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중·동의 이율배반적 ‘부동산 선동’
공급 확대론, 규제 완화론, 세금 폭탄론…종부세 이의신청 촉구·납세거부·부추기기
뜯어보면 부동산 투기적 수요에 눈감고 상위1% 대변을 마치 국민여론인 양 호도
한겨레
» 서민들이 꿈도 꿀 수 없는 초고가 아파트 타워팰리스가 바라다 보이는 서울 강남구 개포동의 가난한 구룡마을. 민언련과 토지정의연대는 지난 9일 이른바 유력지 조·중·동의 사설과 칼럼들이 소수의 투기이익을 위해 절대다수 국민을 절망의 구렁텅이로 모는 주장을 펼치고 있다며, 그들이 “시장 근본주의자의 이론이 옳다고 믿는 ‘확신범’이거나”, “건설사에서 부동산 광고를 받으면서 담대하게 정론직필을 하고 있다고 믿는 ‘자기최면’의 상황”에 빠져 있는 게 아니냐고 비판했다. 김봉규 기자 bong9@hani.co.kr
안과 밖 /

“내 집 꿈 더 멀어졌다.” 9월 4일자, <조선일보> 기사 제목이다. 이 신문은 주택보급률이 105%가 넘는데도 무주택자가 전체 40%에 이른다며 주택담보대출과 같은 금융규제를 완화하고 재건축을 자유롭게 풀어주고 보유세와 양도세를 내려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런 주장은 이 신문뿐만 아니라 <중앙일보>와 <동아일보>에서도 숱하게 발견된다. 이른바 공급확대론이다.

이 신문들은 주택보급률이 100%가 넘는다고 하면서도 동시에 주택공급을 더 늘려야 한다는 앞뒤가 안 맞는 주장을 늘어놓는다. 그러면서 주택공급이 늘어나면 건설경기가 살아나고 고용이 늘어나고 경제도 살아난다는 주장을 곁들인다. 공급확대론과 경기부양론의 기묘한 결합이다. 더 많은 집을 짓고 더 많은 대출을 받아 더 많이 사고 팔게 하자는 이야기다. 그러면 내 집 마련도 쉬워지고 경제도 살아난다고 한다.

9월14일자 <동아일보> 칼럼은 부동산을 사과에 비교한다. 사과 값이 지나치게 높으면 사과 수입을 늘리거나 사과의 대체재인 감이나 배의 공급을 늘려서 가격을 안정시키는 것처럼 부동산도 공급확대가 필요하다는 이야기다. 이 신문은 사과는 안 먹어도 되지만 부동산이 없이는 살 수 없다는 사실, 그리고 부동산에 대체재가 없다는 상식적인 사실을 간과하고 있다. 무엇보다도 부동산 시장의 투기적 수요를 고려하지 않은 주장이다.

최근 민주언론시민연합과 토지정의시민연대가 올해 1월1일부터 11월30일까지 이른바 ‘조·중·동’의 부동산 관련 사설과 칼럼을 모니터링하고 그 결과를 발표했다. 이 신문들은 줄기차게 공급확대와 규제완화를 외치면서 ‘세금폭탄’을 비판해왔다. 천문학적인 불로소득과 투기적 수요를 방치하면서 공급을 확대할 경우 어떤 끔찍한 재앙이 닥칠 것인지에 대해서는 아무런 언급도 없었다.

<중앙일보>는 9월26일자 칼럼에서 정부의 부동산 불로소득 환수정책이 부동산 가격을 올렸다는 주장을 하기에 이른다. “공급이 탄력적으로 움직이지 못하게 함으로써 주거선호 지역의 주택가격을 더욱 치솟게 할 뿐”이라는 이야기다. 조경엽 한국경제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이 칼럼에서 “결국 해답은 시장”이라면서 “부동산 정책을 복지정책의 일환으로 보지 말고 거시경제를 이루는 하나의 시장으로 간주하는 발상의 전환이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토지연대 등 모니터 결과 발표

조중동은 투기적 수요에 대해서는 아무런 언급도 하지 않으면서 규제완화와 공급확대를 줄기차게 요구해 왔다. 신도시 건설을 확대하고 재건축 규제를 완화해서 공급을 늘리면 당장은 집값이 올라 고통스럽겠지만 언젠가는 시장이 안정된다는 논리에서다. 특히 부유세 등 불로소득 환수정책이 주거선호지역의 공급을 제한해서 부동산 가격을 상승시킨다는 주장을 펼쳐왔다.

<중앙일보>는 7월19일자 시론에서 국내 부동자금이 해외로 빠져 나가 미국 맨해턴 등에서 부동산 투기를 불러일으키고 있다고 지적하면서 “이와 관련된 자본유출은 부분적으로 노무현 정부가 가진 자들을 향해 쏘아올린 ‘세금폭탄’이 가져온 결과”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보유세와 양도세를 낮추고 해외로 빠져 나간 불로소득을 국내로 불러들여야 한다는 해괴한 논리다. 해외투기 대신에 국내투기를 장려하라는 이야기일까.

<동아일보>는 종합부동산세를 노골적으로 반대해왔다. 이 신문은 11월27일 사설에서 “종부세에 대해 위헌 결정이 내려질 수 있다”며 그럴 경우를 대비해 지금 이의신청을 내놓으면 “세금을 돌려받을 수 있다”고 종부세 납부 거부를 선동하기도 했다. 이의 신청이 확산되고 있으며 2만여 가구가 참여할 것이라는 전망도 내놓았다. 종부세 대상 주택의 92.3%가 1가구 다주택자 소유분이라는 사실을 이 신문은 지적하지 않았다.

