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의 힘]을 읽고 리뷰 작성 후 본 페이퍼에 먼 댓글(트랙백)을 보내주세요.
개의 힘 1 밀리언셀러 클럽 124
돈 윈슬로 지음, 김경숙 옮김 / 황금가지 / 2012년 4월
평점 :
구판절판


 

개의 힘 (전2권) / 돈 윈슬로 / 황금가지 (2012)

 

자, 드디어 <개의 힘>에 대해 이야기할 시간입니다. 이 어마어마한 소설을 어디서부터 어떻게 이야기해야 할까요? 단순히 분량이 길어서 어마어마한 것은 물론 아닙니다. 솔직히 물리적 분량은 그 장대한 서사에 비하면 놀라울 정도로 적습니다. 10권쯤 되는 대하소설로 완성됐어도 이상하지 않을 만큼, <개의 힘>이 다루고 있는 시간적, 그리고 공간적 넓이와 깊이는 만만치가 않습니다. 말그대로 시대 그 자체라고, 혹은 역사 그 자체라고 할 수 있을 정도입니다. 

이거 이거, 안되겠습니다. 이대로 가다간 두서없이 중구난방 생각나는대로 한없이 떠들게 될 거 같습니다. 얼마나 정리가 될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그래도 어떻게든 하나씩 하나씩 꼭 짚을 것들만 짚으며 이 길고 긴 이야기에 대한 이야기를 본격적으로 해보겠습니다. 그 첫번째는...

 

집중과 생략

 

<개의 힘>이 놀라운 이유는 무수한 인물이 끊임없이 등장하고, 엄청난 사건들이 정신없이 연달아 발생함에도 불구하고 전혀 복잡하다는 생각이 들거나 쫓아가기 힘에 부친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이 정도로 복잡한 플롯의 이야기가 이 정도로 무리없이 잘 읽히다니...기적 혹은 마술이라고 밖에 설명할 수 없을 정도로 기이한 경험이었습니다. 

수십명의 인물들의 30년의 세월을 다룬 엄청난 이야기를 두 권 분량으로 감당해내기 위해 중간 중간 무수한 생략을 감행했음에도 이야기는 끊기는 일이 없고, 따로 안내표가 첨부되어 있을 정도로 등장인물이 많지만 이야기가 어느 정도 궤도에 이른 다음부터는 굳이 안내표에 의지하지 않아도 등장인물들의 캐릭터와 전사(前史)가 자연스레 떠올랐습니다.   

이러한 효과적인 단순화가 가능했던 것은 인물들을 효과적으로 솎아내 중요인물을 집중적으로 부각시키고, 앞서 말했듯 과감한 생략을 통해 보여줄 것만 보여주고 나머지는 상상할 수 있도로 만들었기 때문입니다. 아직 이 소설을 읽어보지 않으신 분들은 '그거야 좋은 이야기의 당연한 조건 아니야?'라며 당연하게 생각하실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이 소설을 읽어보신 분들은 아실 겁니다. 이 소설은 도저히 이 정도의 단순화가 가능한 이야기가 아닙니다. 이건 진짜, 과장을 좀 보태서 표현하자면...작가가 미치거나 신들리지 않고서는 해낼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그럼에도 작가는 이 말도 안되는 일을 해냈고, 그 결과로 우리는 이 엄청난 소설을 너무나 편안하고 쉽게 읽는 행운을 얻게 된 것입니다.  

 

아트와 아단

 

그 불가능한 단순화를 가능하게 하는 인물은 당연하게도 주인공인 아트와 아단처럼 보입니다. 선과 악의 경계 따위를 초장부터 우습게 허물어버리는 우리의 주인공 아트와 흔히 절대 악의 상징처럼 표현해내기 쉽지만 '상대적 선'인 아트보다 인간적이고, 아트보다 유약한 '상대적 악' 아단. 이 둘의 존재로 <개의 힘>은 인간의 이야기가 아닌 (결코 선하지 않은) 신들의 이야기, 즉 신화처럼 보일 지경입니다. 인간의 복잡한 모든 내면을 몽땅 간직한, 그렇게 너무나 인간적이어서 오히려 인간처럼 보이지 않는 두 기둥이 선과 악, 삶과 죽음, 인간과 신, 이승과 지옥(이 소설에 천국 따윈 애초부터 존재하지 않으니까요)을 끊임없이 오가는 덕분에 우리는 한눈 팔 새 없이 이 소설이 그려내는 지옥도의 한복판에 떨어져 이들과 함께 그 처절한 지옥을 경험할 수 있는 것입니다. 작가는 앞서 말했듯이 신에 들린 듯 일필휘지로 평생을 걸고 서로를 쫓고 서로에게 쫓기는 이들의 집요한 추격전을 매인플롯 삼아 이 복잡다단한 지옥도를 단순화했던 것입니다.  

