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자책] 위로해주려는데 왜 자꾸 웃음이 나올까 - 남의 불행에 느끼는 은밀한 기쁨 샤덴프로이데
티파니 와트 스미스 지음, 이영아 옮김 / 다산초당(다산북스) / 202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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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1204 티파니 와트 스미스.

책 광고에서 ‘샤덴 프로이데’라는 말을 처음 접하고 관심을 가졌다. 독일어처럼 보이고 실제로 독일어인 이 말이 지시하는 감정을 다룬 책이다. 그런데 의외로 저자는 영국 사람이었다. 영어에는 이 감정의 미묘함을 가리킬 말이 아직 없는 모양이다.
거칠고 쉽게 샤덴 프로이데를 이해하자면, 검색창에 ‘개비스콘 짤’이나 ‘풉 짤’을 쳐 보면 아- 할 것이다.(맨 아래 첨부합니다.) 며칠 전 코로나19는 혼전 성관계탓이다, 라고 설교한 미국 목사가 코로나19에 걸려 사망했다는 뉴스를 보았다. 몇 달 되었지만 코로나19는 하나님 심판이라 했던 목사가 확진 판정을 받기도 했다. 누군가의 죽음이나 질환을 기뻐하는 건 좋은 태도가 아닌 걸 알면서도 곧잘 남의 불행에 미소짓거나 거봐라, 하는 때가 있다. 아닌가, 나만 그래?
이 책은 그런 다소 곤란한 감정에 관해 다양한 사례와 보도, 연구 결과, 구전 설화 같은 걸 들어가며 설명하고자 한다. 그리고 그런 감정이 꼭 나쁜 사람이라는 증거는 아니라고, 나도 그래, 다들 그럴 걸, 한다. 그런 감정이 줄 수 있는 나름의 유익한 점도 나열한다.
거기까지였다. 별다른 통찰이나 새로운 사실은 없었다. 누군가는 재미있어 할 법한 남들의 불행을 잔뜩 늘어 놓긴 했는데 직접 관련된 사람의 일이 아니라 그런지(인성 봐라) 그렇게 재미있지는 않았다. 그냥 저자가 에필로그에 요약한 몇 줄로 할 말을 용케도 한 권으로 (사실 분량도 얼마 안 된다) 늘려놓았구나 싶을 정도였다.
이 책 살까 말까 되게 오래 고민했는데 버텼더니 도서관에 올라왔다. 빌려보고 나서야 안 사길 잘 했네...읽은 건 좀 시간도 아깝고 그렇지만 덕분에 까는 리뷰를 올리는구나 하고 샤덴 프로이데 해 본다. 풉. 미안.(역시 못됐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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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 2020-12-04 21:24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두 글자로 “쌤통”인가요?

반유행열반인 2020-12-04 21:28   좋아요 1 | URL
사실 그 두 음절로 딱 끝날 거 같은데 저자가 막 그 이상 더 있을 것 같이 폼 잡아놔서 끝까지 읽었는데..낚인 것 같아요. 쌤통의 심리학이라는 책도 진작 나왔던데. 심지어 같은 역자. (누가 풉 하는 소리가 막 들려...누구야)

반유행열반인 2020-12-04 21:30   좋아요 1 | URL
으아니 생각난 김에 찾아보니 쌤통의 심리학도 원제에 샤덴프로이데 들어가네요. 왠지 그 책이 더 잘 썼을 거 같다...

하나 2020-12-04 21:33   좋아요 2 | URL
이쯤되면 역자가 쌤통 매니아...라고 하려고 했는데 쌤통이 일종의 장르인가 보네요 ㅋㅋㅋ

반유행열반인 2020-12-04 21:33   좋아요 1 | URL
전 맴이 약해서 쌤통 같은 거 못 해요(거짓말이 늘어간다)

하나 2020-12-04 21:35   좋아요 2 | URL
저는 쌤통하고 나면 입맛이 써서 인성이 없을 거면 아예 없을 것이지.... 어설퍼 라고 생각합니다 ㅋㅋㅋ

반유행열반인 2020-12-04 21:38   좋아요 1 | URL
우리 함께 착함병을 치유해 봅시다. 쌤통 잘하고 싶다...

scott 2020-12-04 21:47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리뷰읽다가 캐릭커쳐가 더 맘에 들어 ㅋㅋㅋ
‘샤덴 프로이덴‘ 정확한 뜻도 모르고 소리내어 읽으면 무슨 궁전이름 같아요.

한구말로 ‘쌤통‘ 딱 맞는 의미네요 ^ㅎ^

반유행열반인 2020-12-04 21:54   좋아요 2 | URL
용어가 왠지 있어보여서 낚여서 읽었는데 조금 품위 없는 듯하면서도 아 나만 그런 거 아냐? 헤헤 하게 만드는 말이었어요. 그런데 책은 별로 재미나게 못 쓴 기분...

막시무스 2020-12-04 21:47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샤덴 프로이데라는 개념이 인간의 드러나는 본성이나 보편적으로 잠재되어 있는 무의식 중 하나로 규정되는건가요?

