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스바겐님 어머니께 시 한 편 올리겠습니다. 

어머니의 그륵 -정일근-

어머니는 그륵이라 쓰고 읽으신다
그륵이 아니라 그릇이 바른 말이지만 어머니에게 그릇은 그륵이다
물을 담아 오신 어머니의 그륵을 앞에 두고 그륵, 그륵 중얼거려보면
그륵에 담긴 물이 편안한 수평을 찾고
어머니의 그륵에 담겨졌던 모든 것들이
사람의 체온처럼 따뜻했다는 것을 깨닫는다
나는 학교에서 그릇이라고 배웠지만
어머니는 인생을 통해 그륵이라 배웠다
그래서 내가 담는 한 그릇의
물과 어머니가 담는 한 그륵의 물은 다르다
말 하나가 살아남아 빛나기 위해서는
말과 하나가 되는 사랑이 있어야 하는데
어머니는 어머니의 삶을 통해 말을 만드셨고
나는 사전을 통해 쉽게 말을 찾았다
무릇 시인이라면 하찮은 것들의 이름이라도
뜨겁게 살아있도록 불러 주어야 하는데
두툼한 개정판 국어사전을 자랑처럼 옆에두고
서정시를 쓰는 내가 부끄러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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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04-05-08 11: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감사합니다. 꾸벅! 시 너무 좋습니다. ^^

stella.K 2004-05-10 14: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짙은 여운이 남는 시네요.^^
 
버려진 사람들 시작시인선 16
김신용 지음 / 천년의시작 / 2003년 1월
평점 :
품절


리뷰를 올리면서 내 스스로 별하나의 만족도 만큼은 비워두기로 했었다. 그래서 지금까지 내가 쓴 리뷰의 상품만족도는 늘 별 4개가 최고였다. 저자의 견해를 무조건 수용하는 자세나 주관없이 책에 빠져드는 것을 경계하고 싶은 욕심때문이었다.  그러나 김신용 님의 시집  '버려진 사람들'에게는 별 다섯을 주고도 부끄럽다. 비워두기로 했던 별 하나까지 채워 별 다섯을  이 시집에 주는 것은 이 시집에 대한 나의 애착과 다시 재판되어 나오게된 것에 대한 기쁨과 감사의 표현이다.

내가 가진 김신용 님의 '버려진 사람들'은 1988년 11월 5일 초판발행된 고려원시인선13권이다. 친구에게 빌려읽고 돌려줄 수밖에 없었던 이 시집을 몇 년의 세월이 지나고 인천의 한 서점에서 발견했다. 발행일로 부터 8년이 지난 시점에서 이 시집의 초판본을 만난 것이다. 초판본을 갖는다는 것은 내 이름으로 불려지는 별을 갖는 일처럼 행복한 일이다.

이 시를 처음 접한 것은 대학시절. 한참 박노해의 '노동의 새벽'에 심취했던 때이다. 대학 시절 친구의 추천으로 우연히 접한 이 시집은 나에게 박노해 만큼이나 충격적인 시집이었다. 아름다운 언어로 아름다운 정신 세계와 아름다운 자연을 읊는 것이 시라고 생각했던 나에게 삶의 진정성과 그 고달픔이 주는 전혀 다른 아름다움(고통을 가진 자의 절규에서 느껴지는 비참한 아름다움)에 대하여 고민하게 만들었다. 문학을 향한 첫번째 껍질깨기가 이 시집을 통해 이루어졌던 것이다.

이 시집에 대한 나의 애착은 상당히 주관적이고 감상적일 수 있다. 그러나 14세 때 부터 부랑 생활, 지게꾼 등 온갖 밑바닥 직업을 전전하며 몸으로 쓰여진 시라는 것은 분명히 그 어떤 화려한 언어의 표현보다 더욱 진실된 삶을 이야기해 줄 것이다. 그렇다고 이 시가 언어의 표현력에서 뒤떨어진다는 이야기는 아니다. 예전에 인상이 남아 접어둔 페이지의 '달팽이의 꿈'이라는 시는 대상에 대한 깊은 시선을 통해 삶의 본질을 꿰뚫는 시인의 탁월한 문학적 재능을 충분히 보여주고 있다.

