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정리 : 박형숙·홍성식·이경태 기자
사진 : 남소연 기자
동영상 : 문경미 기자
[기사 대체 : 27일 오후 3시 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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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삼성 관련기사 삭제' 이후 편집권 독립을 위해 싸워왔던 <시사저널> 기자들이 27일 <오마이뉴스>가 마련한 방담에 초대돼 지난 1년여 간의 힘겨웠던 투쟁 이야기를 풀어놓고 있다. 사진 오른쪽부터 문정우 전 편집장, 사회자 최광기씨, 주진우 윤무영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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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저널>은 끝났는가? 지난 26일 그러니까 바로 어제, <시사저널> 기자 22명은 서대문구 <시사저널> 사옥 앞에서 '결별 기자회견'을 가졌다. 이들이 들고 나온 플래카드에는 '굿바이 시사저널'라고 씌여 있었다. 동시에 기자들은 새 출발을 선언했다. 무엇이 끝났으며 무엇은 끝나지 않았는가?
27일 <시사저널> 기자들이 모였다. 바로 전날 결별 기자회견을 시작으로 지난 1년여 간의 편집권 독립 투쟁기를 역순으로 복기해 보기로 했다. 형식 탈피, 자유 방담이었다. 사회는 시사모(시사저널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 회원으로, '국민사회자'인 최광기씨가 맡았다. 문정우 전 편집장을 비롯해 윤무영, 안은주, 김은남, 주진우 기자가 참석했다.
최광기: 어제 결별 기자회견 때 마음이 어땠나.
문정우: 힘들고 지겨웠는데 후련했다. 그런데 서명숙 선배(전 편집장)가 와서 기자들을 붙잡고 너무 울어서…. 사실 난 굉장히 후련했는데 생각해보니 슬프더라.
김은남: <시사저널>의 사망을 선포하는 장례식이었다. 가슴이 미어지더라. 자식을 떼어놓고 가는 심정이었다. <시사저널>의 역사가 18년인데 외환위기로 부도가 났을 때 사주는 해외 도피, 그러나 기자들이 1년 8개월 동안 월급도 못받고 지켜낸 자식같은 매체다. 그런데 포기하고 떠나야 하는 구나. 다들 비통한 심정이었다.
안은주: 그저께 밤부터 엄청 울기 시작했다. 기자회견문을 눈물로 쓰고 어제 아침에 너무 일찍 일어나지더라. 오늘은 울지 말아야지 했다. 그래서 집에서 미리 울었다. 회견장에서는 울지 않겠다고 결심했다. 처음부터 끝까지 다른 것은 몰라도 굉장히 <시사저널>의 기자로 일했던 기간이 행복했던 시간이다.
그런 직장인데…, 회사를 그만 두는 게 아니라 젊음과 사랑과 열정을 담았던 것과 이별을 해야 하는 구나 생각하니 눈물이 나오더라. 아침에 나오면서 딸에게 설명했다. 엄마 회사 그만둔다고. 그랬더니 11살 딸의 첫마디가 '뻥' 이더라. 나보다 <시사저널>을 더 좋아한다더니 왜 그만 두나. 그 소리를 들으면서 다시 울었다.
최광기: 주진우 기자가 옆에서 한숨을 쉬고 있는데... 어떤가.
주진우: 아직도 실감이 안난다. 연애를 해본지 오래되어서. 사랑하는 사람과 헤어지는 기분이다. 그 여자는 떠났는데 나는 못보내고 있는 것 같다. 멍하고 생각이 잘 안난다.
윤무영: 기뻤다. 파업을 하면서 혼자서 눈물도 흘리고 가족에게 미안하고, 저희가 월요일에 결별하기로 결정하고 새 길을 나서기로 한 다음에 피로감을 느꼈다. 집에 누웠는데 영화처럼 필름이 지나가더라. 악몽을 꾼 듯하다. 새 희망이 있다. 눈물을 흘리지 말자. 밤을 보내고 아침에 안은주 기자가 올린 '독자에게 보내는 글'을 보고나서 또 눈물을 흘렸다. 주진우 기자는 강한 사람인데 회견장에서 전화를 받는 척하면서 자리를 비웠다. 아마 일부러 피하고 싶어서 그랬을 것이다.
문정우: 나만 매정한 사람됐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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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마이뉴스> 방담에 초대된 시사저널 기자들이 사회자 최광기씨가 내뱉은 "문정우 전 편집장이 단식을 하면 좋았을 텐데.." 짓궂은 농담에 모처럼 다같이 웃었다. 사진 왼쪽부터 문 전 편집장, 안은주 김은남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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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광기: 4계절을 지나왔다. 저 역시 <시사저널>을 가까이서 봐왔는데 단식농성 하고 있던 현장을 잊을 수가 없다.
