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스팅의 제목을 '구입한 책'이라고 할 때마다 이놈의 작명센스를 탓하게 된다.
하지만 딱히 다른 제목을 넣을 수도 없는 '오늘의 구입한 책' 포스팅 되시겠다.
요즘은 책을 사들이기 보다는 읽는 쪽에 좀 더 집중하자고 마음 먹고 있어서 책을 사들이지 않았는데
오늘은 지난 주에 받은 상품권도 있고 해서 아주 약간 마음에 동(?)했다.

우천염천 / 브로크백 마운틴 / 우아하고 감상적인 일본야구

우천염천은 하루키의 남아있는 얼마 안되는 책이다. 지금까지 발간된 그의 에세이와 수필집은 모두 섭렵했는데
아직 섭렵하지 못한 책이 얼마전에 나온 <승리보다 소중한 것>과 <우천염천> 두권이다. <달리기를 말할 때
내가 말하고 싶은 것>을 읽으면서 하루키표 에세이에 다시금 홀딱 반했다. 조금 외도를 했으니 오랜만에 집중해서 
긴장감있게 읽어봐야지 싶다.

<브로크백마운틴>은 사실 영화에서는 별 감흥을 느끼지 못했다. 두 배우의 연기가 별로였다거나 이야기가 별로
였다거나 한건 아닌데, 참 이상스럽게 영화 자체에 몰입이 되지 않는다고 해야하나. 그런데 부분 발췌한 원작소설을 
읽어보니 왠건 영화보다 소설이 낫지 싶다. 그 때는 느끼지 못했던 그들 사이에 흐르던 무언가가 한껏 느껴져서
소중하게 읽고 싶어지는 그런 책이다.

소문만 무성했던 <우아하고 감상적인 일본야구> 이 책은 그야말로 소문은 무성한데 정작 읽은 사람은 없어서
읽고 나서 어떤 반응을 보일지 알 수 없는 그런 책이다. 마치 야마다 에에미의 <풍장의 교실>이 무수히 많은
소문에만 둘러 쌓여있다가 도서관 구석에서 만난 그런 기분이랄까? (난 대학 도서관에서 정말 우연히 찾았다)
<풍장의 교실>만 같았으면 하는 마음이다. 아 기대되는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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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러나, 나는 안다는 것은 상처받는 일이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안다는 것, 더군다 결정적으로 중요하기 때문에 의도적으로 삭제된 역사를 알게 된다는 것은, 무지로 인해 보호받아 온 자신의 삶에 대한 부끄러운, 사회에 대한 분노, 소통의 절망 때문에 상처받을 수 밖예 없는 일이다. 미국의 페미니스트 생물학자이자 과학철학자인 도너 해러웨이(Donna Haraway)는 이렇게 말했다. "과학 지식은 목적에 관한 것입니다. 특정한 것을 안다는 사실은, 설명 가능성의 의미를 변화시킵니다. 목격은 언제나 해석적인, 우발적인, 예약된, 속기쉬운 참여입니다. 목격이란 증언하는 것이고, 서서히 공공연하게 자신이 본 것과 기술한 것을 해명하는 것이며, 자신이 본 것과 기술한 것에 마음의 상처를 받을 수도 있는 일입니다."
 때문에 여성주의는 사람들은 '행복'하게 하지 않는다. 편안함은 더욱이 없다. 다른(Alternative)렌즈를 착용했을 때 눈의 이물감은 어쩔 수 없다. 여성주의 뿐만 아니라 기존의 지배 규험, '상식'에 도전하는 모든 새로운 언어는 우리를 행복하게 하지 않는다. 하지만 우리 삶을 의미있게 만들고, 지지해준다(empower). 여성주의는 남성과 여성 모두에게 자신이 어떤 존재인지 의문을 갖게 하고, 스스로 자신을 정의할 수 있는 힘을 준다, 대안적 행복, 즐거움 같은 것이다. (p12)


 페미니즘은 그렇게 거창하거나 '무서운' 것이 아니다. 이제까지 잘 들리지 않았던 여성들의 목소리에 귀기울여보자는 것이다. '다른 목소리'는 혼란이 아니라 다양성과 창조력의 원천이다. 사람들도 소품종 대량 생산 사회보다 다품종 소량 생산 사회에서 살고 싶어하지 않는가.
 초등학교 교실에서 실제 있었던 일이다. 5학년 남자 어린이가 별뜻 없이, 또래 여자 아이들에게 말했다. " 너희들 , 하느님이 나는 진흙으로 직접 만드시고, 여자는 내 갈비뼈로 만들 거 알아?" 그러자 두 명의 여자 아이들 말이 걸작이다. "그래, 네 말이 맞아, 근데, 누가 만들어 달라고 부탁했니?","그러니까, 너는 질그릇이고 나는 본차이나(Bone China)네!" 여성주의는 남자 어린이의 말이 틀렸다고 말하는 것이 아니다. 이 여자 어린이들의 재치있는 대응대로, 다른 해석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여성주의는 그러한 '다른 목소리'가 세상을 풍요롭게 만들고, 여성도 남성도 성장시킨다고 믿는다.(p70)

