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나, 나는 안다는 것은 상처받는 일이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안다는 것, 더군다 결정적으로 중요하기 때문에 의도적으로 삭제된 역사를 알게 된다는 것은, 무지로 인해 보호받아 온 자신의 삶에 대한 부끄러운, 사회에 대한 분노, 소통의 절망 때문에 상처받을 수 밖예 없는 일이다. 미국의 페미니스트 생물학자이자 과학철학자인 도너 해러웨이(Donna Haraway)는 이렇게 말했다. "과학 지식은 목적에 관한 것입니다. 특정한 것을 안다는 사실은, 설명 가능성의 의미를 변화시킵니다. 목격은 언제나 해석적인, 우발적인, 예약된, 속기쉬운 참여입니다. 목격이란 증언하는 것이고, 서서히 공공연하게 자신이 본 것과 기술한 것을 해명하는 것이며, 자신이 본 것과 기술한 것에 마음의 상처를 받을 수도 있는 일입니다."
 때문에 여성주의는 사람들은 '행복'하게 하지 않는다. 편안함은 더욱이 없다. 다른(Alternative)렌즈를 착용했을 때 눈의 이물감은 어쩔 수 없다. 여성주의 뿐만 아니라 기존의 지배 규험, '상식'에 도전하는 모든 새로운 언어는 우리를 행복하게 하지 않는다. 하지만 우리 삶을 의미있게 만들고, 지지해준다(empower). 여성주의는 남성과 여성 모두에게 자신이 어떤 존재인지 의문을 갖게 하고, 스스로 자신을 정의할 수 있는 힘을 준다, 대안적 행복, 즐거움 같은 것이다. (p12)


 페미니즘은 그렇게 거창하거나 '무서운' 것이 아니다. 이제까지 잘 들리지 않았던 여성들의 목소리에 귀기울여보자는 것이다. '다른 목소리'는 혼란이 아니라 다양성과 창조력의 원천이다. 사람들도 소품종 대량 생산 사회보다 다품종 소량 생산 사회에서 살고 싶어하지 않는가.
 초등학교 교실에서 실제 있었던 일이다. 5학년 남자 어린이가 별뜻 없이, 또래 여자 아이들에게 말했다. " 너희들 , 하느님이 나는 진흙으로 직접 만드시고, 여자는 내 갈비뼈로 만들 거 알아?" 그러자 두 명의 여자 아이들 말이 걸작이다. "그래, 네 말이 맞아, 근데, 누가 만들어 달라고 부탁했니?","그러니까, 너는 질그릇이고 나는 본차이나(Bone China)네!" 여성주의는 남자 어린이의 말이 틀렸다고 말하는 것이 아니다. 이 여자 어린이들의 재치있는 대응대로, 다른 해석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여성주의는 그러한 '다른 목소리'가 세상을 풍요롭게 만들고, 여성도 남성도 성장시킨다고 믿는다.(p70)

정희진 / 페미니즘의 도전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