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마이뉴스 윤은숙 기자] 외환은행 불법매각 의혹이 속속 드러나면서 온 나라가 큰 충격에 휩싸여 있다. 굳이 팔지 않아도 됐을 은행을, 그것도 우리나라 경제관료들이 온갖 구실을 붙여 외국계 투기자본에 넘겼다는 것이 사건의 전말이다.
이런 중차대한 사안이 3년이 지난 지금에서야 밝혀진 것도 놀랍지만 더욱 경악스러운 것은 이번 사건과 연루돼 검찰 조사를 받는 인물들이다. 이들은 국가의 살림을 책임져 왔던 소위 '경제 엘리트'들이 그 주역이기 때문이다.
물론 철저한 조사가 필요하지만 이번 사태는 단순히 몇몇 개인을 처벌한다고 해결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이번 외환은행 사건이 일어난 근본적인 이유는 허술한 금융감독시스템이기 때문이다.
금융감독 당국은 우리나라 금융산업과 관련한 각종 사안들의 심의 및 의결에 있어서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말 그대로 감독 기구이기 때문에 원활한 금융 정책을 위해서 무엇에도 흔들리지 않는 중립성이 강력하게 요구된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우리의 실정은 이러한 '당연한' 원칙을 지키지 못하고 있다. 재정경제부와 인적으로 얽혀있다 보니 제대로 된 감독과 견제가 나오기는 힘든 것이 당연하다.
문제는 허술한 금융감독시스템
외환은행이 미국에서도 쓰레기 펀드로 취급받는다는 론스타에 그렇게 허술하게 팔릴 수 있었던 것도 모두 이 허술한 금융감독시스템 탓이다. 구체적으로 무엇이 문제일까.
[불분명한 기능분배] 우리나라 현 금융감독체계의 가장 큰 특징은 재경부의 금융감독 지배에 따른 기능의 미분화라고 할 수 있다. 금융감독체계는 겉으로 보기에는 재경부, 금감위, 금감원으로 3원화된 형식을 취하고 있다.
각 기관들은 원래 경제 정책에 있어서 기능을 분담하여 견제와 감독을 해야하는 사이이다. 그러나 이건 어디까지나 원칙상으로만 그렇다. 실질적으로 기능 분담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현재 금융감독체계는 다층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재경부, 금감위 소속 공무원과 금감원의 중층적인 감독체계로 권한과 책임소재가 불분명하다. 이러한 중층적 구조는 또 금융기관과 시장에서의 혼란을 가중시킨다
최근 외환은행 매각을 둘러싼 의혹에 대처하는 과정에 있어서 각 기관이 서로에게 책임을 떠넘길 수 있었던 것 역시 사실 각자의 맡은 일이 불분명하다는 이점(?) 때문이었다.
[핵심은 언제나 재경부] 뿐만 아니라 금융감독기구의 핵심부는 모두 재경부 출신의 인사들로 채워져 있다. 외환위기 직후였던 1998년, 금융정책에 관련된 권한의 분산과 정부가 금융을 마음대로 주무르는 관치금융의 청산을 위해 금융개혁이 단행되었다.
그 금융개혁의 일환으로 신설된 금감위는 원래 감독정책의 최고의결기구로서 9인의 행정위원회였다. 출범 당시에는 사무국에 금감위의 의사관리 수행 등에 필요한 최소한의 공무원을 두도록 했으나 이후 조직 및 기능 확대로 공무원 수는 현재 70여명에 달한다.
결국 금감위는 감독정책의 최고의결기구가 아니라 오히려 공무원들로부터 행정지도를 받는 기관으로 전락하고 말았다. 그리하여 금감위라고 하면 이젠 으레 공무원조직인 사무국을 가리키는 것으로 받아들여질 정도가 되었다.
2003년 외환은행의 매각 역시 재경부의 경제 관료들과 금융감독기구 책임자들의 모의 하에 이루어진 것이다. 이처럼 중대한 금융정책 결정에 있어 견제와 감독은커녕 공동으로 자행된 행위는 재경부와 금융감독기구의 밀착관계를 반증하고 있다.
