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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웨덴 연설.문학 비평 알베르 카뮈 전집 18
알베르 카뮈 지음, 김화영 옮김 / 책세상 / 200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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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명히 책을 읽었음에도 불구하고 쉽게 이야기를 할 수 없고 글을 쓸 수 없는 책이 있다. 아니 어쩌면 그런 작가가 있는지도 모른다. 알베르 카뮈는 내게 그런 작가이다. 그의 글은 <이방인>을 시작으로 <시지프 신화>를 거쳐 <최초의 인간>에 이르기까지 적지 않게 읽었음에도 그의 글과 그에 대한 글을 쉽게 쓸 수 없다. 책을 읽을 때는 격렬하게 읽지만 막상 언어로 쓰려고 하면 막히는 이 답답함을 난 카뮈에게서 항상 느낀다. 

카뮈의 직접적인 목소리를 듣는다
카뮈에 관한한 가장 신뢰하는 번역을 하는 김화영 교수의 번역으로 진행되는 책세상 문고의 18번째 책이 나왔다. <스웨덴 연설. 문학 비평>로 노벨 문학상을 받은 후 그가 짧막하게 연설한 원고와 당시 문학 비평과 짧막한 인터뉴의 녹취록이 정리되어 있다. 소설이나 희곡과는 다르게 카뮈가 가지고 있는 생각을 그의 목소리로 직접 들을 수 있다는 것이 산문의 장점이다. 소설과 희곡을 읽으면서 잡힐듯 잡히지 않던 그의 목소리가 이러한 산문을 한권 읽으면 조금은 맑아지는 기분이 드는건 나뿐일까?

'스웨덴 연설'에서는 1957년 그가 노벨 문학상을 받았던 시기의 문학과 세계와 사람들에 대한 통찰이 엿보인다. 특히 오늘날의 문학과 오늘날의 예술가들에 대한 그의 고민은 꽤나 컸다는 것이 많이 포착된다. 작가는 역사를 만드는 사람이 아니라 역사를 겪는 사람을 위해서 봉사한다(p.11)는 그의 말은 예술가의 시대의식에 대한 고민을 보여준다. 예술이 국가 권력에 대해 자유를 유지하는 방법에 대해 그는 다소 과격할지도 모르지만 떨져 일어나 싸우거나 항복하거나(p.20)를 선택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예술가의 직무 유기에 대한 이야기와 오늘날 위대한 예술가가 된다는 것은 자신의 작품이 더 이상 널리 읽히지 않는다는 것이라는 그의 자조는 꽤 웃음을 짓게 한다. 하지만 이 모든 것들이 그의 당시 고민들의 반영이라고 하지만 2000년대 현재 문학에도 크게 벗어나지 않는 고민이라는 점이 씁쓸하면서도 재미있다. 

또한 재미있는 부분은 적지만 재미난 인터뷰 녹취 부분이다. 작가로 삶을 유지하기 위해, 생계문제가 글을 쓰는데 영향을 주지 않기 위해 한 때 교사가 되고자 했다는 부분에서는 그와는 다른 견해와 삶을 보여준 미루아먀 겐지가 떠올랐다. 미루아야 겐지는 소설가에 충실하게 살아가기 위해 모든 생활을 접고 시골로 낙향해서 집필활동을 했으니 어쩌면 카뮈와는 조금 다른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의 자신의 현재에 대한 고민은 꽤나 나에게도 그 고민을 하게했다. 

부끄럽지만 이 책에서 어쩌면 내가 공들여 읽은 부분이 김화영 교수가 쓴 해설 부분이 아닐까 싶다. 문학비평에 대한 부분은 각 문학 작품을 읽어본 것이 손에 꼽을 정도이기 때문에 다소 소화하기가 버거웠기 때문이겠지만, 카뮈는 목소리는 꽤나 많은 해설을 참고해서 읽은 셈이다. 다른 책에서도 그렇지만 김화영 교수의 해설은 꽤나 친절해서 너무 과하지(?) 않나 싶을 정도이다. 책을 읽고 혼자 머리를 싸매기 보다는 해설을 한번 읽어보면서 카뮈에 대한 부담감을 극복하는데 도움으로 삼으면 좋을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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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09-10 10:54   URL
비밀 댓글입니다.