김은남: 노조 위원장과 사무국장이 했는데 조합원들이 무지막지하게 뜯어 말렸다. 해봐야 몸 상하고 듣지도 않는데 하면서 반대를 했지만 나의 생각은 '1년이라면 끌만큼 끌었다. 최후의 입장을 확인해야 한다. 심상기 회장에게도 마지막 답할 기회를 주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최광기: 심상기 회장 집 앞에서 했는데 한번도 못만났나.
김은남: 아예 집에 들어오지 않았다. 가족도 안오는 걸 보니 어딘가로 피신한 것 같다. 아니 피서인가.
우리 독자들, 시사모 독자 모임이 있는데 가장 기억에 남는 것 같다. 그 중에서도 두 명. 충주에 살면서 하루 하루 힘들게 살아가는 근무 중간에 차로 왔더라. 아이스 박스 들고 왔었나. 단식자들에게 얼린 물을 가지고 왔더라. 약수를 받아서 얼렸다더라. 태권도 사범이 있는데 아이들에게 이런 일이 일어나고 있는데 내가 가서 24시간 기자들을 지키겠다. 밤 11시에 와서 잠 안자고 저희랑 같이 농성장을 지켜주더라.
최광기: 옆에 계신 문정우 기자가 단식을 하면 좋았을 텐데 하하.
문정우: 단식을 한다고 하니 나는 화가 나더라. 심상기 회장을 만났었고 풀어보려고 <시사저널>을 접촉했었다. 이성적으로는 생각할 수 없는 상대다. 참 이상하더라 이 사태가. 조합에서도 심상기 회장이 받아들일만한 조건을 제시했었고 또 드러난 움직임 외에도 이런저런 노력을 했다. 심상기 회장도 그렇게 해결을 하는 것이 좋다고 생각하는 것 같은데 불가항력의 힘이 막고 있는 것 같더라. 실체가 뭔지 모르겠지만. 그래서 '아 안되겠구나' 생각했다.
주진우: 실체는 삼성 아닌가!
최광기: 방송에서는 참, 그대로 말씀하시는게 좋겠습니다 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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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윤무영 기자가 지난 1년여간 힘겨웠던 투쟁기를 복기하자 옆에 주진우 기자는 깊은 생각에 잠겼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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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진우: 저도 단식을 해볼까 생각했는데 그들은 타협이나 얘기할 상대가 아니다. 쓰레기는 치워야지, 쓰레기하고 대화하나?
최광기: 결론 나왔습니다. 쓰레기! 김은남 기자 몸 괜찮나.
김은남: 위원장이 한번 탈진했는데 나는 부모님이 주신 타고난 체력이 있어서 괜찮다.
최광기: '셋방살이 설움'에 대해 말해 보죠. 여기저기 많이 옮겨다니셨죠?
안은주: 언론노조 사무실, 회사앞 천막, 용산 사무실, 방송회관, 심상기 회장 집 앞 단식농성, 다시 목동 방송회관…. 직장폐쇄를 졸지에 당했다. 어떻게 싸울 것인가 논의하기 위해 엠티를 갔는데 직장폐쇄 연락을 받았고 곧바로 차를 돌려서 왔다. 돌아와서 짧은 기자회견을 하고 짐들도 못챙겼다. 11시 통보를 받았는데 1시부터 직장폐쇄를 한다고 해서 서울에 오니 12시가 넘었더라. 30분 여유도 없었다. 당장 급한 짐만 쌌다. 모일 데가 필요한데 회사 앞에 천막 치자! 길거리 생활의 시작이었다. 그 때는 겨울이었다.
문정우: 우리가 초보 노조라 구호도 하나 제대로 못했다. 쟁의 기금도 없었다. 처음 일을 당하니 어떻게 할지를 모르겠더라. 그런데 통장에 돈도 쌓이고 노하우도 쌓이고 여기저기 전전해 오면서 노조가 강해져 온 것이다.
최광기: 여기 <오마이뉴스>, 남의 사무실이기는 하지만 옛날 생각 나겠다.
문정우: 좋은데요.
김은남: 한칸 떼주면 좋겠다. 이제는 남의 사무실 가도 익숙해요.
주진우: 눈치를 보는 것도 익숙.
최광기: 어느 집이 가장 편하시던가요?