 

진짜 주인공

 

그러나 이 소설이 진짜 놀라운 이유는 우리가 당연히 주인공이라 생각하는 아트와 아단이 실은 이 소설의 주인공이 아니라는 사실 때문입니다. 이 소설의 진짜 주인공은 따로 있습니다. 어쩌면 주인공이라는 말이 꼭 맞는 말이 아닐지도 모릅니다. 작가가 가장 애정을 가지고 있는  인물, 작가가 궁극적으로 이야기하고자 하는 바를 대변하고 상징하는 인물을 주인공이라 부른다면 그렇다는 뜻입니다.

네, 이미 이 소설을 읽으신 분들은 잘 아시겠지만, <개의 힘>의 진짜 주인공은 칼란과 노라입니다. 분명 이들의 이야기는 서브플롯이고, 이들은 아트와 아단을 보조하는 인물들이지만, 아트와 아단이 인간이 아닌 '신'이기에 이 이야기의 진짜 주인공은 진짜 인간 중의 인간인 칼란과 사라일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이 소설 속에서...마땅히 인간이 느끼고 누려야 할 사랑을 느끼고, 인간이 마땅히 가져야 할 희망을 지닌 유일한 인물들이 바로 칼란과 노라인 것입니다. 작가는 아트와 아단을 통해 우리가 사는 이 세상이 지옥의 다름 아니라 말해놓고는, 슬그머니 이들을 통해 이 세상이라는 지옥이 그래도 살만하다고, 살아낼 가치가 있다고 강변하고 있는 것입니다. 물론 이러한 일말의 긍정이 가능한 것은 후안 신부의 노력과 희생이 있었기 때문일 것입니다. 

 

희망의 정체

 

그렇습니다. 후안 신부라는 매개가 없었으면 이 거대한 소설은 결코 숨막히는 지옥을 벗어나지 못햇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쯤에서 우리는 이 소설이 소름끼치는 또 하나의 이유를 발견해야 합니다. 마땅히 천사 그 자체여야 할 후안신부조차도 절대 선이 아니라는 것, 이것이 바로 <개의 힘>이 이야기하고자 하는 사랑과 희망의 진짜 얼굴인 것입니다.

자신의 사랑, 자신의 희망을 구현하기 위해 후안신부가 행하는 절대악과의 협상과 타협, 그리고 그 끝에서 맞이하는 전혀 고결하지도 아름답지도 않은 스스로도 원치않았던 타의에 의한 희생까지. 작가는 후안을 그렇게 희망의 상징이 아닌 절망의 상징으로 그려내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사랑도 희망도 결국 없는 것이냐구요? 끝내 지옥의 구렁텅이로 우리를 몰아넣고 만 것이냐구요? 아닙니다. 적어도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이러한 후안신부라는 존재를 통해 작가는 이 소설을 사실의 세계가 아닌 진실의 세계로 진입시키는 경지를 보여줍니다.

 

진실과 마주하기

 

"우리가 사는 세상이 이렇게까지 타락했고, 이렇게까지 지옥같아? 정말 그래? 아무리 그래도 이건 너무하잖아. 이건 우리가 사는 세상이 아니야! 이게 진짜라고? 거짓말! 이건 다 거짓말이야!"