정희진 / 페미니즘의 도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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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바지 세상을 점령하다]의 서평을 써주세요
청바지 세상을 점령하다 - TBWA KOREA가 청바지를 분석하다
TBWA KOREA 지음 / 알마 / 2008년 12월
평점 :
품절


 

2008년이 지나가고 2009년이 시작할 무렵, 아니 굳이 이 때가 아니어도 시간에 큰 쉼표가 찍히는 순간, 사람들은 시간을 돌아보는 일을 하곤 한다. 무엇으로 시간을 돌아보고 또한 조직해서 세상을 바라볼지를 고민해야 하는 시간이다. 2008년에도 많은 단어가 세상을 수놓았고, 많은 이들이 다양한 단어를 내놓았다. 그런 이야기 속에 조금 재미있는 소재로 세상을 본 책이 등장했다. 청바지라는 소재로 미국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과거와 현재의 한국까지 이야기하는 책 <청바지 세상을 점령하다>

<청바지 세상을 점령하다>는 청바지의 탄생부터 현재까지, 청바지의 역사와 그 청바지와 함께 한 미국과 세계의 흐름에 대해서 말한다. 종교의 박해에서 벋어나 자유를 찾아 떠난 이들이 만든 미국에서 이야기는 시작한다. 그들은 미국에 도착하자마자 기존에 유럽에서와는 다른 삶의 방식을 받아들여야 했다. 변화에 적응하지 못한 이들은 그해 겨울을 넘기지 못했기에 그들에게 변화에 대한 적응은 곧 생존이다. 1840년대 한창 서부개척이 이루어지고 골드러시라는 이름으로 모든 이들이 미국 서부로 달려갈 무렵 그들에게는 동양에도 서양이라는 이름으로 대변되는 청바지가 등장했다. 굳은 일을 해야하는 이들에게 싸고 해지지 않는 질긴 옷으로, 미국 서부의 변화를 대변하는 옷이 바로 청바지였다. 그렇게 탄생한 청바지는 미국을 벗어나 전 세계로 팍스 아메리카나의 이름으로 퍼져나갔고, 세계 사람들은 미국의 문화를 향유하며 청바지로 대변되는 자유로운 문화를 즐겼다. 때로 청바지는 자유로운 문화의 상징으로, 사회에 대한 반항의 메세지, 이제는 청바지 사이즈와 가격으로 자신을 대변하는 문화에 맞게 변화를 하며 사람들의 필수품이 되었다.

   
  청바지가 프래그머티즘을 만나지 않았다면? 한떄 유행으로 끝났을 것이다.
사람에 옷을 맞추기 보다 옷에 사람을 맞추었다.
생산 속도를 폭발적으로 가속시키는 컨베이너벨터 장치에 올라타 대량 생산을 시작했다.
그 결과 청바지는 가장 많은 개체들의 피부가 되었다.
프래그머티즘에 기반을 둔 제품들은 미국을 경제적으로 성공한 강국으로 만들었다.
실용성, 효용성을 찬양한 결과다. 가격도, 혁신도 감수했다.
살아남아야 하는 절박감 갑자기 팽창해버린 사회를 유지해야 하는 긴장감.
그들은 현재에 도움이 되는 대답에 관대할 수 밖에 없었다.
19세기에서 20세기 초반 미국의 사회 상황은 실용성에 기반을 둔 크리테이더 들로 넘쳐났다.
포드,에디슨, 라이트형제가 있었고 아인슈타인은 미국으로 망명했다. 채플린, 앤디 워홀 같은 아티스트들도 등장했다.
 
   
<창바지 세상을 점령하다>는 가볍게 읽을 수 있는 책이다. 책도 두텁지 않고 내용도 어렵지 않고 책도 일반적인 보고서라고 하기에는 자유롭다 싶을 정도로 제작되었다. 오히려 이 책은 표지만 때어놓고 보면 패션잡지의 특별판 같은 느낌으로 매우 가볍다. 이 책에 들어간 활자를 읽는데 걸리는 시간은 물리적으로 1시간 남짓이다. 하지만 이 책을 읽고 난 후에 내 청바지를 보면서, 사람들이 입은 청바지를 보면서 생각하는 시간은 물리적인 1시간에 비할바가 아니다. 청바지를 미국 프로그머티즘과 결합하여 시대를 읽을 수 있는 코드로 만들고, 그 코드가 현대까지도 유효함을 정리한 것이다. 왜 미국은 그토록 실용적인 것을 강조하는가, 그들에게 왜 변화는 생존인가, 21세기 보보스라는 이름으로 등장한 이들은 사회를 어떻게 살아가는가, 미국으로 대변되는 문화에 너무나 익숙해져 이제는 일상을 놓고 보면 미국인지 한국인지 구분할 수 없는 이 삶은 무엇인가를 고민하게 한다.
 