반유행열반인 2020-12-04 21:53   좋아요 3 | URL
그걸 저에게 물으시면 ㅋㅋㅋ저는 책을 어디로 읽은 건가 막 자괴감이 들고 ㅋㅋ거 봐라 읽은 척 하고 큰소리는, 하면서 책 관계자들이 고소해하는 장면이 그려지네요. 책 주장 따르면 이렇게나 샤덴 프로이데 하는 사례가 많아! 하고 그 보편성을 증명하려 애쓰는 거 같긴해요. 원시부족에도 이런 반응 있다 막 이러고 ㅋㅋ

막시무스 2020-12-04 21:57   좋아요 3 | URL
ㅎㅎ 오해는 마세요! 이 개념을 보니 갑자기 김애란 단편소설이 생각나서요! 어린학생이 노인이 폭행 당하는데 틀딱이라며 웃는 장면이 갑자기 생각 났거든 요!ㅎ 작가가 샤덴 프로이데를 염두에 두고 썼나? 하고 잠시 생각했어요! 근데 제목이 생각 안나네요!ㅠ

scott 2020-12-04 22:00   좋아요 3 | URL
막시 무스님 ㅋㅋㅋ
열반인님 자괴감 느끼시고 ㅋㅋ
샤덴, 쌤통

세상에, 김애란 단편을 떠올리시는 막시무스님

열반이님 리뷰(인용문 캡쳐)를 꼼꼼하게 읽고 단편 하나 뚝딱!

막시무스 2020-12-04 22:02   좋아요 3 | URL
감상의 모티브를 제공해 주신데 대해 감사할 따름이죠!ㅎ

반유행열반인 2020-12-04 22:07   좋아요 3 | URL
엄마가 폭력 사건 저지른 자녀 때문에 우울해 하는 뭐 그런 소설이었나요? 바깥은 여름에 실린...가리는 손?(외운 거 아니고 찾아본 거요 ㅋㅋ) 그런데 그거랑은 또 좀 다른 거 같은데 집단 심리로 샤덴 프로이데에 빠지기 쉽다는 얘기는 책에도 나오고 그 부분은 집단따돌림이나 집단폭력에 닿는 맥락이기도 한 거 같아요.

막시무스 2020-12-04 22:07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열반님! 찾았습니다!ㅎ 김애란 작가님의 <바깥은 여름>에 있는 ˝가리는 손˝이라는 작품이네요!ㅎ

반유행열반인 2020-12-04 22:08   좋아요 3 | URL
같이 찾으셨네요 ㅎㅎㅎㅎ

막시무스 2020-12-04 22:09   좋아요 2 | URL
ㅎㅎ 네! 좀 다른 개념이군요!ㅎ

scott 2020-12-04 22:31   좋아요 2 | URL
대단,대단,
달려라 아비, 침이 고인다를 끝으로 빠이,빠이 했는데

‘가리는 손‘ 읽으러 ‘바깥은 여름‘ 구입 할까봐 ㅋㅋㅋ

막시무스 2020-12-04 22:37   좋아요 2 | URL
저에게 이 책은 카버의 대성당에 버금가는 감동이었어요!ㅎ

Yeagene 2020-12-07 10:3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위에 댓글들 보다 충격먹었어요ㅠㅠ
저 김애란 작가의 바깥은 여름 처음부터 끝까지 다 읽었는데 가리는 손이란 작품 생각도 안나요 ㅠㅠㅠ
저 뭘 본건지...ㅠㅠ

반유행열반인 2020-12-07 18:27   좋아요 0 | URL
전 두 번 읽었는데 겨울에 한 번 여름에 한 번 보니 각자 나름대로 좋더라구요. 한 번 더 보시죠 ㅋㅋㅋ
 
아직 멀었다는 말 - 권여선 소설집
권여선 지음 / 문학동네 / 202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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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1201 권여선.

‘내 정원의 붉은 열매’, ‘안녕 주정뱅이’에 이어 읽은 권여선 작가의 세 번째 소설집이다. ‘레몬’을 사 놓고 아직 보지 않았다.
직전에 읽은 ‘안녕 주정뱅이’에는 혼자 살며 술에 쩐 평행우주의 나들 같은 언니들이 잔뜩 나왔다. 이번 소설집은 그보다 다양한 화자, 인물, 상황이 나왔는데, 단편소설은 말이다, 이렇게 쓰는 거란다, 참 쉽지? 하고 소주잔을 쭉 빨아들이는 작가님 얼굴이 괜스레 어른거렸다.
읽은 지도 쓴 지도 얼마 되지 않았다. 마음을 쏟고 잘하고 싶다, 계속하고 싶다, 하는 일이 생긴 건 정말 오랜만이다. 나는 성질이 급해 잡은 손을 성급하게 놓곤 했다. 진득하니 잘 익고 발효된 무언가를 쥐고 계속 할 수 있길, 향기롭고 감칠맛 나는 글들을 먹으면서 바라본다.