 

작가는 이러한 반응을 예상이라도 한 듯, 마치 기다렸다는 듯 후안신부의 죽음으로 거짓말처럼 인간성을 되찾은 칼란과 사라를 본격적으로 부각시키며 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른 이야기를 하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이제부터는 이 이야기가 진짜인지 아닌지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좋은 이야기란, 진짜를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진짜처럼 보이도록 만드는 것일지도 모릅니다. 그렇기에 혹자는 이 소설이 현실을 과장하고 오독했다고, 그렇게 우화에 불과하다고 폄하할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정말 그렇다해도 그게 과연 잘못일까요?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편안한 사실보다는, 불편한 진실을 택하는 것. 그것이 바로 이야기꾼의 책무이고, 좋은 이야기의 조건이 아닐까요? 그런 의미에서 우리는 <개의 힘>이 그리고 있는 한없이 불편한 진실의 세계를 외면해서는 안될 것입니다. 그 불편한 진실의 세계가 편안한 사실의 세계로 변하는 그날까지, 두눈 부릅뜨고 세상과 맞서야 할 것입니다. 시기는 그리 중요하지 않습니다. 처음부터 후안신부가 그랬고, 어느 순간부터 아트가 그랬고, 결국에는 칼란과 사라도 따랐듯이. 살아있는 동안, 기꺼이 그 지옥의 고통을 감내할 끈기와 용기가 있으면 되는 것입니다. 그것이 진짜 사랑인지, 희망인지는 아직 알 수 없지만 말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스노우맨]을 읽고 리뷰 작성 후 본 페이퍼에 먼 댓글(트랙백)을 보내주세요.
스노우맨 형사 해리 홀레 시리즈 7
요 네스뵈 지음, 노진선 옮김 / 비채 / 2012년 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스노우맨 / 요 네스뵈 / 비채 (2012)

 

이 복잡해보이는 소설의 구조와 플롯에 대해 이야기하는 건 별로 의미 있는 일이 아닐 듯 합니다.

 

왜냐구요?

 

생각보다 그리 복잡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사건도 많고 등장인물도 많은 듯 하지만, 가만 잘 살펴보면 이 소설의 사건은 하나이며 등장인물들 또한 여느 추리소설에 비해 그리 많다고 할 수 없습니다. 생각보다 쉽게, 그리고 금방 사건은 가지런하게 정리가 되고 하나의 결말을 향해 전진하기 시작합니다. 인물들 또한 일찌감치 링 위에 올라 서로 자신이 범인이라고 다투기 시작하고, 한명씩 한명씩 적절한 시점에 그로기 상태가 되어 링 밖으로 끌려 나감으로써 우리의 머릿속에 일어날 혼란을 방지해 줍니다.

즉, 이 소설은 시종일관 전지전능한 작가의 의도를 적나라하게 드러냄으로써...꽉 짜여졌지만 이걸 짠 사람이 바로 작가이며 우리는 그러한 작가의 게임에 참여하고 있다는 걸 환기해주는 작품입니다. 이는 다시 말하면 이 소설이 철저히 자신의 성격을 대중 스릴러로 규정짓고 있으며, 그 이상으로 한 발자국 더 나아가기를 의도적으로 거부하고 있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여전히 말이 어려운가요? 쉽게, 한마디로, 작가는 이 소설이 인간의 본성이나 인생의 비의에 대해 논하는 대단한 명작이나 걸작으로 읽히기를 원치 않았을 거라는 뜻입니다. 물론 이는 의도라기보다는, 작가의 역량이 딱 그 정도이기 때문일 수도 있겠습니다.

개인적으로 작가에 대해 잘 모르고, 작가의 작품을 더 읽어본 것도 아니기에 이를 섣불리 단정할 순 없을 터입니다. 그럼에도 제가 이를 작가의 역량 문제라기 보다는 '어쩌면 의도'라고 생각하는 이유는...한 인물의 실체를 드러내며 드디어 뭔가 이야기할 수 있는 순간이라는 생각이 드는 순간, 그를 맥없이 버리는 과정이...너무도 꾸준하게 끝까지 반복되었기 때문입니다.

 

즉, 모두 범인일 수 있으며, 모두 범인인 이유가 충분함에도 모두 결국 범인이 아니라는 트릭.

