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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의는 아니지만 - 구병모 소설
구병모 지음 / 자음과모음(이룸) / 2011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구병모의 첫 단편 모음집 '고의는 아니지만'을 읽었습니다. '위저드 베이커리'와 최근에 출간되었던 '아가미'라는 장편으로 이미 제법 알려진 작가지만 부끄럽게도 저는 이번 소설집으로 그를 처음 만나게 되었습니다. 앞서 나온 두 편의 장편을 읽지 못한지라 그에 대해 논하는 것은 아무래도 불가능할 듯 싶습니다. 이번 작품집이 참으로 인상깊었기에 빠른 시일 내에 전작들을 모두 챙겨읽고 그에 대해 이야기할 기회가 있지 않을까 싶네요. 그러니 오늘은 그저 짧게 이번 작품들과 그에 대한 첫만남과 첫인상에 대한 일기 몇자 적고 다음을 기약해야 할 듯 합니다. 

고의는 아니지만 / 소설 / 구병모 / 자음과 모음 (2011)
 

그와 그의 작품에 대한 첫인상은 우선 당혹스러움이었습니다. 당혹스러움이란 좋고 나쁘고의 판단 이전의 감정이지요. 아니 감정이라기 보다는 본능적인 반응이라 하는 것이 옳을 것입니다. 그에게, 그의 작품에게 그러한 반응을 저도 모르게 보인 것은 예상치못한 장황함 때문이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이렇게 장황한 문체는 처음이었습니다. 특히 번역된 외국 소설이 아닌 한국 소설에서 쉼표들과 '~만', '~고'로 연결지어진 긴 문장들이 끊임없이 이어지는 작품을 보는 것은 실로 오랜만이었습니다. 현대소설에서는 군더더기 없이 간결한 문체가 미덕이라 여겨져왔고, 장황하다해도 그것은  윤대녕식의 화려한 비유와 수식 혹은 신경숙이나 은희경식의 화자의 내면을 묘사하는 내적 비유 때문인 경우가 대부분이었기에 기실 장황하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더랬습니다. 그런데 이 구병모의 소설들은 좀 다르더군요.  

뭐랄까요. 그는 설명하고 있었습니다. 필요한 모든 것을. 자신이 보여주고 싶고 이해시켜 주고 싶은 모든 것을. 여기서의 설명과 이해란 내적 비유나 화려한 묘사를 뜻하는 것이 아닙니다. 제가 보기에는 정확한 단어선택과 최대한 사실적인 묘사를 통해 자신이 하고 있는 이야기와 자신이 보여주고 싶은 인물의 객관성을 확보하려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그렇게 그의 문장은 장황하지만 화려하지 않았습니다. 그게 바로 제가 당혹스러움을 느낀 이유입니다. 장황함이란 화려함을 대동하기 마련인데, 장황하면서 화려하지 않다니. 소설에서 이럴 수도 있는가. 이런 문체가 과연 소설에 적합하다 할 수 있는가, 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이는 차라리 시나리오나 연극 대본에 적합한 문체입니다. 그렇습니다. 조금 과장을 보태자면 그의 소설은 오랜 시간 영상매체 혹은 공연매체의 극본을 담당했던 시나리오 작가나 극작가가 소설가로 전업해서 쓴 작품이 아닐까 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우리가 알고 있는 소설적인 문체와는 다른 느낌이었습니다. 즉, 요즘 젊은 작가들의 마치 영화를 보는 듯 간결하고 스피디한 문장과 구성이랑은 또 다른 느낌이었다는 뜻입니다. 그렇다고 사실에 집착하는 신문기자들의 객관적인 문장과도 또 다른 느낌이었으니 이것 참...더 이상은 설명이 힘들 거 같네요. 그저 이렇게 말할 수 밖에 없겠습니다.  

눈 앞에 보이는 것 이면의 진실마저도 객관화해서 사실적으로 드러내고 싶은 몸부림. 