재판되어 나온 책은 사실 내가 보지 못했기때문에 내가 소유한 초판본과 달라진 점이 있을 수도 있다. 책에 대한 소개만으로 알 수 있는 변화는 평론이 첨가되었다는 점이다. 초판본에는 시와 간단한 시인 소개외에는 아무런 글이 없었다. 그리고 검은 철길 위에 어둡게 놓여있는 화물 차와 검은 선으로 빗겨진 하늘이 그려진 표지 그림이 화사한 색으로 새롭게 편집되었다는 것이 눈에 띈다. 그러나 그 내용은 변화가 없을 것이며 아울러 시에서 그려진 어두운 삶의 그림자는 아직도 우리의 삶메 여전히 드리워져있다는 점에서 변화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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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녀물고기 2004-05-08 00: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맨 마지막 말씀이 섬뜩하군요. 언제까지 그런 도저한 그림자와 함께 맞물려 가야 할까요. 발전을 거듭할 수록 음영 또한 짙어지는 것 같습니다. 사실, 박노해는 별로 좋아하지 않는데, 별 다섯을 주고도 부끄럽다는 말씀과 마지막 문장에 동하는군요. 노란색 표지는 마음에 안 들지만.

stella.K 2004-05-10 14: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메시지님의 리뷰 추천하구요, 저의 보관함에 담습니다.^^
 

성석제를 처음 접한 것은 복학한지 얼마안된 대학 시절이었고, 소설이 아니라 시집이었다. 그것도 자의가 아닌 친구의 강력한 요청에 의해서였다. 여행을 앞둔 친구가 찾아왔었다. 그는 시집 한권을 들고 있었고, 나는 지금은 기억나지 않지만 어떤 음반(엄밀히 말하면 테이프)에 빠져있어서 늘 귀에 이어폰을 끼고 다녔었다. 그 친구는 여행 중에 듣기좋겠다며 나의 테이프를 원했고, 내 것에 집착이 많은 나는 줄 수 없다고 했다. 결국 그의 절충안을 받아들여 나는 그의 시집을, 그는 나의 테이프를 소유하게 되었다. 그 때의 그 시집이 성석제의 시집이었다. 사실 큰 감흥이 없었는지 나에게 뚜렷한 인상을 심어주지는 못한 것 같다. 아니면 내가 기억력의 급속한 감소로 기억을 못하던가(기억력의 감소때문일 것이다. 그렇게 좋아했던 음반을 기억하지 못하는 것이나, 요즘 저지르는 나의 행적들을 살펴볼때)

 어째뜬 나는 요즘 성석제의 소설들을 주섬주섬 읽고 있다. 몇 년전 '그곳에는 어처구니들이 산다'는 소설집을 읽은 이후로 성석제하면 재이있다라는 생각이 먼저 든다. 그래서 즐거움에 대한 기대로 성석제의 소설에  자꾸 손이 간다. 물론 성석제의 소설이 단순한 재미에만 머무르지 않는다. 재미있게 읽히면서도 삶이 가진 두터운 무게들을 잘 드러내고 있다. 그것이 그의 장점일 것이다.

최근 '홀림'을 읽고, 이어서 바로 '황만근은 이렇게 말했다'를 읽었다. 작가란 글을 쓰기위해서 많은 준비를 해야한다는 단순한 진리를 또한번 느꼈다. 특히 두 권 모두에 들어있는 도박에 대한 이야기들을 종합해 볼때 많은 경험과 준비의 소산이라는 생각이 든다. 홀림의 '협죽도 그늘 아래서'나  '황만근은 이렇게 말했다'에서는 우리 사회의 거대한 흐름 속에서 힘없는 개인의 한맺힌 삶이 주는 무게감과 그 속에서 어떻게 사느냐의 문제가 맞다아있어서 깊은 인상으로 남았다. 그러나 '황만근'에 수록되어 있는 몇 편의 단편에서는 단지 술자리에서 펼쳐지는 재미있는 입담을 옮겨적은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한 남자의 과장된 듯한 연애 경험이나 자아도취적 특성을 보여주는 부분에서는 그런 아쉬움이 남았다. 하지만 그의 말솜씨(아니 글솜씨)는 그러한 부족함을 쉽게 넘길 수 있도록 하는 힘을 가지고 있다. 정말 대단하다. 절대 지루하지 않고 그 이야기 속에 푹 빠지게 하는 그의 문장들은 그 문장을 읽는 것만으로도 성석제를 다시 찾아보게 하는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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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년전 중앙일보 신인상 수상작입니다. 시인의 친필인듯 싶으나 사실여부는 확인 못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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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lla.K 2004-05-07 09: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말 좋은 시네요. 잘 읽고 갑니다^^

메시지 2004-05-07 13: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손으로 적은 시들은 인쇄 된 것과는 다른 느낌을 주더군요. 친필이 주는 묘한 매력이 있어요.
 
