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이즈 2 - 굶주린 사람들
마이클 그랜트 지음, 공보경 옮김 / 한즈미디어(한스미디어) / 201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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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1편에서의 대전투 이후 3개월이 지났다. 페이즈 구역의 아이들은 점점 식량이 바닥이 나고 있어 비상사태를 맞게 된다. 얼마 없는 식량을 마을 전체 인원에 소량 배분한다 해도 일주일 정도면 끝날 상황이다. 설상가상으로 채소밭에는 식인 벌레들이 득실거렸다. 어떤 아이들은 공복감 때문에 먹은 후 곧바로 토해버려 음식 낭비가 끊이질 않았다. 아이들의 불만은 주인공 샘 일행에게 쏟아졌고, 읍장으로써 온갖 뒤치다꺼리를 맡던 샘은 점점 번아웃이 온다. 한편 지난번 전투에서 패한 케인 일행이 마을 전체의 전기를 끊어버리고, 방사능 발전소를 찾아가 우라늄을 훔쳐내려 한다. 케인 일행을 저지하느라 주인공들이 마을을 비운 사이에 마을에서 폭동이 일어난다. 초능력이 없는 아이들이 합심해서 초능력자들을 배척하기 시작한 것이다. 외부에서는 적들의 침공이, 내부에서는 아군의 비협조가 반복되는 상황. 모두가 굶주려서 신경이 극도로 예민해져 있고, 샘은 이 모든 것들이 이제 지겹기만 하다.


큼직한 사건이 연달아 터지고 있어 숨 쉴 틈이 없다. 일단 초능력자들과 정상인들의 사이가 너무 벌어져서 주인공들의 맘고생이 극에 다다른다. 정상인들은 주인공들이 식량 배분해주는 것을 못마땅해하고 위에서 식량을 독차지한다고 생각한다. 적의 침략을 못 막은 것도, 마을에 전기가 끊어진 것도 전부 샘 일행의 잘못으로 몰아가는 정상인 아이들. 굶주림으로 폭력성이 깨어나고 잘못된 판단을 내리는 장면이 자주 나온다. 심지어 샘 쪽이나 케인 쪽이나 배고픔으로 아군을 배신하기까지 한다. 그렇게 이성을 놔버리거나 놓기 직전인 상태의 아이들이 끝없이 나온다. 이렇게 텐션이 떨어지지 않는 작품은 처음이다.


케인 일행이 우라늄을 빼내어 ‘어둠‘에게 갖다 바치려 한다. 이 페이즈 사태의 중심에는 아직 정체가 밝혀지지 않은 ‘어둠‘이 있었고, 몇몇 초능력자들의 정신을 지배하며 명령을 내리고 있다. 어둠에게 놀아난 케인과 샘 일행은 지독한 중상을 입어가며 어둠과 맞선다. 적과 싸우면서도 샘의 머리에는 마을의 폭동과 식량문제와 다친 부하들의 생각으로 머리가 터질 지경이다. 나도 연약한 어린애에 불과하다며 리더고 뭐고 때려치우겠다지만 머리 좀 식고 나면 마을 꼬라지를 눈뜨고 볼 수가 없어서 괴로운 주인공. 또한 자신을 의지하고 바라보는 아이들을 외면하기도 어려워하는 어린 친구가 얼마나 짠한지. 원래 성장물 주인공은 굴려야 제맛이라지만 중딩한테 이건 너무 한다는 생각만 든다. 근데 겁나게 재미있어서 어쩐지 나 변태 된 기분...


총 6편의 페이즈 시리즈는 국내에 2편을 끝으로 더 이상 안 나오고 있다. 드라마 제작으로 만나는 게 더 빠를 듯하다. 여하튼 이 쪄죽을 듯한 더위 속에 스피디한 독서를 할 수 있어서 참 다행이다. 완결을 볼 수 없는 작품이므로 리뷰도 걍 대충 썼다. 읽었다는 데에 의미를 두는 걸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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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파랑 2021-07-21 00:31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대충쓰셨다고 하셔도 완전 재미있네요^^ 완결을 볼 수 없는 작품이라니 왠지 서글픈 기분이 드는군요 😔

물감 2021-07-21 07:03   좋아요 2 | URL
마케팅만 잘했어도 잘 팔렸을 작품이라 생각합니다.. 소량이라도 전권 출간을 해줬다면 중고책이 돌아다닐텐데 아쉬워요ㅎㅎ
 
페이즈 1 - 사라진 사람들
마이클 그랜트 지음, 공보경 옮김 / 한즈미디어(한스미디어) / 2014년 12월
평점 :
절판


한때 디스토피아 판타지 장르가 쏟아져 나오던 시기가 있었다. <메이즈러너>, <헝거게임>, <다이버전트> 등등 워낙 좋아하는 장르라 빼먹지 않고 다 챙겨봤었는데, 이번에 읽은 <페이즈>시리즈는 그중에서 가장 재미있게 읽은 작품이다. 나는 이런 시리즈물의 경우, 완결이 나온 다음 몰아서 읽는 편이어서 국내에 전부 출간될 때까지 기다리고 있었는데 수년째 출판사에서 출간을 안 해주고 있다. 해외에서는 완결까지 총 6편이 나와있는데 국내에는 2편까지만 나와있고 더는 출간 예정이 없는 것 같아 기다리다 지쳐 그냥 읽고 팔아버릴 생각이다. 완결이 없으니 사실 리뷰도 정성스럽게 쓸 필요는 없을 것 같아서 아무렇게나 휘갈겨보겠다.


