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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칠 수 있겠니
김인숙 지음 / 한겨레출판 / 201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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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인숙.

좋아한다고 말할 수 있을까요? 지난번에 '소현'을 소개하고 벌써 두번째이니 일견 그렇게 보일수도 그렇다 말할수도 있을 것 같네요. 그러나 고백하건데 '소현'과 중국 여행기인 '제국의 뒷길을 걷다' 말고 김인숙 작가의 작품 중 제대로 읽은 게 무엇인지 기억이 나질 않습니다. 단편 몇 편이 떠오르긴 하지만 그마저도 너무나 오래전이어서 내용은 물론 그 정확한 제목마저 희미합니다. 그러니 내게 김인숙은 아주 최근에야 주목하게 된 이름이고, 그의 작품의 진가 또한 겨우 '소현'을 통해 알게 되었다고 해야 옳을 것입니다.

이럴진대 아무리 새 장편이 나왔다고, 제법 재빠르게 찾아 읽었다고, 작가에 대해 많이도 알고 있는 것 마냥 주절거릴 순 없는 노릇입니다. 즉, 김인숙다운 것이 어떤 것인지 정확히 알지 못하는 상태에서 이번 소설이 참으로 김인숙 답다, 혹은 영 그답지 못하다고 넘겨짚으며 마음대로 재단해서는 안되는 것이지요. 그러니 제가 이제부터 늘어놓는 이야기들은 오롯이 이번 소설에 국한된 것일 겁니다. '소현'과의 구체적인 연관성마저 찾기 어렸웠던 만큼 김인숙의 작품세계를 섣불리 논하며 알지도 못하는 큰 이야기들을 주절거리는 일 또한 없을 것이구요.

사설이 길었네요.

김인숙의 새 소설이 나왔고 저는 찾아 읽었습니다. 아, 제목. 제목은 '미칠 수 있겠니' 입니다.

미칠 수 있겠니 / 소설 / 김인숙 / 한겨레출판 (2011)

'미칠 수 있겠니'의 주인공은 진이라는 이름을 가진 한국 여자와 이야나라는 이름의 외국 남자입니다. 여기에 진과 꼭 같은 이름을 가진 진의 사랑이자 남편인 진이 있고(구분의 편의상 소설에서처럼 앞으로는 유진이라 칭함) 이야나의 약혼자인 수니가 있고 모든 사단의 시발점인 외국 여자아이가 있습니다.

등장인물만 보면 일견 복잡해보이지만 이야기는 의외로 단순합니다. 평범하게 살아가던 유진이 어느날 갑자기 생의 전환점을 맞이하고는 홀연 외국의 섬으로 떠납니다. 그런 유진을 이해할 수 없었던 진은 한국에 남지만 유진을 너무나 사랑하기에 유진과의 '생이별'을 견딜 수 없습니다. 도서관 사서인 진은 일년에 몇번씩 휴가를 내서 유진이 있는 섬에서 지내다오곤 하지만 근본적인 불안감이 해소될 리 없습니다. 그러던 어느날 진은 유진이 하녀로 부리는 현지인 여자아이와 정을 통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고, 믿었던 유진의 배신에 엄청난 분노와 질투를 느끼게 됩니다. 그리고 배가 부른 채 진의 집에 누워있는 여자아이를 발견하는 순간, 더 이상 자신을 제어하지 못한 채 여자아이를 찔러 죽일 생각을 하기에 이릅니다.  

한편 섬에서 관광객을 상대로 택시운전을 하는 현지인 이야나는 자신의 불안정한 미래 때문에 평생의 사랑이자 약혼녀인 수니를 다른 남자에게 빼앗기고는 자괴감에 빠져 무력한 나날을 보내고 있습니다. 그러던 어느날 아침, 실수로 개를 치어 죽이고는 찜찜한 마음으로 시내를 배회하던 이야나는 호텔을 나서는 진을 태우게 되고 의도치 않게 진과 하룻밤을 보내게 됩니다. 관광객인 진과 사랑에 빠지는 것이 얼마나 무의미한 일인지 잘아는 이야나는 자신의 마음속에서 스멀스멀 피어오르는 감정을 단도리하며 진을 잊으려 애써보지만 자꾸만 진이 떠올라 혼란스럽습니다. 

