가이의 말을 인용한다든지 ‘자살’에 대한 심리 상태를 묘사하는 것에서 드러난다.
성(性)에 대한 야스나리의 접근은 시아버지 신고가
며느리나 처형에 대해 느끼는 연정의 묘사에서 나타난 사회적 관계를 초월한 형태가 에도 시대의 퇴폐적인 성문화의 연장선에 있다고 보여진다. 예를 들면, 기생의 접대 문화라든지 남녀 동반 자살이라든지 전철
내 일본 청년과 미국군인 사이의 동성애 코드라든지 하는 묘사는 에도 시대 문화와 별반 차이가 없다는 게 개인적인 생각이다.
이 소설이 일본 특유의 정서가 표현된 작품이라는 것에 전적으로
동의한다. 또 한가지 느끼는 점은, 이 소설도 그렇지만 야스나리의
작품은 일본 문화를 알아야 제대로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