그것이 바로 그가 장황한 문체로 이 기묘한 이야기들을 꾸역꾸역 써낸 이유가 아닐까요. 실재하지 않을 것 같은 인물, 그들에게 벌어지는 이해할 수 없는 이상한 사건들, 그러나 알고보면 그 누구도 아닌 나 혹은 내 옆사람이 겪었거나 겪을 수 밖에 없는 너소름끼치도록 현실적인 이야기. 이러한 이야기들을 들려주려다보니...우리 모두가 아는 단어와 표현으로 우리 모두가 알지 못하는 진실을 끄집어내어 보여주려다 보니...자연스럽게 그렇게 장황한 문체가 된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러니 제가 느낀 당혹스러움이란, 다시 말씀드리지만 좋고 나쁘고를 판단할 수 없는 성질의 것이었습니다. 그의 짧은 이야기들을 몽땅 읽고 나서도 여전히 그 당혹스러움이 가시질 않는 걸 보니 아무래도 그의 전작들을 읽기 전에는 그에 대한 호와 오를 판단할 수 없겠습니다. 그러니 오늘은  이쯤에서 물러날까 합니다. 

조만간 오늘의 이 기분 나쁘지 않은 당혹스러움의 정체에 대해 조금 더 구체적으로 설명할 수 있는 날이 오지 않을까 싶네요. 그럼 그때 뵙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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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 명의 백인신부]를 읽고 리뷰 작성 후 본 페이퍼에 먼 댓글(트랙백)을 보내주세요.
천 명의 백인 신부
짐 퍼커스 지음, 고정아 옮김 / 바다출판사 / 2011년 7월
평점 :
절판


'천명의 백인 신부'는 실제하지 않았던 역사적 가정을 전면에 내세운, 우리가 흔히 팩션이라 부르는 가상 역사소설이라 할 수 있습니다. 역사에 가정은 없다고 역사가들은 말하지만 이야기를 창조하는 작가들은 조금 생각이 다른 듯 합니다. '이렇게 되었다면 어땠을까' 라는 흥미로운 가정하에 지난 역사를 비틀고 재해석 하는게 충분히 의미있는 일이라고 생각하는 것이지요. 어차피 허구라는 것을 모두가 알고 있으니 일어나지 않은 일을 충분한 개연성을 바탕으로 풍부한 상상력을 보태 독자들에게 보여준다면 지난 역사를 현재로 불러와 되살리는 것은 물론이고 사람들이 즐거워할 수 있는 훌륭하고 재미난 이야기 한 편을 창조해내는 희열까지 느낄 수 있으니 팩션은 역사를 소재로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이야기꾼들에게는 언제나 염두해둘 만한 '옵션'인 것입니다.

그러한 측면에서 봤을 때 얼마 전에 읽은 '천명의 백인 신부'는 제가 여태껏 접해본 팩션 중 가장 완성도 높은 작품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렇게 '천년의 백인 신부'는 팩션이 흔히 범하는 실수와 팩션이 가질 수 밖에 없는 태생적 한계를 영리하게 피하면서 실화를 바탕으로 한 그 어느 이야기보다 더 진짜같은 생동감과 묵직함을 만들어내는데 성공한 작품인 것입니다.

천명의 백인 신부 / 소설 / 짐 퍼거스 / 바다출판사 (2011)