이야기는 어른들이 갑자기 사라지는 현상으로 시작된다. 정확히는 15세 이상부터 전부 사라져버리는데, 정말 한순간에 뿅 하고 사라지다 보니 도로는 교통사고로 가득하고, 집집마다 화재가 나고, 유아들이나 갓난아기들은 쉽게 죽음에 노출된다. 그 외에도 14세 이하의 어린아이들은 부모를 잃은 공포에 젖어서 어찌할 바를 몰라 울고만 있다. 더군다나 통신과 인터넷도 먹통이 되어 어디에도 도움을 요청할 수 없는 최악의 상황이 되었다. 보통 디스토피아 소설이 세계관부터가 평범하지 않은데, <페이즈>는 비교적 현실적이어서 더 몰입이 잘 되었다. 사건이 일어나고 남은 자들의 입장과 주어진 현실을 실감 나게 묘사하고 있어 마냥 판타지 같지 않다는 게 강점이다.


아직 1편이라서 어른들이 사라진 이 현상을 상세히 다루지는 않는다. 마을 밖으로 멀리 나가면 본 적 없는 빛의 장벽 같은 게 마을 전체를 둘러싸고 있다. 곳곳에서는 돌연변이 동물들이 발견되었고, 주인공은 손에서 빛이 나오는 능력이 생겼다. 샘 말고도 각기 다른 종류의 능력자 아이들이 계속 늘어났다. 남은 아이들은 샘이 리더가 되어주길 바라나, 부담스러웠던 샘은 모두를 외면한다. 동료들은 그런 샘에게 실망하며 아이들을 이끌라고 부추긴다. 야 진짜 14세면 우리나라에서는 중1인데, 그렇게 어린애한테 뭐 그리 많은 짐을 씌우는 건지 작가가 좀 이상하게 느껴질 정도였다. 아무튼 억지로 떠밀려서 리더 좀 해보려는데 옆 동네 문제아 학교의 학생들이 우르르 와서 이럴 때일수록 힘을 모아야 한다며 모두를 꼬드긴다. 샘과는 달리 옆 동네 리더 케인은 결단력도 있고 판단력도 있고 리더십도 있어가지고 결국 그에게 리더를 맡겼는데 어째 점점 마을을 무력으로 점령해가는 게 아닌가. 이로써 샘 파와 케인 파로 갈라져서 싸우게 되는 이야기가 1편의 주 내용이다.


등장인물도 제법 많은 데다 상황도 상황인 만큼 별별 캐릭터가 다 나온다. 박쥐, 헐크, 여우, 겁보, 간신배 등등 다양한 캐릭터의 개성을 되게 잘 살리고 있어서 좀 놀랐다. 어딘가 납득이 좀 안되는 캐릭터들을 잘 만드는 서양권에서 이렇게 균형 있는 인물 설정을 보는 게 신기했다. 더 좋았던 점은 이 작가도 스토리에 막힘이 전혀 없다. 뭐 아직 1편이라 쳐도 약 600장의 분량인데 매끄러운 전개를 보여준다. 작가의 상상력도 대단한데 그 구상을 풀어내는 능력마저 훌륭하다. 얼마나 철저하게 준비했는지 알만하다. 중딩은 무서운 게 하나도 없는 나이인데, 그런 애들이 권력을 쥔 세상은 얼마나 엉망진창이겠는가. 그것만으로도 디스토피아는 완성된다. 아이들만 남은 지역, 일명 페이즈에서는 15세의 생일을 맞이한 아이들이 사라졌고, 샘과 케인도 곧 15세의 생일이 다가온다. 어떻게든 생일이 오기 전에 상대를 꺾고 목적을 이뤄야만 하는 두 사람.


쫄깃쫄깃하게 잘 쓴 작품이다. 총 6편으로 되어있어서 템포가 느릴 줄 알았는데 전혀 아니었다. 그렇다고 생략한 장면이 많은 것도 아니다. <메이즈러너>나 <헝거게임>은 건너뛴 장면이 많아서 매끄럽지가 못했는데 <페이즈>는 딱히 아쉽거나 실망한 구간이 없었다. 어떤 사정인지 몰라도 완결까지 내주지 않은 출판사가 너무 원망스럽다. 2편이나 읽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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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순한 열정 (무선) -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99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99
아니 에르노 지음, 최정수 옮김 / 문학동네 / 201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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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종 내 이야기가 소설로 나오면 잘 팔릴 거라는 생각을 했다. 사연 없는 사람이 있겠냐마는 내 사연들도 꽤나 복잡하고 다이나믹 했더랬다. 지난 과거에 경험하고 느낀 것들이 지금의 글쓰기 활동에 엄청난 보탬이 되고는 있다. 왜 사람들은 자신의 발자국을 남기고 싶어 할까. 멜로디를 만들고 설계도를 그리고 비디오를 찍고 나무와 돌을 깎고. 나는 이런 행위들이 내가 더 나일 수 있게 만들어준다고 생각했었다. 지금은 그저 예술가의 혼이 나를 가만두지 않는 단순한 이유가 아닐까 싶다. 여튼 다양한 형태의 예술 가운데서 유독 문학은 대중에게 인정받지 못하는 분야이다. 아무래도 글이란 게 누구나 쓸 수 있다 보니 상대적으로 만만해 보일 테고, 그래서 누구나 엄한 잣대를 쉽게도 들이대는 것이다. 그런 자들에게 속 시원하게 반박하고 일침을 놓는 프랑스 작가의 작품을 읽었다. 이 분은 문학에 대한 선입견들을 타파하고 예술에 대한 시각을 뒤집어놓았다. 아니 에르노의 <단순한 열정>을 소개해본다.