-모르는 영역
언젠가 늙은 날 “왜 해도 됩니까,한 번은?”하고 소리지르며 내 곁에서 달아날 아이들을 상상하면 숨이 막힌다. 딸과 함께 일하는 사람에게 고기를 사주고 돌아오는 중년 아저씨 이야기인데 왜 내가 사주고 쓸쓸하게 돌아오는 것 같은 기분인가 모르겠다.
-손톱
엄마가 자매에게 빚을 남기고 도망가고, 언니도 똑같이 소희에게 빚을 남기고 도망가고, 그런데도 직장을 얻어 스스로 벌고 빚갚을 궁리할 만큼 자란 건 기적 같고 대단한 일 같은데, 도무지 희망이란 없고 손톱만 다쳐도 어그러지는 삶이란, 너무 슬프고 가혹했다.
-희박한 마음
누군가 거칠어지는 나를 견디지 못해 떠나고 홀로 남아 이전 일을 가물가물 떠올리는 남은 삶을 견딜 수 있을까. 기이한 소리를 내는 수도 파이프 소리를 무심하게 견딜 수 있을까. 엉엉.
-너머
기간제 교사와 학교 비정규직 이야기가 생생했다. 언젠가 껍질만 남아 바스라지는 엄마의 모습을 지켜볼 생각만해도 무섭고 슬픈데. 이미 그러고 있는 당신들은 어떻게 견디고 있나요.
-친구
이제 학교에서 폭대위를 하지 않고 교육청으로 넘긴다. 친구아이가, 하는 말은 혼자가 되지 않기 위해 많은 것을 견디는 아이들에게 무감한 폭력이 되기도 한다.
-송추의 가을
파묘랑 많이 비슷한 느낌인데 잔잔하지 않고 내내 갈등과 빡침의 연속이었다. 엄마는 혼자 있고 싶다잖아 씨발! 하는 막내둥이 왜 이리 슬프냐.
-재
변신의 그레고르와 토성의 고리 속 제발트가 맞은 편 길에 마주하고 있다면. 그레고르가 창너머로 병원을 봤을 줄은 나도 몰랐다. 창너머로 많은 걸 보는 사람들이 뭔가를 쓴다. 아 나도 보긴 봐야지 토성의 고리 샀으니 봐야지 ㅋㅋㅋㅋ변신은 몇 번 봤어서 그나마 다행...이지만 또 봐야겠지...또르르...
-전갱이의 맛
성대 용종 수술을 받은 적이 있다. 화자가 자꾸 성기 낭종 수술을 떠올리듯 난 대장 용종 수술이 떠오르곤 했다. 후두염와 성대결절과 성대폴립 때문에 묵언 기간을 자주 가져봤는데, 소설에서만큼 말을 못하게 하지는 않는다. 아예 말하지 말라고는 안 하고 천천히 말을 하라고 했다.
성대 용종 수술 후 병가 동안 혼자 지리산에 숙소를 잡고 며칠 요양했다. 폭포에도 가고 밤도 줍고 산수유공원에도 가고 읍내 빵집에도 가고 고즈넉한 시간이었다. 아파야지나 혼자 될 수 있는 삶은 행복하기도 번잡하기도. 말하지 않는 직업 나도 가지고 싶다….


+밑줄 긋기
-그는 휴대전화 소리를 죽이고 불을 끄고 침대에 누웠다. 모든 게 거추장스러웠다. 매트리스를 누르는 자신의 몸무게도, 감은 채 파르르 떨리는 양 눈꺼풀도, 뇌의 틀을 맴도는 말벌 같은 생각들도. 요즘 그는 종종 힘이 들었고 시도 때도 없이 눈물이 났다. 생은 그를 여기까지 데려와놓고 그가 이제 어떻게든 살아보려니까 힘을 설설 빼며, 이제 그만, 그만 살 준비를 해, 그러는 것 같았다. 희망이 없어, 그는 흐느끼듯 중얼거렸다. 차라리 단칼에 끊어내고 싶다, 증발하고 싶다, 사라지고 싶다, 지금, 이순간, 이대로……(’모르는 영역’ 중)

-휴대전화 매장까지 걸어가는 동안 소희는 너무 춥다. 배도 고프다. 그래서 뛴다. 계획대로 스물일곱, 스물여덟에 대출금을 갚고, 보증금 천만원 정도, 깔고 앉는다면, 그래서 그때부터, 매년 천만원씩, 모을 수 있다면, 서른여섯, 서른일곱쯤에, 일억을, 모은다면, 그렇게 내년부터, 십오년 넘게, 죽을힘을 다해 달려, 헉헉, 일억을 움켜쥐고, 백이십사 다시, 십오번지, 백일호에 도착하면, 저 대추 같은 할머니가, 만약 살아 있다면, 또 고개를 저으면서, 손가락을 치켜세워 흔들면서, 안 돼, 안 돼, 하겠지, 그땐 얼마를, 일억오천, 헉, 이억, 그땐 도대체 얼마를, 헉, 얼마를, 부를까…..
소희는 가로수 아래 멈춰 서서 숨을 몰아쉰다. 소희는 정말 진수씨 싫은데, 뭐든 자기는 다 아니까 이해하니까 그러는 진수씨 싫은데, 가끔 그가 떠들어댄 말 중에 어떤 말이 생각나기도 한다. 우리도 사람이기 때문에, 같은 말…...우리도 사람이기 때문에 그러면 또 마음이 상하잖아요…...소희도 사람이기 때문에…...스물일곱, 스물여덟까지…...서른다섯, 서른여섯까지…...그러면…...또…….마음이……(‘손톱’ 중)

