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법불신, 왜?②]"판사도 '비판' 감내할 맷집 키워야"
 

2007-03-09 오후 5:25:25

http://www.pressian.com/scripts/section/article.asp?s_menu=사회&article_num=60070307164747

사법부를 비난하는 주 레파토리 중 하나가 '선출되지 않은 권력'이라는 말이다. 혹자는 "거리에서 수많은 피를 흘리며 정치적 민주화를 이뤘지만, '권력의 시녀'였던 사법부가 피 한 방울 흘리지 않고 민주화의 과실을 따먹고 있다"고 비판하기도 한다.
  
  사실 우리나라 사법부의 역사적 맥락을 보면 현재 급격히 커진 사법부의 역할과 위상이나 사법부에 대한 국민적 관심도와 영향력에 비해 그 형성 과정이 과연 정당한 것인지, 신뢰할 만한 것인지에 대한 의심이 들 수밖에 없다는 것이고, 이런 '태생적 한계'가 사법불신의 주요 원인 중 하나로 꼽힌다.
  
  특히 첫번째 기사(☞사법부, 한국사회의 중심에 서다)에서 언급했던 지난 2004년 헌법재판소의 대통령 탄핵심판 사건은 역사적 화두를 던진 사건이었다. 헌재의 탄핵심판은 헌법에 명시된 것이지만, 과연 '선출되지 않은 권력이 선출된 권력을 심판해도 되는 것이냐'는 질문이 헌법이나 정치학 강의실이 아니라 현실에서 제기된 것이다.
  
  "민주주의 vs 법치주의"
  
  홍윤기 동국대 철학과 교수는 <헌법다시보기>(함께하는시민행동 엮음)라는 책에서 대통령 탄핵심판 사건과 행정수도이전 위헌소송 사건에 대해 "대한민국 국민은 자신들이 뽑지 않았으며, 그 이름이나 경력도 생소한 인물들이 단지 사법고시에 합격한 뒤 법원이나 검찰에 오래 근무했다는 이유로 대통령 직선과 국가 선거의 절차를 밟은 국가정책을 일순간에 뒤집는 막강한 권력을 행사할 수 있음을 한 해에 두 번이나 체험해야 했다"며 사법부 구성의 한계를 지적했다. 사법부의 판단이 과연 민주적 정당성을 갖느냐는 문제제기였다.
  
  

▲ 홍윤기, 박명림 교수 등 학자들과 사회운동가들이 펴낸 책 '헌법다시보기.' 이 책에는 "현재 헌법이 87년 정치 엘리트들의 합의의 결과일 뿐 현재의 다양한 사회적 가치를 반영하지 않고 있다"며 "이제 헌법의 전면적인 개정을 논의해야 한다"는 주장이 담겨 있다.

  
같은 책에서 박명림 연세대 국제대학원 교수는 "법적 판결이란 본질적으로 승리와 패배, 정의와 불의, 옳음과 그름을 가름해 법률적 승자와 패자를 판정해내는 속성을 갖는다는 점에서 민주주의 원칙인 균형과 타협, 공존(의 영역)을 축소시킨다"고 주장했다. 박 교수는 "'선출되지 않은 권력'인 (헌법)재판관들이 시민·인민의 집합의사에 우선할 수 있는가, 법치는 민주주의를 보장하고 발전시킬 수 있는가"라고 문제를 제기했다.
  
  '선출되지 않은 권력' 대안이 '선거'는 아니다
  
  그러나 '선출되지 않은 권력'이라는 비판이 대법관이나 헌법재판관을 '선거'로 선출해야 한다는 명제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다.
  
  대법관 등을 선거로 선출하면 민주주의의 원리를 구현할 수 있으나, 입법(국회) 행정(대통령)부에 이어 사법부까지 '다수파 지배' 하에 놓인다는 치명적 한계에 봉착한다. 특히 사법부가 '인권 최후의 보루'라는 사명을 가진 권력기관으로 소수자 보호의 임무가 있음을 감안하면 선거의 의한 선출이 사법부의 독립성을 저해할 수 있다.
  
  실제로 최고사법기관의 법관이 일반적인 선거에 의해 선출되는 나라는 거의 없다. 미국 연방대법원은 국회의 동의에 의해 대통령이 임명하고, 독일의 헌법재판소는 연방의회와 연방참의원이 절반씩 선출해 대통령이 임명하며, 프랑스의 헌법원은 대통령과 국민회의 의장, 상원의장이 각 3명씩 임명을 한다.
  
  우리나라도 대법원장 및 대법관은 국회의 동의절차를 거쳐 대통령이 임명하고, 헌법재판관은 유럽과 같이 국회와 대통령, 대법원장이 각 3명씩 선출하는 등 민주적 견제 장치를 마련해 두고 있다.
  
