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더 이상 우리 종과 "짐승"들 사이에 이전과 같은 경계선을 그을 수 없다. 지능, 감정, 쾌고감수능력快苦感受能力, sentience을 "이성이 없는 짐승들과 구분 짓는 경계로 여길 수 없게 된 것이다. 원숭이, 코끼리, 고래, 개 등 이미 우리와 "유사"하다고 인식하는 종류의 동물과 지능이 없다고들 하는 다른 동물 사이에도 경계선을 그을 수가 없다. 지능은 현실 세계에서 대단히 다양한 흥미로운 형태를 띠며, 인간과는 매우 다른 경로로 진화한 새들도 여러 비슷한 능력을 갖고 있다. - P18

우리는 지적이고 복잡한 지각력을 가진 동물의 삶의 형태를 변형시키고 있다. 이들 동물 각각은 번영하는 삶을 얻기 위해 노력하며, 각각의 동물들에게 어려운 도전을 안기는 세상에서 괜찮은 삶을 얻어낼 수 있는 개별적이고 사회적인 능력을 갖고 있다. 인간은 이런 노력을 좌절시키는 일을 하고 있다. 이는 부당한 행동이다. (1장에서 나는 이런 윤리적 직관을 정의에 대한 기초적인 아이디어로 발전시킬 것이다.) - P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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컨셉 수업 - 번뜩이는 아이디어를 잘 팔리는 비즈니스로 이끄는
호소다 다카히로 지음, 지소연.권희주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2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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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분야, 방식, 규모 등을 막론하고 경쟁에서 우위를 점하는 것이 컨셉의 목표다. 그런 까닭에 컨셉 자체는 물론이고 그 컨셉을 기획, 실행하는 경로를 제시하는 이 책과 저자도 이율배반의 상황에 놓인다. 컨셉은 어떤 소비자들을 만족시켜야 하지만 모든 소비자를 만족시킬 필요는 없고, 그 어떤 소비자들의 명확한 문제이자 해답이어야 하며, 그들이 여태 도출하지 못했지만 바로 납득되어야 한다. 따라서 컨셉은 치밀하면서도 결국은 참신해야 한다.

 

이 책의 순서에 따라 비즈니스 과제를 마주하고 논리적으로 차근차근 생각하면 세상에 내어놓아도 부끄럽지 않은 컨셉을 만들 수 있습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이 책의 내용만으로는 사회에 큰 의미를 가져다줄 컨셉을 작성하기에는 부족합니다. 역설적이지만 프레임워크라는 논리의 힘을 최대한 이용하려면 논리를 뛰어넘는 비정상적인 값이 필요하니까요. -375

다시 말해, 더 퍼스트 테이크는 부담 없이 음악을 즐기고 싶지만, 아티스트의 진심을 느끼고 싶다는 팬들의 욕심 가득한 인사이트에 아주 분명한 답을 내놓은 셈입니다. -147

 

 이 책은 치밀하게 컨셉을 수립하는 방법을 가르쳐주지만, 결정적인 컨셉은 이 치밀한 논리와 구조 이후에 도출되어야 한다는 지적으로 마무리된다. 일종의 자기 부정인 동시에, 지극히 논리적인 귀결이다. 치밀한 컨셉이 논리적인 정량의 영역이라면, 참신한 컨셉은 결정적인 정성의 영역이다. 치밀함이 누적시키는 성취와 참신함이 확산시키는 전환은 서로 비교하는 것이 무의미한 컨셉이다억지로 우열을 가린다면 결정적인 전환을 일으키는 참신한 컨셉이 우위에 놓이겠지만, 치밀한 기반 없이 참신한 첨단만으로 돌파하는 컨셉은 그야말로 논외의 사례다. 극히 드문 까닭이다. 참신한 컨셉을 결국 이룬 그 사람이 치밀함의 자질 역시 함께 갖추었거나 그가 속한 조직이나 구성원이 치밀한 컨셉으로 참신함을 지탱하는 것이 상례다. 이 책이 결국 사회에 큰 의미를 가져다줄 참신한컨셉을 작성하기에는 이것만으로는 부족하다고 자인하기까지 치밀한컨셉을 하나하나 짚어주고 풀어준 이유다.

 

부분에서 전체로 객관에서 주관으로 현실에서 이상으로, 이러한 질문 바꾸기는 모두 평소의 시야에서 벗어나 자신의 관점을 부러 의식하지 않는 한 보지 못하는 각도로 돌리기 위함입니다.