 

이는 지금껏 수많은 추리소설에서 반복된 당연한 기법이며 장치들이지만, 저는 이 소설처럼 충분히 범인일 수 있는 등장인물들이 이렇게나 많이 등장하는 소설을 본 적이 없습니다. 그 정도면 범인이어도 뭐라 안할께, 라고 말하고 싶을 정도로 개연성을 잘 쌓아올려놓고는 한순간에 범인이 아니라며 공든 탑을 무너뜨리는 과정이 무려 4번이나 반복되는걸 지켜보다 보니, 이건 대체 뭘까, 싶어졌던 겁니다.  그것도 1번보다 더 강력한 2번, 2번보다 더 확실한 3번, 3번이 우스워보일 정도로 너무나 명확한 4번을 만들어놓고는, 결국 4번조차 범인이 아니라니!

그리고는 갑자기 여느 할리우드 스릴러에서 흔히 보아온 5번을 갑자기 끌어와 얘가 진짜라고 말하는 순간, 저는 작가의 진짜 의도가 무엇인지 혼란스러웠습니다. 1, 2, 3, 4번 캐릭터 각각이 충분히 매력적이며 할 이야기가 많은 용의자들이었기에 조금은 뻔하고 맥없는 5번의 출현은 난감했습니다.

그저 반전을 위한 반전을 즐긴 것인가, 우리를 그저 게임의 한복판에 가져다 놓는 것으로 만족하는 것인가. 이 정도가 작가의 공력의 전부인가. 결국 실망을 금치 못하며 책장을 덮을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나 저는 계속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왜 5번이 범인이지, 가 아닌, 왜 1,2,3,4번이 범인이 아닌거지, 에 대한 생각이었습니다. 그 정도로 정교하게 쌓아놓고는 마치 변태처럼, 혹은 심술난 천재처럼, 자신의 공든 탑을 스스로 무너뜨리고 또 다시 더 높은 탑을 쌓아올리며 자신의 솜씨와 머리를 뽐내는 작가의 치기어린 모습을 대체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 걸까?

 

이 의문이 바로 이 소설을 작가의 '어쩌면 의도'라고 볼 수 밖에 없는 이유입니다. 정말 그렇다해도, 아직 그 이유가 정확히 무엇인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작정하고 쓴 그의 회심의 역작을 보고 싶을 뿐입니다. 그때가 되면 비로소 명확해질 터 입니다. 이 시작은 창대했으나 끝은 미약한, 과정은 나무랄데 없으나 결과는 만족스럽지 못한, 이 작품이 심술 가득한 천재의 낙서 같은 작품인지 아니면 재능은 없지 않지만 끈기는 부족한 장인이 급히 마무리하는 바람에 결국 범작이 된 작품인지...말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옆 무덤의 남자]를 읽고 리뷰 작성 후 본 페이퍼에 먼 댓글(트랙백)을 보내주세요.
옆 무덤의 남자
카타리나 마세티 지음, 박명숙 옮김 / 문학동네 / 2012년 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옆 무덤의 남자 / 카타리나 마세티 / 문학동네 (2012)

 

제목이 '옆 무덤의 남자'라는건 이 소설의 주인공은 여자라는 뜻인 걸까요? 아주 정확하게, 단 한번도 어긋남 없이, 남자와 여자의 시점을 부지런히 오감에도 그렇다는 걸까요? 여류 소설가의 작품인 만큼 여자 주인공인 데시레에게 감정이입되어, 자신도 모르게, 아무리 균형을 맞추려 노력해도 결국에는 여성의 시선에서 바라본 연애 이야기 혹은 사랑 이야기라는데는 저 역시 이견이 없습니다. 다만 개인적으로 저는 굳이 따지자면, 이 소설의 주인공은 남자인 벤니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 역시 읽은 제가 남성이기 때문일 수도 있을 터입니다. 더군다나 소설 속 남자주인공만큼 촌스럽고 멋대가리 없다보니, 더욱 더 감정이입이 됐을 지도 모르구요. 그렇거나 저렇거나, 쓰는 건 작가 마음이었듯이 읽는 것은 독자인 제 마음일테니 그저 읽은대로 생각한대로 말하면 그뿐이겠지요?