하루 2007-09-10 11: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예, 오늘 오후나 내일 오전중으로 입금할께요.^0^
+감사합니다. :)
 
로마인 이야기 6 - 팍스 로마나 로마인 이야기 시리즈 6
시오노 나나미 지음, 김석희 옮김 / 한길사 / 199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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격정적으로 살았고 시종일관 유쾌하던 카이사르가 등장한 시대를 지나 그의 양자이자 제정을 연 아우구스투스의 시대가 <로마인 이야기 6 : 팍스 로마나> 의 내용이다. 4,5권에서는 너무 비대해져 로마가 기존에 공화정으로는 효율적인 통치가 불가능한 것을 감지한 카이사르가 원수정을 제국에 도입하기 위한 정치적 투쟁과정에 초점이 맞춰졌다. 카이사르의 선견지명은 맞았는지, 6권 <로마인 이야기 : 팍스 로마나> 에서 그의 양자로 들어간 아우구스투스는 카이사르의 유지를 받들어 그의 시대를 '팍스 로마나'로 만들며 화려한 제정시대를 열게 된다.


카이사르 VS 아우구스투스, 시대가 다른 인물을 원했다
카이사르와 아우구스투스를 비교하지 않는다는건 말이 안된다. 이 둘만큼 이나 비슷하면서도 다른 사람도 드물기 때문이다. 천재라는 이름으로 불린 카이사르와 아우구스투스는 꽤 많은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둘다 선견지명이 있었다는 점, 시대가 무엇을 원하는지를 제대로 파악하고 있었다는 것을 말이다. 카이사르는 모든 이들이 알레르기를 일으키는 일을 시도해야 하는 혁명가에 가까웠다면, 아우구스투스는 혁명이 진행되고 난 후 새로운 틀을 짜는 요컨데 재건축을 담당한 것이다.


물론 둘은 차이점이 꽤나 많지만 사실 둘의 차이는 단순히 인간의 차이가 아니라 시대가 요구하는 것이 두 사람에게 달랐다는 것에서 오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시대의 변곡점을 돌아야 하는 카이사르와 변곡점을 지난 제국에 대한 그림을 그려나가는 둘은 엄연히 다른 능력이 요구되었다. 카이사르는 다른 어떤 능력보다 군사적 능력과 사람을 다룰 줄 아는 능력이 기막혔다. 이와는 조금 다르게 아우구스투스는 제도를 정비하고 시대가 숨고르기를 하고 더 나아가는데 필요한 것을 채워넣을 줄 아는 능력을 가지고 있었다. 이 정도가 되면 저자의 말대로 리스트럭쳐(restructure)의 달인이다.


시대가 영웅을 만드는걸까, 영웅이 시대를 만드는걸까

시오노 나나미는 카이사르에게 능력으로 발탁된 아우구스투스가 유독 혈연에 칩작하는 모습이 모순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곰곰히 아우구스투스의 삶을 들어보면 그는 카이사르에게 발탁이 되었고, 카이사르의 이름을 평생 자신의 이름 앞에 달고 살았고 또한 살아야만 했다. 자신의 아버지의 혹은 선조의 이름이 통치에 얼마나 도움이 되며 자신을 자괴감에 빠지게 하는지 또한 분명히 알고 있었을 것이다. 아마도 나는 그가 장점을 분명히 알고 있었기 때문에 유독 혈연을 강조한 것이 아닌가 싶지만, 그럼에도 시오노 나나미의 말처럼 혈연에 대한 그의 집착은 과한 면이 적지 않았던건 분명하다.


또한 6권을 읽으면서 제정에 대한 정의도 새롭게 했는데, 제정이란 황제 혹은 일인자가 통치하는 방식을 지칭하는 말이기 때문에 그 권력이 세습되는지와는 사실 관련이 없다. 지금까지 제정이이라는 통치 방식을 권력이 세습되는 정치를 지칭한다고 생각했던 나로서는 꽤 큰 놀라운 점이었다. 그런데, 왕정은 임금이 통치하는 방식이고, 제정은 황제가 통치하는 방식이면 둘은 단순히 통치하는 사람에 따라 달라지는 것인가? 왕정과 제정에 대해 좀 더 분명한 정의를 알아봐야할 필요성을 느낀다. 