  다만 우리나라의 경우 과거 독재정권 시절 사법부가 '권력의 시녀'라고 조롱당할 만큼 본래의 기능을 하지 못했고, 현재도 대통령과 의회 권력이 일치(여대야소)하는 경우가 많아 결과적으로 대법원장이나 대법관이 거의 대통령의 영향력을 벗어날 수 없는 것 아니냐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게다가 역사적으로 대법관의 성향이 보수 획일화 돼 있어 시민사회의 거센 비판을 받아왔다. 또 대법원장이 대법관을 제청하는 제도 등은 시민사회의 대법관 추천을 가로막고, 대법원장과 대법관 사이에 계급적 관계를 불러와 사법부 내 민주화를 저해한다는 비판을 받고 있기도 하다.
  
  그러나 사법부의 독립을 위해 '다수 지배'라는 민주주의 구성원리에서 사법부가 제외돼야 한다는 데는 이견이 크지 않다. 그렇다면 '선출되지 않은 권력'이라는 태생적 한계를 보완하는 방법이 '선거' 외에 무엇이 있겠는가라는 문제와 맞닥뜨리게 된다. 이에 대해 대부분의 나라들이 배심제나 참심제와 같은 국민의 사법참여제도를 운영하고 있고, 우리나라도 '사법 민주화'의 과제로 '배심·참심제', '법조 일원화' 등을 추진하고 있다.
  
  "완전무결하다는 아집 버려야"
  
  하지만 이러한 제도적 개혁은 이미 많은 논의를 거쳤으나 사법부나 판사 개인의 의식 개혁에 대한 논의는 활발하게 이뤄지지 않았다.
  
  이와 관련해 지금까지 우리 사법부는 '판결 무결점주의' 등 권위주의·엘리트주의적 관점을 고수하며 시민사회와 소통하는 데 게을렀던 것이 사실이다. 사법부에서는 "사법부의 판결이 사회 갈등의 '종점'이 돼야 한다"는 관점을 갖고 있다. 이는 충분한 심리를 통해 설득력 있는 결론을 도출해야 한다는 '자기 다짐'이 담긴 말이지만, 모두를 만족시키겠다는 것 자체가 신기루일 수 있다.
  
  박명림 교수는 "최고법원과 헌법재판소의 헌법적 판결이 '최고'(supreme)이자 '최종'(final)이며 '무오류'(infallible) 결정이라는 오랜 관념은 오류"라며 "특정 시점의 판결이 항상 보편타당한 최종 판결은 아니다"라고 주장했다.
  
  박 교수는 이어 "실제로 헌법적 가치들은 법원과 헌법재판소를 포함한 사법적 행위자들과 의회, 시민단체, 행정부 등 비사법적 행위자들 사이의 상호작용의 결과이지 사법 행위자들에 의해 배타적으로 형성되는 것은 아니다"고 설명했다. 호주제, 국가보안법 위반에 대한 판결 등의 변화가 그 증거인 셈이다. 또 한편으로 우리 사법부는 구조적 한계에 의해 '시민사회'와의 상호작용이 충분치 않았다.
  
  특히 최근 사실관계 판단에 그치지 않고 이념적 사건이나 정책판단에 관한 사건이 늘어나고 있는 점을 감안할 때, 사법부와 시민사회의 소통은 '사법부에 대한 민주적 통제'의 한 방식으로 여겨지며 더욱 중요한 과제로 떠오르고 있다.
  
  
▲ 참여연대는 2005년부터 '사법감시' 활동의 일환으로 '판결비평'을 해오고 있다.

  사법부, 광장으로 나와야…"판결은 국민에게 '수용'돼야 하는 것"

  
  이런 측면에서 의미있는 시도가 2005년부터 실시돼 온 참여연대의 '판결비평'이다. 한상희 참여연대 사법감시센터 소장(건국대 법학과 교수)은 '판결비평'에 대해 "판결문은 국민 모두가 공유하는 것이고 국민들의 승인을 받아야 되는 것"이라며 "법적으로는 끝이 났을지 몰라도 민주적인 측면에서는 국민들에게 수용되어야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관련기사 보기)
  
  이를 의식한 듯 최근 법원에서도 과거에 비해 판결문 공개에 적극적인 편이다. 불과 2~3년 전 만해도 '요청을 해야' 판결문을 제공했으나, 헌법재판소는 결정문 전체를 공개하고 있고 일반 각급 법원도 사회적 의미가 있는 '주요 판결'을 공개하고 있다.
  
  이와 관련해 법원의 '판결 공개'가 갖는 사회적 파급력이 얼마나 크고, 판결에 대한 사회적 논의가 얼마나 확장될 수 있는지 알 수 있는 사건이 김명호 전 교수의 '석궁사건'이었다.
  