 

네 그렇습니다. 이 소설은 그 정도로 부담없는 소설입니다. 굳이 파고 들어가 구조가 어떻고 캐릭터가 어떻고 주제가 무엇이고 궁극적으로 말하고자 하는 바에 대해 고민할 필요가 없는, 본대로 느끼고 느낀대로 말하면 되는 그런 소설 말입니다. '옆 무덤의 남자'는 그렇게...데시레와 벤니, 둘 중 하나에게 이입해서 상대와 진짜 사랑에라도 빠진 듯, 이 불가능한 듯 보이지만 너무나도 가능성 넘치는, 꿈같으면서도 더없이 현실적인 연애를 대리경험하고 대리만족하는 신기한 경험, 그만으로 충분한 이야기인 것입니다.

 

진심으로 그럴 수 있다는 건, 반대로 생각하면 이 소설이 굉장히 짜임새 있고, 잘 쓰여진 소설이라는 뜻이기도 합니다. 아닌게 아니라 저는 솔직히 조금 어정쩡한 결말을 빼고는 이 소설에서 흠잡을 만한 곳을 찾기 어려웠습니다. 생동감 넘치다 못해 살아서 통통거리는 인물들과 이들이 쌓아가는 사랑의 감정, 이어지는 갈등, 그리고 전지구적 인간애를 과시하는 결말까지. 어색하거나 과하다는 생각이 드는 순간이 별로 없더군요. 이러한 개연성 가득한 자연스러움 덕분에 이 소설의 일견 판타지적 설정은 지극한 현실로 우리의 공감을 얻고, 이 불가능한 사랑이 충분히 가능할 수 있겠다는 환상 아닌 환상을 품을 수 있는 지경에까지 이르게 합니다. 괜히 스웨덴의 국민소설이 된 것이 아닐 터 입니다.  저 역시 깍쟁이 같은 도시 여자와의 로맨스를 새삼 꿈꿔볼 정도였으니까요.

 

물론 아쉬운 점이 없던 것은 아닙니다. 앞서 말씀드렸듯이, 이 소설의 조금은 뜬금없고 지나치게 이상적이며, 어쩔 수 없이 무책임한 열린 결말은 이 기묘하게 상큼한 연애소설의 옥에 티라 할 수 있습니다. 다음편을 기약하는 듯한, 한없이 찜찜한 결말 때문에 다 읽고도 읽다 만듯한 아쉬움이 들고 마는 것이지요. 진짜 후속편이 있다는 사실을 알았기에, 2편을 고대하는 즐거움이 생기긴 했지만 그럼에도 1편만의 완결성에 작가가 조금 더 공을 들였다면 어땟을까, 라는 생각이 드는 건 어쩔 수 없습니다.

 

부디 다음 편에서 이러한 미진함과 찜찜함이 단번에 해소되길 바라면서...

다음편에선 부디 이들의 사랑이 어떤 식으로든 현실에서도 이루어지기를.

제발 그렇기를!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달리의 고치]를 읽고 리뷰 작성 후 본 페이퍼에 먼 댓글(트랙백)을 보내주세요.
달리의 고치 작가 아리스 시리즈
아리스가와 아리스 지음, 최고은 옮김 / 북홀릭(bookholic) / 2012년 1월
평점 :
품절


달리의 고치 / 아리스가와 아리스 / 북홀릭 (2012)

 

달리를 동경해 달리의 트레이드 마크인, 중력을 거스르는 콧수염을 똑같이 기른 도조 슈이치가 그 수염이 잘린 채, 평소 애용하던 고치 안에서 살해된 채 발견됐다. 도조를 죽인 범인은 과연 누구이며 왜 죽였을까?

 

'달리의 고치'는 이 짧은 컨셉을 압축한 소설의 제목처럼  유명한 화가 살바도르 달리와 고치라는 '최첨단 휴식머신?'이 중요한 상징과 은유이자 사건해결의 열쇠로 등장하는 소설입니다.

 

달리

 

달리의 수염으로 상징되긴 했지만, 도조가 동경하는 건 달리의 외양이나 그가 수집한 달리의 작품들이 아니라 그의 삶 자체입니다. 그렇다고 지극히 범상한 두뇌와 사고방식을 가진 도조가 달리처럼 자유분방한 삶을 쫓는다는 건 사실 불가능한 일이었을 겁니다. 도조 스스로도 그에 대한 욕심은 그리 크지 않았던 듯 하구요. 도조는 이를 대신해 달리의 뮤즈였던 올가와 같은 여인을 만나는 것이 평생의 로망이었던 모양입니다. 올가가 달리의 영혼의 안식처이자 영감의 원천이었듯이 자신에게도 그러한 역할을 해줄 여인이 필요했던 것일 터 입니다.