-가끔 예고 없이 출현하는 그것은 데런의 고질병이었다. 데런은 늘 그것을 어떻게든 저지하려 했지만 그 의지가 생겨났을 때는 이미 모든 것이 튀어나온 후였다. 언젠가 디엔은 데런이 화가 나서 이성을 잃기 직전의 표정에 대해 얼음이 타는 것 같다고 말한 적이 있었다. 폭발하기 직전의 데런은 거의 움직이지 않고 약간은 허탈한 표정으로 어딘가를, 실은 아무것도 없는 허공을 가만히 바라본다고 했다. 모르는 사람이 보면 기도라도 하는 것처럼 매우 평온해 보이는데, 그때 아마도 데런 너는 곧 진행될 폭발에 대해 섬광처럼 짧게 숙고하는 것 같다고, 폭발 이후의 미래를 일별하고 그 혹독한 대가를 예감하면서도 그 무서운 미래가 실현되고 말리라는 것을 아는 얼굴이라고, 몸에 기름을 붓고 불을 붙이려는 분신자가 마치 먼 행성의 폭발을 기다리는 천문학자처럼 냉철한 눈을 하고 있는 형국이라고, 내부의 심연이 균열되는 걸 최후로 관조하는 눈이라고 디엔은 말했다.
그런데 얼음에 불이 붙기 시작하는 찰나엔 말이지, 하고 디엔은 말했다. 그때의 데런은 더이상 자신이 알던 데런이 아니고 절대적인 무엇을 담지한 순수 존재처럼 느껴진다고, 그에 비하면 자신은 아무것도 아닌 존재, 저 산불처럼 무섭게 번지는 파괴 앞에서 타 죽어도 마땅한 작은 벌레나 마른 풀포기 같은 존재로 여겨진다고 했다. 그것은 확실히 디엔에게 어마어마한 공포였으리라고 데런은 말했다. 디엔은 정말 그렇다고, 그런 일은 아무리 겪어도 너무나 두렵다고 하면서, 데런 네가 그렇게 드라이아이스처럼 하얗게 타버려 아무것도 남기지 않고 사라질 것 같아서, 라고 말했다. 그런 폭발이 일어났던 날들에 대한 기억, 웃던 디엔을 순식간에 겁에 질리게 했던 지워질 수 없는 날들의 기억 때문에 데런은 때로 눈알이 드라이아이스처럼 타는 것 같았고 앞이 잘 보이지 않았다. (‘희박한 마음’ 중)

-늦은 밤에 그는 우산을 챙겨 집을 나왔다. 빗줄기가 가늘어 우산 위로 떨어지는 빗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상가로 향하는 길에 젊은 청년과 마주쳤다. 청년은 접은 우산의 손잡이를 손목에 걸고 휴대전화를 들여다보며 천천히 걸어오고 있었다. 비가 그쳤나 싶어 우산을 접었다가 그는 열 발짝쯤 지나 다시 우산을 폈다. 그새 얼굴과 머리카락이 눅눅해졌다. 창백한 가로등 불빛에 비친 빗방울이 은가루처럼 미세하고 촘촘해 어두운 허공에서 우윳빛 액체가 끓고 있는 것 같았다. (‘재’ 중)

-그가 휴대전화를 켜 시간을 확인하는데 옆자리에서 중년 남자의 사투리 섞인 목소리가 들려왔다. 어느 날 애가 말이야 해충이 돼버린 기야. 이 말을 들었을 때까지만 해도 그는 그것이 카프카의 ‘변신’에 관한 이야기이리라곤 생각하지 못했다. 그는 그레고르 잠자가 해충이 되었다는 번역은 본 적이 없었다. 그런데 띄엄띄엄 들려오는 남자의 말은 그에게 놀라움과 확신을 주기에 충분했다. 그래서 걔는 드러운 음식만 먹게 된 거라. 걔가 나중에 어떻게 죽냐 하면, 애비가 사과를 던진 기야, 걔한테. 집에서 막 돌아댕기지 말라고. 그게 상처가 돼서 죽은 기야. 그는 ‘변신’에 대한 사뭇 폭력적일 만큼 간명한 요약에 신선한 경이를 느끼며 그들 쪽을 흘깃 돌아보았다. 상대편 남자가 물었다. 그기 다 결국은 상상 아이가? 그러자 이야기를 꺼낸 남자가 침울하게 대답했다. 그렇지, 상상이지 다……(‘재’ 중)

-아무래 생각해도 그는 이 장면이 그레고르에 대한 냉혹한 예언처럼 생각되었다. 긴 병원 건물은 벌레가 된 그레고르의 연약한 둥근 머리를 관통하는 잿빛 쇠막대처럼 여겨졌고, 더 나아가 어쩌면 모든 병원이 작은 창문 속 병실에 갇혀 있는 환자들을 불가능한 삶의 희망을 볼모로 꼬치처럼 꿰고 있는 쇠꼬챙이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환자들은 쓸모없는 생명을 이어가기 위해 가족의 재산을 갉아먹는 해충 같은 존재들이며 결국엔 가족의 행복과 안녕을 위해 바삭한 껍질만을 남기고 죽어야 하는 그레고르의 운명인지도 모른다고. (‘재’ 중)

-“그러니까 사람은, 사람이란 존재는…...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혀로 맛보고, 그렇게 감각하는 자체만으로는 도저히 만족하지 못하는 존재더라고. 내가 지금 이걸 느낀다, 하는 걸 나에게 알려주지 못하면 못 견디는 거지. 어떤 식으로든 내 느낌과 생각을 내게 전달해줘야 하는데 그러지 못하니까 감각이나 사고 자체도 그 자리에서 질식해 버리고 마는 것 같았어.”
나는 잠깐 멍한 상태가 되었다. 그는 지금 무슨 말을 하고 있는 거지?
말이란 게, 하고 그가 말했다.
“다른 사람과 대화하기 위한 것 같지만, 근본적으로는 나와 대화하기 위한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어. 그러니까 그동안 난 쉴새없이 누군가에게 말을 해왔는데, 그 말을 사실 나도 듣고 있었던 거지. 그런 의미에서 말은 순수히 타인만 향한 게 아니라 나를 향한 것이기도 했던 거야. 그런데 말을 못하게 되면서 타인을 향한 말은 그럭저럭 포기가 되는데 나를 향한 말은, 그건 절대 포기가 안 되더라고.”
그는 자신이 느끼는 감각이 강렬하면 강렬할수록 그걸 자신에게 알려주고 싶어 미칠 것 같았다고 했다.
“내가 알 수 있게! 내가 알 수 있게!” (‘전갱이의 맛’ 중)