아우구스투스를 보면서 드는 생각이지만 시대가 영웅을 만드는지, 영웅이 시대를 만드는지를 다시 한번 고민하게 한다. 시대가 혼란할수록 영웅이 등장한 것을 보면 시대가 영웅을 만든다는 말에 동의하고 싶지만, 다시 생각해보면 영웅이 시대를 만들어 가는 것이 아닌가 싶기도 하다. 시대가 카이사르 같은 변곡점에 맞는 인물을 원했던 것이고, 시대가 아우구스투스 같은 조직을 정비할 수 있는 인물을 원했던게 아닌가 싶기도 하다. 하지만 그들이었기 때문에 시대를 제대로 읽어낼 수 있었는지도 모르겠다는 생각도 꽤 오래했다.


다음은 로마인 이야기 시리즈는 <로마인 이야기 7 : 악명높은 황제들> 이다. 얄궂게도 혈연을 통해 황제 자리를 물려주려고 한 아우구스투스는 지하에서 후회 막심 할 일이지만, 그의 혈연을 따라간 후손들이 어떻게 로마를 통치했는지를 따라갈 수 있는 꽤나 재미있는 책이니 기대된다. 그리고 항상 어느 정치나 틀을 잡은 초장기를 지나면 위기가 오곤 하니 그것 또한 재미있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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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소년 경제 수첩 양철북 청소년 교양 1
크리스티아네 오퍼만.한대희 지음, 신홍민 옮김 / 양철북 / 200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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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인슈타인이 말년 미국에서 살 때 옆집 아이에게 수학을 가르쳤다는건 꽤 유명한 일화이다. 그런 이야기 덕분인지 언젠가부터 들은 이야기를 오래 기억하고 있다. 어느 분야이든 자신이 아는 내용을 어린 아이가 이해할 수 있을 정도로 설명할 수 없으면 그 분야를 제대로 아는 것이 아니라고 한다. 과연 정말 어느 분야를 알면 알수록 공부하면 할 수록 오히려 어린 아이에게 설명하는 것이 점점 어려워져가기만 한다. 사실 다 보다 두살 어린 동생에게 경제를 설명하는 것도 이렇게 어려운데 어떻게 아이에게 경제를 설명할지 아연하기만 하다.


대중에게 경제를 설명한다는 것, 정말 어렵죠

매일 들여다보는 뉴스나 신문이나 단연 1면은 경제에 할애가 되는 걸 보면 과연 경제가 과연 사회를 돌리고 있다는걸 실감하게 된다. 하지만 정작 재미있는 것은 그 경제 기사를 이해하는 사람은 생각보다 그렇게 많지 않은지도 모른다는 것이다. 


얼마전 최근 화두인 CD금리와 변동금리로 대출하는 사람간에 문제라는 기사가 나왔다. CD금리는 단기 자금시장을 반영하는 금리이기 때문에 단기 자금 시장이 압박을 받게 되면 금리가 치솟게 되고 이로인해 변동금리 대출자들에게 고스란히 전가되게 된다. 문제는 대출자들은 대부분 장기로 대출을 받는 경우이기 때문에 단기 금리를 고스란히 받는 것은 불합리하다는 기사였다. 이것을 CD금리와 단기 자금시장과 변동금리 대출자 간에 관계를 정확하게 이해하는 사람이 이 기사를 보고 얼마나 있겠느냐 이 말이다. 경제는 점점 전문화 되어 가지만 그것을 알아야 하는 대중은 점점 그것에서 유리되는 것이 아닐까?


이렇게 대중에게 경제를 설명한다는 것은 점점 어려워 지고 있지만, 다행스러운 것은 그렇기 때문인지 혹은 사람들의 재테크에 대한 열광(?) 때문인지 경제에 대한 책이 점점 늘어나고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시중에 나와있는 대부분의 책은 경제서로 분류하기 보다는 재테크로 분류하고 싶을 정도로 '경제'가 돌아가는 것에 대한 기본적인 책은 참 찾기가 어렵다. 그런데 <청소년 경제 수첩>은 무려 청소년에게 경제를 설명하겠다고 도전했다. 그것도 순수 경제가 돌아가는 구조를 말이다. 