비서인 사기오 요코는 바로 그러한 인물이라 할 수 있지만, 아쉽게도 현실 속 요코는 진정한 달리의 뮤즈였던 올가와 (물론 이 역시 논란의 여지가 많고, 여성을 대상화하는 뮤즈라는 표현 또한 지극히 남성적인 시선의 결과물에 불과할지도 모릅니다) 다르게 자신에게 관심을 보이는 두 남자 사이를 오가며 지극히 현실적 고민을 하는 속물에 가깝습니다. 

 

비극은 바로 여기서 시작됩니다. 도조는 달리의 외양은 카피할 수 있었지만, 그의 삶과 자신의 삶을 끝내 일치시킬 순 없었던 겁니다. 나는 나, 일 뿐 누구가 될 수 없다는 당연하지만, 아픈 진리. 도조는 어른이 되어서도 그 사실을 끝내 인정할 수 없을 만큼, 정신적으로는 미성숙한, 외롭고 고독한 인간이었는지도 모릅니다. 특히 이러한 삶에 대한 모방을 자신 스스로의 인격적 완성 혹은 라이프스타일의 창조적 재해석이 아닌, 여인과의 관계를 통해 완성하려했다는 것 자체가 도조라는 인물이 얼마나 불완전한 인간인지를 반증하는 증거일 것입니다.

 

고치

 

고치는 바로 그러한 도조의 불안정하고 유아기적 수준에 머물러 있는 정신상태를 상징하는 물건입니다. 회사에서는 최고의 능력을 발휘하는 수완 좋은 사업가이자 한 회사의 수장 역할을 너무나 완벽하게 해내지만, 실제 삶에서는 진정한 친구도 사랑하는 이도 없이 홀로 모든 걸 고민하고 결정해야 하는 그 압박과 고독에서 도망치고 싶어하는, 너무나도 나약하고 불완전한 존재에 불과한 도조가 유일하게 기대며 유일하게 평온을 얻는 곳이 바로 이 고치인 것입니다.

 

엄마의 뱃속처럼 아무 고민도 걱정도 필요없이, 태아때의 알몸으로 진정한 자신과 마주할 수 있는 곳...그곳에서 도조는 비로소 짧은 순간이나마 위안과 안식을 얻을 수 있는 것입니다. 물론 이 역시 각박하고 숨막히는 현실을 피하기 위한 도피처 일 뿐 근본적인 해결책이 될 리 없습니다. 도조 역시 그 사실을 모르지는 않았을 겁니다. 알면서도, 그 잠시 잠깐의 도피라도 자신에게 허락하고 싶었던 것일테지요.

 

 

굼벵이의 허물

 

'달리의 고치'라는 제목의 함의를 떠올리면서, 저는 굼벵이의 허물이 떠올랐습니다. 매미가 되기 위해 7년의 긴 시간 동안 허물을 벗지 못하고 인고의 세월을 보내다가 마침내 허물을 벗어나 매미가 되면, 겨우 10여일의 시간동안 소리내어 울다가 생을 마치는 굼벵이, 그리고 그러한 굼벵이가 수년 동안 견디며 살아냈던 허물, 말입니다.  

안타깝게도 고조는 그토록 원하며 기다리던 매미가 되지 못하고, 그를 꼭 닮은 허물 안에서 죽고 말았습니다. 고조를 죽인 물리적 범인은 물론 따로 있지만, 결국 고조를 죽인 것은 굼벵이로써의 자신의 삶을 사랑하지 못하고 평생 매미만 꿈 꾼, 고조 자신이 아닐까요? 더 이상 말씀드리면 소설의 결말과 연관된 스포일러가 될 거 같아 이쯤에서 멈춰야겠지만, 작가는 이 작품을 통해서 '자기 자신을 사랑할 줄 알아야 타인도 사랑할 수 있다'는 진리를 우리에게 말하고 싶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남에게 내세울 수 있는 떳떳하고 멋진 모습만이 아닌, 굼벵이처럼 못나고 추레한 자신의 속내까지 인정하고 사랑할 수 있을 정도로 자신을 들여다보고 그러한 아쉬운 부분을 보완하고 채워나갈 노력을 하는 과정을 통해 스스로를 인정하고 비로소 진짜 자신의 인생을 살 수 있는 것이라고.

