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법불신, 왜?①]"인정 못해? 법원에 묻자"
  2007-03-07 오후 7:15:48

http://www.pressian.com/scripts/section/article.asp?s_menu=사회&article_num=60070307153859

 "이 정도면 굿이라도 해야 할 판이다." 최근 사법부를 둘러싼 '잡음'을 두고 법원에 출입했던 한 기자는 "밖에서 보니 지난 1년 동안 사법부가 '뭇매'를 맞더라"라며 이같이 말했다. 현직 부장판사가 사법부의 수장인 이용훈 대법원장을 '사법불신의 축'으로 지목하는가 하면, 진실화해위원회의 긴급조치 판결 분석 공개, 김명호 전 성균관대 교수의 '석궁사건' 등을 통해 사법불신이 주요 사회현상으로 떠오르고 있다.
  
  한 현직 판사는 "석궁사건 자체보다, 석궁사건 이후 보여진 국민들의 반응을 보고 큰 충격을 받았다"며 "원래 인터넷 댓글이 곧 여론이라고 믿지는 않지만, 같은 판사로서 법원을 비난하는 댓글이 압도적인 것을 보고 사법불신의 실체가 이런 것인가 하는 생각이 들어 착잡했다"고 말했다.
  
  이는 통계에서도 드러난다. '석궁사건' 직후 여론조사기관 '리얼미터'가 실시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조사대상 760명 중 77.3%가 '김 전 교수에 대한 판결문에 동의 못 한다'고 답했고, 59.5%는 '법원의 판결이 공정하지 않아 신뢰 못 한다'고 답했다. '석궁사건' 직후라는 시기적 특성이 개입된 조사결과이지만, '사법불신' 수준이 50%를 넘는다는 것은 매우 심각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이에 대해 판사 출신의 한 변호사는 "사법불신은 원래 높을 수밖에 없다는 점을 인정해야 한다"고 말했다. 법원에 가면 승자와 패자가 있을 수밖에 없는데 절반의 패자는 감정적인 '불신'을 품을 수밖에 없다는 설명이다. 1년에 소송 사건이 100만 건이면, 법원은 항상 50만 명의 적을 만들고 있다는 것. 그는 다만 "패자에게는 질 수밖에 없었던 이유를 제대로 설명해야 하는데, 우리 법원이 그 부분에서 좀 미숙했던 것이 사실"이라고 덧붙였다. 그는 그 원인으로 '관료주의·권위주의적 법원 문화', '문서중심 재판진행의 관행' 등을 꼽았다.
  
  이런 설명으로도 최근 도드라지는 '사법불신' 풍조를 설명하기엔 부족하다. <프레시안>은 현재 나타나고 있는 '사법불신'의 원인을 다각도로 조명해보고, 이를 해소하기 위한 방안으로 제시되고 있는 논의를 살펴보고자 한다. 편집자

  
  

▲ 사법부의 상징 대법원. ⓒ프레시안

  
'법조비리', '화이트칼라 범죄에 대한 온정주의', '미온적인 과거사 청산' 등 사법불신을 초래한 여러 가지 요소들이 있지만, 가장 큰 원인으로 꼽히는 것 중 하나가 '사법 중심화' 혹은, '사법 정치화', '사회의 사법화'이다. 언제부터인가 사법부가 한국사회의 정치·경제·사회·문화 거의 모든 분야의 주요 갈등이 대립하는 전쟁터가 됐고, 그러다보니 개인적 소송 당사자가 아닌, 일반 국민들의 사법부에 대한 관심도가 높아졌고, 높아진 관심만큼 '사법불신'의 절대적 외연이 확장됐다는 분석이다.
  
  공교롭게도 이러한 '사법 중심화가 시작된 시점은 노무현 대통령의 취임과 일치한다.
  
  은근슬쩍 사법부에 넘어간 정치권력…대통령 탄핵 사건으로 '권력 완성'
  
  우선 노 대통령 취임과 동시에 실시된 '대북송금 특검.' 피고인은 박지원 전 문화부 장관, 임동원 전 국정원장 등 '실무자'에 불과했지만, 사실상 대북송금 특검의 피고인은 김대중 전 대통령이었다. 대통령이 행한 국가적인 고도의 통치행위라도 '사법적 정당성'을 얻지 않으면 당연히 사법처벌의 대상이 된다는 '사법 정치화'의 신호탄을 올렸다.
  