역사

앞서 말씀드렸듯이 팩션은 실제 역사에서는 일어나지 않은 일이 진짜 일어났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라는 가정에서 시작합니다. 요즘 한창 인기리에 방영중인 텔레비전 드라마 '공주의 남자'가 바로 팩션의 대표적인 예입니다. 김종서의 막내 아들이 죽지 않고 살아남았다면? 김종서의 막내 아들과 수양대군의 장녀가 사랑하는 사이였다면? 이라는 가정이 이 드라마의 출발점인 것입니다. 그러한 가정을 바탕으로 그 다음에는 실제 역사를 바탕으로 이들의 생존과 사랑에 최대한 개연성을 부여할 수 있도록 캐릭터를 창조하고 플롯을 엮어서 한 편의 그럴듯한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것이지요.
'천명의 백인 신부' 또한 그러한 흥미로운 가정을 바탕으로 시작하는 이야기입니다. 지금으로부터 수백년 전, 아메리카 대륙의 인디언 부족 중 하나인 샤이엔족의 족장인 리틀 울프가 미국의 대통령에게 천 필의 말을 내어줄테니 그 대가로 천 명의 백인 신부를 달라는 조금은 어처구니없는 제안을 했었다는 역사적 사실에서 작가는 이 이야기의 단초를 떠올린 것입니다. 당시 미국의 대통령은 물론 이 제안을 일언지하에 거절했고 백인 신부들이 인디언들의 아내가 되어 자식을 낳는 일은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작가는 비록 실현되진 않았지만, 역사서의 한 귀퉁이에서 리틀 울프의 이러한 제안이 실제했었다는데 흥미를 느끼게 됩니다. 그리고는 리틀 울프의 제안을 미국 대통령이 받아들였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라는 가정을 하고 이야기에 살을 붙여보기로 결심하기에 이릅니다. '일종의 실험이자 미끼로 갈 곳이 없거나 범죄를 저지른 백인 여자들 수십명을 선발대로 샤이엔족에게 보냈다면? 그들 백인 여자들이 정부당국에 이용당한다는 것을 어느 정도 알고 있으면서도 시궁창 같은 현실에서 벗어나기 위해 새로운 모험을 기꺼이 하기로 결심한다면? 오호, 이거 재밌겠는걸?' 작가는 자신이 떠올렸다는 것이 믿기지 않을 정도로 재미난 이 이야기의 컨셉이 너무도 마음에 들어 당장 집필에 들어갔을 터 입니다.
여기서 흥미로운 건 도저히 실제했던 역사라고 생각되지 않는, 이 한 줌의 역사적 사실이 없었다면 이 이야기는 시작될 수 없었다는 점입니다. 즉 허구보다 더 허구같은, 리틀 울프의 이러한 제안이 역사적 사실이 아닌 작가의 창작이라면 이 이야기의 재미는 반감되었을 것이고 작가 스스로도 말도 안되는 상상이라며 현실화하기를 포기하고 그냥 반짝하는 아이디어 상태에서 자신의 노트북 깊숙한 곳에 처박아버렸을 것입니다. 그러한 의미에서 이 '천명의 백인 신부'라는 소설은 팩션이 갖춰야 할 첫번째 조건인 '흥미로운 역사적 사실을 바탕으로 한 흥미로운 가정'에 완벽하게 부합하는 작품이라 할 수 있는 것입니다. 

플롯

그러나 아무리 '흥미로운 역사적 사실을 바탕으로 한 흥미로운 가정'이라 해도 이를 풀어가는데 있어서 개연성이 떨어진다면 독자들은 금세 흥미를 잃고 그게 말이 되냐며 불평 불만을 늘어놓고 말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사실 지금부터가 진짜이며 훨씬 중요한 것입니다. '실제하지 않았지만, 실제보다 더 실제같은 이야기', 이것이 바로 팩션이 갖춰야 할 두번째 조건인 것입니다.
이러한 조건에 부합하기 위해서 작가는 현실성과 상상력 사이에서 교묘하게 줄타기를 해야 합니다. 어디까지가 현실이고 어디까지가 허구인지 독자들이 알아차리지 못하도록 완벽한 이야기로 '튜닝'해내야 하는 것이지요. 이 과정에서 아무래도 팩션이니 상상력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기 쉽지만, 정작 더 중요한 것은 현실성일지도 모릅니다. 팩션이기에 사실 상상력은 기본이고, 이러한 상상력을 진짜처럼, 실제 있었던 일처럼 보이게 하기 위해선 당시의 현실이 자연스럽게 녹아들어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천명의 백인 신부'가 돋보이는 것은 비로 이러한 현실성입니다. 주인공인 메이와 그녀의 동료 백인 신부들이 샤이엔 족의 생활에 적응해가는 과정에서 느끼는 문화적 충격과 어쩔 수 없는 갈등은 물론이고 이들 백인 신부들을 이용하는 미국 정부의 교활한 술책과 이들을 대하는 미국인들의 냉랭한 태도까지...실제하지 않았던 역사임에도 작가는 어느 역사적 사실보다 더 생생하고 현실감 있게 그려내는고 있는 것입니다. 그 덕분에 독자들은 이 이야기가 허구라는 걸 알면서도 메이와 동료들, 그리고 샤이엔 부족에 동화되어 그들에게 닥쳐올 슬픈 운명에 함께 마음 졸일 수 있는 것이 아닐까요?