경제를 찬찬히 해집어봅시다

1장은 생산과 소비, 2장을 노동과 소득, 3장을 저축과 투자, 4장을 나라의 경제와 세계의 경제로 나누어서 한 주제에 2~3페이지 내외로 짧막한 주제들을 넣어가면서 서술한 점이 특징적이다. 단편적인 에피소드만 나열하는 것이 아니라 4장을 책을 구분한 것은 거시경제의 틀을 충실하게 답습한 것이어서 쉽게 쓰려고 했으나 체계를 세우려고 노력한 듯 하다. 그 안에 들어있는 짧막한 이야기들은 읽으면서 꼭 일간경제지에 나와있는 청소년 경제 섹션을 읽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물론 일간지 청소년 용으로 실려있는 경제 이야기보다는 내용도 훨씬 다양하고 실제 예가 풍부하기 때문에 다르기는 하지만 기본적인 구조와 수준은 비슷했지 싶다. 


사실 이 책은 청소년용으로 쓰여져 있다고 하지만 경제에 이자와 투자의 상관관계조차 가물가물한 일반인에게도 적당한 책이다. 왜 우리는 버냉키 FRB총재의 입에서 나오는 말에 그리고 신경을 곤두세우는 것이며 그들의 회의록에 그토록 관심을 보이는지 알 수 없는 사람이라면 이 책을 읽으면서 고개를 끄덕일 수 있을 것이다. 최근 붐이라고 할 수 있는 재태크에 뛰어 들기 전에 이런 간단하지만 쉽게 읽을 수 있는 책으로 경제가 돌아가는 기본 틀이라도 한번 더 들으면 도움을 많이 받을 수 있을 것이다. 


비록 이 책이 초등학생에게 경제가 돌아가는걸 설명하지는 못하겠지만 그래도 한창 많은 것이 궁금할 중고교 학생들이 읽는 것도 꽤 재미있을 것 같다. 짧막한 이야기와 예를 많이 들어놓았기 때문에 머리를 싸매고 읽지는 않아도 될테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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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msilyelim 2007-08-31 10: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사실 나도 경제엔 문외한인지라 경제기사를 읽어보아도 재미가 전혀 없습니다. 이 책이 조금은 도움이 되겠네요

하루 2007-09-10 09: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쉽게 쓰여지고 재미있는 소재도 많아서 쉽게 읽으실 수 있을 것 같습니다. :)
 
추사 2
한승원 지음 / 열림원 / 200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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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처음으로 추사를 만난건 국사 교과서였다. 그는 금석학의 대가이자 명필로 소개되었고, 나는 그를 그 이상으로도 이하로도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가 정치에 몸을 담았다는 것 자체를 이해할 수 없었고, 그는 별일없이 초야에서 무사하게 살다간 그런 사람인줄 알았다 이 말이다. 덕분에 그리 평범하게 살았을 것이라 생각한 덕분인지, 추사는 내게 별 무게감 없는 인물로 낙인 찍혀 관심 밖으로 밀려 나버렸다. 

그러다 <목민심서>라는 소설을 읽다가 추사를 아주 오랜만에 다시 만났다. 유배된 정약용과 초의스님은 스승과 제자 관계였고, 초의 스님과 추사는 벗이었다. 당시 젊은 추사는 정약용이 근처에 있다는 소식을 초의 스님에게 듣게 되고, 그를 졸라 몇일 동안 정약용을 만나게 된다. 당시 유배를 온 정약용을 만난다는 것 자체가 큰 모험일 수 있겠지만, 그는 그런 일에 개의치 않았다. 짧은 인연이었지만 정약용을 찾아간 그의 모습이 참 오래도록 남아 있었다. 아마도 그때 처음으로 난 추사를 금석학과 명필로만 기억하지 않은 것 같다. 

 
인간 추사를 만나다
한승원의 소설 <추사>는 추사 김정희의 지극히 너무나 인간적인 삶을 조명한다. 마치, 김훈이 <칼의 노래>에서 국사 교과서 속에 이순신이 아닌 너무나 인간적인 이순신을 다룬 것처럼, 한승원은 그렇게 추사를 그렸다. 어린 시절 자신의 집을 떠나 큰 아버지 댁에 양자로 가서 집안을 이어야 했던 소년 시절과, 북학파와 접하면서 학문에 눈을 뜨게 된 모습과, 큰 아버지의 죽음과 어머니의 죽음 이후 닥쳐온 개인적인 그리고 정치적인 시련으로 그의 인생은 그려진다. 