나는 외국인 유부남과 만나고 있다. 연락도 잘 없고 언어도 좀 안 맞지만 열렬히 그를 사랑한다. 내 삶에서 그 사람보다 중요한 것은 없다. 내 시간들은 오롯이 그에게 바치는 시간이어야 한다. 나의 존재는 그의 몸을 가졌을 때 비로소 의미를 지닌다. 그와 떨어져 있는 이 순간에도 나는 내 사랑에 열정을 다한다. 그럼에도 그의 연락은 갈수록 뜸해지고 있다. 이제 내가 싫어서일까. 아니면 입장이 곤란해서일까. 사랑하는 마음 외에 버렸던 것들이 어느덧 제자리를 찾아간다.


사랑에 막 눈을 뜬 사람처럼 안절부절하며 벅차오르는 감정들을 두서없이 작성한 일기장의 느낌이다. 사실 한국에서는 유부녀의 바람난 이야기가 그리 매혹적이거나 끌릴만한 서사는 아니다. 아직까지는 한국의 정서적인 이유도 있고 하니까. 그런데 이 책은 금지된 사랑을 다루고 있음에도 전혀 불편한 기분이 안 든다. 사랑에 흠뻑 젖은 주인공 시점으로만 썼기 때문에, 그녀의 허리케인 같은 감정 씬 외에는 어떤 것도 개입되지 않고 있다. 그래서 독자들은 그녀의 순수하고 열정적인 사랑에만 집중하게 되는 것이다. 딱 필요한 부분만 조명해주는 일인칭 플롯을 고른 건 탁월한 선택이었다.


금지된 사랑이 위험한 이유는 외부에서 오는 방해가 아니라 스스로를 갉아먹어 피폐하게 만드는 내부의 요인이 더 크다. 내가 사라져가는 그 감정, 겪어본 사람은 무슨 말인지 잘 알 거다. 사랑은 서로의 눈높이가 같을 때에 유지된다. 그런데 자신을 너무 낮추고 상대를 높게 여기면 그건 사랑이 아니라 동경이 돼버린다. 그런 상황에 중독되면 주인공처럼 자존감이 바닥을 치게 되므로 일상생활마저 불가해진다. 사랑 외에 다 갖다 버린 그녀가 기댄 곳은 글을 쓰는 행위였다. 그가 읽어주길 바람도 아니고, 자신의 슬픔을 달래기 위함도 아니었다. 대상도 목적도 없는 말 그대로 기록용 글쓰기를 하는 그녀, 그리고 책 밖에서 같은 글을 쓰는 아니 여사님.


살면서 겪었던 일들과 경험으로 작품을 쓴다고 유명한 작가더라. 자신의 성장과정이 모티프인 모든 작품은 자전소설이나 마찬가지이고, 이 책의 주인공도 작가를 그대로 빼다 박았다. 이 작품으로 자신의 불륜을 만천하에 공개한 셈인데, 그녀는 커다란 손실보다 작은 이익을 택하였다는 점이 아이러니하다. 아니 에르노는 자신의 글이 ‘문학다움‘에 미치지 못한다는 것을 인정하고 있다. 그러나 남들이 알아주지 않는 자신의 방식이 문학에 어떤 진보를 가져다줄 것을 예견하지 않았나 싶다. 사실은 나도 이 책에 어떤 깊이와 멋스러움이나 문학성을 발견하지는 못했는데 의도를 알고 나니 작가의 글쓰기 철학에 존경심이 생겼다. 이런 걸 보면 예술의 기준은 종이 한 장에 불과한 것이 맞나 보다.


나는 이 책을 한 여인의 이야기보다 자신을 알아가는 글쓰기 쪽에 더 흥미를 갖고 읽었다. 작품 해설에는 자아의 상실을 다룬 책이며, 주인공과 작가가 글쓰기를 통하여 자아를 재확립하는 것으로 설명했다. 그 말에 나는 작가가 성냥개비 같은 사람이라고 생각되었다. 온몸을 다 태워서 불을 밝히고 이어 조용하게 사그라드는. 온갖 풍파를 겪어온 그녀에게 단순했던 것은 사랑하는 것과 글을 쓰는 행위뿐이였을지도 모르겠다. 아무튼 내가 건조한 문체를 안 좋아해서 별점은 높게 못 주지만 꽤 신선하게 읽었다. ‘소설에 대한 전쟁 선포‘를 했다던데 과연 그에 맞는 개성을 보여주었고, 이내 다른 작품들도 읽고 싶어졌다. 그녀가 자부하는 ‘문학다움에 미치지 못하는 글‘이 가진 개성과 위력을 알게 된다면 현대의 문학도 한걸음 더 진보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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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파랑 2021-07-12 00:22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아니 에르노의 자전적 소설이라는 배경을 알고 읽어서였는지, 읽는 내내 생생했던 기억이 나네요 😀
이 책 읽고나서 ‘역시 프랑스는 다르군‘ 이런 생각도 들고 ㅎㅎ

물감 2021-07-12 00:23   좋아요 2 | URL
이제 저도 그녀의 작품들을 다르게 생각하며 읽을 것 같아요🙂 어쩐지 프랑스 여성들은 다 멋있을 것만 같은 환상이...ㅎㅎ

