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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숭이와 게의 전쟁
요시다 슈이치 지음, 이영미 옮김 / 은행나무 / 2012년 12월
평점 :
절판
원숭이와 게의 전쟁 / 요시다 슈이치 / 은행나무 (2012)
곧바로 느낌이 올 만큼 익숙한 은유는 아니지만, <원숭이와 게의 전쟁> 이라는 제목의 의미를 알고 나서 저는 '다윗과 골리앗' 혹은 '계란으로 바위치기' 정도로 이 제목을 편안하게 받아들일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는 힘없는 약자들이 모여 부조리한 현실 혹은 권력과 자본을 이용해 약자들을 괴롭히는 악인들에 맞서는 이야기를 자연스레 기대하게 되었지요. 언제나 신나는, 언제나 통쾌한, 그리고 언제나 가슴 졸이게 되는, 그런 이야기 말입니다.
그러나 결론부터 말씀드리자면, 이 <원숭이와 게의 전쟁>은 우리가 제목에서 유추 가능한, 그리고 그로부터 기대하게 되는 이야기가 결코 아니었습니다. 아니, 근본적으로는 그런 이야기에 가깝다고도 할 수 있겠습니다. 어쨋든 평범하고 힘없는 이들이 모여서 불가능해 보이는 시도와 도전을 하는 이야기니까요. 그러나 이를 풀어가는 방식, 궁극적으로 말하자고 하는 바에 있어서는 우리가 기대한, 통쾌하고 시원한 느낌이 전혀 아니었습니다. 그렇다고 재미없고 지루한 이야기 또한 아니었으니... 이 소설은 참, 뭐라 규정짓거나 한마디로 설명하기에는 난감한 이야기였다고 밖에 말씀 드릴 수 없을 듯 합니다. 대체 뭐가 어땠길래 똑바로 말을 못하고 빙빙 돌리기만 하냐구요? 그러게 말입니다. 그런데 백번을 생각해도 참 오묘하다고 밖에 할 수 없는, 그런 소설이었습니다. 적어도 저에게는.
우선, 주인공들. 엄밀히 말하자면, 이 소설은 뚜렷한 주인공이 없습니다. 옴니버스가 아님에도 등장인물 모두가 주인공이고, 등장인물 모두가 주체가 되어 이야기를 끌어갑니다. 그런데 더 재밌는 건, 누구 하나 뚜렷하게 사건을 주도하는 사람이 없다는 것입니다. 미스키, 도모키, 준페이, 미키, 유코, 미나토, 도모카... 이들 모두 이 소설의 주인공들이라 해도 손색이 없지만, 이들 중 진짜 주인공이 누구냐고 묻는다면, 자신있게 누구라고 답하기가 참 어렵습니다. 이제껏, 특히 소설에서는 이렇게 집단 주인공들이 이야기를 끌어가는 경우가 그리 새롭거나 특이한 것은 물론 아닐 겁니다. 그러나 이 소설처럼 뭐랄까...그 어떤 인물도 앞으로 나서기를 주저하고 있다는 생각이 드는 소설은 처음이었습니다. 난 절대 주인공이 될 수 없다고, 스스로 인정하는 인물들만 잔뜩 모여있는 이야기라니.
그렇다보니, 이야기는 좀체 앞으로 나아갈 줄을 모릅니다. 다들 각자의 사연, 각자의 일상을 풀어내느라 바빠 정작 이 이야기의 중심플롯은 뭔지 까먹은 인상입니다. 준페이와 도모키가 뺑소니 사고를 빌미로 미나토를 협박한다는 계획도 어느새 흐지부지 되고, 미나토의 비서인 유코가 준페이와 가까워지며 진짜 '나쁜놈'들에 맞서 분연히 일어나 이길 가능성이 별로 없는 싸움에 나선다는...우리 모두가 이 소설을 시작하며 기대하고 고대하던 순간 역시...책의 2/3 정도 지점이 되어서야 겨우 시작될 정도입니다. 그러나 더 기막힌 건, 그나마도 절대 우리가 생각했던 그런 통쾌하고 어마어마한 도전이 아니라는 점입니다.
이 소설의 등장인물들은 작정이라도 한듯, 그렇게 하나같이 자신의 자리에서 할 수 있는 걸 할 뿐, 그 이상을 욕심내 무모한 싸움이나 도전을 하지 않습니다. 태생이 소박하고 너무나도 분수를 잘아는 미스키와 도모키 부부는 물론이고, 가장 용기있고 과감해보이는 준페이나 유코 조차 그러합니다. 즉, 이들이 '게'들일 수 있고, 저들이 '원숭이'일 수 있으며, 이들간의 싸움이 권위와 편견에 대한 도전일 순 있겠지만, 절대 '전쟁'일 수는 없는 겁니다.
그렇게 끝까지 다 읽고나서도 저는 작가가 이 소설을 통해 궁극적으로 말하고자 하는 바가 무엇인지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기성세대와 권력자들이 쳐놓은 벽이 얼마나 견고한지 보여주기 위해 이런 전개 이런 인물들을 의도했다고 하기에는 극적인 면모가 너무 약합니다. 그렇다고 극적인 설정과 장치들을 끌어들이지 않음으로써 현실에서의 '전쟁'이란 이렇게 싱겁고 소박할 수 있다는 것을 말하려 한것이라고 생각하는 것 또한 억지스럽게 그 의미를 갖다붙인 것에 불과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한참을 더 고민하던 저는 결국 이런 말도 안되는 결론을 내리고 맙니다. 이것이 바로 일본이라는 사회, 그 자체라는. 이 정도가 일본의 뜨거움이고, 일본의 저항이고, 일본의 도전이며, 그렇게 일본의 젊음인 것이라고. 너무나도 견고한 안정기에 접어든 일본이라는 사회에서 가능한 변혁이란 이 정도이며, 그러한 사회에 속한 일본의 젊은이들이 할 수 있는 시도란 이 정도라고. 이를 가감없이 묘사함으로써 작가는 지금 현재의 일본이라는 사회가 지닌 모순과 문제점, 그리고 그 답답한 세상에 적응하려 애쓰며 살고 있는...지나치게 위축된 젊은 청춘들의 현재를 가감없이 보여주려 한 것이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