  지난 1월15일 '석궁사건'이 발생한 후 이틀 뒤인 17일, 김 전 교수 사건 항소심의 주심 판사였던 이정렬 판사는 법원 내부게시판에 "김 전 교수가 판결문 내용도 보지 않고 재판 결과만으로 테러를 감행한 것을 보고 당사자 설득을 위한 판결서 작성이 무슨 의미가 있는가에 관해 깊은 회의에 빠져 든다"고 말했다. 이 때까지만해도 판결문은 공개되지 않았었다.
  
  그런데 그 다음 날인 18일 법원 홈페이지에는 김 전 교수에 대한 항소심 판결문 전문이 공개됐고, 전문이 언론을 통해 그대로 소개(☞관련기사 보기)되면서 인터넷에서 이 판결문에 대한 시민들의 갑론을박이 뜨겁게 펼쳐졌다. 판결문이 확산되고 논쟁이 일어나며 시민사회에서 '수용'되는 과정을 거친 것이다.
  
▲ 김명호 전 교수의 '해직 사건' 항소심 판결문 전문을 소개한 기사에 달린 댓글들.

  판사들도 '비판' 수용하고 맷집 키워야
  
  물론 이런 '판결 공개'에 대한 비판 여론도 만만치 않다. 확정 판결 전에 판결문이 공개돼 논란이 일어나면 항소심, 상고심 등에 영향을 미쳐 법관의 독립적인 판단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판결 공개가 가져오는 '순기능'이 더 크다. 이미 언급했던 '판결 무결점 주의', '사법부와 국민과의 괴리' 등을 극복하기 위해 판결 공개 확대와 판결 비평 활성화는 매우 중요하다는 것.
  
  한 법조계 인사는 "언론을 통해 소개되는 판결은 극히 제한적이고 전달 방식도 지면 제한 등에 의해 판결의 핵심이나 진의가 와전되는 경우를 종종 볼 수 있다"며 "판결문 공개는 국민들이 사법부를 직접, 있는 그대로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고, 장기적으로는 신뢰형성으로 이어질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그는 또 "(석궁 사건은) 법관이 자신 있게 쓴 판결문이더라도, 법관의 관점과 일반인들의 관점이 다를 수밖에 없는 부분이 있다는 것을 깨닫게 해 준 사건 아니겠느냐"며 "이제 법관들도 자신의 '판단'이 최선이라는 생각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이제 법관들도 이런 논란을 감내할 수 있는 맷집과 판결에 대한 책임감을 지금보다 강화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대법원 관계자도 "현재 법원이 추구하고 있는 재판 결과의 공개는 사법권력에 대한 불신과 권위를 회복하기 위한 것"이라고 말했다.
  
▲ 배심제 모의 재판에 참여해 선서하고 있는 일반 시민들. ⓒ연합뉴스

  배심·참심제, 이제 선택이 아닌 필수

  
  제도적 '사법 민주화'의 방안들 가운데 현재 가장 진전된 것은 배심·참심제를 통한 '국민의 사법참여'다. 배심제는 '배심원단'을 이룬 일반 시민들이 유ㆍ무죄 등의 판단을 내리는 것이고, 참심제는 일반 국민이 법관과 동등한 위치에서 재판에 참여하는 방식을 말한다.
  
  물론 배심제, 참심제에 대한 비판이 없는 것은 아니다. 과연 한국적 풍토에서 국민들이 배심이나 참심으로 활발하게 재판에 참여할 것인가의 문제가 있고, 이 제도를 채택하고 있는 외국에서도 과도한 비용, 배심·참심원의 전문성과 신뢰성 등이 문제되고 있기도 하다.
  
  하지만 배심·참심제를 주장하는 측에서는 "배심·참심제를 통해 국민들이 사법부에 관심을 갖게 해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다. 그동안 사법부가 국민들과 괴리돼 있어 사법부는 국민들 눈 높이를 모르며, 결국 국민들은 사법부를 불신하고 무관심하게 되는 악순환이 되풀이된다는 것이다. 따라서 국민이 재판에 참여할 때 이러한 괴리가 사라지고 재판이 투명해지며, '법의 시민화'가 이뤄질 수 있다는 주장이다.
  
  현재 '국민 참여 재판'이 이뤄지지 않고 있는 나라는 네덜란드, 일본, 한국, 사우디아라비아, 바레인 등인 것으로 알려졌으며, 일본도 2009년부터 참심제가 실시된다. 우리나라도 '사법개혁'의 일환으로 배심·참심제 도입을 위한 법률안이 2005년 국회에 제출됐지만, 지금까지 국회에 '계류 중'이다.
   
 
  김하영/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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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로운 발바닥 2007-03-25 09: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완전무결하다는 아집을 버려야 한다는 말이 가슴에 와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