나비종 2021-07-22 23: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첫 문장부터 공감합니다!ㅋㅋ 계곡물 속에 담근 자신의 다리를 보는 상황 비슷하지 않을까요. 누구에게나 스스로 내려다보는 다리는 실제보다 더 커보이고 떠올라 보이잖아요. 그래도 보편성에 의한 공감도 못지 않게 영향력이 크니 독특한 해석과 문체만 연마한다면 충분히 가능하시다고 봅니다만~^^
확실히 직접 경험한 감정이 담긴 문장은 디테일이 살아있는 듯한 느낌을 줘요.
예술가의 혼.. 우리 마음속에는 누구에게나 그런 영역이 존재하는 걸까요.
문학이 대중에게 인정받지 못하는 예술 분야라는 말씀에 공감합니다. 아마도 이해하는 데 걸리는 시간이 오래 걸려서 그런 걸지도 모르겠습니다. 모든 예술에 개인적인 해석의 차이가 존재하는 건 당연하다치더라도 미술 작품은 보자마자 짠! 음악 작품은 대개 몇 분 정도이고 영화나 연극도 몇 시간이긴 하지만 이건 시각적인 요소도 가미되니 흡수가 빠르겠죠. 그림책이 아닌 다음에야 저에게는 문학 작품이 가장 오래 걸리더군요.
확실히 아니 에르노의 글은 독특한 형식을 취한 작품이었습니다. 조개껍데기를 전부 발라버린 바지락국을 후루룩 마신 기분이랄까요.ㅎㅎ

일기장 느낌. 딱이예요~!ㅎ 예. 저도 마음이 불편하지 않더라구요. 1인칭 시점의 서술 방식이 가장 적절한 형식이었다는 물감님 말씀에 공감합니다. 핀 조명을 받으며 독백을 하는 무대 위 주인공을 보는 듯했거든요.

금지된 사랑이 스스로를 피폐하게 만든다는 말씀에 공감합니다. 사회적인 검열 이전에 자기 검열이 무의식적으로 존재한다고 생각해요. 다만 그 과정을 외면하느냐 직시하느냐의 차이겠죠.
사랑도 대화와 마찬가지라고 생각해요. 일방적이면 외롭거나 괴롭다는 점에서요.^^

그게 과연 커다란 손실이었을까 생각했어요. 글은 사람들의 비난보다 오래 남으니까요. 그녀가 죽은 이후까지도요. 거시적인 안목으로 커밍아웃을 하신 아니 여사님!^^
그녀의 글을 보고, 작가 스스로 인정한 ‘문학답지 못함‘을 보면서 과연 ‘다움‘의 정의가 무엇일까 생각했어요. 사람들이 정해놓은 틀에 너무 얽매이는 것이 아닌가 하구요. 장르란 처음부터 정해진 것은 아니었을 텐데, 표현하는 모든 문학 작품의 범주를 단지 편의상 묶어놓은 것 뿐일 텐데 말이죠. 제가 내린 결론은 이거예요. 예술가는 스스로의 작품에 자존감을 가져야 한다는 거요.ㅋㅋ 천상천하유아독존 마인드로 내가 제일 잘 나가 포스를 고수하는 게 중요한 것 같아요~ㅎ

저는 숯같은 사람이라고 생각했어요. 본인은 이미 탔지만, 다시 불타서 승화되어 주변에 영향을 주는 그런 ㅋㅋ 문장 문장에서 숯의 뜨거움이 느껴졌거든요.
현대는 다양성의 시대이므로 물감님도 물감님 글의 장르를 한 번 개척해보시는 것이 어떠신지요?대까물...이라든지(대놓고 까는 물감의 장르물...)^^;;==33

물감 2021-08-06 15:59   좋아요 2 | URL
ㅎㅎㅎ나비종님은 정말 비유의 달인이십니다. 아니여사의 책을 읽고나니까 리뷰도 ‘문학다움에 미치지 않는 문학‘에 포함되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비록 작가 타이틀이 없고, 책을 내지 않았어도, 예술가의 혼과 인생의 경험이 담긴 리뷰를 쓴다면 그 사람도 예술가이고 문학인 아닐까요^^

책을 안 읽는 이들에게 문학은 지루함의 대상이고, 비문학만 읽는 이들에겐 시간낭비의 대상인듯 해요. 문학이 주는 기쁨도 느끼기 힘든데다 그게 뭐 밥 먹여주지는 않으니까요. 가뜩이나 성미 급하고 시간없는 한국인에게 예술 자체가 크게 중요하지 않을지도 모르겠어요...ㅎㅎ

중반까지는 뭐 이런 내용을 책으로까지 냈을까,하면서 읽었는데요. 일인칭시점이 아니었으면 작가의 의도를 전혀 모른채 껍데기만 바라보았을 거 같아요. 대단한 작가입니다ㅎㅎㅎ

시간이 지날수록 빛을 발하고 가치를 가지는 것들이 있죠. 어쩌면 아니 여사의 글들도 그렇지 않나 생각해요~ 지금 시대에 와서 레트로가 다시 유행하는걸 보면, 모든 분야의 장르는 크게 중요하지도 않아보여요. 그래서 말씀하신대로 자존감을 가져야만 해요🙂

숯같은 사람이라... 어쩐지 성냥개비보다 불쌍한데요? 죽어서까지 제몸을 불사르는 운명같은것이...ㅎㅎ 그것이 작가의 열정일수도 있겠습니다^^

제가 생각하는 글은요, 어떤 유형이든 눈에 착 감기는, 소위 글맛이 있는 글을 쓰려고 합니다. 딱딱하지 않고 통통 튀는 글을 써서 어린 친구들도 쉽게 읽고 이해시키는 게 저의 목적이랄까요? 그게 잔인한 혹평이라도요ㅋㅋㅋ