 

그것이 진짜 인생이라고.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공항의 품격]를 읽고 리뷰 작성 후 본 페이퍼에 먼 댓글(트랙백)을 보내주세요.
공항의 품격
신노 다케시 지음, 양억관 옮김 / 윌북 / 2012년 1월
평점 :
절판


공항의 품격 / 신노 다케시 / 윌북 (2012)

 

솔직히 고백하고 시작하는게 아무래도 나을 것 같습니다.

 

네, 저는 사실 이 소설을 그다지 기대하지 않았습니다. 추천하기 까지 했지만, 막상 받고보니 도통 손이 가질 않더라구요. 돌려 말할 필요없이, 시시하고 껄렁한 이야기라고 지레짐작한 탓입니다. 읽기도 전부터 전문직 인간군상들의 소소한 일상을 다룬, 일본 드라마 같은 소설일 거라 확신한 터라 어마어마한 사건들이 마구 발생하는 뭔가 '극적이고 스펙타클한 공항24시'를 기대하기란 애초부터 힘든 일이 아닐까 싶었던 겁니다.

억지로 눈을 고정하며 읽기 시작한 소설의 첫 인상은 이와 같은 김빠진 예상을 그리 벗어나지 못했습니다. 한직으로 밀려난 여행사 직원의 신세한탄만 계속되고, 계속되고, 계속되었으니까요. 급기야 이걸 정말 끝까지 다 읽을 수 있을까, 다 읽어야만 하는 걸까, 심각하게 고민하며 책장을 넘기기를...한 시간.

 

가만. 한 시간?

 

네, 어느덧 한 시간이 흘러있었고 저는 두번째 챕터를 끝내고 세번째 챕터를 읽고 있었습니다. 이제 그만, 이제 그만, 하면서도 여기까지 온 겁니다. 피식 피식 김빠진 방귀마냥 덧없던 헛웃음은 어느새 사라지고, 만면에 미소를 띄우며 우리의 주인공 엔도의 다음 이야기를 궁금해하는 제가 보였습니다. 아니, 대체 ,왜? 이 아무것도 아닌 이야기가 어떻게 이렇게 재밌는 거지? 왜 다음 이야기가 이토록 궁금한 거지? 내 일도 아닌데 자꾸만 내 일처럼 생생한거지? 

 

공감, 그것도...전적으로, 대공감.

 

다른 설명 필요없이 이 소설의 가장 큰 장정미자 미덕이자 매력은, 바로 이것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공항을 뒤흔드는 대단한 사건이 일어나지도, 인물들간의 갈등이 서로를 죽일 듯 첨예하지도 않지만... 엔도의 새로운 사랑이 유학을 떠나는 순간, 엔도가 누구를 잘라야 할지 곤혹스러워 하는 순간, 우리는 어느덧 엔도가 되어 함께 가슴 아파하고 고뇌하며 작지만 오히려 그래서 우리의 삶 자체이기도 한 그 인생의 한 순간을 함께 경험하며 울고 웃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저는 그 어느 소설보다 빠르게, 쉬임 없이 이 책을 다 읽고 말았습니다. 그리고는 그 아쉬움에 저도 모르게 다음 권을 기대하게 되더군요. 입맛을 다시며, 다음 권에서는 엔도가 조금 더 성숙한 아포양이 되기를, 아니 오히려 지금처럼 좌충우돌 헤매이여 우리를 즐겁게 해주기를...바라면서 말입니다. 

 

공감에도 수준과 품격이 있다면, 이 소설이 가진 공감의 품격은 분명, 탑클래스가 아닐까 싶습니다.

살짝 칭찬의 수위가 높았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지만...그만큼 기대를 훨씬 웃도는 작품이었으니...

꼭 한번 일독을 권해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