오히려 <중앙일보>는 3주택 이상 보유자가 40.1%라며 “투기억제를 위해 도입된 세금인데 투기혐의자는 납세대상자의 절반도 안 된다”고 주장했다. “머지않아 평균적인 서울 아파트가 종부세 대상이 될 것”이라는 경고도 빠뜨리지 않았다. 종부세 탓에 민간소비가 위축된다는 주장도 어처구니가 없다. 종부세가 소득 상위 20% 가구의 월평균 지출액의 1.5배에 이른다고 호들갑을 떨었는데 정작 종부세 대상이 전체가구의 1.3%라는 사실은 빠뜨렸다.

<동아일보>는 한나라당이 종부세 대상을 축소하는 안건을 당론으로 채택하지 않은 것과 관련해서도 “‘부자 비호당’이라는 소리를 듣는 게 두려워 문제를 덮은 것”이라고 비난하기도 했다. 그러면서 “무리한 종부세 과세가 서민층에게 부작용을 파급시킨다”는 이해할 수 없는 주장을 늘어놓았다. 우리나라 주택보유세 실효세율이 평균 0.2%, 종부세 대상자의 경우도 최대 0.6%, 미국의 3분의 1 수준밖에 안 된다는 사실도 지적하지 않았다.

<동아일보>는 또 31평 아파트에 12년째 살고 있는 안 아무개씨의 재산세가 50%나 늘어났다고 호들갑을 떨었지만 구체적으로 세액이 얼마나 늘어났는지는 밝히지 않았다. 안씨의 아파트는 공시가격이 6억4600만원에 시세는 8억원, 이 경우 보유세는 200만원이 넘지 않는다. 동아일보의 9월12일자 사설 제목은 “한국엔 ‘6억 넘는 죄’ 있다”였다. 보유세 실효세율이 2017년에 가서야 0.61%, 선진국의 절반 수준이 된다는 사실도 빠뜨렸다.

일부 기사에서는 자가당착적인 주장도 눈에 띤다. <동아일보>는 10월3일자 사설에서 지방 건설경기가 위축돼 올해 7월 현재 전국의 미분양 주택이 7년 만에 가장 많은 7만여채가 됐다고 지적하면서 정부의 부동산정책이 실패했다고 비판했다. 그러나 이는 오히려 투기적 수요가 무분별한 공급확대로 이어지는 사례라고 볼 수 있다. 공급확대를 주장하면서 공급확대가 가져온 폐해는 정부의 탓으로 돌리고 있는 것이다.

9월28일 기사에서는 “주택을 사려던 사람들이 높은 보유세 부담 때문에 구입을 미루고 있다”며 “높은 보유세 부담 때문에 구입을 미뤄 전월세 수요가 늘어났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역시 종부세 과세 대상 주택이 1.2% 밖에 안 된다는 사실을 간과한 것이다. 상위 1.2%에게 부과되는 종부세가 전월세 수요를 늘리고 전세금을 올렸다는 이야기다. 이 신문은 “서민과 중산층이 울고 있는데도 정부는 실패를 인정하지 않고 있다”고 비판했다.

<동아일보>도 9월28일 사설에서 “서민형 신도시를 만들겠다고 큰소리치다가 강남 중대형 아파트 가격만 올려놓은 판교의 실패에서 값비싼 교훈을 얻어야 한다”고 훈계를 늘어놓았다. 수요가 큰 중대형 규모를 줄이고 서민을 위한 중소형 주택을 짓겠다고 하는 바람에 서울 강남의 40평형대 이상 주택가격이 치솟았다는 이야기다. <조선일보>는 심지어 “임대주택이 주거의 하향 평준화를 가져올 우려가 있다”는 주장도 서슴지 않는다.

정부정책 뒤흔들어

이번 조사 결과 조중동의 부동산 관련 사설과 칼럼은 크게 9가지로 분류됐다. 신도시 건설을 늘리고 건설 공급을 확대하자는 공급확대론, 재건축 규제 등을 완화하자는 규제완화론, 보유세 강화 정책을 비판하는 세금폭탄론, 정부의 부동산 정책이 청와대의 코드 맞추기라는 코드론, 좌파정책으로 몰아붙이는 색깔론, 그리고 포퓰리즘론, 그리고 금융정책을 비판하거나 정부의 무능력을 비판하거나 기타 외국 사례를 비교하는 경우 등이 있었다.

특히 세금폭탄론이 전체 부동산 관련 사설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42.9%에 이를만큼 압도적으로 많았다. 칼럼에서는 50.8%로 나타났다. 이들 신문은 5·31 지방선거 패배의 원인을 부동산 정책의 실패로 몰아붙였고 정부는 보유세 실효세율을 1%로 높이겠다는 정책을 철회하기도 했다. 상위 1.2%를 대변하는 논리가 전체 국민들의 여론으로 호도되고 정부의 정책을 뒤흔들고 있는 상황이다.