주진우: 천막이 가장 편안하고 좋더라. 찾아오는 분들도 야성이 있었다. 용산 사무실은 심상기 회장의 집무실이 보이는 곳에 얻은 것인데 10평도 안되는 쪽방이다. 사실 남의 사무실, 언론노조 사무실에 가고 싶지 않다.
최광기: 전광판이 참…. 심상기 회장이 불편했겠다.
주진우: <시사저널> 선배들은 너무 점잖다. 겨우 '심상기 회장 각성하라, 금창태 사장 각성하라' 정도다. 나는 '언론계의 쓰레기다'라고 말하고 싶은데. '심상기 회장은 결단해 주시죠'라는 식이다. '회장님'을 안빼서 나는 속이 터졌다.
최광기: 그 선배들 명단을 보내라. 하하
주진우: 여기 있는 이분들 다 그래요.
문정우: 회사쪽에서 그 전광판이 굉장히 곤혹스럽기는 했나보더라. 회사쪽 사람이 '얼마주고 했냐'고 묻더라. 직무실 앞에서 30~40미터 사이를 두고 전광판을 쏴대니 곤란하지 않았겠나.
주진우: 그들은 명예를 두려워하지 않는다. 호주머니 돈 나가는 것만 두려운 사람이다.
김은남: 전광판도 시사모 회원이 달아준 것이다. 우리 사무실은 비좁았는데 그 옆방도 회원이 돈내고 빌려주었다. 회의실로 쓰라고. 시사모가 참 많이 도와주었다.
안은주: 그분들 힘이다. 통장에서 돈이 빌 때 되면 실명 안밝히고 투쟁 아이디어 제안하고 전광판도 보내주었다. 용산 사무실이 허접하기 짝이 없었다. 여자들은 화장실이 깨끗하게 해야 하는데…, 주말에 세면대가 깨끗한 걸로 바뀌었다. 누군가가 바꿔놓고 갔더라. 사무실 바닥도 카페트를 깔려고 하는데 가격을 알아보니 비싸더라. 우리가 당시 노조 조끼를 입고 있었더니 카펫집 주인 아저씨가 '당신들 존경한다'면서 거의 거저주었다. 배달 해주고 깔아주었다.
문정우: 회원중에 최광기씨처럼 입으로만 하는 분들도 있다.
안은주: 최광기씨는 입이 자산이니 재능 기여한 것이죠.
최광기: 기자들을 아끼는 독자들의 힘이 원동력이었을텐데. 우군들은 누구?
윤무영: 열거하기 힘들다. 하지만 특히 저희 동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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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윤무영 기자는 함께 싸웠던 동료 기자들을 떠올리며 끝내 눈물을 보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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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정우: 조중동이나 그런데서 보도를 안한다고 말들이 많은데 이름을 밝히지 말아 달라고 하면서 부장급이나 높은 지위에 있는 분들이 돈을 보내주는 경우가 있었다.
최광기: 그분들 명단을 밝혔으면 좋겠는데. 하하.
문정우 : 조중동과 같은 메이저 언론에서 보도를 하지 않는다고 말들이 많아요. 하지만 언론계에서, 부장급의 사람들이 이름을 밝히지 말아달라고 이야기하면서 돈을 보내준 사람들도 있어요.
일동 : 이번 기회에 그 분들 이름을 밝히는 것이 어떨까요? (웃음)
문정우 : 그것도 괜찮네요. 어떻게 날이 갈수록 새로운 전략과 전술이 자꾸자꾸 나오네요. 앞으로 그분들이 신매체 창간하는데 어떻게 나오시는가 봐서 이름을 밝히는가 하죠 허허.
김은남 : 사실 저희들이 언론매체들에 대해서 양가적인 감정을 가지고 있어요. 오마이뉴스를 비롯한 인터넷 매체들, 마이너매체이지만 독립언론을 지향하는 미디어오늘과 같은 매체들이 있었기 때문에 이렇게 저희가 버틸 수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만약 이런 매체들이 없었다면 우리는 찍소리도 못하고 죽었을 것 같다. 그러고보면 동아투위 선배들은 얼마나 외로웠을까 생각했다.
문정우 : 이번에 투쟁을 진행하면서 기자들 생각이 많이 변했다. 사실 취재거리가 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해서 투쟁 현장을 외면한 적도 있었는데 그러면 안되는구나는 생각을 하게 됐다.
최광기 : 많은 분들이 댓글을 올려주고 계신데 댓글 내용들이 가족분들이 올려주고 있는 것 같다. "얼굴 살이 쏙 빠졌네", "힘내세요" 등등 다들 가족분들이 올려주고 있는 것 같다.
김은남 : 댓글 쓰신 분들 아이디라도 알려주세요.