진짜 날이 느므느므 듭네요... 이러다 몸이 액체되어 흘러내릴듯요ㅜㅜ 건강 조심하시고요, 다음 선정도서로 인사드릴게요ㅋㅋㅋ

scott 2021-08-06 15:44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물감님 에르노 여사님이 용돈 주쉼 ㅎㅎ

이달의 당선 축 👆

물감 2021-08-06 17:13   좋아요 2 | URL
고맙습니다 ㅎㅎ 알라딘은 영원하라~~~

초딩 2021-08-06 17:5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물감님
축하드려요 ^^

물감 2021-08-06 21:32   좋아요 0 | URL
축하 고맙습니다. 나이스한 8월이 되시길🙂

이하라 2021-08-06 18:0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달의 당선작 축하드립니다^^

물감 2021-08-06 21:34   좋아요 0 | URL
이하라님 고맙습니다ㅎㅎ
아름다운 밤이에요~~~!

thkang1001 2021-08-06 18:1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물감님! 이달의 당선작 축하드립니다!

물감 2021-08-06 21:36   좋아요 0 | URL
고맙습니다ㅎㅎ
8월도 부지런히 달려봐요!

서니데이 2021-08-06 18:4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달의 당선작 축하드립니다.^^

물감 2021-08-06 21:38   좋아요 1 | URL
고맙습니다! 당선작 발표일마다 가장 바쁘신 서니데이님께 이 영광을!

새파랑 2021-08-06 18:58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물감님 완전 축하드려요 별 3개 주신 작품을 당선시키는 이 필력이란 👍👍

물감 2021-08-06 21:40   좋아요 2 | URL
ㅎㅎㅎ그르게요. 보통 별4개는 되야 베스트 리뷰 주던데, 저도 의아합니다^^; 8월도 열심히 버닝하세요!

황후화 2021-08-06 19:23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물감님 이달의 당선작 축하드려요 ~~

물감 2021-08-06 21:43   좋아요 2 | URL
황후화님 감사합니다🙂🙂🙂
8월도 즐독하시고 건강하세요!

강나루 2021-08-06 20:09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물감님, 당선 축하,축하, 축하드려요.

물감 2021-08-06 21:45   좋아요 2 | URL
연속으로 당선되다니, 올해는 운이 좋은가봐요ㅎㅎ고맙습니다. 강나루님의 독서를 응원합니다😀
 
진이, 지니
정유정 지음 / 은행나무 / 201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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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를 비평 위주로 쓰다 보니 칭찬에는 인색하고 불평불만이 가득한 인간으로 종종 오해받지만 나님은 따듯한 도시 남자임을 밝혀둔다. 일단 누구한테 잘 보이려고 쓰는 것도 아니거니와 많고 많은 칭찬 리뷰를 나까지 쓸 필요가 있나 싶을 뿐. 어떤 책이든 대부분의 리뷰가 복사/붙여넣기 한 것처럼 비슷한 내용에 글도 참 재미없게 써서 눈에 촥 감기는 맛이 하나도 없다. 그런 게 싫었던 나는 최대한 남들과 겹치지 않는 리뷰를 써야 했고 그 해답을 비평에서 찾아냈다. 그저 ‘좋아요‘밖에 모르는 독자들에 대한 반발심도 한몫했는데 아무튼 난 따도남이다. 오랜만에 애정 작가인 정유정의 책을 읽었는데 어머나, 내가 이 분을 까게 될 줄은 생각지도 못했네. 유야호~


정신을 차렸을 땐 그녀의 몸은 보노보가 되어있었다. 아마 교통사고가 나면서 안고 있던 보노보의 몸으로 영혼이 옮겨진듯하다. 그녀는 사고 목격자를 통해 육체가 있는 응급실로 이동한다. 막상 반송장이 된 제 몸을 확인하자 멘붕이 온 그녀는 몸을 되찾기가 망설여진다. 인간으로 돌아가면 곧 죽을 것이고 보노보로 살자니 인간이길 포기해야 한다. 육체의 생명은 꺼져가고, 영혼은 보노보에 동화되어가는 야속한 상황. 하늘이여, 뭐 이런 X같은 시련을 주셨나이까...


오랜 시간을 흑마법사로 지내온 작가는 어떤 사고의 전환이 필요했던 것 같다. 구상 중인 작품이 있었는데 갑자기 떠오른 옛 기억, 중환자실에서 모친 곁을 지키며 느꼈던 것을 정리하다 보니 이 책을 먼저 쓰게 되었단다. 작가의 말을 통해 어째서 보노보 소설이 탄생했는지 알 수 있었는데 동물까지 동원하여 인간의 심연을 연구하는 작가의 태도와 열정에 박수를 안 보낼 수가 없다. 하지만 다른 때보다 준비기간이 짧았는지 곳곳에 부실공사 흔적이 가득했다. 아무리 전작들과 성격이 달라도 그렇지, 아픔을 담담하게 풀어내던 절제의 미학은 다 어디 가고 이렇게 감정에만 치우친 글을 쓰다니. 무엇보다 동물과의 정신 결합 설정은 작가의 스타일과 안 맞는다고 생각한다. 이 분은 상상력이 아닌 조사와 취재를 바탕으로 해서 작품에 녹여내는 타입이기 때문이다. 직선만 쓰던 사람이 곡선을 쓰려다 보니 어색해질 수밖에.