-어떤 말들은 뜻을 알 수 없는 채로 생겨난다고 그가 말했는데 정확히 그렇다. 어떤 감정이나 감각들은 나를 거치지 않고 곧바로 몸으로 표현되고 기억에 각인된다. 예를 들어 나는 아직도 내 첫 말의 뜻을 정확히 알지 못한다. 처음엔 ‘안녕’쯤이 아닐까 생각했지만 꼭 그렇지만도 않은 것 같다. 그 뜻을 알고 싶어 가끔 주먹 쥔 손을 주머니에 찔러넣고 어깨를 펴고 허리를 곧추세우고 주머니를 아래쪽으로 꾹꾹 누르면서 또박또박 걸어보기도 하지만 여전히 모르겠다. 분명한 건 내가 그 말을 할 때, 그 말을 계속 진행시킬 때, 무엇인가가 드러나기보다 사라진다는 느낌을 받는다는 것이다. 걷는 행위 속으로 사라지는 무엇이 보인다. 그렇다고 완전히 사라지지는 않는다. 작게, 점점 작게, 주먹 쥔 손의 작은 어둠 속에서 무언가 희미하게 점멸하며 살아 있다. 모든 건 사라지지만 점멸하는 동안은 살아 있다. 지금은 그 모호한 뜻만으로 충분하다. (‘전갱이의 맛’ 중)

-오래전, 언제인지 나만 아는 그 시절, 작가의 말이 쓰고 싶어 미칠 것 같던 때가 있었다. 소설보다 작가의 말이 더 쓰고 싶었던 때가, 눈시울을 붉히며 독자에게, 내 글을 읽는 당신에게 눈물겹게 말을 건네고 싶었던 때가. 이제는 안 그런가.

모르겠다.

요즘 모르겠다는 말을 많이 한다.
….
그래도 독자여 나의 눈물겨운 독자여 내가 더는 아무것도 쓸 수 없는 그날이 오면 부디 우리 다시 만날까 작가의 말도 모르겠다는 말도 아직 멀었다는 말도 하지 말고 나는 식어 차고 당신의 손은 따뜻할 그날에(’작가의 말’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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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시무스 2020-12-01 20:43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안녕 주정뱅이가 너무 강해서 일까요?ㅎ 권여선 작가님의 작품은 소주랑 참 잘 어울리는것 같아요!ㅎ 조만간 소주잔을 쭉 빨아들인 작가님의 이 작품을 읽게 만들어 주시네요!ㅎ

반유행열반인 2020-12-01 20:46   좋아요 3 | URL
네 자꾸 슬펐지만 저한테는 정말 좋은 소설 읽기였습니다 ㅎㅎㅎ

막시무스 2020-12-01 20:59   좋아요 3 | URL
좋은 후기덕에 구매완료입니다! 김애란 작가님의 추천사가 멋지네요! 주정뱅이는 신형철님의 평론이 정말 훌륭한 마무리 안주였는데!ㅎ 즐건 독서되시구요, 좋은 소개 감사드려요!ㅎ

반유행열반인 2020-12-01 21:36   좋아요 2 | URL
막시무스님께도 좋은 독서 되시길 기원합니다. 늘 찾아주셔서 감사합니다.

2020-12-01 21:2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0-12-01 21:3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0-12-01 21:4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0-12-01 21:44   URL
비밀 댓글입니다.

제이 2020-12-01 23:3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권여선 제일 좋아해요. <아직 멀었다는 말> 에게 졌지만 <레몬>도 좋았더랬죠.

반유행열반인 2020-12-02 06:17   좋아요 1 | URL
권여선 작가님은 사랑 많이 받고 계시는군요! 저도 조만간 레몬도 읽어보겠습니다 ㅎㅎㅎ

- 2020-12-02 06:5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반님께서 계속 쓰고 싶다는 마음이라니 너무 다행!^.^

반유행열반인 2020-12-02 08:06   좋아요 0 | URL
아직 멀었으니까요 ㅎㅎㅎㅎㅎ

syo 2020-12-03 22:22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지금처럼 쑥쑥 읽고 쑥쑥 쓰고 쑥쑥 자라는 반님 되소서!

반유행열반인 2020-12-04 07:01   좋아요 0 | URL
쑥쑥 쑥쑥쑤욱

무식쟁이 2020-12-17 16:2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게 무슨 소릴까 했는데 반반님 자라나는 소리였군요.ㅎ 잘계시죠 반반님?

반유행열반인 2020-12-17 17:19   좋아요 0 | URL
무님!!!! 잘 지내셨어요!! 늘 궁금했는데 나타나시니 정말 반갑네요ㅠㅋㅋㅋㅋ
 
[전자책] G.H.에 따른 수난
클라리시 리스펙토르 지음, 배수아 옮김 / 봄날의책 / 202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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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1128 클라리시 리스펙토르.

바퀴벌레와 단둘이 광막하고 메마른 방안에 갇혀.