<추사>에서는 재미있는 것이 당시 정치적 상황과 추사 개인의 삶을 잘 배분해서 서술하고 있다는 것이다. 특히 정약용의 삶에서 귀향이라는 단어를 빼놓을 수 없는 것처럼, 추사의 삶에서도 귀향은 빼놓을 수 없는 것이다. 그 때문인지 <추사>에서는 귀향을 간 추사의 삶에 많은 공을 들인 것이 보인다. 또한 인상적인 그의 어린 시절과 청년 시절에는 그의 성장배경과 성격을 짐작할 수 있도록, 그리고 어쩌면 진정 추사의 입으로 듣는 것처럼 느껴지는 그의 이야기를 전한다. 다만, 그의 집안 사정으로 부인과 자녀에 대한 부분에서 역사적으로 정말 추사의 자녀는 어떻게 되는지 꽤 궁금하기도 했다.(아마 부인과 자녀에 대한 부분은 정확한 사실일 것으로 생각하지만) 
 
한승원의 소설 <추사>는 여러가지 면에서 읽어봄직하다. 이유로 첫째는 추사 김정희를 국사 책에서 끌어 내온 것이다. 둘째로는 작가의 견해가 많이 들어간 너무나 인간적인 추사 김정희에 흠뻑 젖을 수 있기 때문이다. 금석학의 대가로 명필가로 그를 서술하는 일은 어렵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추사의 어린 시절부터 노년까지 짧지 않은 분량으로 훑어 내려가면서 때로는 당쟁에 휘말리고, 한 여인을 사랑했으며, 서얼인 자식을 진정으로 걱정하기도 했던 그의 너무나 인간적인 면을 한껏 느낄 수 있었다. 다만, 지나치게 짧게 각 장이 나뉘어져서 읽는 동안 흐름이 끊기는 문제가 있기는 했지만 그야 작가의 의도로 생각할 따름이다. 

 
오늘은 유독 날씨가 가을 같다. 바람이 너무 서늘해서 밖에 앉아 있으면 서늘하다 못해 추울 지경이다. 이런 가을로 접어는 시점에 너무나 인간의 냄새가 물씬 나는 추사를 만나게 되서 참 다행이었다. 특히나 이런 달이 뜨는 날에는 그가 더욱 생각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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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번가의 석양 - Always
야마모토 코우시 지음, 한성례 옮김 / 대산출판사 / 200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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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분명 아날로그 적인 감성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지금도 행복하지 않다거나 한건 아니지만 적어도 지금보다 어린 시절이 조금 더 재미있고 살만하지 않았나라고 가끔은 그렇게 생각한다. 그리고보면 아버지도 가끔 말씀하신다. 너희들이 어렸을 때가 아버지는 더 좋았던 것 같다고, 그때가 딱히 여유가 있는 것도 아니었지만 아버지도 젊어서 뭐든 할 수 있을 것 같았고 너희들이 커가는 재미가 있었다고. 물론 과거를 끊임없이 반추하고 돌아보는 것은 인간의 당연한 모습이겠지만, 정말 아주 가끔은 정말 그 때가 나쁘지 않았어라고 생각할만한 그런 시절이 존재한다. 

그 때, 그 시절을 기억하십니까.

<Always 3번가의 석양>은 1950년대 말 한창 도쿄타워를 짓는 일본을 배경으로 한다. 우리로 따지면 70년대 한창 경기를 일으킬 때이지 않을까 싶은데 그런 시기를 배경으로 했다는게 꽤 강하게 작용한다. 물론 나는 60,70년대를 살아보지는 않았지만 아버지와 어머니의 이야기, 그리고 지금까지 읽어본 수많은 작품들에서 느낄 수 있는 그런 '온기'를 느끼게 하는 그런 이야기들이 가득가득하다. 4월에 시작한 이야기는 다음해 3월로 이어져 12편의 한 마을 사람들 이야기로 끝이 난다. 짧막한 소설들 속에는 오해로 헤어진 남편을 찾아온 아내도 있고, 가난해서 우산 하나를 돌아가며 쓰는 가족도 있고, 사장과 직원이라는 관계보다 그야말로 가족이라는 표현이 어울리는 사람들도 있다. 가난하지만 가족이 함께 살 수 있는 곳이 있어 행복한 사람들이다. 꿈을 잊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다시금 소록소록 꿈을 키우는 사람들이 살아가는 곳이 바로 이곳이다. 