화두는 많은데 파악은 잘 안되고, 재미는 있는데 대중성은 없는 난해한 작품이다. 엔터테인먼트와 작가주의를 다 가져갈 거면 진지함과 가벼움의 비율을 제대로 나눠야 한다. 전반적으로 진지하다가 가끔 가볍게 환기를 시켜주던지, 아니면 가볍게 쭉 가다가 한 번씩 진지모드로 브레이크를 걸어주던지. 그 비율을 신경 쓰지 않으면 이렇게 작품 성격이 불분명해진다. 이외에도 문제는 많았는데 특히 작가 특유의 속도감이 영 효과를 발휘하지 못한 부분. 특정 장면에서 길게 머무르다 보니 진도가 드럽게 안 나간다. 문체도 시원시원하고 가독성도 좋은데 드럽게 답답하다. 이 경우는 한국인의 고질병을 논하기보다 작가의 스타일이 바뀐 탓을 하는 게 맞다. 작중 상황이 상황인지라 멘붕오는건 알겠는데 계속 거기에만 꽂혀있으면 우야꼬. 역시 정유정이라며 다들 치켜세우던데 내 눈에는 작가의 매력 발산이 절반도 안돼 보였다. 정유정의 네임밸류는 절대 이 정도가 아니란 말이다.


단순히 몸 찾는 내용만으론 보여줄 게 없으므로 주인공이 보노보와 동화되는 과정에 분량을 채워 넣었다. 두 의식이 교차하며 몸의 주인이 되는데, 보노보에게 몸을 내어줄 때마다 그녀는 보노보의 감각을 인지하고 정보도 파악하게끔 변화한다. 그리고 보노보의 기억을 더듬어서 이 친구가 어쩌다 한국까지 오게 되었고 어떤 고통을 겪어왔는지도 알게 된다. 또한 자신과 이 친구가 구면이라는 사실도 깨닫는다. 콩고에서 밀렵꾼에게 잡혀있던 이 친구를 구하지 않고 도망쳤던 그녀는 죄책감으로 사육사를 그만둘 생각이었다. 그때 외면했던 보노보를 이런 식으로 재회하게 될 줄 누가 알았으랴. 결국 이 작품도 현대판 <죄와 벌>인 셈이다. 이 인과응보의 플롯은 오늘날 다양한 형태로 재탄생되었는데 그중에서 <진이, 지니>는 매우 신선한 작품에 속한다. 죄의 대가를 지불하는 내용이 주제를 다 가린다는 것만 빼면 베스트가 될 수도 있었는데.


사육사로서 자격 미달로 벌받는 건 알겠는데 당장 문제는 그게 아니지 않나. 평생을 보노보로 살지 말지가 더 급선무일 텐데, 계속 보노보 사연에 집중하느라 본인의 처지는 잊어버리고 있다. 동화된 다음 사건을 역으로 보여주고 자신의 죄를 마주하는 연출은 좋았으나 이쯤 되니 그녀의 개인사는 그닥 중요치 않게 돼버린다. 주인공의 목표가 흐려진다는 건 매우 심각한 일인데 작가는 계속 보노보에게만 감정을 쏟아내고 있다. 어느덧 작가가 대중성은 포기하고 작가주의로 가려하고 있었다. 처음부터 그랬으면 좋았을 텐데 참. 끝자락에 이르러서야 그녀는 제 문제의 심각성을 생각하고 고뇌에 빠진다. 그 고뇌를 작품 내내 다루었어야지, 이제 와서 부랴부랴 말해봤자 흥미도 없어진지 오래이고 감정이입도 되지 않는다. 차라리 보노보를 콩고로 무사히 돌려보내는 게 목표였다면 어땠을까 싶다. 스토리도 엉켰으니 대중소설도 아니고, 주제가 전혀 부각되지 않으니 작가주의 소설도 아닌 이것은 제3의 장르입니까?


문제를 마주하고도 행동 하지 않으면 잘못된 것. 이것이 내가 느낀 작품의 주제이다. 주인공 이진이는 보노보의 구조 신호를 무시했고 사육사를 그만둘 정도로 힘들어했다. 사고 목격자 김민주는 해병대 어르신의 구조 신호를 무시했고 그 죽음을 제 탓으로 돌리며 괴로워했다. 이제 두 사람은 피해서 해결될 문제 따윈 없다는 걸 안다. 결과가 죽음뿐이어도 이진이는 제 몸으로 돌아갔고, 아무런 득이 없어도 김민주는 끝까지 그녀를 도와주었다. 그녀가 행동하지 않으면 보노보를 두 번 죽이는 꼴이었고, 그가 행동하지 않으면 그녀를 두 번 죽게 하는 셈이었다. 나로 인해 누군가가 괴롭지 않으려면, 또다시 트라우마에 갇히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보여준 두 남녀. 다소 급마무리한 느낌이었지만 엔딩은 좋았으니까 넘어가기로 한다. 나는 따도남이니깐.


