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 최근 검찰이 론스타의 수뇌부에 대한 체포영장을 청구한 데 대하여 법원이 영장실질심사에서 계속하여 세번이나 영장을 기각한 사건이 있었다. 검찰은 증거 포착이 어려운 이 사건을 심도있게 수사하여 기소유지를 해야 할 뿐 아니라 다른 사건들과의 형평성을 고려할 때 론스타 간부진의 구속이 필요하다는 주장이었고, 법원은 그들을 체포할 만한 충분한 증거가 없으니 먼저 충분한 증거를 제시하라는 것이었다. 한국에서는 최근 사법개혁과 형사소송법 개정 논의가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다. 미국의 불구속기소 원칙을 도입한 형사소송법 개정의 정신은 피의자의 인권을 보장하고 수사를 투명하게 함으로서 민주주의적 사법제도를 확립하겠다는 의미일 것이다.
그렇다면 미국에서는 영장발부와 불구속기소라는 두 원칙이 어떻게 조화를 이루는가? 미국의 판사가 체포영장을 발부할 때 기준으로 삼는 척도는 연방헌법에 규정되어 있는 대로 “체포할 필요가 있다고 믿을 만한 이유”이다. 약간 막연하게 들릴지 모르지만 검찰(경찰)은 어느 정도의 수사를 진행한 결과 혹은 수사관이 현장에서 목격한 사건을 수사한 결과 “범죄행위가 있(었)다고 믿을 만한 증거가 있고 그 범죄행위의 혐의자가 있다”는 전제 아래 혐의자에 대한 영장 발부를 청구한다. 영장 발부의 근본 목적은 일단 피의자의 신병을 확보하고 그에게 혐의 내용을 고지함과 동시에 앞으로 있을 재판에 성실히 출두하겠다는 약속을 받는 것이다. 그런 다음 피의자가 보석금을 영치하면 즉시 구속상태를 풀어준다.
검찰은 피의자를 일단 체포해놓고 억압적인 분위기에서 수사를 진행하기 위하여 영장을 청구한다는 마음가짐을 버려야 한다. 막강한 국가 권력을 등에 업고 있는 검찰엔 항상 힘 없는 피의자의 인권을 존중하는 태도가 필요하다. 설혹 구속상태에서 수사를 진행하더라도 변호인의 도움을 받을 권리와 증언거부권을 반드시 보장해 주어야 한다.
미국의 형사재판에서 피의자의 유무죄를 판정할 때는 적어도 “합리적인 의심을 가질 수 없을 정도의 명백한 증거”가 있어야 비로소 유죄로 평결할 수가 있다. 이렇게 비교해보면 한국의 영장심사는 “체포할 필요가 있다고 믿을 만한 이유”를 훨씬 넘어 “합리적인 의심을 가질 수 없을 정도의 명백한 증거”의 척도를 가지고 피의자의 체포 여부를 결정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것은 검찰에 대한 지나친 요구인 것처럼 생각된다.
미국의 판사는 하루에 20~30건에 이르는 영장청구를 심사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한국의 영장심사처럼 사건 하나에 10시간 이상씩 많은 시간을 배정할 여유가 없다. 영장 심사는 피의자의 출두 혹은 변호사의 변론없이 판사단독으로 판사실에서 서류검토만으로 진행하는 것이 원칙이다. 검사(경찰관)이 제출한 영장청구서에 “체포할 필요가 있다고 믿을만한 이유”가 있다고 판정하면 즉시 영장을 발부한다.
검찰은 형사소송의 목적이 결코 피의자에 대한 징벌이나 복수를 위한 것이 아니라 진리를 발견하여 정의를 실현하는 일이라는 신념을 가져야 한다. 판사는 피의자에게 형사소송법상의 모든 보호조처를 보장해 주어야 하겠지만 그렇다고 검찰을 적대적인 자세에서 대할 것이 아니다. 판사는 오직 공정하고 불편부당한 중립자의 형편에서 영장을 검토해야 한다. 판사가 영장심사할 때에는 지나친 증거를 요구할 것이 아니고 “체포할 필요가 있다고 믿을 만한 이유”의 척도를 가지고 판단하는 것이 타당하다고 생각한다.
채동배/미국 달라스시 법원 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