토지정의연대는 불로소득을 환수하고 투기적 수요를 잡는 것이 부동산 가격을 안정시키는 최선의 대안이라고 주장한다. 남기업 사무처장은 “시장이 완전경쟁 상황이라면 공급을 늘리는 것이 자연스러운 대책이 될 수도 있다”고 전제하고 “그러나 우리나라 부동산 시장은 거의 독과점에 가깝게 왜곡된 시장”이라며 “투기적 가수요를 만족시키기 위해 끊임없이 공급을 확대하는 것은 매우 위험한 일”이라고 경고했다.

민언련과 토지정의연대는 논평에서 “부동산 광고를 수주하기 위해 언론사와 건설사의 이해관계가 서로 얽혀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상식적인 의문을 제기할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또 “이들이 시장 근본주의자의 이론이 옳다고 믿는 ‘확신범’이거나 최악의 경우는 건설사에서 부동산 광고를 받으면서 담대하게 정론직필을 하고 있다고 믿는 ‘자기최면’의 상황일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덧붙였다.

이정환 <이코노미21> 기자 cool@economy21.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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짱꿀라 2007-01-12 14: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도무지 우리나라 부동산 정책은 믿을 수가 없네요. 어디까지가 진실이고 거짓인지요.

외로운 발바닥 2007-01-13 10: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현정부의 부동산정책 실패 원인이 정확히 무엇인지는 아직까지 잘 모르겠습니다. 정말 주류 언론들의 말처럼 수요와 공급의 시장원리에 충실하지 않고 지나치게 규제 위주의 정책을 짰기 때문일 수도 있겠죠. 하지만, 부동산의 재화로서의 특수성, 건설사들의 폭리실태 등을 고려하면 반드시 '시장'에 맡기는 것만이 최선은 아니라는 생각이 듭니다. 시장 우선주의, 시장 만능주의가 정말 우리사회에 널리 퍼져 있는 것 같습니다.
 

후세인 처형과 인혁당 사형
이라크 침공 정당화, 유신독재 강화 위해 31년 터울 두고 황급히 집행한 ‘정치재판’
사건의 실체가 있고 없는 차이 있지만 진실 덮은 ‘승자의 재판’이란 점에서 같아
한겨레
» 지난 2일 이라크 수도 바그다드에서 북쪽으로 115㎞ 떨어진 티크리트 지역 오우자에 묻힌 사담 후세인 전 이라크 대통령 무덤을 에워산 조문객들. 무덤 위에 엎드려 울고 있는 사람도 있다. 후세인은 미국이 주도한 후세인 재판에서 최종 사형판결이 난 뒤 서둘러 처형당했다. 바그다드/ AP 연합
안과 밖 /

후세인과 ‘인혁당’ 처형, 같은 점과 다른 점

“억! 그렇게 빨리!” 법정에서 형이 확정된 지 나흘 만에 사담 후세인이 처형됐다는 소식을 듣는 순간 나도 모르게 튀어나온 소리다. 바로 그때 후세인 얼굴에 겹쳐 ‘인혁당’ 재판(1975년)으로 대법원 판결 확정 바로 다음날 처형됐던 8명의 피고인들이 떠올랐다. 그리고 1980년대 말 ‘유신독재의 제물 인혁당 사건’이란 기사를 쓰기 위해 만났던 유가족들의 눈물어린 얼굴들이 떠올랐다.

술 한잔 먹고 박정희 욕하다 파출소로 끌려가면 순경이 “너! 빨갱이지?”라며 거칠게 묻던 1970년대를 살다 간 희생자들과 21세기의 후세인을 잇는 연결고리는 무엇일까. 무려 31년의 터울을 둔 두 재판엔 무서운 정치적 계산들이 깔려 있다. 유신독재체제 강화(박정희)와 이라크 침공 정당화(조지 부시)에 재판을 정치적으로 이용하고 선전한 세력들이 진실을 덮겠다는 일념 아래 서둘러 피고인을 죽음으로 몰아넣었다.

‘인혁당’ 사건 조작지시 총책은 대통령 박정희, 조작의 실무주역은 중앙정보부장 신직수와 6국장 이용택, 유신독재의 허수아비 법원 총수는 대법원장 민복기였다. 박정희는 인혁당사건에 집요할 만큼의 관심을 보였다. 1989년 국회의원으로 금배지를 달고 있던 이용택을 만났더니, “한창 수사가 진행중일 때, 나는 1주일에 두 번꼴로 청와대로 가서 직접 보고를 드렸다. 물론 신직수 부장과 함께 갔다.”고 했다. 물론 그는 “내가 고문을 지시한 일도, 고문 하는 것을 본 적도 없다.”고 오리발을 내밀었다. (<사단법인, 1975년 4월의 학살>174~5쪽, 천주교인권위원회 엮음)

후세인 사형판결은 1982년 시아파 밀집 거주지역인 두자일을 방문했던 후세인이 공격을 받은 뒤 그곳 주민 148명을 재판에 넘겨 처형한 데서 비롯됐다. 밉든 곱든 한 국가의 최고 지도자를 암살하려 했다면 중죄다. 다만 148명에게 사형을 선고했다는 것은 지나쳤다고 지적된다. 수니파 출신 독재자 후세인은 “나를 거스르면 이렇게 된다”는 메시지를 시아파에게 전하려 했을 것이다.