아직 만으로 이십 살이 안 되었을 때, 꿈을 꾸었다. 거대한 각진 돌기둥이 세워져 있었고, 그 꼭대기를 조감했을 때, 위에는 인간 이라는 두 글자가 양각으로 굵게 새겨져 있었다. 단지 두 글자일 뿐인데 그 무게가 너무 무거워서 나는 울어버렸다.

오래된 꿈에 관해 쓸 수 있는 것은, 꿈에서 깨어난 뒤 글로 적어두었기 때문이다. 생각나는 대로 적은 뒤에 그 어릴 때 쓴 글을 찾아보았다. 17년이 넘은 글을 찾을 수 있는 이유는 내가 그때 어느 카페에 그 글을 남겨두었다는 사실을 기억하고 있어서이다.

정확히는 만으로 열여덟, 우리 나이로 이십 살이 된지 일주일쯤 되었을 때다. (게시물 작성일자가 말해준다.)
’잠을 자려고 어둠 속에서 자리에 누웠을 때 가상의 조각상이 눈 앞에 나타났다. 길고 높은 사각 돌기둥에 사람의 안면이 네 측면과 꼭대기면에 불규칙적으로 여기저기 붙어 있었다. 그 맨 꼭대기 위에는 명조체로 크게 ‘인간‘ 이라고 써 있었다. 그 조각상을 보는 순간 눈물이 쏟아졌다. 인간이라는 말은 너무 무거워서 내가 감당할 수 없을 정도였다. 그 무게는 점점 무거워지고 나를 눌렀다. 나는 그냥 울었다. 아무리 발버둥쳐도 나는 인간일 수 밖에 없다.’
꿈이 아니었고, 자기 전에 빠진 망상 같은 것이었다. 양각인지 음각인지 알 수 없지만 명조체라고 한다. ㅋㅋㅋㅋㅋ 궁서체가 아니라서 다행이다. 이미 너무 진지하잖아...지금 쓰는 중인 이 글은 맑은고딕체로 쓰여지고 있는데.

이십 여일을 클라리시 리스펙토르의 ‘G.H.에 따른 수난’에 갇혀 있었다. 이 한 권에만 붙잡힌 것은 아니고 여러 권을 같이 보고 있는데. 이 책은 내가 태어나기 딱 이십 년 전에 출간되었다. 우연히도 같이 읽는 중인 ‘거꾸로’는 딱 나 태어나기 백년 전의 책이었다. 두 책이 기묘하게 겹치는 느낌을 받다가 이내 갈라져버렸다. 두 책 모두 아름다움과 기괴함은 그 경계가 얄팍하다는 느낌을 주었다.

여러분 리스펙토르의 첫 글자는 L입니다. 그래도 리스펙트하겠다면 말리지 않습니다요.

올해 가장 마지막으로 초고를 마친 소설에 거대한 바퀴벌레를 등장시켰다. 남자의 아래에 깔려 있던 여자는 천장에서 기어올라오는 바퀴벌레를 보고 절망의 종지부를 찍는다. 아주 좆같은 공간의 좆같은 상황이 이어진다. 남자는 여자의 마음을 알아차리지 못하고 한술 더떠 마음을 콩콩 찟는, 갈기갈기 찢는 말을 던진다. 최악으로 구질구질거리는 글을 쓰고 싶었는데 그럭저럭 목표는 이룬 것 같다.
그래서 이후에 읽은 이 소설에서 바퀴벌레가 등장하자 반가웠다. 동시에 싯팔 벌써 모든 사물은 불행은 감정은 절망은 지옥은 탐미는 그로테스크는 사십 년 전 백 몇 년 전에 다 쓰여버렸어, 하고 실망했다.

집에 혼자 있다. 가정부가 떠났다. 창문 밖으로 담배꽁초를 몰래 버렸다. 가정부가 쓰던 뒷방부터 집안 정리하기로 했다. 뒷방에서 나체 벽화와 바퀴벌레를 발견했다. 바퀴벌레를 옷장 문짝 사이에 끼워 죽였다(한동안 죽지 않았다). 그러고나서 사막과 신과 죽음과 삶과 중립과 행복과 사랑과 지옥과 인간에 관해(그것 말고도 앞으로 내가 쓸 모든 것에 관해) 주절거린다.

대부분 알아먹지 못할 말들에 오래오래 붙잡혀 있었다. 흰 벽 위로 목탄 그림이 그려져있고 옷장 문 사이에 체액을 흘리며 꺾인 바퀴벌레가 있는 방에서 여자가 나가지 못하던 것처럼 나도 같이 그 방안에서 바퀴벌레의 내장을 핥고 있었다. 책 내내 그녀는 과거 회상 외에는 누구와도 소통하지 않는다. 바퀴벌레와 눈을 마주친 걸 소통이라 할 수 없으니. 책의 서술은 온통 내면의 주절거림이고 자기와의 대화이다. 그게 아니라면 자기가 죽은 뒤에 생판 모를 나라에서 이걸 읽을 나를 향한 말걸기이다. 글이라는 게 이렇게나 고약하다. 우리는 이런 식으로 닿는데 나는 이미 죽어버린 그녀에게도 글 속의 그녀에게도 뭐라고 말을 걸 수가 없다. 어차피 그녀는 나라는 존재는 염두에 두지도 않았을 것이다. 내가 말을 걸려고 입을 벙긋거리면 그녀는 입에 검지 손가락을 가져다 대고 눈빛으로 닥쳐, 한 다음 담배 한 개피를 물고 멍하니 쳐다볼 것이다.
그래서 나는 바퀴벌레를 넘어설 더 고약한 무언가를 삼키고 고약한 무엇이 된 다음, 나에게 말을 걸어와도 내가 들을 수 없을 누군가가 듣게 될 무엇인가를 끄적이게 될 것이다. 아니면 나만 듣게 될 말들을.