그러나 질문의 재구성이 반드시 일방통행일 필요는 없습니다. 반대 방향으로 바꾸는 것이 더 효과적일 때도 있으니까요. ‘전체에 관한 질문을 생각하다가 너무 막연하다는 느낌이 들 때는 부분에 관한 질문으로 방향을 전환해 봅시다. ‘주관적인 질문을 설정했더니 너무 치우친 아이디어만 떠오른다면, 이번에는 객관적인 질문을 생각해 보세요. ‘이타적인 질문이 위선적인 아이디어만 이끌어낼 때는 이기적인 질문을 떠올리면 됩니다. 렌즈를 교환하여 사진을 찍듯이 양방향으로 관점을 유연하게 바꾸어봅시다. -114

 

 자신이 제시하는 통찰과 기법의 효용성을 구체적, 논리적으로 구축한 후에, 그 한계로 매듭을 짓는 점에서 이 책의 저자가 그 흔해진 호칭인 크리에이티브 디렉터의 본질에 부합한다고 여겼다. 제대로 된 약을 팔고, 제대로 약을 판다는 점 모두에서 그렇다. 이 책은 각 파트들부터 그 파트들이 모인 전체 구성까지, 당장 활용할 수 있는 기법, 요령들을 깊이 있게 제시한 다음, 그것으로는 끝내 채울 수 없는 참신함의 지점으로 결말을 맺는 컨셉이 일관되다.

 

여기서 가치와 컨셉의 차이를 다시 한번 짚어보겠습니다. 당신의 회사·조직·브랜드는 "무엇을 믿고 어떻게 행동하는가?"라는 물음에 답하는 것이 가치입니다. 행동 원칙이나 행동 지침이라고 바꿔 말할 수 있지요. 반면 "앞으로 무엇을 만들고자 하는가?"라는 물음에 답하는 것이 컨셉입니다. -350

 

 컨셉의 논리를 실컷 가르치고서 이것으로 결정적인 컨셉은 도출할 수 없다는 마무리가 잘 보아도 선문답, 나쁘게 보면 기만으로 비칠 수도 있다. 하지만 그 참신한 결정적 컨셉을 위해 결국 그 한 사람, 그가 속한 조직의 치밀한 컨셉이 얼마나 중요한지 깊이 확신한 결과로 보였다. 컨셉이 과제를 돌파할 수 있는 정형적인 논리, 계획, 방향이 항상 중요하지만, 그 과제 이후의 과제를 위한 컨셉은 결국 비정형성을 직시할 수밖에 없다는 이율배반이 이 책의 컨셉이다. 납득하기 쉬운 컨셉보다 납득해야 하는 컨셉을 제시하는 수업이다.

 

 비슷한 범주의 무수한 책 사이에서 이 책을 만난 것은 행운이다. 경제경영, 자기발 범주의 책을 아예 안 읽는다면 모르거니와 읽는다면, 읽어야 한다면 앞으로 이 이상의 책을 찾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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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네요! 푸른 님 이름이랑 구슬 님 이름을 영어로 하면 블루와 마블이니까 부루마블이랑 마찬가지네요. 진짜 신기한 우연이다."
루미가 재밌다는 듯 맞장구를 쳤다. 푸른은 루미의 말을 흘려들으며 구슬을 봤다.
‘구슬 님도 나랑 부루마블을 만들게 될줄은 몰랐겠지? 귀찮은 일을 떠맡아서 기분이 안 좋으려나?‘
그때 푸른과 눈이 마주친 구슬이 활짝 웃었다. 그 미소를 보자 가슴이 설렜다. 푸른은 부푸는 기대를 애써 억눌렀다.
‘김칫국 마시지 말자. 저건 업무용 미소야. 동료를 향한 사심 없는 미소. 예의상 짓는 미소라고. 나랑 일하게 돼서 짜증 난다는 티를 낼 수는 없으니까 억지로 웃는 걸 거야‘
하지만 억지로 웃는다기에는 너무나 밝은 미소였다. 푸른은 무표정한 얼굴로 그 미소를 외면했다. 사실은 기뻤다. 따로 보상도 없고 기한도 촉박한 일을 떠맡게 된 건 귀찮았지만, 그 일을 구슬과 함께 한다고 생각하니 오히려 기대됐다. 그러나 그런 마음을 들키고 싶지는 않았다. 구슬에게도, 다른 사람들에게도. - P89