최광기 : 안은주 기자님 팬분도 있네요. "아하 저분이 안은주 기자님이군요. 시사저널에서 과학기사를 재미있게 읽었는데.... " 방송 보시면서 많은 분들이 실망 하시겠는데요.
일동 웃음
"오마이뉴스ㆍ미디어오늘 같은 매체가 있어 버틸 수 있었다"
최광기 : 1년이 넘는 투쟁 기간 동안 풀어내야 할 이야기가 참 많을 것 같다. 사태의 진상도, 비화도 들어야 하고, 아까 윤무영 기자님 시사저널 동료 이야기하실 때 눈시울이 붉어졌는데.... 어떠세요?
윤무영 : 저 같은 경우는 동료들한테 많은 빚을 졌고... 선배들(울먹임) 모두 새로운 길을 간다는 것. 그것이 굉장한 감동이다. 외환위기 때도 굉장히 힘들지 않았나.. 그 때도 우리 선배들이 후배들 (울먹임) 안 시키려고...( 울먹임) 그 때가 가장 행복했고, 그 선배들과 앞으로 같이 새 길을 갈 수 있다는 것이 행복하다
최광기 : 파업 기간 중 첫번째 문화제 때, 독자들에게 보내는 편지를 써셨잖아요? 윤 기자님이 첫번째 독자, 가장 가까운 독자라고 할 수 있는 딸에게 보내는 편지를 쓰셨어요. 파업을 통해서 가족간의 관계에 대해서도 생각해볼 만한 부분이 있었을 텐데
윤무영 : 어제 들어가니깐... 딸이 그러더라구요.. 아빠 왜 우냐고..(말 잇지 못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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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은남 기자는 "시사저널을 사랑하는 독자들의 힘이 가장 컸다"고 말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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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은남 : 심상기 회장집 앞에서 단식 농성 진행할 때, 윤무영 기자 부인님. 형수님이 오셨다. 형수님이 말하시길, "이 사람이랑 싸워본 사람은 세상에서 나 하나밖에 없었는데 요새는 싸움꾼이 되어버렸다"며 가슴 아파하시더라.
최광기 : 원래 술도 못하시던 분이 요새는 소주도 드시고 말이죠..
윤무영 : IMF 때 기자들 월급도 못 받았잖아요. 그 때 동티모르로 제가 출장가려고 했거든요. 저는 월급도 안 나오는데 못 가겠구나 하구 그랬는데.. 보내시더라고요. 공항에서 (말 잇지 못함)
최광기 : 문 기자님이 좀 이야기 해주세요.
문정우 : 돌았죠. 그 때 돌은 거예요. 봉급도 못 주고 있는 상황인데 가겠다고 하더라고요. 동티모르 사건이 크게 났을 때이고, 가겠다고 하는데 보내야지 어쩌겠나. 그런데 웃긴 것은 금창태 사장 때 그 멀쩡한 회사에서 이라크 전쟁이 터져서 기자를 보내겠다고 하니깐 "돈 아깝게 기자를 왜 보내냐"고 하더라. 하지만 신호철 기자가 간다고 하고 갔다. 그리고 나도 가라고 그랬는데 그래서 징계 받았다. 아마 전세계 언론사에서 자기 기자를 이라크에 취재보내서 징계받은 편집장은 나 밖에 없을 것이다.
주진우 : 그 취재는 그래도 다녀와서 취재비를 받지 않았냐? 나 같은 경우는 평양출장을 다녀왔는데 금창태 사장이 자신한테 보고하지 않고 갔다고 취재비도 주지 않았다.
일동 웃음
최광기 : 이처럼 시사저널 기자들이 최선을 다해서 기자의 본분을 다하려고 하지 않았습니까? 그래도 제가 가장 신기했던 것은 어떻게 파업 중인 기자들이 특종을 낼 수 있느냐 말이죠?
일동웃음
김은남 : 정희상 기자가 제이유 사건 특종을 했었고, 신호철 기자가 중국 현지에서 제이엠에스 교주 정명석이가 중국공안에 체포된 것도 특종했었죠.
문정우 : 그러니 짜증나는게 일요일에 전화가 와요. 데스크를 빨리 봐라. 기사를 올려놨다. 파업 중인데도 기사를 썼다고.. 그렇게 시달렸다. 허허
최광기 : 이렇게 역량 있는 특종기자들이 만드는 신 매체 정말 기대가 됩니다. 지금 이 방송을 보시는 시청자 여러분. 신매체를 창간하기 위해서는 정성이 모여야 합니다. 여러분의 정성을 이 아래로 나가는 계좌번호로 모아주십시오. 저도 오늘 약정했습니다. 아까 방송에서 보신 것처럼 두고두고 욕을 먹습니다. (일동 웃음)
파업 중에 많은 일들이 있었고 그러면서 직장 동료들의 재발견을 하지 않았나 싶다. 다들 이제 형제, 자매, 친척 같지 않나?