-요약: 뭔말인지 하나도 못 알아 먹었다. 역자 후기에 배수아도 나도 뭔말인지 모르겠고 이 책이 번역이 필요한지 가능한지도 모르겠어, 그렇지만 킹왕짱. 해놨는데,
그 말에 낚인다면 당신은 한 달 가까이 시간을 허비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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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이버 2020-11-28 23:4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바퀴벌레를 넘어설 더 고약한 무언가는 무엇일까요... 저는 날아다니는 바퀴보다 더 무서운 것을 아직 보지 못했습니다...

반유행열반인 2020-11-29 05:41   좋아요 1 | URL
바퀴벌레는 만국공통에 시공초월하는 공포의 근원이군요ㅋㅋ그거 이길 만한 끝판왕은
지금부터 찾아보려고요 ㅎㅎㅎ

하나 2020-11-29 00:17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아니 무슨 꿈도 그렇게 문학적인 꿈을 꾸고 그런대요? 나중에 평전에 써야겠다. 인간이라고 명조체로 쓰여진 거대한 조각을 보시다니. 그래도 궁서체가 아니어서 다행인가. 맑은고딕은 공무원 아저씨들이 좋아합니다... 저도 이제 아저씨라 좋아합니다... ㅋㅋㅋ 저 벌레 보면 경기해서 벌레가 보이기 전에 이사하는 날 소독업체 불러서 예방하는 타입인데요. (유난맨) 가오맨이라 가게할 때 소녀들이 언니, 벌레.. 이럼 빗자루로 바들바들 떨면서 잡았잖아요. 가오란 무엇인가.. 한번 리스펙트는 영원히 리스펙트고요, 더한 거는 삼키지 마로라... 안 삼켜도 훌륭하시다.

반유행열반인 2020-11-29 05:44   좋아요 1 | URL
아 맑은고딕 아재 인증이어쒀? 통과하지 못했네요... 이거 읽다가 인생 목표가 금서나 불온서적 지정 당하기가 되었다가 그러면 뭐라도 먹어야 하나 했는데 맛있는 치킨 파스타 마카롱이나 처먹고 앉아서 뚠뚠 부르주아 돼지나 되어서 뒈지겠네 하고 또 실망 중이에요 ㅎㅎㅎㅎ

페크pek0501 2020-11-29 11:0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전자책은 복사붙이기로 밑줄긋기를 할 수 있지 않나요?

반유행열반인 2020-11-29 11:12   좋아요 1 | URL
넴 그게 가능한 책들이 있는데 제가 나중에 다시 살펴보는 용도에다 저작권 보호? 차원에서 조잡한 캡쳐로 남겨두고 있습니다.

scott 2020-11-29 13:5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표지속여인에 눈빛에 살기가 그득 ㅋㅋㅋ

반유행열반인 2020-11-29 14:32   좋아요 1 | URL
아니에요 오해이십니다. 죽여봤댔자 바퀴벌레 정도인 여성입니다 ㅋㅋㅋㅋ

syo 2020-11-29 23:4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그 인간기둥은 뭔가 1권만 읽고 집어던진 도로헤도로 느낌이 물씬 나는 물건이네요.... 으아....

반유행열반인 2020-11-30 07:11   좋아요 0 | URL
도로헤도로 띵작인데 끝권까지 쉰살 전에 읽기로 해요 ㅋㅋ전 쉰살 전에 목표가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인데 그거보다는 난이도 낮잖아요 ㅋㅋ

2020-11-30 02:1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0-11-30 07:0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0-11-30 11:12   URL
비밀 댓글입니다.

- 2020-12-02 07:0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캡처 인용하신 문장은 멋지지만 안읽어야지 ㅋㅋㅋㅋ

반유행열반인 2020-12-02 11:14   좋아요 0 | URL
무리하지 맙시다 ㅋㅋㅋ그런데 뭐 한 번쯤 읽어도 괜찮지 않을까?!?!(무리한 영업 중...)

2020-12-03 19:5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0-12-04 06:56   URL
비밀 댓글입니다.
 
[전자책] 빨간 코트를 입은 남자
줄리언 반스 지음, 정영목 옮김 / 다산책방 / 202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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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1121 줄리언 반스.

무지막지하게 잘 생긴 남자가 새빨간 가운 같은 걸 입고 있는 그림. 내 나이 때의 프랑스 부인과-외과 의사 닥터 포치의 초상이다. 줄리언 반스는 이 그림에 꽂혀 포치와 그의 친구, 연인, 가족에 관해 열심히 캐들어갔고 이 책을 썼다. 1800년대 말과 1900년대 초의 프랑스나 영국에 관해 아는 게 거의 없는 내게 만만한 읽기는 아니었다. 그런데도 굳이 논픽션이다 하고 의식하지 않고 읽으면 왠지 모르게 빠져드는 이야기였다. 그럴 만한 요소가 다 나온다.