얼마나 깊게 빠지든 모든 사랑은 지나간다. 지나고 나면 아무것도 아니다. 푸른은 그렇게 생각했다. 오랫동안 그렇게 생각해왔다. - P9

구슬은 익숙한 동작으로 보관대에서 자전거를 빼내어 타더니 금세 멀어졌다. 푸른은 자전거를 타고 가는 구슬의 뒷모습을 사라질 때까지 바라봤다. 사실은 집이 어디인데 걸어가느냐고 물어봐주길 바랐다. 합정역 근처에 있는 회사에서 당산역과 영등포 사이에 있는 집까지 걸어가면 한 시간이 조금 넘게 걸린다. 푸른은 사람으로 꽉 찬 버스나 지하철을 타는 것보다 시간이 좀 걸리더라도 걸어서 가는 것이 좋았다. - P13

"그래, 그럼 평생 이렇게 갇혀 있든가. 나도 시계에 갇혀 있나 이 방에 갇혀 있나 그게 그거야. 시계보단 여기가 낫지. 너랑 나랑 평생 여기서 둘이 살자. 어차피 금방 굶어 죽을 거라 같이 오순도순할 시간이 그리 길진 않겠지만." - P27

"아니, 중요한 건 그 사람이 널 좋아하는지 아닌지에 달렸지. 여자인지 남자인지에 달린 게 아니야. 말도 안 되는 핑계 대지 말고 얼른 전화해! 다시 말하지만 대단한 걸 하라는 게 아니고 전화만 하라니까?" - P28

"모노폴리라는 게 기본적으로 부동산 독점을 바탕으로 만든 게임이잖아요. 부루마블은 모노폴리의 일종이고요. 저는 솔직히 좀 거부감이 들어요. 다들 부동산 가격이 미친 도시에 살면서 집값 때문에 허덕이는데, 부동산 독점 게임을 만들고 즐긴다는 게 별로예요."
구슬은 그동안 이런 비판적인 이야기를 꺼낸 적이 한 번도 없었다. ‘내가 조금 편해지신 걸까?‘ 생각하면서 푸른은 조심스럽게 자신의 의견을 이야기했다. - P4748

"아니에요. 모노폴리는 원래 부동산 독점을 비판하기 위해 만들어진 게임이라고 하잖아요. 그러니까 허무함이 모노폴리 게임의 진짜 정서일 수도 있겠죠. 그런데 잠깐 꾸고 마는 꿈이 정말 의미가 없을까 하는 생각이 들긴 해요. 저한텐 그런 게 의미가 있는 것 같아요."
"꿈이 끝나면 현실로 돌아와도요?"
"글쎄요, 그거랑은 좀 다른 것 같은데…… 저는 꿈이 현실을 바꾸기도 한다고 생각해요. 현재 눈앞에 놓인 상황만 생각하면서 그게 현실이라고 생각하다 보면 체념하게 되는 것 같아요. 저는 그것보다는 내가 원하는것을 꿈꾸고, 그 꿈이 현실이 될 수 있도록 노력하는 쪽이 훨씬 더 좋아요."
푸른은 자기도 모르게 뜨거운 목소리로 자신의 생각을 말해놓고는 민망해져서 머리를 긁적였다. - P4950

"자전거를 타고 전 세계를 도는 거예요. 말도 자전거 모양으로 하고, 도시마다 있는 자전거 타기 좋은 길도 소개하고요. 방금 떠오른 거라 아직 구체적인 건 더 생각해 봐야겠지만, 재밌을 것 같지 않아요?"
푸른의 이야기를 듣고 구슬도 표정이 밝아졌다.
"좋은데요? 자전거를 타고 돌아다니면서 별장이나 호텔을 짓는 대신 공공건축물을 지어도 좋겠어요. 미술관이나 도서관 같은거요. 복지 센터도 좋고요. 도시에 건축물을 지으면 거기에 게임 참여자의 이름이 붙는거죠." - P55

"당신이 정말 좋아." 중얼거리고는 자신의 마음이 그 말로 가득 차서 울리는 것을 느꼈다. ‘당신이 좋아. 정말, 정말로. 당신이 너무 좋아.‘ 더 이상은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푸른은 가만히 누워 구슬을 떠올렸다. 사랑이 편안한 적은 처음이었다. 도망치고 싶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 사랑은 처음이었다. 그저 더 다가가고 싶기만 했다. 더 가까이. 구슬의 곁에 있고 싶다는 생각만 들었다. 지금 이 순간 푸른은 구슬을 그리워하고 있었다. 사랑하고 있었다. - P7071

"저녁 드셔야죠."
구슬이 상자 뚜껑을 덮으며 말했다.
푸른은 감사하다는 말이 툭 튀어나오려는 것을 간신히 참고 담담한 척 고개를 끄덕였다.
"네, 배고프네요. 드시고 싶은 거 있으세요?" - P109