정유정은 좀처럼 비평할 기회가 없는 작가라 이참에 쓴소리를 아낌없이 쏟아부었다. 좋아하는 분이고 기대치가 높았던 만큼 더 많은 피드백을 해주고 싶지만 이쯤 하련다. 솔직히 잘 나가는 작가들은 그만한 이유도 있겠지만 극성팬들 때문에 본인의 문제점을 몰라서 보완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니까 작가님들은 제게 연락 주십쇼. 매운맛이든 순한맛이든 원하시는 대로 도와드릴 자신 있습니다. 약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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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파랑 2021-07-04 17:35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물감님의 이런 묵직한 리뷰 너무 좋은거 같아요~!! 사실 국내작품을 그렇게 즐겨읽지는 않아서 뭐라고 답을 못하겠지만 애정작가라고 하시니 찾아 읽어보고 싶네요 ^^

물감 2021-07-04 18:45   좋아요 3 | URL
오 새파랑님도 꼭 읽어보길 권합니다. (7년의 밤) 추천해요ㅎㅎ

페크pek0501 2021-07-07 12:43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너무 잘 나가는 정유정 작가의 책은 좀 까도 됩니다. 다 좋을 순 없잖아요.
그런데 첫 책을 낸 아마추어 작가의 책을 까는 건 저로선 인색하단 느낌이 들더라고요.
첫 책의 저자에겐 응원과 격려를,
이미 베스트셀러 저자에겐 아쉬운 점을 지적해 주면 고마워 할 것 같습니다.(저의 개인적인 생각임.)

물감 2021-07-07 13:01   좋아요 2 | URL
오 저도 공감합니다. 저는 신입작가의 책이나 기존작가의 처음 읽은 책은 그래도 유순하게 보려는 편이에요. 진짜 아니다 싶은것만 제외하면요🙂 이번 리뷰에 적었듯이 좋은 평만 가득한 경우는... 암튼 그렇습니다ㅎㅎ
 
이만큼 가까이 - 제7회 창비장편소설상 수상작
정세랑 지음 / 창비 / 2014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코로나 이전에도 나는 4인 이상 모이기를 꺼려 했다. 사공이 많으면 피곤도 하거니와 알맹이 없는 가벼운 대화만 하게 되는 게 싫었다. 아니, 가벼운 게 싫다기보다 진지함이 없는 관계가 싫은 것이지. 근데 그런 사이들은 알아서 다 떨어져 나가더라. 허무한 인간관계가 씁쓸하기는커녕 오히려 집중할 대상이 줄어드니 편했다. 아끼는 사람만 챙기면 되니까 시간도 절약하고 에너지 낭비도 막을 수 있었다. 그렇게 걸러지고 남은 인맥들은 오랜만에 만나도 편안하고 늘상 대화가 즐겁다. 이처럼 몸은 멀리 있어도 마음은 가까이에 있는 친구들을 주제로 하여 수상까지 한 작품을 읽었다. 완성도, 작품성, 대중성 중 어느 것도 빼어난 게 없는데 수상이라니 영 납득이 안 되지만 이런 경우가 어디 한두 번이라야 말이지. 만약에 청소년문학상이었다면 그러려니 하고 넘겼을지도 모르겠다. 


아직 시골 모습이던 파주시에서 학창시절을 보낸 고딩들의 이야기. 이만 줄거리는 생략한다. 놀 거리가 많지 않았던 과거에는 확실히 친구를 만나는 횟수가 많았다. 하릴없이 동네를 쏘다니고, 남의 학교 운동장을 어슬렁거리고, 졸업앨범을 구경하러 친구네 놀러 가고, 가까운 산에 올라 동네 구경하고 그랬다. 그냥 친구들과 보내는 시간 자체가 좋았던 것 같다. 이 책 속의 친구들도 마찬가지이다. 특별한 일 없이 하루하루를 보통 날로 보내고 있지만 개성 있는 절친들 덕분에 무료하지도 지루하지도 않은 것이다. 학업으로 스트레스를 받고, 진로 때문에 고민을 하고, 외모 콤플렉스로 힘들어하는 등 학생이라면 누구나 겪는 평범한 일상과 감정들을 담담하게 기록한 소설이다. 이토록 평범한 작품이 대체 어떻게 수상작으로 뽑혔을까나. 이 책은 미스터리 소설이 분명하다.


확실히 정세랑의 글은 명랑명랑하다. 이렇게 본인만의 탁월한 색깔이 있고 매력을 잘 가꿀 줄 아는 작가가 은근히 보기 어렵다. 어떤 작품이든 읽다 보면 비슷한 유형의 작가나 작품이 연상되는데 정세랑의 작품은 그런 게 없다. 이것은 양날의 검과도 같아서 독보적이라는 명성을 얻기도 하고 고만고만하다는 낙인이 찍히기도 한다. 이 작가는 얼마든지 우물 밖으로 나올 수 있는 사람인데 왜 우물 안 개구리를 자처하는 건지 모르겠다. 소설가는 자신의 주 종목만 잘하면 그만인 운동선수가 아닌데 말이다. 혹여 작가가 지금의 스타일을 고집하겠다면 본인의 장점을 베이스에 사용하기보다 히든카드로 썼으면 한다. 그렇게만 해도 스타일에 큰 변화와 확장을 가져올 것이다. 아직은 한가지 캐릭터밖에 연기할 줄 모르는 배우처럼 느껴진다. 어떤 작품을 내놔도 찬양하는 팬들로 인해 타성에 젖지 말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그럼 작품을 분석해보자. 이 책은 메인 사건도, 주요 인물도 없다. 고등학생들의 평범한 일상을 차례차례 소개하는 게 전부이다. 큼직한 에피소드가 없어 옴니버스 구성이라 볼 수도 없다. 그냥 여고생의 일기장을 들여다본 듯한 기분이랄까. 정체성을 알 수 없는 이 작품이 수상작에 뽑힌 건 어떤 이유가 있으리라 생각하지만 아무리 봐도 평범하기만 하다. 일단 사건이랄 게 없으니 개성 있는 인물들의 티키타카 또는 케미스트리 쪽으로 방향을 잡았다. 패션 취향이 확고하고 남들 시선에 아랑곳하지 않는 친구. 인기 많은 남학생을 짝사랑하느라 맘 고생하는 친구. 딱딱한 가정에서 자라나 표현과 소통이 서툰 친구 등등. 지금도 주위에서 쉽게 볼 수 있는 학생들의 모습이고 누구나 공감할 흔한 감정들을 말하고 있다. 평범한 내용도 얼마든지 풍성하게 만들 수 있을 텐데 작가는 일기장 같은 형식으로 저텐션을 유지하였다. 그래서인지 학창시절을 떠올리며 몰입했다기보다 아무런 감흥도 없이 무심하게 읽혔다. 정말로 글만 명랑했다.