두자일 사건과 인혁당 사건엔 큰 차이가 있다. 두자일 사건은 실제로 일어났던 일이고, 인혁당 사건은 조작된 일이다. 두자일 사건을 지휘한 바르잔 이브라힘 알-티크리티 전 정보국장(후세인의 배다른 동생), 재판을 맡았던 아와드 알-반다르 전 혁명재판소장도 후세인과 함께 지난 12월26일 사형확정 판결을 받았다. 이 두 사람도 곧 처형될 운명이다. 그런데 인혁당 사건 조작자들은 전혀 아니다. 법정 단죄는커녕 “내가 그때 지나쳤소” 또는 “죽을 죄를 졌소”라는 유감이나 반성의 목소리도 들리지 않는 것은 무슨 까닭일까.

가리고 싶은 부끄러운 미국의 과거사

 

유신독재의 서슬 푸른 법정에서 형 확정 판결이 내려진 다음날 처형된 ‘인혁당’ 피고인들이 할 말을 못하고 갔다면, 후세인은 미국인들이 교육시킨 이라크 판사가 진행하는 비공개로 진행된 법정에서 진실을 제대로 못 밝히고 갔다. 그렇다면 후세인에 관련된 진실은 무엇일까. 여기에는 국가이익을 위해서라면 독재자와 기꺼이 손을 잡았던 미국의 부끄러운 과거사가 얽혀 있다.

이란-이라크전쟁(1980-8년)에서 미국이 행한 역할은 중동현대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대목이다. 미국은 1979년 호메이니 혁명이 있기 전까지 이란의 석유 이권 40%를 차지하고 있었다. 이란 혁명으로 하루아침에 석유이권을 빼앗긴 미국, 페르시아 만의 강자를 꿈꾸던 후세인의 기묘한 결합이 이뤄졌다. 1983년 11월26일 레이건 행정부 고위관계자들은 ‘국가안보 결정지침(NSDD) 114’ 문건으로 이란-이라크전쟁과 관련한 미국의 중동정책을 새롭게 정비했다.

이에 따라 1983년 12월20일 도널드 럼스펠드(전 국방장관)는 이라크의 바그다드 대통령궁에서 후세인을 만나 90분 동안 밀담을 나누었다. 당시 레이건 행정부는 럼스펠드 특사에게 “미국은 이란의 승리를 막기 위해 필요한 모든 지원을 아끼지 않겠다”는 점을 후세인에게 밝히라는 지침을 내렸다.

그 무렵 이라크는 이란군의 공세에 밀려 마즈눈 유전지대를 빼앗기는 등 고전하고 있었다. 미국은 국토 면적에서나 인구에서 이라크보다 훨씬 덩치가 커 도저히 이길 수 없는 대국인 이란과의 소모적인 전쟁을 후세인이 8년 동안이나 질질 끌도록, 군사정보와 화학원료를 비롯한 물자로 후세인 정권을 지원했다. 그 규모는 무려 297억달러 어치다. 미 백악관과 국무부는 국제금융기관들에게 압력을 가해 이라크에 전쟁비용을 대 주도록 했다.

이라크는 이란-이라크전쟁에서 화학무기를 사용함으로써 국제법을 잇달아 어기고 있었다. 그럼에도 미국은 후세인 지지를 분명하게 밝혔다. 21세기 들어 미국의 석유갈증이 심해지자, 2003년 이라크 침공 때 후세인의 대량살상무기를 침공명분 가운데 하나로 삼았던 것과는 너무 대조적이다.

할랍자 주민 5천명 누가 죽였나

후세인은 그에게 사형이 언도된 두자일 사건말고 다른 재판도 진행 중이었다. 1980년대 이라크 북부 쿠르드 족을 화학무기로 죽였다는 사건들에 대한 재판이었다. 부시 대통령은 사담 후세인 정권을 쓰러뜨려야 한다는 명분의 하나로 기회 있을 때마다 “자국 국민을 화학무기로 죽였다”이란 주장을 해왔다. 그 대표적 근거로 꼽아온 것이 1988년3월 이라크 북부 할랍자 마을에서 쿠르드족 주민 5천명을 화학무기 공격으로 무참하게 죽인 사건이다.

그러나 이 대목에 관한 한 후세인은 할 말이 있다. 그가 처형당하지 않고 쿠르드 족 학살사건을 다루는 법정에 나섰더라면, “당시 할랍자 마을의 쿠르드족 주민들을 화학무기로 죽인 것은 이란군이었다”고 주장했을 것이다. 이를 뒷받침하는 근거는 두 가지다. 하나는 미 해병이 1990년 12월, 걸프전쟁 작전 참고자료로서 작성한 <이란-이라크 전쟁의 교훈>이란 제목의 기밀문서, 다른 하나는 미 국방정보국(DIA) 기밀보고서다.

해병대 기밀문서(FMFRP 3-203)는 부록 항목에서 이란-이라크 양쪽의 화학무기들을 분석했다. 문서는 “(5천명에 이르는) 할랍자 마을 쿠르드족을 죽인 문제의 화학무기는 혈액제재로 보인다. 이라크 군은 이런 종류의 화학무기를 사용한 적이 없다. 이란군이 쿠르드족을 공격했다는 것이 우리의 결론"이라 적었다.

할랍자 전투 뒤 미 국방부는 DIA 요원들 하여금 현장조사에 나서도록 했다. 희생된 쿠르드족의 신체 상태를 살펴본 DIA 요원들은 그들이 ‘청산칼리를 주원료로 한 혈액제재’로 죽임을 당했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이라크 군의 화학무기는 겨자가스였다. 청산칼리를 주원료로 한 혈액제재는 이란군의 화학무기였다. 이로써 진실이 드러난다. 쿠르드족 주민들은 양쪽 군대가 벌이는 치열한 전투의 한가운데에 끼여 있다가 이란군이 쏜 화학무기에 변을 당했다.