"아니요. 그건 하나도 안 부담스러웠어요. 전혀 부담스럽지 않았어요, 푸른 님 고백."
구슬이 딱 잘라 말했다.
"그러면 그날 왜 그렇게 가신 거예요?"
"생각해보세요. 푸른 님 방 문이 열려 있어서 무심코 안을 봤는데 뻐꾸기는 말하고 있고, 푸른 님은 주사위를 던지고, 침대 위에서 폭죽이 팡팡 터지고. 내가 모르는 이상한 게임이 펼쳐지고 있는데 푸른 님 같으면 거기 계시겠어요? 아무렇지 않게 방으로 들어가서 이게 다 뭐냐고 물어볼 수 있으시냐고요."
"못 물어봤겠죠. 너무 당황하고 놀라서 일단은 밖으로 나갔을 것 같아요."
"저도 그랬어요."
"그랬군요."
두 사람은 어색하게 골목에 서서 고개를 끄덕거렸다. - P119120

"제가 하고 싶어서 시작한 게임은 아니었지만, 중반부터는 제 의지였어요. 지난번에도 말씀드렸지만 저는 겁이 많은 성격이에요. 특히 누군가를 좋아하면 그 사람에게 거부당할까 봐 겁부터 나서 다가가려고 노력하기는커녕 열심히 도망가요. 상처받고 싶지 않아서요. 그런데 게임을 시작하고 나니까 도망가는 게 불가능해졌어요. 어쩔 수 없이 앞으로 나아가야 했죠. 먼저 전화도 하고, 뭘 하자고 이것저것 제안도 하고요. 실은 연락드릴 때마다 거절당할까 봐 두려웠는데 구슬 님은 한 번도 거절하지 않으셨어요. 그리고 전 구슬 님하고 시간을 보내는 게 너무 즐겁고 행복했어요. 너무 행복해서 계속했던 거예요. 항상 도망쳤지만 이번에는 끝까지 가보고 싶어서요." - P121122

"어쩌면 신들이 장난을 친 걸지도 모르겠네요."
신들의 장난. 푸른은 구슬의 말뜻을 금세 알아들었다. 푸른이 구슬에게 고백한 직후에 일부러 ‘고백하기‘가 나오도록 장난을 친 거라면? 그럴 수도 있었다. 충분히 그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 거지 같은 보드게임을 만든 자들이라면. - P123124

"혹시 보드게임 담당 뽑는 주사위 던지기ㅍ했을 때도 구슬 님이 원하는 숫자가 나오게 하셨던 거예요?"
몇 번의 입맞춤 후에 푸른이 구슬에게 물었다.
"네, 푸른 님이 절 좋아하신 것보다 제가 먼저 푸른 님을 좋아했거든요."
"말도 안 돼. 언제부터요?"
"푸른 님을 처음 본 순간부터요."
"그럼 저보다 더 먼저 좋아하신 건 아니네요. 저도 구슬 님을 처음 본 순간부터 반했거든요."
"영광이네요."
"저도 영광이에요." - P1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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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수학 좀 대신 해 줬으면! - SF 작가의 수학 생각
고호관 지음 / 사이언스북스 / 202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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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학에 대해서 떠올릴 수 있는 가벼운 생각들이 참 다양하다는 사실을 이 책에서 배웠다. 언제나 가장 싫어하는 과목이 수학인데도, 읽는 내내 부담스러운 대목은 거의 없었다. 한국에서 적지 않은 사람들이 수학이라는 과목에 특히 부담을 느낀다는 사실을 수학 전문 잡지의 편집장으로 일했던 저자 자신이 누구보다도 잘 아는 덕이 크다고 생각했다.

 

 ‘진정한수학은 사칙연산의 밖이나 그 너머에 있다는 말이 정말로 퍽 참신한 통찰이라고 자신하는 듯한 말을 퍽 자주 듣는다. 날마다 듣는 말이야 당연히 아니지만, 그렇다고 영화 식스센스의 반전보다 더 놀라울 것도 없는 말이다. 그렇다고 해서 이 말이 무의미한 것도 아니며, 틀린 것은 더더욱 아니다. 이미 충분히 원론적인 교훈이 됐을 뿐이다. 게다가 결국 너무나 많은 사람의 삶에서 수학이란 사칙연산 속에서 맴돈다는 괴리까지 있다. 사칙연산의 영역조차 쉽지 않았는데, 정작 수학은 그 너머에 있다는 말을 들었을 때 사칙연산이 아닌 수학의 정체에 호기심이 생길 수도 있지만 애초에 수학은 사칙연산조차도 아닌 신비로운 무엇이라는 오해에 빠져 버릴 수도 있다.