  이어 터진 '대선자금' 사건. 과거 사회적 관행으로 받아들여져 온 '불법 정치자금'이라는 공공연한 비밀이 검찰의 수사를 통해 국민 앞에 낱낱이 공개됐다. '차떼기'라는 말이 등장하며 정치권력이 희화화됐고 정치권 세대교체라는 결과를 낳았다. 십수 명의 국회의원들이 법원에 금배지를 반납한다는 사실을 언급하지 않더라도 사법부가 정치인의 수명을 좌우하게 된 상징적 사건 중의 하나이다.
  
  사법 권력화의 정점은 '헌법재판소'에서 완성됐다. 국민의 투표로 선출된 대통령을 역시 국민의 투표로 선출한 국회의원들이 탄핵을 하였으나, 국민에 의해 선출되지 않은 헌재 재판관들이 재판을 통해 대통령을 복귀시켰다. 2004년 총선 뒤 내려진 판결은 '정답을 보고 사후에 쓴 답안지'라는 비판이 있었지만, 헌재 판단의 정당성 여부를 떠나 우리나라 법체계가 대통령 직(職)마저도 법원이 결정할 수 있는 구조라는 것을 현실로 보여준 셈이고, 처음으로 그 위력을 발휘한 사건이다.
  
  이어 헌재에서 또 다시 '대박'을 날렸다. 노 대통령의 최대 공약이었던 '행정수도 이전'을 좌초시킨 것. 헌재는 '관습헌법'이라는 이유를 들어 행정수도 이전을 위해서는 국민투표가 필요하다는 판단을 내렸다. 이번에도 헌재 판단에 대한 근거의 정당성 여부를 떠나 주요 '정치적', 혹은 '정책적' 사안이더라도 "일단 헌재에 묻고 본다"는 풍토가 생겨났다. 이는 정치권력이 스스로 권력을 사법부에 갖다 바친 꼴이 됐다.
  
  
▲ 지난 2004년 대통령 탄핵 당시 탄핵심판이 벌어진 헌법재판소에 몰려와 시위를 벌이고 있는 시민들. ⓒ연합뉴스

  대통령 권력도 무력화할 수 있는 헌재의 힘

  
  홍윤기 동국대 철학과 교수는 최근 발간된 책 <헌법 다시 보기>(함께하는시민행동 엮음)에서 "2004년은 나뿐만 아니라 대한민국 국민 모두가 헌법이 전례 없이 국가 활동의 중심에서 권력정치와 민생을 좌우할 정도로 위력을 발휘할 수 있음을 직접적으로 체험한 해"라고 규정했다.
  
  홍 교수는 "헌법을 근거로 한 그 무대의 주역들은 헌법재판소 재판관들이었다"며 "그들은 당시 16대 국회 재적의원 3분의 2의 찬성으로 통과한 대통령 탄핵안을 최종적으로 심판하는 위치에 서서 국민이 뽑은 현직 대통령의 명운을 장악했으며, 대통령선거의 공약으로 제시돼 유권자의 지지를 받았고 여야가 합의해 통과시킨 '신행정수도의 건설을 위한 특별조치법'의 법적 효력을 무효화할 수 있는 권력을 넘겨받았다"고 평가했다.
  
  이밖에도 국가보안법 개폐, 이라크·아프가니스탄 파병, 주한미군기지 이전, 양심적 병역거부 등 진보진영의 이슈는 물론, 개정 사학법 등 보수진영의 이슈까지 모두 헌재로 모여드는 현상이 가속화됐다. 박명림 연세대 국제대학원 교수는 같은 책에서 "정치·사회·인권·대외관계 핵심 의제들은 거의 전부 헌법적 결정의 문제로 귀결됐다"며 이를 두고 "'정치의 사법화' 내지는 '사회의 법률화' 경향의 심화"라고 표현했다.
  
  
▲ 새만금사업에 대한 공개심리를 벌이고 있는 대법원 대법정 모습. ⓒ연합뉴스


  국책사업 결정자는 사법부…이젠 4000만 국민이 재판 당사자

  
  사법부가 내린 '중차대한 결정'은 정치 갈등뿐만이 아니었다. '단군 이래 최대의 토목사업이'라는 새만금 간척사업의 진행 여부가 법원에서 판가름 났고, 지율스님의 100일 단식으로 사회적 이슈가 된 경부고속철도 천성산 터널 구간 공사 여부도 법원에서 결정됐다.
  