이 소설은 그야말로 '그 때, 그 시절을 기억하십니까'라는 질문을 생각나게 하는 책이다. 어쩌면 사람들은 이미 과거가 지나가 버렸기 때문에 좋은 기억만을 가지고 있는지도 모른다. 가난이 너무 싫었고, 왜 가족들끼리 한꺼번에 끼어 자야 했는지 이해할 수 없던 그런 시절이 분명히 있었다. 하지만 아침도 함께 먹지 못하고 밤에 잠 자기 전에 한번 보는 가족 생활을 하고 있다면, 지그 이 시절이 꽤 아주 많이 그리울 것이다. 요컨데 이유는 하나다 그 시절이 체온과 온기를 나눌 수 있는 시절이었기 때문이다. 비록 지난 추억의 미화라고 부를지라도 말이다. 

<Always 3번가의 석양>은 기막히게도 들어가는 글이 이 책에서 말하고 싶은 점을 모두 이야기한다. 모든 과학을 하는 사람들의 고민 거리인, 과연 과학이 인류를 행복하게 해주는가라는 질문에 대한 답을 작가는 독자에게 묻는다. 과학이 발달하고 생활이 편리해졌지만, 정말 우리는 더 행복해진 것일까, 그 때보다 더 삶을 무료하게 보내고 있는 것은 아닐까. 이 시대를 기억하는 어른들은 <Always 3번가의 석양>을 읽으며 아이에게 그 시절의 소소한 추억들을 이야기할 수 있을 것이다. 아날로그적 감성이라고 부를지도 모르지만 분명 그런 시절은 있었다. 그리고보면 사람 사는건 다 비슷한 것 같다. 일본이든 한국이든. 

 

이 이야기의 무대는 1958년 도쿄의 한 마을이다. 당시는 필터 달린 담배, 죽석 치킨 라면 등이 판매되었고, '역도산'이 국민적 영웅이었으며, 훌라후프가 대츄행을 하고, 도쿄타워가 완공되던, 미터법이 시행되었어도 척관법이 더 쉽게 느껴지던 그런 시대다.
에어컨이 일반화되지 않았지만 선풍기, 부채, 발, 풍경, 물뿌리개만으로도 충분히 여름 더위를 견딜 수 있었고, 겨울이면 가족들끼리 몸을 바짝 붙이고 자면서도 온도계 따위로는 측정할 수 없는 따스함을 느낄 수 있었다.
아버지들도 지금만큼 가혹한 시간 외 노동을 하지 않았고 가족과 함꼐 밥상에 둘러앉아 그날의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다. 세탁기, 냉장고, 청소기와 같은 가전제품이 없어도 어머니들은 척척 가사를 해냈고, 피부관리실이나 피트니스 클럽에 다니지 않아도 체지방이 적고 건강한 몸을 유지했다. 솥으로 밥을 짓고 풍로에 생선을 굽고 아이들 바지를 기워 입히고 헌 옷으로 휴대용 봉지를 만드는 등의 일을 귀찮기는 해도 창조적이고 충실한 작업이었다.
아이들은 들판이나 강 같은 놀이터에도 만족했고, 체험을 통해 사회의 룰이나 싸움에 대처하는 요령 등을 배웠다. 풍부한 상상력으로 단순한 나뭇가지는 칼이나 총이 되고, 잡목림은 모험심을 돋우는 밀림이 되었으며, 혜옥은 도깨비 집으로 변신했다. 아버지에게 야단맞고 벽장이나 헛간에 갇혔을 대는 어머니가 몰래 주먹밥을 넣어 주기도 했다.
이웃들은 동네 아이들의 얼굴과 이름, 성격 등을 잘 알고 지켜봐 주었으며, 아이가 나쁜 짓을 하면 자신의 아이처럼 야단쳤다. 골목길은 부인들이 쑥덕공론을 벌이는 우물가 같은 장소였고, 목욕탕에서는 아버지들이 잡답을 나누었다. '먼 친척보다 가까운 이웃이 낫다'는 말이 정말로 실감나는 그런 시대였다.
현대의 우리는 정말 그 무렵보다 풍부하고 행복해진 것일까. (pp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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