[정부의 경기부양 정책 제어 능력 상실] 앞서 언급한 금융감독기구의 비독립성과 재경부와의 밀착관계는 외환은행 매각 이전에도 LG카드 사태, 가계부실, 카드 대란 등을 초래한 바 있다. 정부의 거시경제정책에 대해 시장의 건전성을 책임지는 감독 당국이 적절한 제어의 역할을 해내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처럼 부실한 금융감독체계는 결국 외환은행이 적절치 못한 매수자인 외국투기자본에 넘어가는 것을 방치하는 중대한 사태마저 초래한 것이다.
대부분의 전문가들 "금융감독체계 개편 필요하다"
경실련은 지난 2004년에 경제전문가 그룹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를 통하여 현재의 금융감독체계의 문제점을 지적한 바 있다.
당시 90%가 넘는 압도적인 수가 현재의 금융감독체계의 개혁이 절실하게 필요하다는 의견을 냈다. 지금처럼 정부에 복속된 금융감독기구는 오히려 금융건전성을 해치기만 할뿐이라는 이유에서 였다.
금융은 경제의 근간을 이루고 있는 산업으로 우리나라의 경쟁력에도 중요한 요소로 작용한다. 그러나 현재와 같은 금융감독체계로 금융선진화를 이루기는 어렵다. 건전성이 담보되지 않은 금융산업은 언제든 위기를 초래할 수 있기 때문이다.
위와 같은 문제의식 하에 경실련이 전문가들과의 오랜 논의 끝에 제안한 것이 바로 '공적민간통합금융감독기구'이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금융감독조직의 독립(중립)화, 전문화, 유연화를 통한 금융감독기능의 선진화를 가져오는 금융감독체제의 개편이다. 이를 위해서는 금감위, 금감원을 통합하여 독립성, 책임성, 전문성이 확립된 공적민간통합기구를 만드는 것이 필요하다.
그야말로 금융기관과 시장을 제대로 감독할 수 있는, 정부에서 독립된 기구를 만드는 것이다.
이러한 통합금융감독기구의 실질적 활동을 뒷받침하기 위해서는 ▲금감위와 금감원을 완전통합하고 금감위를 통합감독기구 내부 최고의사결정기구로 해야하며 ▲금감원 조직 내부의 통제제도 및 규범의 자기구속력 강화가 필요하며 ▲금감원장 인사청문회의 법적 명문화 및 금감원장의 임기보장 등이 전제되어야 한다.
지금까지 경제 관료들은 자신들의 권한이 줄어드는 것을 우려 이러한 개혁안에 번번이 반대해 왔고, 정부 역시 수박겉핥기 식의 대응만을 일삼아왔다.
결국 이런 안이한 대처는 외환은행 매각과 같은 중대한 정책 오류를 비롯해 절대 권력을 가진 경제 관료들의 부패를 불러오기까지 이르렀다.
외환위기를 비롯해 신용카드 대란, 부실기업에 부적절한 공적자금 투입, 그리고 지금의 외환은행 사태까지 경제관료들의 잘못된 금융정책 판단으로 벌어진 일련의 사건들은 우리 경제에 막대한 타격을 입혔다.
장기적인 경제 체질 개선은 뒤로한 채 눈앞의 경기부양과 경제관료들의 자기 잇속 챙기기에 급급했기 때문이다.
이후에도 금융감독제도 개선 없이 현재의 상황을 방치한다면 제2의 외환은행 사태, 또는 제2의 카드 대란이 일어나지 말라는 법은 없다. 이러한 경제적 재앙을 막고 우리 경제의 뿌리를 튼튼하게 하기 위해서는 공정성과 효율성을 확보한 금융감독기구의 개혁이 시급하다.
덧붙이는 글
윤은숙 기자는 경실련 경제정책국 간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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