캐릭터

그러나 이러한 공감과 이입이 가능한 것은 흥미로운 역사적 가정과 이를 실제라 믿게 만드는 플롯 때문만은 아닙니다. 오히려 메이를 비롯한 동료 신부들의 캐릭터에 빚진 바가 크다고 할 수 있습니다. 특히 '천명의 백인 신부'의 주인공인 메이는 작가가 이 소설을 통해 말하고자 하는 것의 총체이자 이 소설 자체라 해도 무방할 정도로 절대적인 존재감을 가진 캐릭터 입니다. 아름다운 외모는 기본이고, 여성다운 섬세함과 지혜로움은 물론이고 남성못지 않은 용기와 결단력까지 갖춘 캐릭터...거기서 더 나아가 종래에는 무리를 아우르는 리더십까지 보여주는 캐릭터인 것입니다. 이렇게 사랑스러운 메이를 통해 작가는 독자들을 이야기의 한복판으로 끌어들입니다. 자신의 운명을 개척하고 자신의 운명에 맞서는 메이의 모습에서 독자들은 대리만족을 느끼는 것은 물론이고, 작가가 보여주고자 했던 역사의 아이러니를 배우고, 거기서 더 나아가 지난 역사에 대한 객관적인 재평가까지 자연스럽게 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문명화라는 미명 하래 말살해버렸던 인디언들의 문화가 얼마나 선진적이었고 정치적으로 올바른 것이었는지 독자들은 점차 샤이엔 족에 동화되어 가는 메이를 통해 알게 되는 것입니다. 푸른 눈과 하얀 피부를 가진 샤이엔족 메이가 꿈꾸는 세상을 통해 진정한 의미에서의 융화와 공존이 무엇인지 독자들은 비로소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이쯤되면 독자들은 메이 뿐 아니라 그녀의 동료 신부 캐릭터들과 리틀 울프를 비롯한 샤이엔 족 캐릭터들 또한 용맹, 평등, 용기, 화합 등 작가가 추구하는 가치를 상징한다는 걸 쉽게 알 수 있을 것입니다. 이처럼 캐릭터가 이야기 자체가 되고 캐릭터가 메시지 자체가 될 수 있다는 것이 바로 이 '천명의 백인 신부'가 가진 최고의 장점이자 매력이 아닐까 싶습니다.     

이처럼 '천명의 백인 신부'는 우리가 팩션에게 기대하는 거의 모든 것을 갖춘 훌륭한 작품입니다. 우리는 실제하지 않는, 실현되지 못한 지난 역사의 재현을 통해 지금도 반복되는 반목과 갈등의 역사에 대한 해답이 어디에 있는지 깨달을 수 있습니다. 저 역시 이 소설을 통해...너무 이상적일 수도 있지만 서로를 이해하고 서로의 정체성을 인정하려는 구성원 개개인의 노력과 이러한 구성원들의 존경을 받는 지도자들의 현명하고 용기있는 선택과 결정이 가능하다면 우리 모두 함께 어울려 평화롭게 살아가는 세상이 결코 불가능하지 않다는 생각을 잠시나마 해 볼 수 있었습니다. 일견 보잘것 없어 보이는, 한 편의 이야기가 이처럼 크고 절절한 울림을 줄수도 있다는...그렇게 이야기의 힘이란 결코 작지 않음을 새삼 깨닫게 해 준 소설, '천명의 백인 신부'...

일독을 권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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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파트의 주목 신간을 본 페이퍼에 먼 댓글로 달아주세요.

공교롭게도, 

눈에 띄는 책들이 모두 문학동네 출신이다. 

그러니 선택될 가능성은 더욱 희박한 것일 테지만... 

손이 가는 걸 멈출 수 없고, 마음이 동하는 것 또한 어찌 할 수 없으니...  

 

 

네 번째 손 / 존 어빙 / 문학동네 

순수한 의미에서의 이야기꾼을 참으로 오랜만에 만난 느낌.  

다른 거 생각할 필요없이, 지금껏 들어보지 못한 재미난 이야기를 궁금해하며 따라가기만 하면 되는 기쁨을 드디어 느끼게 되려나.  

 

신의 궤도 1, 2 / 배명훈 / 문학동네 

우리 문단에 흔치 않은, SF적 상상력의 씨를 뿌리고는 소중하게 잘 키워가고 있는 작가의 신작. 

그만으로도 궁금하고 보고싶은. 

 

꽃의 나라 / 한창훈 / 문학동네 

살아 움직이는, 이 정도로는 부족한. 펄떡거리며 꿈틀대는, 이 정도도 과하지 않은. 

그의 소설을 오랜만에 읽어 볼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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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맨틱 크라운 - Larry Crow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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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상영


톰과 줄리아, 여전히 사랑스러운 둘...그만으로 족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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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라인드 - Blind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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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영종료


오랜만에 관객들의 눈높이를 (어느정도) 만족시키는 한국스릴러를 만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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