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스바겐님 어머니께 시 한 편 올리겠습니다. 

어머니의 그륵 -정일근-

어머니는 그륵이라 쓰고 읽으신다
그륵이 아니라 그릇이 바른 말이지만 어머니에게 그릇은 그륵이다
물을 담아 오신 어머니의 그륵을 앞에 두고 그륵, 그륵 중얼거려보면
그륵에 담긴 물이 편안한 수평을 찾고
어머니의 그륵에 담겨졌던 모든 것들이
사람의 체온처럼 따뜻했다는 것을 깨닫는다
나는 학교에서 그릇이라고 배웠지만
어머니는 인생을 통해 그륵이라 배웠다
그래서 내가 담는 한 그릇의
물과 어머니가 담는 한 그륵의 물은 다르다
말 하나가 살아남아 빛나기 위해서는
말과 하나가 되는 사랑이 있어야 하는데
어머니는 어머니의 삶을 통해 말을 만드셨고
나는 사전을 통해 쉽게 말을 찾았다
무릇 시인이라면 하찮은 것들의 이름이라도
뜨겁게 살아있도록 불러 주어야 하는데
두툼한 개정판 국어사전을 자랑처럼 옆에두고
서정시를 쓰는 내가 부끄러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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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04-05-08 11: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감사합니다. 꾸벅! 시 너무 좋습니다. ^^

stella.K 2004-05-10 14: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짙은 여운이 남는 시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