  황우석 박사의 '줄기세포 조작' 논란과 같은 과학적 이슈도 결국 검찰에서 진위가 가려졌다. 사실 줄기세포 사건에서 검찰의 본래 역할은 '업무방해', '횡령'과 같은 법률적 판단이었지만, 과학적 이슈의 심판자로 나섰고, 국민들이 이를 원했다.
  
  또 민감한 내용이 담긴 영화나 출판물이 상영되거나 발간될 때는 당사자들이 사법부에 '가처분 신청'을 하는 것이 관례화될 정도로 '사법'은 문화ㆍ언론의 영역까지 파고들고 있다.
  
  일반 국민들의 관심을 끌 만한 굵직한 경제사건도 많았다. 현재 삼성그룹의 지배구조 계승을 좌우할 '에버랜드 사건'이 수년 째 진행 중이고, SK그룹, 두산그룹, 현대차그룹은 비자금 사건으로 사법부로부터 철퇴를 맞았다. 재벌들에 대한 법원의 온정주의 판결도 '유전무죄, 무전유죄'라는 국민들의 전통적 '사법불신 코드'를 확대 재생산했다. '대선자금 수사'로 기소된 경제인들이 모두 집행유예 판결을 받았고, 두산그룹 비리 사건도 집행유예 처벌로 끝나는 등 국민들의 눈높이를 벗어난 판결이 많았다.
  
  이처럼 사법부가 정치·경제·사회·문화 전반에 걸친 주요 이슈에 대한 최종 판단자 역할을 하게 되면서 법원의 재판 당사자가 100만 명의 소송 관계인들을 넘어서 4000만 국민 대부분이 '당사자'가 된 셈이다.
  
  이전 시대와 근본적으로 다른 '사법불신'의 차원
  
  결국 사법부가 개개인 국민들의 생활에까지 영향을 미치는 존재가 되자 국민들의 관심도는 정치 영역에 버금가거나 오히려 정치에 대한 관심을 능가하기에 이르렀다.
  
  특히 '호주제', '양심적 병역거부', '동성애자 호적 성별전환', '국가보안법 사건' 등 사회 소수자에 대한 판단이나 이념적으로 대립하는 이슈에 사법부가 적극적으로 개입하게 됨에 따라 국민적 관심이 '무력해진 정치의 영역'에서 국민들 삶에 즉각적 효력을 나타내는 사법부의 영역으로 전이되는 현상을 낳았다.
  
  권력 전이 현상과 함께 전통적인 정치적 갈등이었던 국민들의 이념·세대·계층적 갈등의 무대가 사법부로 옮겨진 셈이다.
  
  게다가 '합의'가 통하는 정치영역과는 달리 사법부는 법적 승자와 패자를 가를 수밖에 없기 때문에 그만큼 사법부에 대한 적극적 찬성 혹은 적극적 반대 의사를 나타내는 층이 늘어난 것이다.

김하영/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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짱꿀라 2007-03-24 23: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사법을 믿지 못하는 거야 당연한 것 아닐런지요. 부패의 온상이자 대통령 눈치만 살피뿐 본래의 역할을 하지 못하는 거라 생각이 듭니다. 입법 사법 행정 이라는 삼권분립이라 말을 하지만 우리나라는 아마 일권이라 해야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대통령과 여당에 의해 정치가 이끌어져 가니 어찌 이들이 제대로 된 국민을 위한 정치를 할 수있다고 보겠습니까? 사법부의 본래의 역할과 국민을 대표하는 나라의 한 기관으로 제대로 된 기능이 발휘되었으면 하네요.

외로운 발바닥 2007-03-25 09: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법조인의 한사람으로서 부끄럽네요. 하지만 개인적으로 사법불신의 원인은 사법부가 대통령이나 행정부로부터 독립하지 못해서라기보다는 사법적 판단을 법관 개인의 양심에만 맡기게 되어 있다는 것이 더 큰 문제인 것 같습니다. 또 사법부 내부의 독립 문제도 있고요. 아무튼 산타님 말씀처럼 사법부가 본래의 역할과 제대로된 기능을 발휘할 수 있었으면 합니다. 저도 나름대로 열심히 노력하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