부시 미 행정부는 사담 후세인을 악의 존재로 그려왔다. 할랍자 마을의 쿠르드족 학살설도 그 주요근거로 제시돼 왔었다. 만일 후세인이 서둘러 처형되지 않고 쿠르드족 학살과 관련된 다른 재판으로 법정에 나선다면, 부시 대통령은 곤혹스런 처지에 빠지게 될 것이다. 2003년 이라크 침공 전에 퍼뜨렸던 후세인-빈 라덴 연루설처럼 “아니면 말고….“로 얼버무리기도 어렵다. 그런데 이제 고민할 필요가 없어졌다. 쿠르드족 학살재판의 핵심 당사자인 후세인을 없애버린 것이다.

» 김재명/국민대·성공회대 강사 kimsphoto@hanmail.net
이라크 현지취재 때 후세인 정권이 무너지기 바로 직전까지 바드다드대 법대학장을 지냈던 수헬 파틀라위를 만났었다. 전쟁법 전문가인 파틀라위는 “유엔안보리 결의를 거치지 않은 미국과 영국의 이라크 침공은 뚜렷한 국제법 위반이며, 아부그라이브 감옥에서의 수감자 학대는 전쟁범죄 행위로서 1949년 제네바협정을 어긴 사건”이라 지적했다.

따라서 파틀라위는 영미 정치지도자들과 군사령관들이 1998년 로마협정에 따라 출범한 국제형사재판소(ICC)에서 전범재판을 받아야 마땅하다고 했다. ‘세기의 재판’으로 기록될 후세인 재판은 ‘승자의 재판’ 성격이 짙다. 훗날의 역사가들은 이라크와의 전쟁에서 미국이 졌다면, 법정에 설 사람은 후세인이 아니라 부시였을지도 모른다고 기록할 것이다.

김재명, 국민대-성공회대 강사 kimsphoto@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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짱꿀라 2007-01-12 14: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인혁당 사건은 정말로 억울한 사건으로 알고 있습니다만
후세인 아저씨는 사람을 너무 많이 죽어서 사형당해도 저는 사형에도 괜찮다고 보는데......

외로운 발바닥 2007-01-13 10: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 후세인 자체는 정말 나쁜 사람이지요. 그리고 그가 저지른 죄에 대해서는 사형판결도 결코 과하다고 할 수 없지요. 하지만, 후세인 한명을 사형시키는 것과 예컨대 무기징역으로 전범재판소에서 처벌하는 것과 큰 차이가 있을까요. 더 나아가 부시와 후세인 간에도 승자와 패자와의 차이만 있을 뿐 근본적으로는 차이가 없다는 점이죠. 후세인의 행위 자체를 정당화하는 것이 아니라 후세인과 별 차이 없는 부시가 주도하여 후세인을 재빨리 처형하고 그것을 정치적으로 이용했다는 것이 문제가 되겠죠.
 

조순 전 부총리 “노정권은 경제가 뭔지도 모른다”
[한겨레 2007-01-06 13:51]    

[한겨레] 조순 전 경제부총리가 모처럼 입을 열었다. 12월 21일 금융경제연구소가 주최한 간담회에 참석한 조 전 부총리는 한미자유무역협정(FTA)을 비롯해 노무현 정부의 경제정책 전반에 대해 작심한 듯 강도 높은 비난을 쏟아냈다. 대선을 1년도 채 안 남겨둔 무렵이라 그의 발언은 미묘한 파장을 남겼다.

조 전 부총리는 서울대 경제학과 교수 출신으로 노태우 정부 시절 경제기획원 장관 겸 부총리와 한국은행 총재를 지냈고 민주당 공천을 받아 지방선거에 출마, 초대 서울시장에 당선되기도 했다. 그 뒤 대권을 노리고 서울시장을 사퇴, 민주당과 신한국당의 합당을 주도했지만 이회창 후보에 밀려 결국 대권 도전에 실패했다.

조 전 부총리와 노무현 대통령과 엇갈린 인연도 눈길을 끈다. 서울시장 선거 때 조 전 부총리는 노 대통령에게 부시장 러닝메이트를 제안했다가 거절당한 바 있다. 노 대통령은 부산시장 선거에 출마했다가 패배했지만 5년 뒤 대권을 거머쥐었고 조 전 부총리는 한나라당 총재로 머물면서 국회의원에 당선되기도 했지만 재선에 실패, 결국 정계를 떠났다.

문제의 원인도 제대로 몰라

이날 간담회에서 조 전 부총리는 노무현 정부가 “근본적으로 경제가 뭔지도 모른다”며 원색적인 비난을 쏟아냈다. 그는 우리 경제의 가장 큰 문제를 성장의 둔화와 양극화로 정리하고 그 근본 원인을 박정희 유신정권 시절부터 계속된 압축성장에서 찾았다. 그는 노무현 정부가 문제의 원인조차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1985년 플라자합의 이후 일본 엔화 환율이 떨어지면서 우리나라 기업들 수출이 폭발적으로 늘어났다. 당연히 성장률도 크게 올라갔다. 우리 경제가 잘 되는 줄 알았는데 사실은 일본의 경쟁력 악화의 반사이익을 본 것이다. 그 과정에서 우리는 압축성장의 부작용을 제대로 돌아보지 못했다.”