소설은 이렇게 두 사람의 시점에서 진행되는데 방금 설명한 진의 이야기와 이야니의 이야기는 사실 같은 시간을 공유하고 있지 않습니다. 이야나와 진이 만나는 시간은 현재이고, 진이 절대 잊을 수 없는 여자아이와 마주치는 순간은 7년전의 과거입니다. 그럼에도 소설은 특별한 설명없이 오로지 진과 이야나의 감정의 흐름에 따라 7년전과 현재를 수시로 오가며 씨줄과 날줄로 두 사람의 인연을 얽어갑니다. 7년전 시간의 중심에는 여자아이의 죽음이라는 살인사건이 있고, 현재의 시간의 중심에는 대지진과 쓰나미라는 재앙이 있습니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현재를 잠식하며 여전히 진을 7년전의 시간에서 헤어나올 수 없게 만드는 여자아이의 죽음이라는 사건은 대지진이라는 절대적인 대재앙 앞에서 조금씩 무력해져 갑니다. 눈 앞에 펼쳐진 진짜 지옥의 한복판에서 진은 비로소 지난 7년간의 마음 속 지옥에서 조금씩 벗어나 현실로 돌아오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런 그녀의 옆에는 바로 이야나가 있습니다. 7년전의 지옥에서 진을 끄집어내는 것도, 쓰나미로 인한 대혼란 속에서 목숨을 잃을 뻔한 진을 구해내는 것도 모두 이야나입니다. 그렇다면 이야나는 진의 진정한 영웅이며 구세주인 걸까요? 물론 그렇진 않습니다. 이야나의 현재 또한 진 못지않게 시궁창이며 남루합니다. 사랑하던 수니를 잊지 못해 괴로워하지만 자신의 현재 처지에서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기에 그저 무기력하게 하루하루를 살아내던 이야나입니다. 그렇게 희망 한 쪼가리 없는 나날의 끝에 진을 만나게 된 것이고, 연이어 지진이라는 대재앙과 맞닥뜨리게 된 것입니다. 차라리 미치기라도 했으면 좋겠건만, 차라리 세상이 망해 없어졌으면 좋겠건만, 너무나 멀쩡한 자신과 세상이 원망스럽기까지 했던 이야나는 제정신이 아닌 것처럼 보이는 진을 만나자 자꾸만 마음이 쓰입니다. 그리고 믿기지 않게도 세상마저 미쳐 버립니다. 모두가 미쳐 날뛰며 울부짖습니다. 그야말로 아비규환, 생지옥이 따로 없습니다. 

그렇게 지옥의 한복판에서, 이야나는 비로소 깨닫습니다. 자신은 미칠 수 없다는 것을. 자신마저 미쳐서는 안 된다는 것을. 멀쩡한 정신으로 멀쩡하게 잘 살아서...진이라는 여자를 이 미친 세상에서 구해내야 한다는 것을.

소설은 대부분 진의 시점에서 진행되지만 이렇듯 이 소설의 진짜 주인공은 이야나입니다. '미칠 수 있겠니?' 라는 질문은 진과 이야나 두 사람 모두에게 공히 해당되는 질문이지만 그에 대해 최종적으로 답하는 것 또한 이야나의 몫입니다. 이야나가 아니었으면 진은 진짜 미쳤을 것이고 끝내 자신이 만든 지옥에서 벗어나지 못했을 것입니다. 이야나라는 존재가 있었기에 진은 다시금 현실로 돌아와 남은 생을 살 수 있게 된 것입니다. 이것이 작가의 의도인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저는 그렇게 읽었습니다. 
 
(어떻게) 미칠 수 있겠니.

중요한 것은 결국 '미칠 수 있겠니'가 아니라, 생략된 '어떻게' 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아니, 그보다도 더 중요한 것은, 어떻게 앞에 놓일 이 한마디 일 것입니다.

당신을 두고.

어떻게 미칠 수 있겠니.

당신을 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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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근두근 내 인생 / 김애란 / 창비 

고대하던 책이다. 무슨 말이 더 필요하랴. 김애란의 첫 장편인데.   

 

생명의 한 형태 / 아멜리 노통브 / 문학세계사 
  

노통브의 소설을 읽지 않은지 참 오래되었다. 아니 정확하게 말하자면 '못 읽은지'라고 해야하겠다. 일부러 안 읽었다기 보다는 갑자기 줄지어 쏟아져 나오는 노통브의 소설들 중 무엇부터 읽어야할까 고민하다가 일단 당장은 좀 쉬었다가 읽어야지 했던 것이 지금에 이르고 만 것이니까. 그게 참 그렇다. 오쿠다 히데오도 '남쪽으로 튀어!'까지는 참 재미나게 읽었는데 너무 많이 한꺼번에 끊임없이 줄줄줄 쏟아져 나오니까 그만 질려 손을 놓게 되고 마는 것이다.  