졸업한 친구들은 전부 흩어진다. 대학을 가고 취직을 하고 해외를 가고 이사를 간다. 가끔은 따로 만나기도 하고 모두 모이기도 하면서 방전된 에너지를 충전한다. 이들은 사랑에 실패하고, 직장을 옮기고, 회의감도 느끼는 등 세상을 저마다의 방식으로 적응해나간다. 힘든 세상에 이리저리 부딪혀보며 청소년의 탈을 벗고서 어른이 되어가는 성장 드라마. 작품의 정체성은 그렇다 쳐도 수상할만한 관전 포인트는 여전히 못 찾겠다. 똑같은 말을 반복해서 미안하지만 정말 납득이 안되어서 그렇다. 그래도 수상작 타이틀만 빼면 썩 나쁘지 않았던 타 작품들에 비해 이 책은... 아직도 할 말이 많은데 더 썼다간 작가의 팬들이 가만있지 않을 듯싶다. 기호 1번 국민작가 정세랑을 뽑아주십쇼, 여러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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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파랑 2021-06-27 23:36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왠지 기대가 큰 만큼 실망하신게 느껴지네요 ㅜㅜ 정세랑 작가님 인기가 많으신 거 같은데 저는 아직 안읽어봐서읽어보고 싶은데 딴 책을 읽어봐야 겠네요~!

물감 2021-06-27 23:54   좋아요 2 | URL
정세랑 작가의 책을 몇 권 읽어본 바, 한 2프로 부족한 느낌의 문장을 즐겨쓰는 타입같더라고요. 저도 다른 책을 읽어봐야겠어요!

han22598 2021-06-28 00:43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저도 이 책 별로였어요 ..그래서 정세랑 작가에 관심이 제로였다가 보건교사 안은영 읽고 좋아하게
되었어요 ㅎㅎㅎ

물감 2021-06-28 07:11   좋아요 2 | URL
정말 꾸역꾸역 읽었네요..ㅎㅎ
안은영은 이거보단 낫겠죠 모...

Falstaff 2021-06-28 10:10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윽. 물감 님하고 자꾸 의견이 겹쳐서.... 이거, 얘기하기 좀 민망하네요. 고의는 아니지만 말입니다.

전 유명세에 따른 계급장 떼고 <호밀밭...>하고 맞짱 한 번 붙여봤으면, 조건은 우리나라 독자들에게만, 이라고 생각했었는데요. 물론 이긴다는 얘기는 아니고요, 승부는 될 거 같아서 말입죠.

ㅋㅋㅋㅋ 재미있습니다.

물감 2021-06-28 09:57   좋아요 3 | URL
의견이 겹친다니 참 영광입니다 ㅋㅋㅋㅋㅋㅋㅋ

계급장 떼고 붙게 해야한다는 생각은 저조차도 머릿속에서 끄집어내지 못할 말인데, 역시 고수님들은 다르단 걸 느꼈습니다ㅋㅋㅋㅋㅋ솔직히 호밀밭은 레베루가 너무 다르지 않나 싶다가도 한국의 팬덤이라면, 하는 상상을 해봤습니다...하핳

그보다 이 작가는 아직 국내용이라는 생각이 계속 드네요.
좀만 더하면 국외에서도 먹혀들거 같은데 말이죠~
여튼 힘나는 댓글 감사합니다 ㅋㅋㅋㅋㅋㅋㅋㅋ

잠자냥 2021-06-28 11:10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ㅋㅋㅋㅋㅋㅋ 시원하네요.

˝완성도, 작품성, 대중성 중 어느 것도 빼어난 게 없는데 수상이라니 영 납득이 안 되지만 이런 경우가 어디 한두 번이라야 말이지. ˝ ˝이 책은 미스터리 소설이 분명하다.˝ ㅋㅋㅋ 여러 번 빵빵 터집니다.

제가 그 수많은 팬들이 열화와 같은 찬사에도 불구하고 아직 여태 정세랑 작품을 1도 안 읽은 것이 왠지 다행이라는 생각이 드네요. 앞으로도 일단 이 작가 작품은 보류해 봅니다.ㅎㅎㅎ

물감 2021-06-28 11:55   좋아요 1 | URL
왜 그런거 있죠, 주변서 너무 극성이라 오히려 반감사는거요...ㅋㅋㅋ
저도 전혀 끌리지는 않았는데 회사에 있길래 함 읽어봤어요. 또 수상작이라니까 괜히 궁금해져서ㅋㅋㅋ

이 책만 본다면 정세랑은 정말 거품작가나 다름없습니다. 그러고보니 귀여니 작가가 생각나네요... 파급력 면에서요ㅋ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