 

 이를테면 진퇴양난이고 앞에 호랑이 뒤에 이리인 셈이다. 사칙연산의 수학 아닌 수학은 익숙하고 지겨우며, 수학다운 수학은 들어봤거나 말거나 나와는 상관없다. 어쨌든 독자의 호기심을 끌어내기 녹록한 조건은 아닌 셈이다. 이 책의 저자는 수학에 관심과 조예가 깊은 저널리스트로서 바로 이런 문제를 충분히 고민한 것으로 보인다. 그가 찾은 해결책은 비교적 신선한 최근의 사례, 혹은 저자 자신의 개인적 경험, 그리고 이 사례나 경험과 연결되는 다양한 수학적 사고의 측면에 있다.

 

2016년 독일 분자 식물 생리학 및 생물물리학 연구소의 제니퍼 뵘(Jennifer Böhm)을 비롯한 연구자 15명은 무려 식물도 수를 세는 능력이 있다는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주인공은 바로 식충 식물인 파리지옥이다. 파리지옥은 먹이가 와서 앉으면 잎을 오므려 붙잡은 뒤 소화액을 분비한다. 쓸데없이 힘을 낭비하지 않고 먹이를 잡기 위해 파리지옥은 곤충이 잎에 몇 번 접촉했는지에 따라 움직인다. 두번 접촉하면 잎을 오므리고 세 번쯤 더 접촉하면 소화액을 분비하기 시작한다. 다섯 번까지는 셀 수 있는 셈이다. -151

 

 그는 이 책에 이미 익숙하고 지겨운 수학 아닌 수학인 사칙연산을 억지로 더 잘할 수 있는 방법이나 그와 관련한 이야기를 넣지 않았다. 그런 까닭에 이 책을 읽고 이런 수학 이야기들이 필요가 없다는 생각이 들 수도 있다. 이런 현대 수학의 연구 성과나 수학적 사고에 관한 지식을 이미 충분히 접한 경우가 아니라면, 오히려 이 책을 계기로 자신이 생각하는 수학이 애초에 무엇이었는지부터 다시 생각해 보는 좋을 기회도 될 것이다.

 

 사칙연산은 진정한수학이 아니라는 말은 우선 고작더하기 빼기를 틀리는 것은 결국 그 문제들이 의도한 수학 자체를 배우고 익히는 능력 자체와는 무관하는 위로의 의미도 없지 않다. 그 수학 자체의 존재를 말하는 것만으로는 더 이상 새롭지도 짜릿하지도 않다는 사실은 이미 언급했다. 진정한 수학이란 무엇일까? 이를테면 필즈상을 받은 허준이 교수를 다루는 뉴스를 볼 때 아주 간신히 접하는 것이 그런 내용이겠지만, 그것만으로는 이 수학과 오히려 멀어지는 이유가 되기 십상이다.

 

재야의 수학자가 대단한 발견을 한다는 판타지는 유혹적이다. 아마 지금도 어딘가에는 기존 수학 이론의 전복을 꿈꾸는 야심 찬 아마추어 수학자가 있을 것이다. 하지만 야심만 너무 커 아집에 빠지게 된다면, 논문은 못 내고 신문에 광고만 내는 사이비 수학자가 되고 말 가능성이 크다. -38~39

 

 그런 까닭에 이 책에 담긴 짧은 수학 이야기들은 더 각별하다. 하나하나가 중요한 사고의 단서를 간명하게 전달하고 있는 덕분이다. 그것이 아무리 수학적이라 해도 어쩌면 너무 소소하거나 당연해 보일지 모른다. 나 한 사람이 기존의 모든 이론 체계를 뒤집을 수 있다는 야심에 내 발상과 이상이 너무 소중하다는 아집까지 더해질 때의 파국을 지적하는 부분도 그중 하나일 수 있다. 그렇지만 모두가 제도와 절차가 아니라고 말할 때 홀로 옳았던 이들의 극적인 사례들에 기대서 모두의 반대를 단지 돌파해야 할 대상으로만 간주하게 되는 왜곡이, 수학에 대한 통념과도 닿아 있다는 사실은 익숙하면서도 예리하다. 어디에나 있는 그 당연하고 소소한 지점들이 수학에서도 예외가 아닌 까닭이다. 누구나 알고 어디에나 있는 점들로부터 가볍게 선을 그어 수학으로 잇는 법을 이 책은 잘 보여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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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대표 마름을 보고 있다. 대마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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