한국연극 바로보기
최응 외 지음 / 북스힐 / 1999년 9월
평점 :
품절


우리나라에서 연극은 언제 시작되었을까? 이 물음을 던지면서 불안함을 감출 수가 없다. 혹여 많은 이들이 우리나라에서 연극다운 연극은 개화기 이후에야 시작되었다고 답하진 않을가하는 의구심때문이다.

많은 이들이 연극은 숨을 죽인체 불꺼진 무대의 어두운 막을 처다보는 것으로 시작해서, 경쾌한 음악에 맞추어 커튼콜을 하는 배우들에게 힘차게 박수를 보내는 것으로 끝나야한다고 생각하는 듯 하다. 안동 하회마을에서 벌어지는 하회별신굿을 연극이라고 하면 이해하기 힘든 표정으로 그것은 탈춤이다, 우리의 전통 놀이라며 수긍하지 않는다.

우리에게 연극이라는 말은 서양의 관점에서 그것도 정통적인 리얼리즘 계열의 연극을 지칭하는 편협된 의미로 사용되고 있다. 이러한 편협된 관점이 지속되는한  훌륭한 극적 장치와 관객과의 열린 만남을 전제로 하는 우리의 전통 연극은 계속 설자리를 잃게 될 것이다.

우리의 연극은 사실 세계에서도 아직 그 설자리가 약하다. 연극사의 대표적 교과서로 불리는 '세계연극사'를 보아도 동양 연극의 장에는 인도, 중국, 일본의 전통극만이 차지하고 있다. 우리의 전통극은 대접을 받지 못하고 있다.  물론 '판소리'의 세계문화유산 지정은 우리의 전통 연희 장르가 가진 우수성에 대한 인정으로 받아들일 수 있다.  환영할 일이다. 그러나 국내에서의 판소리는 역시나 제대로 대접받지 못하고 있다. 최근 '판소리'에 대한 연구와 연희 방식면에서 한국의 전통극으로 자리매김하려는 노력들이 많아진것은 그나마 다행이다. (물론 판소리의 성격에 대한 논의는 시작된지 얼마안되어서 앞으로 지속적인 논의가 필요한 부분이긴하다.)

연극의 개념을 조금 넓혀서, 엄밀하게 말해서 연극에 대한 이해를 더욱 넗혀서, 우리의 연극을 바라본다면 우리의 전통 문화는 훌륭한 연극적 전통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받아들일 수 있을 것이다.

그러한 개념에서 우리 연극의 역사를 바라보고 거기서 발견되는 우리의 전통 연극의 기원과 발전을 알기쉽게 기술한 책이 "한국연극 바로보기"인 것이다. 우리 연극의 기원과 각각의 전통 연극의 형태들이 어떤 배경 속에서 형성되고 발전되었으며, 현재 어떠한 모습으로 남아있는지에 대한 연구와 기록들이 잘 정돈되어있다. 누구나 쉽게 받아들이고 이해할 수 있도록 기술하면서도 학문적인 연구 결과까지도 잘 담아내고 있다. 그리고 현대 연극의 흐름과 변화도 기술되어있어서 한국연극사의 교과서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장르별로 다루다보니 전체 시대의 흐름 속에서 각 장르들이 어떠한 관련을 맺고 있는가하는 문제와 깊이있는 논의로까지 전개되지 않은 아쉬움도 있으나 이것은 오히려 연극사를 처음 접하는 안내서로서의 장점일 수도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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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04-05-04 17: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거 연극 안 본지도 꽤 오래된데다 공연한다는 소식도 듣지 못하고 세월이 흐르고 있었거던요. 메시지님께서 소개시켜주시는 정보로나마 접하고보니 반가운뎁쇼. 글고 이렇게 진지하게 우리연극에 관한 자료에 관심을 기울이고 연구하시는 분이 가까이 사시고 계시다니, 무척 흐뭇합니다. 하하하...

바람구두 2004-05-07 14: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좋은 책인 듯 싶군요.
저도 조만간 한 권 주문하겠습니다.
추천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