조 전 부총리는 김영삼 정부의 세계화 이데올로기도 압축성장의 연장선으로 보고 있다. 압축성장의 후유증을 제대로 보지 못하고 문제를 방치한 결과 IMF(국제통화기금) 외환위기를 맞게 됐다는 이야기다. 일차적인 원인은 물론 동남아시아의 외환위기였지만 본질적으로는 국가 경쟁력의 악화가 불러온 필연적인 위기였다는 이야기다.

조 전 부총리는 IMF가 요구한 경제 개혁을 크게 4가지로 정리했다. 첫째는 긴축정책. 성장률이 떨어지면 수입이 줄고 수출이 늘어 국제수지가 좋아지고 외채를 갚을 능력이 생기기 때문이다. 성장률을 떨어뜨려 빚을 갚게 만든다는 이야기다. 둘째는 외환시장과 무역, 금융, 전반의 경제 자유화.

셋째는 작은 정부. 정부의 역할을 축소해서 철도와 통신, 체신, 국방까지도 민간부분으로 넘기라는 것이다. 넷째는 주주 이익의 극대화다. 상대적으로 이해관계자의 이익이 줄어들게 된다. 이런 신자유주의 경제 개혁은 언뜻 재정적자와 무역적자를 줄이고 부채 상환을 앞당기는 것처럼 보였지만 경제의 역동성을 위축시키는 부정적인 결과를 가져왔다.

“김대중 정부는 IMF 요구 이상으로 적극적으로 자유화와 개방화를 추구했다. 그 결과 잠깐 성장률이 올라가기도 했지만 2000년에는 2.3%까지 떨어졌다. 아르헨티나도 그랬고 특히 멕시코에서 그랬다. 성장 잠재력이 떨어지고 양극화가 더욱 심화된다. 후진국에는 잘 맞지 않고 우리나라에도 맞지 않는 정책이다.”

김대중 정부가 내놓은 대안은 가계 신용을 늘려 내수를 키우는 것. 길거리에서 신용카드를 마구 뿌려댔고 소비가 늘어나면서 성장률이 잠깐 회복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그러나 2003년 상반기에는 성장률이 다시 2.7%까지 떨어졌다. 조 전 부총리는 “고비용 저효율의 개혁이었다”고 평가했다.

그 결과 많은 금융기관이 구조조정을 당했고 외국인 투자자들의 수중으로 들어갔다. 조 전 부총리는 금융의 종속을 양극화의 가장 큰 원인으로 보고 있다. IMF 이후 금융기관들은 중소기업 대출을 줄이고 가계대출 특히 손쉬운 담보대출을 늘리고 있다. 중소기업들이 잇따라 무너졌고 일자리도 줄어들었다. 당연히 양극화도 더욱 심해졌다.

“자기자본비율(BIS) 8%는 난센스다. BIS가 9%나 10%, 15%가 돼도 상관없다. 기업 구조조정도 마찬가지다. 부채비율 200%는 아무런 근거도 없다. 그런데 정부는 이런 기준을 획일적으로 강요했고 많은 금융기관과 기업들이 구조조정을 감행했다. 조기에 IMF 졸업 선언도 했고 외국 투자자들의 갈채를 받았지만 정작 우리 경제의 역동성은 크게 줄어들었다.”

고비용 저효율 개혁, 문제 많다

조 전 부총리는 노무현 정부의 동북아 중심국가나 국토 균형발전 등의 정책을 강력하게 비판했다. “근본적으로 경제가 뭔지 모르기 때문에 하는 짓”이라는 원색적인 비난도 서슴지 않았다. 노무현 정부는 압축성장이 가져온 부작용을 압축성장으로 해결하려 하고 있다. 이 나라에 무엇이 필요한지 처음부터 방향을 잘못 잡았다는 이야기다.

“마치 유신 정부가 하는 것과 비슷한 정책 목표를 내걸고 있다. 이를테면 동북아 중심국가, 이게 참 아무런 근거도 없고 내용도 없는 것이다. 80년대 같으면 모르겠다. 이거 뭐 어떻게 하자는 건가. 기업도시나 혁신도시도 마찬가지다. 유동성만 늘려서 땅값만 올리고 있다. 금리를 낮춰서 유동성이 움직일 데가 없으니 다들 부동산에 매달리고 있다.”

한미 FTA나 금융허브에 대해서도 거센 비판이 이어졌다. 조 전 부총리는 유럽이 왜 농업을 끝까지 보호하려고 하는지 생각해 보라고 반문했다. 일본이 왜 일미 FTA를 서두르지 않는지 생각해보라고도 반문했다. IMF 때 경험에 미루어 봐도 한미 FTA는 정부의 장밋빛 전망과는 전혀 다른 결과를 가져올 가능성이 크다는 말이다.

“우리나라 사람들 능력이 많다. 골프도 잘하고 축구, 바둑도 잘한다. 그러나 하나 마인드가 없는 것이 금융이다. 중국 사람들은 금융에 대한 마인드가 있다. 그러나 우리나라 사람들은 없고 일본 사람들도 없다. 우리는 금융 허브 못한다. 가계부채가 500조인데 무슨 금융허브를 하나. 하면 외국인 투자자들 돈 쥐어주는 꼴 밖에 안 된다.”