김은남 : 저희 같은 경우는 재발견이 아니라 재확인이라고 해야 될 것 같다. 시사저널이 특종매체이기는 하지만 특유의 기풍으로 뭉쳐져 있다는 것이 더 중요하다. 외부에서도 시사저널이라면 할 말은 하는 매체라는 인식이 있다. 우리 내부도 이 기사를 써야 되는 것이라면 선배들이 딴죽을 걸더라도 꼭 쓰고 만다는 분위기가 있다. 또 선배라고 몸사리지 않았다. 실질적으로 1년 동안 내부에서 싸운 게 6개월, 파업을 진행한 것이 6개월 정도 된다. 파업 중에 줄줄이 금창태 사장으로부터 소송당하고 징계당한 시사저널 기자들을 보면 선배들부터 징계당하고 소송당했다. 다른 언론사였다면 선배들이 뒤로 물러나고 혈기왕성한 후배들이 앞으로 나갔을 것인데....
어쨌든 선배들이 6개월 동안 정직당하고, 무기한 정직당하고 편집국 안에 못들어오는 것을 보면 힘겨웠는데 나중에 다 함께 파업할 때가 차라리 마음이 편했다.
"세계에서 자기 기자 이라크 취재보내 징계받은 편집장, 나 밖에 없을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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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정우 전 편집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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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정우 : 이런 것을 보고 철이 없다고 말하죠.
일동웃음
최광기 : 작년 겨울 이야기로 좀 화제를 옮겨보자. 여기 주진우 기자님이 잘 이야기 해주실 것 같은데..
주진우 : 무슨 이야기요?
최광기 : 기사를 못 쓰게 한 이야기나, 파업 사태를 일으킨 기사 삭제 사건에 대해서...
주진우 : 복잡한 것은 잘 모르구요. 사실 제가 말을 잘 안 듣는 편이라 언론사를 옮겼었어요. 다른 신문사였으면 어떤 것을 쓰라고 하고 거기에 맞춰서 아이템을 내고 쓰고 짜맞추고 난 뒤에 올라가서 낙점이 되고 그렇겠죠. 그렇지만 시사저널은 다릅니다. 제가 시의성과 중요도. 그런 것들을 따져서 이것이 기사화가 가능하다고 말하고 편집장이 오케이하면 아무도 막을 수 없는 겁니다.
선배들은 외부 압력을 막아주는 역할을 한 것이지 후배들이 기사 못 쓰게 한 적이 없습니다. 사실 선배들한테도 시사저널에 오자마자 배운 것은 너의 기사를 실현하라고 배웠다. 그렇게 하다가 듣도 보도 못한 금창태 사장이 와서 이런 일이 생긴 겁니다. 특히 자기와 특수한 관계인 세종대와 삼성 관련해서 그러더라구요. 또 알고 보니 세종대 비리의 원흉인 모 교수의 앞잡이였구요.
최광기 : 소송에 걸릴 수 있는 민감한 이야기인 것 아시죠?
주진우 : 괜찮아요. 저도 걸릴 만큼 걸렸어요. 어쨌든 금창태 사장이 저를 불러서 못쓰게 하거나 이상한 아이템을 주면서 한번 써봐라 그러더라. 나는 사장님도 언론인이시니 사장님이 쓰십시오 하고 실랑이하고... 기분이 나빴을 거예요. 이해합니다. 하지만 기사와 팩트에 대해서, 옳고 그름에 대해서 따져야지 자기와의 관계 때문에 기자의 뒷꽁무니를 붙잡는 것이 한 두번이 아니었다. 이번 사태도 이런 연장선상에서 발생한 것이다. 우리 상식에서 일어날 수 없는 일이다. 불의한 것을 보면 사회정의 차원에서 쓰라고 배웠는데 어떻게 그냥 넘어가나 좋은 게 좋은거지 밥 먹고 살아야지 그러면서 어떻게 기사를 쓰겠나.
문정우 : 결국은 선배들이 잘못 가르친 겁니다. 후배들이 이 사회에 적응 못하도록 가르친 것이다.
주진우 : 선배가 "선배들한테 대들라"고 멱살잡고 가르쳤지 않냐. 나 여러번 멱살 잡혔다.
