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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만큼 가까이 - 제7회 창비장편소설상 수상작
정세랑 지음 / 창비 / 2014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코로나 이전에도 나는 4인 이상 모이기를 꺼려 했다. 사공이 많으면 피곤도 하거니와 알맹이 없는 가벼운 대화만 하게 되는 게 싫었다. 아니, 가벼운 게 싫다기보다 진지함이 없는 관계가 싫은 것이지. 근데 그런 사이들은 알아서 다 떨어져 나가더라. 허무한 인간관계가 씁쓸하기는커녕 오히려 집중할 대상이 줄어드니 편했다. 아끼는 사람만 챙기면 되니까 시간도 절약하고 에너지 낭비도 막을 수 있었다. 그렇게 걸러지고 남은 인맥들은 오랜만에 만나도 편안하고 늘상 대화가 즐겁다. 이처럼 몸은 멀리 있어도 마음은 가까이에 있는 친구들을 주제로 하여 수상까지 한 작품을 읽었다. 완성도, 작품성, 대중성 중 어느 것도 빼어난 게 없는데 수상이라니 영 납득이 안 되지만 이런 경우가 어디 한두 번이라야 말이지. 만약에 청소년문학상이었다면 그러려니 하고 넘겼을지도 모르겠다.
아직 시골 모습이던 파주시에서 학창시절을 보낸 고딩들의 이야기. 이만 줄거리는 생략한다. 놀 거리가 많지 않았던 과거에는 확실히 친구를 만나는 횟수가 많았다. 하릴없이 동네를 쏘다니고, 남의 학교 운동장을 어슬렁거리고, 졸업앨범을 구경하러 친구네 놀러 가고, 가까운 산에 올라 동네 구경하고 그랬다. 그냥 친구들과 보내는 시간 자체가 좋았던 것 같다. 이 책 속의 친구들도 마찬가지이다. 특별한 일 없이 하루하루를 보통 날로 보내고 있지만 개성 있는 절친들 덕분에 무료하지도 지루하지도 않은 것이다. 학업으로 스트레스를 받고, 진로 때문에 고민을 하고, 외모 콤플렉스로 힘들어하는 등 학생이라면 누구나 겪는 평범한 일상과 감정들을 담담하게 기록한 소설이다. 이토록 평범한 작품이 대체 어떻게 수상작으로 뽑혔을까나. 이 책은 미스터리 소설이 분명하다.
확실히 정세랑의 글은 명랑명랑하다. 이렇게 본인만의 탁월한 색깔이 있고 매력을 잘 가꿀 줄 아는 작가가 은근히 보기 어렵다. 어떤 작품이든 읽다 보면 비슷한 유형의 작가나 작품이 연상되는데 정세랑의 작품은 그런 게 없다. 이것은 양날의 검과도 같아서 독보적이라는 명성을 얻기도 하고 고만고만하다는 낙인이 찍히기도 한다. 이 작가는 얼마든지 우물 밖으로 나올 수 있는 사람인데 왜 우물 안 개구리를 자처하는 건지 모르겠다. 소설가는 자신의 주 종목만 잘하면 그만인 운동선수가 아닌데 말이다. 혹여 작가가 지금의 스타일을 고집하겠다면 본인의 장점을 베이스에 사용하기보다 히든카드로 썼으면 한다. 그렇게만 해도 스타일에 큰 변화와 확장을 가져올 것이다. 아직은 한가지 캐릭터밖에 연기할 줄 모르는 배우처럼 느껴진다. 어떤 작품을 내놔도 찬양하는 팬들로 인해 타성에 젖지 말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그럼 작품을 분석해보자. 이 책은 메인 사건도, 주요 인물도 없다. 고등학생들의 평범한 일상을 차례차례 소개하는 게 전부이다. 큼직한 에피소드가 없어 옴니버스 구성이라 볼 수도 없다. 그냥 여고생의 일기장을 들여다본 듯한 기분이랄까. 정체성을 알 수 없는 이 작품이 수상작에 뽑힌 건 어떤 이유가 있으리라 생각하지만 아무리 봐도 평범하기만 하다. 일단 사건이랄 게 없으니 개성 있는 인물들의 티키타카 또는 케미스트리 쪽으로 방향을 잡았다. 패션 취향이 확고하고 남들 시선에 아랑곳하지 않는 친구. 인기 많은 남학생을 짝사랑하느라 맘 고생하는 친구. 딱딱한 가정에서 자라나 표현과 소통이 서툰 친구 등등. 지금도 주위에서 쉽게 볼 수 있는 학생들의 모습이고 누구나 공감할 흔한 감정들을 말하고 있다. 평범한 내용도 얼마든지 풍성하게 만들 수 있을 텐데 작가는 일기장 같은 형식으로 저텐션을 유지하였다. 그래서인지 학창시절을 떠올리며 몰입했다기보다 아무런 감흥도 없이 무심하게 읽혔다. 정말로 글만 명랑했다.
졸업한 친구들은 전부 흩어진다. 대학을 가고 취직을 하고 해외를 가고 이사를 간다. 가끔은 따로 만나기도 하고 모두 모이기도 하면서 방전된 에너지를 충전한다. 이들은 사랑에 실패하고, 직장을 옮기고, 회의감도 느끼는 등 세상을 저마다의 방식으로 적응해나간다. 힘든 세상에 이리저리 부딪혀보며 청소년의 탈을 벗고서 어른이 되어가는 성장 드라마. 작품의 정체성은 그렇다 쳐도 수상할만한 관전 포인트는 여전히 못 찾겠다. 똑같은 말을 반복해서 미안하지만 정말 납득이 안되어서 그렇다. 그래도 수상작 타이틀만 빼면 썩 나쁘지 않았던 타 작품들에 비해 이 책은... 아직도 할 말이 많은데 더 썼다간 작가의 팬들이 가만있지 않을 듯싶다. 기호 1번 국민작가 정세랑을 뽑아주십쇼, 여러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