조 전 부총리는 “노무현 정부가 해법을 제시하기는커녕 문제를 더욱 심화시키고 있다”고 비판했다. 신자유주의는 해법이 될 수 없다는 이야기다. 조 전 부총리는 “큰 정부는 아니지만 정부의 최소한의 역할은 유지돼야 한다”며 “그러려면 무엇보다도 국민들의 신뢰가 뒷받침돼야 한다”고 거듭 강조했다. “정부는 서비스 산업을 키우겠다고 하는데 무슨 서비스냐고 하면 아무런 구체적인 대안이 없다. 고용창출에 대한 깊이 있는 고민이 부족하다. 제조업을 사양산업이라고 하는데 바로 그런 마인드가 문제다. 우리나라가 무슨 서비스 산업을 할 수 있나. 서비스 산업도 중국이 훨씬 잘 한다. 우리나라는 제조업을 갖고 있어야 한다.”

조 전 부총리는 “쾌도난마로 경제를 살리는 방법은 없다”고 거듭 강조했다. “신자유주의의 유토피아는 막강한 미국조차도 무너뜨리고 있는데 우리나라가 견뎌낼 수 있느냐”고도 반문했다. 조 전 부총리는 “병의 역사가 길고 복잡하다”며 “단기적이고 가시적인 성과에 매달리지 말고 보약으로 몸을 달래듯이 충분한 시간을 갖고 조금씩 고쳐 나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정환 기자 cool@economy21.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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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로운 발바닥 2007-01-06 17: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IMF 이후 김대중 정부와 노무현 정부의 경제정책 문제점을 날카롭게 잘 지적한 것 같다. 신자유주의가 우리 경제의 대안이 아니라는 것에 대한 공감대가 더욱 확산되었으면 하는 바램이다.

비로그인 2007-01-06 20: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외로운 발바닥님, 퍼갈게요.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외로운 발바닥 2007-01-07 09: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반갑습니다, 마음행로님. 마음행로님도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대중독재의 영웅 만들기
권형진, 이종훈 엮음 / 휴머니스트 / 200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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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은 어떤지 모르겠지만, 내가 어렸을 때는 위인전을 읽는 것이 무척 장려됐었다. 나를 포함한 수많은 어린이들이 이순신 장군이나 그 밖의 많은 위인들의 전기를 읽으며 나도 그분들처럼 국가와 민족을 위해 큰 일을 할 수 있도록 열심히 공부하겠다는 다짐을 수없이 했을 것이다. 어린이가 훌륭한 사람들의 삶을 읽으며 이를 모범으로 삼는 것은 좋은 일이다. 그런데 문제는 우리가 읽는 위인전, 또는 우리 생활이나 역사 속에서의 위인이나 영웅이 우리에게 보여지는 모습 그대로의 인물이었냐 하는 것이다. 나아가 그 인물을 어느 누군가가 어떤 목적을 가지고 자신에게 유리한 쪽으로 각색하여 우리에게 제시한 것은 아닌가 하는 것이다. 이 책은 바로 그러한 문제의식을 화두로 쓰여졌다.


제1차 세계대전 이후 서구에서는 대중 민주주의가 발달한다. 대중의 지지가 정치권력 획득의 기반이 됨에 따라 정치권력은 대중의 지지를 얻어 권력을 획득하고 나아가 권력을 획득한 이후에는 대중을 권력이 지배하는 사회가 요구하는 인간상으로 만들기 위한 방법의 하나로 ‘영웅’을 만들어낸다. 영웅은 타고나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지는 것이다.


이 책에는 다양한 사회에서의 영웅들이 등장한다. 그들이 등장한 시대나 장소는 모두 조금씩 다르지만, 모두 제1차 세계대전 이후 전체주의적인 독재사회에서 정치권력이 의도적으로 만들어내었다는 점에서는 공통점이 있다. 물론 영웅의 탄생과 관련된 사실관계가 전부 조작되었다는 것은 아니다. 그리고 영웅들 중에는 실제로 탁월한 도덕성이나 성실성을 바탕으로 범인과 구별되는 ‘영웅성’을 가진 경우도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부인할 수 없는 점은 어떤 영웅도 정치권력의 의도적 편집과 각색이 없었다면 대중들의 삶의 일부가 될 정도의 영웅의 위치에는 오를 수 없었다는 것이다.


이 책은 기본적으로 학술대회에서 발표된 논문을 엮은 것이기 때문에 역사적 고증이 주 내용을 차지한다. 그래서 특히 익숙하지 않은 독일 나치시대, 소련․중국․북한(우리가 북한에 대해 아는 것이 거의 없다는 것을 느낄 때마다 놀랄 정도로 북한의 무지에 익숙해져버린 것 같다)등 공산주의사회, 프랑스의 비시정권, 스페인의 프랑코 체제 - 사실 익숙했던 것은 우리나라의 영웅, 이승복과 이순신 장군 밖에는 없었다. ;; - 에서의 영웅 이야기는  역사적 배경지식의 부족으로 인하여 이해와 흥미가 좀 떨어졌던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프랑스 비시정권이 괴뢰정권이었다는 단순한 통념과 달리 초기에는 프랑스 국민들의 지지를 받았었다는 점이나 현대에도 정치적 권력과 종교가 ‘영웅’이라는 매개체로 융합된 적이 있었다는 사실은 무척 신선하게 느껴졌다. 단편적이기는 하지만, 독일의 비스마르크가 신화화되고 바이마르 시대를 거쳐 히틀러의 나치정권이 집권할 때까지 대중독재의 영웅이 어떻게 만들어지고 그 반작용으로 영웅이 대중들의 삶을 어떻게 규율했는지도 엿볼 수 있어 흥미로웠다.