왕자 에드몽 드 폴리냐크, 백작 로베르 드 몽테스키우-페잔사크, 닥터 사무엘 장 포치, 두 퀴어에 한 (숱한 염문에 휩싸인) 이성애자와 그들 주위의 소설가, 시인, 화가들과 그 작품들만으로도 얼빠지게 화려했다. 자기들끼리 친목질하고 그러다가 사소한 걸로 빡쳐서 총칼들고 결투하고 자기가 쓰는 글에 엉망진창 인물로 등장시켜 빡치게 만들고 연애질하는 꼴만 봐도 소위 고전 작가에 대문호로 칭송하던 인간들이 얼마나 찌질한지, 찌질해서 너무나 재미있었다.
찌질이들 사이에서 첫 부인과 딸과 아들들은 잘 못챙기고 연애에 열심이었다는 나름의 흠은 있지만, 부인과 의학의 발달과 외과 수술과 치료, 연구, 예술품 수집 등에 무한한 관심을 가지고 자기 할 일 열심히 하면서 사교활동도 부지런히 한, 그리고 중요한 자리마다 포레스트 검프마냥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닥터 포치라는 인물은 뭔가 사기캐에 가까웠다. 특정 인물을 영웅시하거나 전기를 통해 칭송하는 글을 좋아하지 않는데, 줄리언 반스가 얼마나 이 인물에게 빠져 있는지 느껴졌고, 그저 여기 쓰인 게 픽션이라도 좋고 나열된 게 가상 인물의 일대기라도 좋겠다, 매력뿜뿜이로구나 하고 닥터 포치의 마성에 나도 빠져버렸다… “쇼비니즘은 무지의 한 형태다.”라는 말을 의학 논문에 적을 사람이라면 그것만으로도 가산점 먹고 들어가십니다...ㅎㅎㅎ

이 책을 읽으니 아이 참 언젠간 읽어야겠네 하는 책 목록이 늘었다.
위스망스의 ‘거꾸로’, 이 책 읽다 말고 서울시전자도서관에서 빌렸다...픽션의 인물이 실존 인물과 동일시 되는 어리석음?억울함?나도 괜히 작가와 작중 인물 은근슬쩍 엮어 보는 독자였는데 그게 그렇게 되는 게 아닙니다, 하는 걸 안지는 얼마 안 되었죠...
프루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하하하...이웃s모님의 영업으로 올재클래식 10권짜리를 2만9천원이었나? 말도 안 되는 가격에 작년에 집에 들여놓았다. 지금도 일미터도 안 되는 거리에서 주황주황 표지를 뽐내며 야 너 쉰살 전에는 읽을 거라며? 하며 나를 째려보고 있다…
플로베르의 ‘살람보’, 나는 ‘보바리 부인’을 정말 좋게 읽었는데, 이 책이 자꾸 여기저기 언급되니 또 읽긴 읽어야지 하지만 언제…
오스카 와일드의 ‘도리언 그레이의 초상’, 이거 읽었는데 기억이 안 나. 그리고 이 책에서 자꾸 눈치 없이 영국 법원에서 프랑스 법원 흉내내고 깝치다가 감옥에서 썩는 오스카 와일드 불쌍해서...게다가 이 책이랑 ‘거꾸로’랑 연결고리가 나와서 왠지 다시 봐야 할 것 같다.

예술가 집단의 온갖 퀴어들과 혼외 연애와 인정욕구와 질투와 중독 그런게 남의 이야기라 읽기에는 재미있었다. 저런 애들이 저렇게나 많이 비슷한 시대에 숱한 이야기거리 남기며 살다가 지금은 다 죽었다는 게 흥미로웠다. 지금이 그런 시대에 그런 삶이 아닌 게 다행인지 아쉬운지 잘 모르겠다. 어쨌거나 소설이 남고, 시가 남고, 그림이 남아서 우리는 재미나게 본다. 다만 맥락이 지워지면 미래의 인간들은 저널리스트 초상을 보고도 은행가로 오해한다… 댄디한 데다 능력있는 의사를 보고도 환자나 건드리는 양아치 의사로 오해한다… 그게 줄리언 반스는 되게 안타까웠나 보다. 그러나 어쩔 수 없다 그런 오해와 모욕은 먼저 죽은 죄일 뿐… 늦게 태어난 죄로 아이씨 멋진 건 이미 다 써 버렸어! 하는 건 나의 몫일 뿐…



-집에 있는 닥터 포치. 코트가 아니라 빨간 가운 아닐까.
-내가 역겹게 잘 생긴 포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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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amGiKim 2020-11-21 23:0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쇼비니즘하면 꼭 떠오르는 인물이 있습니다. 바로 폴포트입니다.

반유행열반인 2020-11-21 23:02   좋아요 1 | URL
저는 폴포트급까지는 안 가도 일상적으로 무지의 한 형태를 자주 마주합니다. ㅎㅎㅎㅎ

NamGiKim 2020-11-21 23:03   좋아요 1 | URL
광화문에도 무지의 한 형태를 한 그분들이 읍읍

반유행열반인 2020-11-21 23:04   좋아요 1 | URL
어디에나 있고 스스로도 언젠가 빠질 수 있는 맹목이니 누구 콕 집지 않으렵니다. ㅎㅎㅎ

2020-11-22 01:1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0-11-22 06:4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0-11-23 03:1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0-11-23 07:03   URL
비밀 댓글입니다.
 

...은 폐지수집상. 중고책만 이백권 ㅋㅋㅋㅋ

https://www.aladin.co.kr/events/wevent.aspx?EventId=211679&custno=19405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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