아마도 마지막으로 읽은 노통브의 소설은 '반박'이었을 것이다. '오후 네시'라는 제목으로 재출간된 버전이 아닌, '반박'이라 적힌 구간을 읽은 것이니 벌써 10년도 더 된 일일 터. 좀 쉬었다 읽는다 했던 것이 훌쩍 10년이나 흘러버렸으니 난 사실 노통브의 팬이라고 할 순 없겠다. 그럼에도 반박은 여전히 기억이 날 정도로 재미나게 읽었고, 노통브 특유의 감정적으로 '쎈'이야기들이 요즘들어 부쩍 읽고싶어졌랬는데...때마침 노통브의 신간소식이 들려온 것이다. 대충 소개글을 읽어보니 이번엔 노통브가 편지에 대한 고찰을 시도한 모양이다. 얼핏 가장 진솔하며 극진한 형태의 글이라 할 수 있는 편지가 실은 그 행간 속에 가장 많은 것을 감출 수 있고 둘러댈 수 있는 거짓과 위선의 매체일지도 모른다는 걸 노통브는 만천하에 공개하려는 것일까. 정말 그런거라면 얼른 찾아 읽어보고 싶다. 그런 편지라도, 진솔함과 극진함을 가장한 거짓과 위선으로 가득한 편지라도, 받아보고 싶은 요즘이니까. 그렇게라도 소통이 절실해진 세상이니까. 

  

불완전한 사람들 / 톰 래크먼 / 시공사

각 장마다 각자의 이야기가 펼쳐지는 이야기는 언제나 재미있다. 같은 시공간에서 벌어지는 같은 사건들을 두고 얽히고 얽히는 등장인물들의 모습을 다각도로 조명하며 모두의 속내를 속속들이 들여다 볼 수 있으니 어찌 흥미롭지 않을 수 있을까. 이러한 형식의 이야기를 꼭 소설만 해낼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여러 매체 중 소설이 가장 잘해낼 수 있는 형식인 것은 분명해 보인다. 신문사에 모인 불완전한 사람들, 각자의 이야기들의 합이라니. 재미나겠다, 재미나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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링컨 차를 타는 변호사 - The Lincoln Lawy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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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튜 매커너히가 이 정도의 배우였다는 사실을 알게 해준 것만으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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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중한 날의 꿈 - Green Day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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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만으로도 충분했는데 나레이션이 조금 과했다. 그럼에도 너무나 사랑스러운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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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 쉬러 나가다
조지 오웰 지음, 이한중 옮김 / 한겨레출판 / 201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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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 쉬러 나가다 / 소설 / 조지 오웰 / 한겨레출판 (2011)

국내 초역. 이 한마디의 홍보문구와 그 옆에 새겨진 조지 오웰의 이름만으로 우리는 이 책, '숨 쉬러 나가다'를 꺼내 듭니다. '1984'와 '동물농장', '카탈로니아 찬가'를 읽은 독자라면 도저히 외면할 수 없었을 것이고, 이 세권의 대표작을 아직 읽지 못한 그러나 언젠가는 읽어봐야지 했던 예비 독자들 또한 오히려 이 세 편을 읽기 전에 그의 초기작으로 시작하는 것도 그럴듯 하겠다는 생각에 선뜻 손이 갔을 터 입니다. 저의 경우는 뭐 그 중간쯤입니다. 세 권의 대표작 중 아직 '카탈로니아 찬가'를 읽지 못했으니까요. 그럼에도 그의 작품 중 아직 번역되지 않은 작품이 있었다니, 얼른 읽어보고 싶은 마음이 생겼으니까요. 

그러나 막상 읽게 된 '숨 쉬러 나가다'는 생각했던 것과는 혹은 기대했던 것과는 조금 다른 소설이었습니다. 조지 오웰의 작품들에 익숙한 독자들이라면 실망과 당혹스러움에 어쩔 줄 몰라할 만큼, 조지 오웰의 작품을 처음 접하는 독자라면 그의 작품세계와 스타일을 오해할 만큼 그 형식이나 내용이 낯설고 그다지 '조지 오웰'스럽지 않다고 느껴졌거든요.   