이 책은 한 광고 기획사 신입직원들의 보고서이다. 그들이 청바지를 가지고 세상을 읽어보라는 과제에 대한 산물이다. 이 얼마나 멋진 결과물인가. 우리는 청바지 한장을 보면서 그 가격과 디자인을 생각하고 지나갈 뿐이지만, 그들은 청바지라는 매일 접하는 단순한 한장의 옷에서도 이렇게 많은 이야기를 할 수 있고, 생각을 할 수 있다. 사실 한가지 장점이자 단점은 이 책의 표면적 구성이라고 생각한다. '청바지 탄생 150주년 기념'으로 나온 패션 잡지의 특별판처럼 지금까지 읽던 책이라 보기에는 화려하고 독특한 디자인이 인상적이다. 아마도 광고 기획사라는 특성상 책 디자인도 지금 20,30대들에게 접근하기 좋도록 디자인 되어 있는 듯 하다. 나에게는 다소 부담스럽게 나가온 면이 많았지만 지루하지 않은 책 읽기에는 분명 나쁘지 않을 듯 하다. 즐겁지 않고 재미있지 않으면 접하려고 하지 않는 21세기 한국 사회를 반영하는 디자인이라고 해야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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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노라면 별 일이 다 생기나부다.   




별일이다.-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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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이야 2009-01-24 17: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하루님 축하해요^^
저 이 책 주문해뒀는데요...

하루 2009-01-24 21: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책은 정말 읽는 재미가 솔솔하답니다. 하하하 :)
+감사합니다. 명절 선물인가봐요 :)
 


난 지금까지 1년 몇 개월 정도 회사를 다녔지만 회사에서 나온 명함을 사실 한 통도 다 써보지 못했다.

회사의 특성상 외부 사람과 자주 만날 일이 있지 않은지라, 사실 명함을 쓸 일이 거의 없다.
(그리고보니 내 명함은 거의 가족, 친척, 친구들과 가끔 일로 만나는 사람들에게 전달되었군)

사실 명함과 관련해서 재미있는건 명함을 가지고 있으면 꼭 쓸 일이 없다는 사실. 지갑에 들고 다니기는 하지만 
명함을 가지고 있으면 막상 쓸 일이 생기지 않는다. 그런데 재미있는건 꼭 그러다가 지갑정리를 한다거나 해서 
명함이 마침 딱 빈 날 아는 사람을 갑작스럽게 만나거나 혹은 기타 등등으로 인해 사용할 일이 생긴다는거다. 이거 참 난감하다.


사실 몇 일 전에도 점심 시간에 점심을 먹고 커피를 사서 들어오는 길에 누가 툭 치길래 돌아보니 대학 때 같이 스터디를 했던 사람이다.
반가운 마음에 잠깐 인사를 하고 어느 회사에 다니는지 무슨 일을 하는지 이야기를 소소하게 나누었다.
그러다가 자연스럽게 점심 시간이니 시간은 없고 해서 명함 이야기가 나왔는데, 하필 이날도 명함이 없었던거다.
덕분에 난 그분의 명함을 받아서 오고 내가 연락을 하기로 했다. 

 
사실 명함을 지갑에 넣어다니는걸 꽤 싫어한다. 명함은 명함지갑에 들어 있어야 한다는 고전을 신봉하는 사람은 아니지만
그래도 역시 명함을 카드 전표와 함께 지갑에 넣어서 다니는건 좀 아니지 않나 싶은게 솔직한 마음이다.
어쩌면 그래서 지갑 속에 명함이 꼭 필요할 때면 없는지도 모르겠다.
덕분에 집에 들어온 이 시간에 텐바이텐에 잠시 들어가, 명합지갑과 카드지갑에는 어떤게 있나 유심히 보고 있다. 


그러다가 생각했다. 사실 명함지갑같은거 없어도 전혀 문제 없는데.
명함지갑이 없어도 카드지갑이 없어도 사실 살아가는데는 아무 문제가 없다는걸.
어쩌면 우리는 어떤 물건을 '필요'에 의해 구입하고 소비하는게 아니라 '욕구'에 의해 구입하고 소비하는게 아닐까.
필요와 욕구의 가장 큰 차이점은 외부에서 강제되는냐이다. 요컨데, 필요는 외부에서 강제되지 않지만 욕구는 그렇다는 것.
요컨데, 조금 과격하게 말하면 때로 욕구는 강요된다고 난 생각한다.
개인에 따라 필요와 욕구의 차이가 있을 수는 있겠지만 현대는 욕구를 강요당하는 시대이다. 좋은 싫든.


결론은  명합지갑과 카드지갑은 굳이 없어도 문제없을 것 같다는 것.
하지만 돌아서면 난 또 욕구에 굴복할지도 모른다는 것.
왜냐하면 난 지금도 인터넷 한 창은 텐바이텐에 할애하고 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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