일동 웃음
최광기 : 그러면 기사 삭제 사건에 대해 구체적으로 이야기해볼까요?
안은주 : 작년 6월 17일에 이학수 삼성 그룹 부회장의 인사정책을 비판하는 기사를 준비했었다. 마지막으로 취재기자가 확인을 위해 삼성 측에 전화를 하면서 삼성이 그 기사가 나갈 것이라는 것을 알게 됐다. 그 때부터 삼성 홍보팀의 압력이 시작됐다. 하지만 편집국장까지 기사를 내보기로 결정했는데, 금창태 사장이 인쇄소로 넘어간 기사를 삭제한 것이다.
시사저널 사태를 한 문장으로 표현한다면 "삼성 출신 사장이 삼성에 껄끄러운 기사를 인쇄소에서 삭제했다"고 될 수 있겠다.
주진우 : 다른 언론사 같았으면 편집회의에서 끝났을 것이다.
안은주 : 사실 금창태 사장이 기사를 빼려고 진작에 결심했을 것이다. 인쇄소에서 기사를 삭제해야지만 기자들이 막을 수 없기 때문이다.
"선배들은 외부 압력 막아주는 역할을 한 것"
김은남 : 아까 주기자가 말한 것처럼 금창태 사장이 오고나서 이 모든 일들이 시작된 것이다. 특히 삭제됐던 삼성 기사는 기사를 읽어보지도 않고 삼성 홍보팀 말만 듣고 삭제를 요청했다. 자기가 이학수와 개인적인 친분이 있으니 빼달라고 하더라. 안 된다고 했더니 인쇄소에서 삭제하는 그런 행동까지 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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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진우 기자가 생방송 중에 '삼성'과 '금창태' 사장을 실명으로 언급해 사회자로부터 주의를 받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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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마이뉴스 남소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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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진우 : 사실 그 기사가 삼성에 치명적인 타격을 안기는 기사가 아니었다. 현재 삼성에 비판적인 시각을 가지고 있는 언론사가 드물어서 시사저널이 유독 눈에 띄인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기회를 엿보고 있었던 것이다.
문정우 : 고경태 한겨레21 팀장도 금창태 사장의 행동을 비판하는 내용의 칼럼을 썼다가 고소 당했다. 그런데 그 관련 법원 판결이 나왔다. 판결의 요지가 이렇다. 법원은 금 사장의 행동이 일반적으로 언론사에서 벌어질 수 없는 일이기 때문에 거기에 대해서 심하게 욕한다고 해도 큰 문제가 되겠냐는 이야기다. 결국 욕해도 된다는 이야기다.(일동 웃음) 그후로 금 사장이 소송을 제기하지 못하고 있다.
최광기 : 금창태 사장이 계속 징계와 소송을 제기했던 것으로 알고 있는데...
김은남 : 이에 관련되서 12명이 소송당했고 노조집행부도 7명도 소송당했다. 합쳐서 19명이 고소를 당한 것이다. 금창태 사장이 심지어 시사저널의 독자까지도 고소했다. 이 독자가 법정에서 이렇게 말했다고 하더라 "금 사장은 법조 훌리건이다. 소송을 남발하며 표현의 자유를 막으려는 이 사람을 꼭 단죄해달라"고..
문정우 : 사실 언론인이 가장 많이 시달리는 것이 그런 소송들이다. 돈 있는 쪽에서 있는 돈을 믿고 소송을 제기해 피곤하게 하는 것이다. 그런데 언론인이라는 사람마저 법적절차를 악용하는 짓을 하고 있다. 참...
최광기 : 워낙에 유명해져서 금창태 사장이 누구인지 네이버 인기검색어 순위로 높게 올라간 적도 있던데.. 그 분이 어떤 분이신지 주기자님이 말해주신다면
주진우 : 글쎄 설명이 안 된다. 그 사람에 대해서 규정할 수가 없다.
최광기 : 자.. 만약 독자 여러분들이 궁금하시면 인물 검색에서 찾아보셔야 될 것 같습니다. 토론회가 진행되면서 정말 많은 분들이 댓글로 격려해주고 계십니다. '모다'라는 아이디를 쓰는 독자께서 "짝퉁 시사저널만 포기하시고 다시 재개하자"고 하셨고, '맥가이버'라는 아이디를 쓰는 분은 "더 좋은 기사로 우리 주위에 더 많은 억울한 이들에 대한 관심 부탁드린다"고 하셨네요.
이렇게 댓글을 보니 정말 함께 할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기쁜지 알겠습니다. 이제 굿바이 결별 선언도 하셨고 앞으로 많은 일들이 남아있는데 어떻게 진행하실 생각이십니까?