일단 제가 당황스러웠던 것은 선명한 비유와 풍자, 그리고 숨 샐 틈 없이 직조된 촘촘한 구조로 독자들을 자신이 만든 세계로 몰아넣어 그 억압된 세계의 부조리함을 몸소 체험할 수 있게 해주었던 것과 달리 이번 소설은 마치 일기나 에세이를 보는 듯 너무나 느슨하고 헐거운 읆조림에 불과하다는 점이었습니다. 여전히 날카롭고 통찰력있는 비유와 진단들이 곳곳에서 빛을 발하긴 했지만 그 역시 한 개인의 사적인 주절거림 뒤에 숨은 탓에 그리 인상적이거나 도드라져 보이지 않았으며, 전체적인 구조는 구조라 칭하기도 민망할 정도로 단선적이고 평이합니다. 가족과 직장이라는 견고한 울타리에 둘러쌓인 채 전쟁을 앞둔 침울한 사회분위기에 염증을 느낀 중년의 남자가 숨을 쉬기 위해 소소한 일탈을 감행했다가 집으로 다시 돌아오는 여정이 이 소설에 담긴 이야기의 전부이며, 이 이야기는 주인공 남자의 일인칭 시점으로 진행되는 것입니다.  이러한 방식의 소설이 물론 나쁘다는 뜻은 아닙니다. 다만 이렇게 일상적이고 사변적인 방식의 소설을 조지 오웰이 썼다는 것이 조금 놀라웠을 뿐입니다. 

그렇다면 조지 오웰은 왜 이러한 소설을 썼던 것일까요? 아마도 이에 대한 답이 바로 이 소설의 주제이자 메시지일 것일 테지요? 제 짧은 생각으로는 아마도, 1차대전이 끝나고 2차대전이 발발되기 직전의 영국 서민계층의 별볼일 없는 일상을 통해 당시의 숨막힐 듯 답답한 사회분위기를 가감없이 직접적으로 보여주고 싶었던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1차대전을 이미 겪은, 전쟁의 무서움을 너무나 잘 알고 있는 중년의 주인공이 다시 또 끔찍한 전쟁이 시작되리라는 것을 직감하고는 전쟁 자체보다 그 이후에 대해 걱정하고 염려하며 몸서리치는 모습. 그러면서도 자신이 왜 이런 걱정을 하는지 알 수 없다며 자조하며 전쟁이 곧 시작되리라는 걸 알면서도 정작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무기력한 모습. 가장으로써 가족 누구와 진심으로 소통하지 못하면서 그저 돈버는 기계로 가족을 부양해야하는 자신의 처지에 답답해하며 자신을 둘러싼 모든 것으로부터 벗어나 잠시 잠깐의 숨 쉴 수 있는 여유를 찾고 싶어 발버둥치는 애초로운 모습을 통해 작가는 이것이 바로 현대를 사는 우리의 모습이라고 말하고 싶었던 것이 아닐는지요. 불평하고 비난하며 불안해하고 걱정하지만, 자신은 억압받고 있고 고통받고 있다고 강변하지만, 정작 진정한 자유를 위해서 행동하고 발언할 용기는 갖고 있지 않은, 여전히 순응하고 복종하며 그러한 부조리한 사회의 일원으로 또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우리, 자신 말입니다. 

무려 80여년전에 쓰여진 이 소설을 읽으며 이렇게 깊게 공감하고 있다는 건, 지금 현재도 그때와 아무것도 달라진 것이 없다는 뜻일테지요? '1984'와 '동물농장'을 읽었을때와는 조금 다른 느낌으로 조지 오웰의 혜안과 통찰이 새삼 경이롭게 느껴지는 오늘입니다. 이 일상 깊숙이 침투한 우리의 패배감과 무력함을 어떻게 극복할 수 있을까요. 지난 시간들에 대한 추억과 향수를 통해 젊은 날의 꿈과 희망을 잠시 잠깐이나마 떠올리며 남은 생의 활력을 되찾기 위해 애쓰는 주인공의 모습이 그에 대한 답이 될 수 있을까요. 솔직히 잘 모르겠습니다. 그렇다고 하기엔 우린, 최소한의 낭만 조차 허락되지 않은 세상을 살고 있는건 아닌지요. 이것 참. 모르겠습니다. 저도 훌쩍, 단 며칠이라도, 이곳을 떠나, 좋았던 그 시절 그 곳으로 가봐야겠습니다. 그저, 숨이라도 쉴 수 있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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