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Book] 빨간 코트를 입은 남자
줄리언 반스 지음, 정영목 옮김 / 다산책방 / 202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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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1121 줄리언 반스.

무지막지하게 잘 생긴 남자가 새빨간 가운 같은 걸 입고 있는 그림. 내 나이 때의 프랑스 부인과-외과 의사 닥터 포치의 초상이다. 줄리언 반스는 이 그림에 꽂혀 포치와 그의 친구, 연인, 가족에 관해 열심히 캐들어갔고 이 책을 썼다. 1800년대 말과 1900년대 초의 프랑스나 영국에 관해 아는 게 거의 없는 내게 만만한 읽기는 아니었다. 그런데도 굳이 논픽션이다 하고 의식하지 않고 읽으면 왠지 모르게 빠져드는 이야기였다. 그럴 만한 요소가 다 나온다.

왕자 에드몽 드 폴리냐크, 백작 로베르 드 몽테스키우-페잔사크, 닥터 사무엘 장 포치, 두 퀴어에 한 (숱한 염문에 휩싸인) 이성애자와 그들 주위의 소설가, 시인, 화가들과 그 작품들만으로도 얼빠지게 화려했다. 자기들끼리 친목질하고 그러다가 사소한 걸로 빡쳐서 총칼들고 결투하고 자기가 쓰는 글에 엉망진창 인물로 등장시켜 빡치게 만들고 연애질하는 꼴만 봐도 소위 고전 작가에 대문호로 칭송하던 인간들이 얼마나 찌질한지, 찌질해서 너무나 재미있었다.
찌질이들 사이에서 첫 부인과 딸과 아들들은 잘 못챙기고 연애에 열심이었다는 나름의 흠은 있지만, 부인과 의학의 발달과 외과 수술과 치료, 연구, 예술품 수집 등에 무한한 관심을 가지고 자기 할 일 열심히 하면서 사교활동도 부지런히 한, 그리고 중요한 자리마다 포레스트 검프마냥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닥터 포치라는 인물은 뭔가 사기캐에 가까웠다. 특정 인물을 영웅시하거나 전기를 통해 칭송하는 글을 좋아하지 않는데, 줄리언 반스가 얼마나 이 인물에게 빠져 있는지 느껴졌고, 그저 여기 쓰인 게 픽션이라도 좋고 나열된 게 가상 인물의 일대기라도 좋겠다, 매력뿜뿜이로구나 하고 닥터 포치의 마성에 나도 빠져버렸다… “쇼비니즘은 무지의 한 형태다.”라는 말을 의학 논문에 적을 사람이라면 그것만으로도 가산점 먹고 들어가십니다...ㅎㅎㅎ

이 책을 읽으니 아이 참 언젠간 읽어야겠네 하는 책 목록이 늘었다.
위스망스의 ‘거꾸로’, 이 책 읽다 말고 서울시전자도서관에서 빌렸다...픽션의 인물이 실존 인물과 동일시 되는 어리석음?억울함?나도 괜히 작가와 작중 인물 은근슬쩍 엮어 보는 독자였는데 그게 그렇게 되는 게 아닙니다, 하는 걸 안지는 얼마 안 되었죠...
프루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하하하...이웃s모님의 영업으로 올재클래식 10권짜리를 2만9천원이었나? 말도 안 되는 가격에 작년에 집에 들여놓았다. 지금도 일미터도 안 되는 거리에서 주황주황 표지를 뽐내며 야 너 쉰살 전에는 읽을 거라며? 하며 나를 째려보고 있다…
플로베르의 ‘살람보’, 나는 ‘보바리 부인’을 정말 좋게 읽었는데, 이 책이 자꾸 여기저기 언급되니 또 읽긴 읽어야지 하지만 언제…
오스카 와일드의 ‘도리언 그레이의 초상’, 이거 읽었는데 기억이 안 나. 그리고 이 책에서 자꾸 눈치 없이 영국 법원에서 프랑스 법원 흉내내고 깝치다가 감옥에서 썩는 오스카 와일드 불쌍해서...게다가 이 책이랑 ‘거꾸로’랑 연결고리가 나와서 왠지 다시 봐야 할 것 같다.

예술가 집단의 온갖 퀴어들과 혼외 연애와 인정욕구와 질투와 중독 그런게 남의 이야기라 읽기에는 재미있었다. 저런 애들이 저렇게나 많이 비슷한 시대에 숱한 이야기거리 남기며 살다가 지금은 다 죽었다는 게 흥미로웠다. 지금이 그런 시대에 그런 삶이 아닌 게 다행인지 아쉬운지 잘 모르겠다. 어쨌거나 소설이 남고, 시가 남고, 그림이 남아서 우리는 재미나게 본다. 다만 맥락이 지워지면 미래의 인간들은 저널리스트 초상을 보고도 은행가로 오해한다… 댄디한 데다 능력있는 의사를 보고도 환자나 건드리는 양아치 의사로 오해한다… 그게 줄리언 반스는 되게 안타까웠나 보다. 그러나 어쩔 수 없다 그런 오해와 모욕은 먼저 죽은 죄일 뿐… 늦게 태어난 죄로 아이씨 멋진 건 이미 다 써 버렸어! 하는 건 나의 몫일 뿐…



-집에 있는 닥터 포치. 코트가 아니라 빨간 가운 아닐까.
-내가 역겹게 잘 생긴 포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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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amGiKim 2020-11-21 23:0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쇼비니즘하면 꼭 떠오르는 인물이 있습니다. 바로 폴포트입니다.

반유행열반인 2020-11-21 23:02   좋아요 1 | URL
저는 폴포트급까지는 안 가도 일상적으로 무지의 한 형태를 자주 마주합니다. ㅎㅎㅎㅎ

NamGiKim 2020-11-21 23:03   좋아요 1 | URL
광화문에도 무지의 한 형태를 한 그분들이 읍읍

반유행열반인 2020-11-21 23:04   좋아요 1 | URL
어디에나 있고 스스로도 언젠가 빠질 수 있는 맹목이니 누구 콕 집지 않으렵니다. ㅎㅎㅎ

2020-11-22 01:1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0-11-22 06:4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0-11-23 03:1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0-11-23 07:03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