엮은이의 말에 이런 말이 나온다. ‘오늘날 대중의 공적 공간과 사적 공간은 타의적이고 동시에 자의적인 의지들에 의해 혼합되고 있다.’ 이 책에 나온 대중독재의 영웅들은 그런 면에서 정치권력의 의지에 의하여 대중이 소비하도록 만들어졌고, 대중이 그러한 영웅들을 소비하면서 대중의 자의적인 의지가 가미되어 대중의 사적공간을 지배하는 경지에 이르렀던 것으로 볼 수 있다.


대중은 언제나 영웅을 원한다. 그리고 우리 모두는 영웅의 직간접적인 영향을 받으면서 자라났고 지금도 우리 주위에는 많은 영웅들이 부지불식간에 우리의 삶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매스미디어 시대인 요즈음 어찌 보면 어느 때보다도 많은 영웅들- 연예인들이나 스포츠 스타들, 정치적 지도자들, 스타 과학자(-0-;;), 그리고 수많은 시민 영웅들 -이 어느 때보다도 빠른 속도로 명멸을 거듭하고 있고 그들이 우리의 삶에 미치는 영향은 무척 크다고 할 수 있다.

  

반드시 모든 영웅들을 비뚤어진 시각으로 볼 것까지는 없다. 하지만, 때로는 불순한 목적을 가진 누군가가 의도적으로 영웅을 만들어 내고, 그렇게 만들어진 영웅이 우리의 삶을 일정부분 규율할 수 있음은 인식하고 있어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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짱꿀라 2007-01-04 00: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시대 속에서 만들어진 영웅들은 그 나름대로의 의미가 있지 않을까요.

외로운 발바닥 2007-01-06 17: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영웅 모두가 만들어졌다고는 볼 수 없겠죠. 그리고 영웅을 바라보는 모든 시선을 부정적인 것으로 할 필요도 없다고 생각합니다. 다만, 만들어진 영웅에 대한 문제의식만 갖고 있으면 되겠죠. 최근 황박사 사건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는 생각도 듭니다.^^
 
파이널 데스티네이션 (dts-es 2disc) - 할인행사
제임스 웡 감독, 크리스 렘체 외 출연 / 스타맥스 / 200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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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교지편집부인 웬디는 친구들과 함께 놀이공원에 가서 교지에 싣기 위한 사진을 찍는다. 그런데 그 날 롤러코스터를 타려던 웬디는 사고를 예감하고 출발직전 열차에서 내리지만 남자친구인 제이슨은 미처 내리지 못하고 결국 롤러코스터는 웬디의 예감대로 탈선하여 전원이 사망하는 끔찍한 사고가 나고 만다. 그 이후 주변 친구들이 하나둘씩 불의의 사고로 끔찍하게 사망하는 사건이 발생하고 웬디는 자신이 그날 찍은 사진에 나오는 친구들이 차례차례 죽음을 맞는다는 사실을 깨닫고 케빈과 함께 추가적인 사고를 막으려고 하는데...


어떤 사고로 죽을 사람이 그 사고를 피하여 죽음을 모면하더라도 결국 어떻게든 죽음이 찾아온다는 설정의 파이널 데스티네이션 시리즈. 비행기 참사를 피한 주인공과 관련된 1편은 텔레비전에서 본 기억이 나는데 처음 영화를 보고서 상당히 참신하면서도 무서운 느낌을 받았던 기억이 난다. 2편은 케이블을 통해서 보았는데 주인공들이 상당히 과격하게(?) 죽음을 맞는 것이 인상적이었다. 그런데 이번 3편은 적어도 죽음을 맞는 장면만 놓고 본다면 1, 2편의 잔혹성을 훨씬 능가하는 것 같다. 선탠기계에 갇힌 채 죽음을 당하는 장면, 그리고 작업장에서 *질 당하여 죽는 장면은...정말로 끔찍하다. 그리고 약간의 스포일러가 될지는 모르겠지만 3편에서 죽는 대부분의 주인공들은 정말 바닥에 던져진 홍시와 같은 모습으로 죽는다. -0-;; 미리 마음의 준비는 좀 해야 할 듯하다.


원래 공포영화를 즐겨보지 않는 차에 여자친구의 손에 이끌려 보게 된 영화라서 주인공들이 반액체상태로 죽음을 맞는 장면을 볼 때마다 고개를 돌리게 되었지만, 전반적으로 시간을 때우기에는 꽤 괜찮은 영화였다. 자신이 통제할 수 없는 상황에서 죽음이 다가온다는 점에서 오는 긴장감, 또는 단순히 관객의 입장에서 영화 속에서 곧 비참하게 죽을 것 같은 등장인물이 정확히 어떤 순간에 어떤 방식으로 죽게 될까에 대한 호기심과 긴장감이 이 영화의 묘미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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짱꿀라 2007-01-03 10: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잘 읽고 갑니다. 행복한 하루 되세요.

외로운 발바닥 2007-01-03 22: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산타님도 행복한 하루 되셨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