문정우 : 참언론실천 시사기자단으로 활동할 것입니다. 새로운 매체를 만들기 위해 지금 돈도 모으고 사람도 모으고 있다. 돈 때문에 싸우게 됐는데 결국 돈을 모아야 한다는 게 비극이긴 하지만 새로운 매체를 만들려고 하다 보니.... 다 'DON'(돈)이더라. 하지만 잘 될 것 같다. 앞서도 말했지만 파업 시작하면서 노조 통장에 쟁의기금은 한 푼도 없었다. 이번에도 기적이 일어나서 순조롭게 일이 풀릴 것으로 생각한다.
최광기 : 이번 사태 보면서 독자의 힘이 중요하다는 걸 알았다. 그들의 의지와 열정이 높았다. 주변에서 이를 지켜보며 시사저널 기자들, 참 행복할 거라고 생각했다. 아픔의 시간을 같이 하는 사람들이 있으니까. 곧 신매체를 창간할 것이라도 들었다. 이 시간 통해 기자들이 광고 한번 해보자.
윤무영 : 이 시대 마지막 남은 양심입니다. 여러분이 지켜주면 진실하게 일하겠습니다. 동참해주세요.
문정우 : 자기 입으로 이 시대의 양심이라니.(웃음) 저희가 만드는 신매체는 광고만 주면 기사 씁니다.(웃음) 광고 내시고 기사 빼달라고 하면 뺍니다.(웃음) 농담이고… 좋은 매체 만들 겁니다.
안은주 : 아까 저희 선배들이 철이 없다고 했다. 신매체 준비도 거의 없었다. 그리고도 사표부터 냈다. 그러면서 신매체가 잘 될 거라고 한다.(웃음) 하지만, 그들처럼 나도 낙관적으로 본다. 백만원씩 오천명만 모으자. 그러면 좋은 매체 만들 수 있을 것이다.
김은남 : 독자들로부터 '신매체 힘내세요. 독자가 있잖아요'라는 노래를 듣고 싶다.
문정우 : 사표 내고나니까 모두 경제관념이 생기고 있다.(웃음)
최광기 : 지금까지 긴장 속에 있었다. 이 토론회를 해야하는가 염려도 했다. 하지만, 이렇게 만나니까 시사저널 기자들의 힘이 어디서 나왔는지 알겠다. 희망을 만들어내는 힘을 봤다. 여러분이 살아있는 희망의 증거 아닌가.
안은주 : 일년 동안 싸워온 힘은 스스로 만족하는 '자뻑정신'이었다.(웃음) 이 정신에 입각해 새 매체도 잘 만들겠다.
최광기 : '시사저널 기자'라고 자신을 소개하다가 이젠 그렇게 못하게 됐다. 편치 않은 심정일텐데. 기자들은 괴롭지 않은가? 또한, 신매체를 만드는 각오는.
안은주 : 짝퉁 시사저널 보면서 너무 답답하고 창피했다. 나중에는 아예 안 봤다.
주진우 : 돌아가면 짝퉁 시사저널에 관한 참회록을 쓰려고 했다. 이제까지 우리의 논조와는 전혀 다른 시각의 기사 즉, 문제 사학 감싸기, 삼성 칭찬 기사 등이 지면에 실린 것이다. 또 편집위원인 김행씨는 박근혜를 지지한다고 했다. 이는 언론인의 자세가 아니다. 너무나 답답했다. 새 매체를 만들면 짝퉁 시사저널의 폐해를 바로 잡고 기사를 쓰고 싶다.
김은남 : 짝퉁 시사저널은 기존 매체가 18년간 지켜온 논조와 정통성을 완전히 부정했다. 유럽의 경우 사주가 자기 멋대로 매체 성격을 바꿀 때는 기자가 사주에게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있다고 하더라. 짝퉁 시사저널은 기자와 독자를 무시했다. 손해배상 청구라도 하고 싶다.
최광기 : 짝퉁 시사저널에 대한 분노가 클 것이다. 그것을 뒤집는 것이 신매체 아닌가?
윤무영 : 파업할 때 딸에게는 알리지 않았다. 하지만, 딸이 책을 보더니 단숨에 알더라. 총명해서 안 게 아니다. 관심이 있는 몇 가지 기사를 보곤 나한테 '이상하다'고 이야기하더라. 설명하기가 힘들었다. 아빠의 생각을 이해시키기가. 그래서 딸에게 편지를 쓰기도 했다.
