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신문]
고관을 지내고 난 뒤의 몸가짐
임재경 (언론인 전 한겨레신문 부사장)
김능환 대법관 후보자는 26일 국회의 인사 청문회에서 “대법관 퇴임 뒤 변호사 개업을 하지 않겠다”고 밝혀 세간의 화제를 모으고 있다. 또 “대법관 출신 변호사들이 대법원 사건을 수임하고 재벌비리 사건을 변호하는 것은 곤란하지 않느냐”는 의원들의 질문에 그는 “분명히 그런 측면이 있음을 부인하기 어려울 것 같다”고 공감했다. 대법관을 역임한 저명 법조인사의 열의 여덟아홉이 변호사 업에 나서 노후를 즐기고 있는 현실에 비추어 볼 때 확실히 김능환씨는 그쪽 판에서 이단자인 셈이다.
청문회의 답변에서 확인된 그의 공공적 견해는 진보적이라기보다 차라리 보수에 가까운 편이지만 퇴임 뒤 변호사업에 나서지 않겠다는 분명한 태도 표명은 외환은행의 론스타 스캔들로 이름이 오르내리는 이헌재 전 부총리가 <김앤장 로펌>의 고문직을 맡았던 사실이 충격을 주는 이 시점에서 매우 주목되는 발언이다.
대법관 퇴임 뒤 변호사 안하겠다
국가기구의 고위 공직은, 그것을 조선조 시절의 표현으로 ‘큰 감투’라 하든 아니면 요즘의 입발림으로 ‘큰 머슴’(公僕)이라하든 간에, 만인의 선망 대상임은 아무도 부인하지 못한다. 한동안은 공무원의 봉급이 상대적으로 낮아 ‘박봉’이란 말이 유행하기도 했으나 지금은 자리가 높을수록 본봉 이외에 적지 않은 직무수당과 판공비가 곁들여져 명실 공히 부러울 게 별로 없는 것이 고위 공무원이다. 거기다가 알게 모르게 일상화된 접대와 인정(仁情)이 따른다는 것은 천하 공지의 일이 아닌가. 그런 자리를 이리 저리 옮아가며 20~30년 씩 누리다가 퇴임 후에 변호사업을 차린다든가, 영리기업의 고문, 사외이사직을 맡아 재임 시에 형성된 인간관계를 밑천으로 다시 사회활동 아닌 ‘돈 벌이’에 나서는 풍조는 나라를 위해서는 말할 나위없고 당사자에게도 결코 명예스럽지 못하다 할 것이다.
우리나라 60대 남자의 80%이상이 해당사항 없는 연금을 퇴임한 고위 공직자들은 꼬박꼬박 타고 있는 터에 그들은 왜 구차스럽게 변호사업 등의 소득 사업에 나서는 것일까. 농반 진반의 답변가운데는 젊음을 유지하기 위해서란 소리도 들린다. 하지만 60대 혹은 70대의 뇐이
40대 50대의 한창시절 사는 맛을 고스란히 지키려 한다면 그것이야말로 자연 법칙에 어긋나는 망발에 가깝다고 해야 맞다. 진정으로 젊음을 유지하고 싶은 사람들에게는 인권변호사나 시민운동과 같은 자원 봉사의 길이 얼마든지 열려 있다. 어찌되었던 간에 퇴임한 이후에 소득활동을 하는 경우는 경멸이 아니라 존경의 대상으로 변모한 이상스러운 풍조가 공공 영역과 사익 추구 분야의 엄연한 차이를 흐리게 하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음은 명료하다.
‘대법관’, 그 얼마나 대단한 위치인가. 오로지 법과 양심에 따라 이 세상에서 벌어지는 각양각색의 불법과 비리, 그리고 크고 작은 다툼을 최종적으로 심판하는 자리인데 10년 가까운 기간 그 곳을 지키다 물러난 지긋한 나이의 법률가가 재벌의 반사회적 행위를 법정 기술적 차원에서 자문하는 일을 업으로 삼는다면…. 지나 간 생애에 먹칠을 하는 것과 다를 바 없다. 그러나 법률로서 퇴임한 대법관의 행위규범을 제정한다는 것은 물론 언어도단이고 법조 내부에서 새로운 바람이 불어 국민의 갈채를 받는 몸가짐이 정착해야만 한다.
고관들은 퇴임 후 국익 생각해야
국민의 이맛살을 찌푸리게 하는 일부 퇴임 대법관들의 몸가짐보다 더 한심한 것은 행정부의 국무총리 및 장관직 역임자들의 늘그막 삶의 방식이다. 앞에 잠시 스친 대로 이헌재 전 부총리의 <김앤장 로펌> 고문직 활동은 거기서 그가 무슨 일을 하였던 간에 있어서는 아니 될 반면교사였다. 변호사도 아닌 그가 로펌의 고문직을 수락한 것은 실질적으로 로비스트의 역을 자임하고 나섰다는 것 이외에는 달리 설명할 길이 없다. 한국에 투자한 외국 기업들을 주 고객으로 삼는 슈퍼 로펌의 유일한 가치 척도는 돈인데 이를테면 돈은 외국인에게 1백 단위의 이익을 실현하는데 봉사했을 때 1단위의 수고비가 돌아오는 비즈니스다. 어느 언론인의 말처럼 삼성 재벌의 비서실 보다 더 많은 정보와 더 큰 영향력, 그리고 더 넓은 인간 관계망을 형성하는데 김앤장이 성공했다면 그동안 외국기업에 돌아간 합법적 내지 ‘합법적 형태’의 이익이 이 로펌을 통해 천문학적 규모에 이루어졌음을 가리키는 것이다.
예외는 있겠으나 고관을 지낸 사람들은 이 나라에서 똑똑하고 부지런하고 능력 있는 축에 속한다. 그런데 고관들이 퇴임이후 그들의 능력이 사회정의와 국익에 반하는 데 이용된다면 나라의 장래는 정말 암담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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