문정우 : 예전 시사저널에선 경영진이 '이런 아이템으로 한번 써 보라'고 제의하면, 쓸 건 쓰고, 아니다싶은 건 안 썼다. 그런데, 금창태 사장은 그걸 명령이라고 생각한 모양이다. 짝퉁 시사저널 보니까 옛날에 금 사장이 제의한 아이템이 거의 녹아있더라. 전 언론노조 위원장 신학림씨가 그러더라. '메이저언론사에서 살아남으려면 공익보다 사주와 자기의 이익을 도모해야 한다. 이게 출세의 기본원칙이다'라고. 짝퉁 시사저널 보니까 그게 잘 실현돼 있더라.
최광기 : 불행한 시간을 보낸 것 같다. 짝퉁 시사저널을 바로 세우는 것도 신매체의 역할이 아닌가 생각한다. 지난 1월에 열린 문화제를 잊을 수 없다. 시사저널 앞에 모인 독자들을 보면서 '아직 정도언론을 지원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구나'라는 걸 확인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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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삼성 관련기사 삭제' 이후 편집권 독립을 위해 싸워왔던 <시사저널> 기자들이 27일 <오마이뉴스>가 마련한 방담에 초대돼 지난 1년여 간의 힘겨웠던 투쟁 이야기를 풀어놓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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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마이뉴스 남소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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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짝퉁 시사저널 바로 세우는 것도 신매체의 역할"
주진우 : 전인권 선생의 마지막 콘서트이기도 했다.(웃음)
최광기 : 비가 쏟아지던 서울역 앞 '100일 문화제'도 기억난다. 서울역을 오가는 많은 이들이 시사저널 사태에 대해 알게되고 관심을 가지게 됐다. 호외도 제작해 배포했다. 오랜 기간 동안 주변의 많은 도움이 있었다. 이들이 신매체 창간에도 함께 했으면 한다. 지나간 이야기는 이제 거의 들었다. 앞으로의 각오를 들려달라.
김은남 : 우리는 우리의 운명을 스스로 결단했다. 앞날이 어떨지 모른다. 고난일 수도 있다. 어떤 어려움 있더라도 신매체는 자본과 정치권력으로부터의 독립을 지켜가겠다. 시사주간지 불모의 땅에서 세운 시사저널이다. 그 인원들이 그대로 옮겨가 만든다. 지켜봐 달라.
안은주 : 앞으로가 더 힘들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이 길을 선택했다. 이왕 시작한 싸움을 아름답게 결론내자는 생각이었다. 새로운 희망을 만드는 생산적인 싸움이 될 것이다. 언론다운 언론을 만들어보자는 마음으로 새로운 길을 간다. 1년 동안 도와주신 모든 분들이 고맙다. 그들의 응원이 있기에 씩씩하게 걸어갈 것이다.
문정우 : 고통은 사람을 강하게 한다. 이번 일을 겪으며 기자들이 강해지고 성숙해졌다. 취재현장에 돌아가면 좋은 보도할 수 있을 것이다. 30~40억 들여서 우리나라 운명을 좌우할 대기업집단을 견제할 수 있다면 옳은 일 아닌가. 도와달라.
윤무영 : 사진기자라 현장을 많이 다녔다. 세상을 다 아는 줄 알았는데 여전히 모르는 게 많다. 1년 동안 싸워오면서 새로운 열정을 가지게 됐다. 다시 태어날 수 있을 것 같다. 감동과 희망을 잃지 않겠다.
최광기 : 오늘의 깜짝 게스트를 모시겠다. 시사저널이 낳은 퀴즈영웅 고재열이다.
고재열 : 오늘 토론회의 캐스팅 담당이었다. 캐스팅을 잘 한 것 같다. 모두들 좋은 이야기 들려줬다. 이제 퀴즈영웅에서 기자로 돌아갈 것이다. 파업하며 단추 떨어진 옷이 하나둘 늘었다. 회사측이 동원한 용역과의 실랑이 때문이었다. 이제 단추 떨어뜨릴 일이 없을 것이다. 오늘부터 웃고 살 것이다.
최광기 : 신매체 창간기념으로 고 기자 단추 다 바꿔주겠다. 여러 파업현장을 다녔다. 파업이란 고통스러운 순간임에도 이를 통해 다시 태어나는 노동자를 봐왔다. 시사저널 전 기자들에겐 이번 1년이 그랬을 것이다. 이 프로그램의 최종 목표는 신매체 창간 지원이다.(웃음) 그날을 위해 다같이 파이팅 하자. 더 이상 기자들이 눈물 흘리지 않고 웃으며 여러분과 만날 날을 기다린다. 바로 여러분이 이들의 힘이다.
모두 : 신매체 파이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